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그래도 다음에는 꼭 빼세요! 모두 준비됐죠?”
“예, 족장님!”
이제 우리가 떠나면 캥과 멍들, 그리고 궁수 교육을 받는 아이들 몇만 남게 된다. 물론 배트맨의 부하들이 경계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니 특별하게 위험할 것은 없다.
“조심해서 잘 다녀와라.”
“예, 할머니!”
나는 할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출발!”
드디어 원숭이들과의 과일 쟁탈전의 서막이 올랐다.
* * *
“족장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악어머리 족장의 움막 안으로 들어선 이빨은 악어머리 족장 앞에 무릎을 꿇고 보고했다.
이빨의 뒤에는 작은 새끼 물소 두 마리가 묵직한 대나무에 다리가 묶인 상태로 매달려 있었고, 그 대나무의 앞뒤로 전사들이 세 명씩 달라붙어 힘겹게 들고 있었다.
새끼 물소는 살아 있는 채여서 계속해서 버둥거렸고, 그때마다 전사들의 이마에서 한 방울씩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 연꽃이 어떻게 사는지 잘 보고, 땅속에서일어서도 잘 살피고 와라.”
“예, 족장님!”
“그리고…… 반드시 받아 와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이빨의 옆에 서 있던 큰눈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악어머리 족장과 이빨을 보고 있었고, 큰눈의 옆에는 뚜따가 담담히 돌창을 들고 서 있었다.
“떠나라! 이빨, 내가 한 말을 잘 생각해야 한다.”
“예, 족장님!”
악어머리 족장은 이빨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새끼 물소를 들고 있는 전사들의 뒤에는 서른 명의 전사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땅속에서일어서가 만들어 준 대나무 갑옷과 날카로운 돌창을 들고 있었다.
차림새만 본다면 또 어딘가에 있는 부족을 약탈하려는 것 같았다.
‘강한 적이 될 싹이라면 자라기 전에 밟아 버려야겠지.’
악어머리 족장은 하늘 부족이 자신의 아들이자 차기 족장인 큰눈의 방해물이 된다면 검은고래 부족처럼 깡그리 파괴해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
과일나무 숲으로 가는 도중 이달투드워프1은 내가 나뭇가지에 얼굴이라도 찔릴까 걱정이 됐는지 길도 모르면서 앞서서 나뭇가지들을 쳐 내고 있었다.
‘너의 충성심은 진짜 인정해 준다.’
이달투드워프1의 발에는 피딱지가 앉았다.
들여다보니 곪고 있는 것 같다.
상처가 곪으면 이 시대에서는 치료하기 상당히 어렵다. 몰래 치유의 손길 스킬로 치료도 해 줬는데도 저 정도면 치유의 손길을 쓰지 않았다면 벌써 곪아 터졌을 것이다.
‘봉와직염은…….’
군대에서 병사들이 자주 걸리는 곪는 병인데, 흙이 안 좋아서 걸린다.
빨리 발견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늦게 발견하면 엄청나게 고생을 하거나 상처 부위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치유의 손길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지…….’
걸을 때마다 절뚝거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 * *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한참을 걸어 끼끼라고 불리는 원숭이들이 서식하는 과일나무 숲의 초입에 들어섰다.
이곳에도 과일나무는 있었고,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지만 원숭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원숭이들이 없네…….”
“저 열매부터 따려고요?”
원숭이들이 던진 것들에 비하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양으로 따지면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데 너무 높은 곳에 달려 있네…….”
“제가 올라갈게요.”
여기서 가장 날렵한 것은 빛이다.
엘프는 숲 속의 사람이라는 이명처럼 숲에서 생활한다. 물론 빛은 이제 엘프가 아니지만 그래도 엘프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날렵하기까지 하니 여기서 누구보다 나무를 잘 탈 것이다.
“아니야,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크게 다쳐. 이곳에는 약도 없으니 자칫하다가는 그대로 죽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어 한마디 했다. 영혼은 엘프지만 몸은 인간이니 말이다.
