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301
301화
레드의 용성.
레드는 자신이 3미터까지 세운 벽돌 성벽을 용벽이라고 명명했고 이곳을 용성이라고 공표했다. 물론 혹한 때문에 완벽하게 완공하지 못한 상태이기는 해도 웅장함이 느껴졌다.
추운 혹한 속에서도 노예들은 용벽 증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레드는 용성 중앙에 위치한 자신의 벽돌집 앞에서 초조하게 여와가 출산하기만을 기다렸다.
‘이런 마음이 휴먼인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애가 타는 마음을 경험해 보지 못한 레드였다. 하지만 난산에 힘겨워하는 여와의 비명을 들으며 혹시나 여와와 태어날 아기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숨기지 못하였다.
아아악!
그때 여와의 거친 비명이 터졌고 레드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응애-! 응애-!
“태, 태어났다.”
“감축드리옵니다.”
하얀말이 원시인이라면 쓰지 않을 법한 말로 레드를 축하해 주었다. 그 말은 예전에 레드가 하얀말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늙은 주술사처럼 보이는 산파가 집 밖으로 나오면서 레드를 보았다.
“여와는?”
“건강합니다.”
“다행이구나. 아기는?”
“딸입니다.”
“딸…….”
레드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휴먼으로 낳은 첫 자식이 딸이란 말이지.’
원래 드래곤은 성별이 없었다. 스스로 모습을 변하고 싶을 때 변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레드는 완벽한 휴먼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그의 성격 때문에 땅속에서일어서보다 더 뛰어난 통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알았다.”
레드가 산파에게 짧게 말하고 벽돌집 안으로 들어섰고 자신이 낳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와를 담담히 바라봤다.
“폐하.”
“딸을 낳았구나. 장하다. 아주 장해.”
여와가 조심스레 아기를 레드에게 내밀었다. 레드는 그 아기를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몰라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이렇게 안으시면 됩니다.”
그렇게 레드의 품에 아기가 안겼다.
“네 이름을…….”
레드는 자신의 첫 딸에게 이름을 지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태어났으니 여명이라 할 것이다.”
여와가 낳은 여자아이의 이름이 정해진 순간이었다.
“너는 아침의 햇빛처럼 찬란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하하!”
레드가 환하게 웃자 여와도 행복한 미소를 보였다.
* * *
혹한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혹독한지 절실히 느꼈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모든 계획이 멈추었다.
옥수수를 심기 위한 수로 사업은 3분의 1 정도밖에 진행되지 못했고 부족 왕국의 성을 짓는 공사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산처럼 쌓여만 가는 단단한 벽돌은 고온으로 구워서 단단해졌는지 혹한 속에서 얼어서 단단해졌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그렇게 준비했는데…….’
강추위가 언제 끝날지 몰라 축성을 위한 벽돌 제작도 멈춘 상태다. 이 호한(沍寒)을 버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땔감이 필요했다. 설인들이 벌목해 잘라 놓은 땔감은 절반 이상 소모한 상태다.
“강이 녹기는 시작한 것 같지만 아직 엄청나게 단단합니다.”
늑대발톱은 강가를 순찰하고 돌아와서 내게 고했다. 그의 눈썹에는 성에가 끼어 있고 볼은 빨개져서 밖이 얼마나 추운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게 알려 주고 있다.
물론 내가 만든 온돌을 깐 통나무집은 벽난로까지 가동하고 있기에 후끈했다.
내 아들 왕검은 발가벗은 상태로 옹알거렸다. 그러나 나머지 내 백성들은 따뜻한 겨울이라기보다는 버텨 내는 겨울이 분명했다.
“저는 야크들을 먹일 풀들이 자라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목장의 책임자인 사초가 인상을 찡그렸다.
“건초는 얼마나 남았지?”
“둥근달이 두 번에서 세 번 바뀔 정도까지 먹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 이 겨울이 끝날지 모르니 양을 줄여.”
제일 힘들어하는 건 야크와 물소인 것 같다. 그 녀석들에게도 이 혹한은 고난의 행군일 것이다. 더군다나 잘 먹이지 못해서 그런지 살이 빠졌다.
다행히 흑수가 내 지시를 받아 악착같이 미역과 해초를 채취해 말려 놨다는 것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백성들은 비타민 부족으로 이런저런 병에 걸렸을 수도 있었다.