“괜찮아요. 아시잖아요? 저 나무에 익숙한 거.”
“그래도…….”
하지만 빛은 내가 말릴 틈도 없이 바로 연꽃이 말한 나뭇가지를 잡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역시 엘프의 영혼은 다르군.’
나무에서 떨어질 거라는 걱정 자체가 기우였다는 듯이 빛은 재빠르게 나무를 타더니 나무 열매가 가장 많이 달린 곳까지 올라갔다.
“위험하니까 조심해요, 언니!”
연꽃이 나무 아래에서 소리쳤다. 빛이 짐을 싸서 동굴을 나간 후로 연꽃은 빛에게 더 친근감을 보였다.
‘정말 다행이군.’
어쩌면 이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곳은 원시시대이니까.
“큰어미님은 밑에서 떨어지는 열매를 주워요!”
빛은 연꽃에게 하대를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할머니한테 단단히 정신교육을 받은 것도 있지만 연꽃에게 미안한 감정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서로 나를 두고 시기와 질투를 하는 것보다는 백 번 좋을 일일 것이다.
“알았어요!”
두두두! 두두두!
나무 높은 곳에서 빛이 나뭇가지를 흔들자 열매가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처럼 떨어졌다.
‘이건 오디네?’
떨어진 것을 보니 오디였다. 그럼 오디주의 재료다.
‘또 담가야지.’
저들에게는 겨울에 먹을 식량이지만 내게는 즐기고 맛볼 술이 될 재료다.
‘오, 머루다! 오디주도 좋지만 머루주도 달달한 게 정말 좋지.’
하늘에서 여러 가지 열매들이 잔뜩 떨어지고 있었고, 그때마다 다른 술을 맛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즐거워졌다.
“비처럼 떨어진다!”
“어서 주워!”
“어서 주워요.”
내가 술을 만들 생각에 빠졌을 때, 여자들은 난리가 났다. 먹을 수 있는 과일이라는 말에 신이 난 것 같다.
원시인들은 먹을 것을 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먹을 것을 채취할 때 가장 신이 나는 모양이다.
“와, 엄청 많아요, 큰어미님! 벌써 대나무 통 3개를 가득 채웠어요!”
여자 하나가 연꽃에게 말했다.
“그러게요. 먹을 것이 엄청 많아요!”
“하늘 부족은 너무 살기 좋은 곳이에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내 부족 사람들은 모두 만족하는 것 같다.
“이달투드워프1.”
나는 절룩거리면서도 오디 열매를 줍고 있는 이달투드워프1을 봤다. 그리고 이달투드워프1의 옆에서 걱정하는 여자도 보였다.
“예, 주인님!”
이달투드워프1이 절룩거리면서도 내게로 뛰어왔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충성심이 강한 놈이다.’
아무리 테이밍을 당했다고 해도 좋은 천성이 타고나서 저렇게 부지런한 것 같다.
‘이런, 더 부었네…….’
며칠 안에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부을 것 같다.
“우선 이것 좀 먹고 있어라.”
“아, 아닙니다, 주인님! 주인님부터 드십시오. 저는 나중에 먹겠습니다.”
“너부터 먹이려고 딴 거야! 어서 먹어라.”
내 말에 이달투드워프1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었다.
“가, 감사합니다. 주인님!”
아마도 칼을 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곪은 걸 그냥 두면 새살이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 곪고, 썩게 된다.
그럼 결국에는 다리를 절단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십중팔구는 죽는다.
‘죽게 둘 수는 없다.’
쓸모가 많아서가 아니다. 나에 대한 마음 때문에 살리고 싶다.
“이달투드워프1.”
“예, 주인님!”
“너, 나를 얼마나 믿어?”
“예?”
“나를 얼마나 믿고 있냐고.”
“그야 당연히 무조건 믿습니다. 주인님이잖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따르는 자의 특성일 것이다.
“그렇지. 내가 네 주인이지……. 앉아 봐.”
내 명령에 이달투드워프1이 내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고, 나는 바로 허리에 차고 있는 용의 뼈로 만든 검을 꺼내 이달투드워프1의 부은 다리를 노려봤다.
“자, 잠깐만요, 왜, 왜 그러세요?”
그때 이달투드워프1의 아내가 된 여자가 앞으로 나와 나를 막아서며 이유를 물었다. 떨리는 눈빛이고 그 떨림은 불길함을 느낀 것 같다.
“설마 다쳤다고 죽이려는 건가요?”
순간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
“왜 그래? 족장!”
입안 가득 열매를 씹고 있던 큰바위도 뭔가 심상찮다는 것을 눈치 채고 내게 물었다.
“이달투드워프1의 다리를 째야겠어요.”
“왜?”
“저러다가는 썩어서 죽어요.”
응급처치로는 안 된다. 딱 사흘 만에 저렇게 부었다. 시간이 가면 더 심해질 것이니 그렇게 되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제, 제발 죽이지 말아 주세요! 부탁이에요, 족장님! 제 짝은 잘 때도 내일은 족장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할지 생각만 하는 사람이에요.”
이달투드워프1의 여자가 애원했다. 이달투드워프1도 좋은 짝을 만난 것 같다.
이 순간 남자의 외모보다 마음이 여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죽이는 게 아니라 치료를 하려는 거다. 비켜!”
“안 돼요, 저는 족장님이 이달투를 죽이는 것을 봤어요!”
맞다.
그녀는 봤다.
그녀는 내가 이달투 동굴 원정에서 테이밍한 이달투보다 더 많은 이달투를 죽이는 것을 봤고, 그것 때문에 이렇게 불안해하는 것 같다.
그러니 여자는 내가 이달투드워프1이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으니 죽이려는 줄 알고 있었다.
“비켜! 죽일 생각 없다니까? 내 사람을 내가 왜 죽여? 살리려고 그러는 거야!”
그저 답답할 뿐이다.
“시, 싫어요! 그 칼로 제 짝을 찌르려는 거잖아요!”
“비켜라! 주인님이 하신다면 하시는 거다!”
이달투드워프1이 자신의 여자의 손을 꼭 잡으며 변함없는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봤고, 그제야 여자는 마지못해 옆으로 물러났다.
“나를 믿어라.”
“예, 주인님! 저는 항상 주인님을 믿습니다.”
열매를 따느라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
“……참아라. 아플 거다.”
“예, 주인님!”
“늑대발톱 삼촌!”
“말해라. 족장!”
“불 좀 피워 주세요!”
“알았다.”
바로 늑대발톱이 빠르게 불을 피웠고, 나는 주변을 살핀 후에 매끄럽게 보이는 차돌을 하나 모닥불에 넣었다.
“이달투드워프2!”
“예, 주인님!”
“너는 가서 깨끗한 물을 떠 와라.”
“예! 가자!”
내가 천부의 검을 뽑아 들 때부터 이달투드워프2의 표정이 달라졌다.
이달투드워프2는 물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이달투드워프 몇을 데리고 숲 속으로 뛰었고, 돌창을 든 늑대발톱이 혹시나 큰바위를 봤다.
“형이 좀 따라가.”
“왜?”
“여긴 숲이잖아. 어떤 놈이 나타날지 몰라.”
“알았다.”
정말 관계가 개선된 것 같다. 아마 모닥불을 피우고 있지 않았다면 늑대발톱이 뛰어갔을 것이다.
이번 일을 경계로 아직까지 약간이나마 남아 있는 불화의 씨앗을 완벽히 제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곪은 부분을 째고 지져야겠지.’
30분 정도가 흐르자 치료에 필요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달투드워프2와 다른 이달투드워프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대나무 통에 물을 떠 왔다.
“아플 거다. 잘 참아야 한다.”
겁을 주는 것이 아니다. 곪은 살을 쨀 생각이기에 아플 수밖에 없다.
“……예.”
이달투드워프1이 결심을 하듯 굳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두려움이 역력해 보였다.
‘혀라도 깨물면 안 되니까.’
나는 옆에 있는 나무토막을 주워 이달투드워프1에게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