“해초들의 양도 많이 줄었습니다. 이제는 백성들에게 아주 조금씩 밖에는 나눠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흑수가 내게 말했다.
“5개월 이상 버텼으니까.”
“정말 이런 겨울은 처음입니다. 처음!”
늑대발톱이 혀를 내두르듯 말했다.
휘이릭! 휘리릭!
그때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또 망할 놈의 눈보라가 휘몰아칠 것 같다.
‘아무리 소빙하기라고 해도…….’
봄이 너무 늦게 오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두어 달 정도가 더 지나면 넉넉하게 준비해 놓은 식량은 바닥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야윈 야크와 물소부터 도축해서 연명해야 할 것 같다. 그다음에는 물개를 잡아먹으면서 버텨야 할 것이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날까?’
순간 나는 만년설이 뒤덮여 있는 광역 필드가 떠올랐다. 아마 거긴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얼어 비수처럼 폐를 찌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폐하, 아픈 환자들도 많아졌어.”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감기와 비타민 부족 현상에 의해 환자의 수가 늘어났다. 나 역시 치료를 위한 주술적 스킬이 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백성들을 돌보기는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방법을 찾아야 해, 방법을…….’
먹을 게 부족한 것이 아니다. 고기 이외에 먹을 것이 부족했고 이미 손오공과 놈의 부하들이 구해온 과일들은 바닥났다. 혈족들이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양은 남아 있지만 백성들에게 나눠줄 과일은 없다.
‘극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 추위에 어떻게 버텼을까…….’
직접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현대에 살 때 TV로 에스키모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비타민과 열량을 얻기 위해 고래를 사냥해 그 고기를 통해 먹었고 순록을 잡아 피를 마셨다.
“폐하, 폐하!”
그때 내 통나무집 밖에서 전사 한 명이 나를 불렀다.
“들어와라.”
두꺼운 야크의 털가죽 옷을 입은 전사 한 명이 들어서며 추위 때문에 빨개진 얼굴이 더 빨개졌다.
“무슨 일이냐?”
“밖으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게 말한 전사는 난처한 눈빛을 보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흩어져 살던 다른 부족 사람들이 목책 앞에 잔뜩 엎드려 있습니다.”
“몇 명 정도더냐?”
“300명은 넘는 것 같습니다.”
“으음…….”
나도 모르게 신음이 토해졌다.
‘우리 먹기도 부족한데…….’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쫓아내든 받아들이든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것이다.
* * *
레드의 용 부족 부락 공터.
혹한의 참혹함은 땅속에서일어서의 조선 왕국보다 레드의 용 부족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말린 과일이나 죽순과 같은 식물성 식량을 확보하지 못한 레드의 용 부족은 비타민 부족에 의한 환자들이 조선 왕국보다 몇 배는 많았다. 개과천선한 레드는 환자를 돌보는 데 하루를 보냈다.
‘이건 해결책이 아니야.’
얼굴이 누런 환자를 보살핀 레드가 저 멀리 더 참혹하게 보이는 만년 설산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문을 열어라. 하얀말 님이 돌아오셨다.”
그때 성벽 위에서 푸른빛이 감도는 얼음을 살피러 갔던 하얀말이 돌아왔다는 소리를 듣고 레드가 고개를 돌렸다. 굳게 닫힌 성문이 열리자마자 하얀말이 레드의 앞에 급히 뛰어왔다.
“어디까지 뻗어 왔더냐?”
“이틀 정도의 거리까지 뻗어 왔고 얼음이 깔린 지역은 풀 한 포기, 나무 하나까지 다 죽었사옵니다.”
하얀말의 보고에 레드는 인상을 찡그렸다.
‘광역 필드가 확장되고 있음이야.’
그저 레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음메에에-!
그때 전사 둘은 어깨에 각각 한 마리씩 잡아온 염소가 메고 레드 앞에 서 머리를 조아렸다.
“염소는 왜?”
“여와 님께서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여와가 염소를 먹고 싶다고 하더냐?”
“부족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고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나눠 준다? 알았다. 가 봐라.”
두 명의 전사는 다시 레드에게 목례하고 갈 길을 갔다. 전사들은 부족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봤다.
‘무엇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레드는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고 그들의 중앙에 여와가 두꺼운 털가죽 옷을 입고 염소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명이 태어난 지도 한 달이 지났고 여명은 추위 때문에 벽돌집 안에서 시녀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여와 님, 가지고 왔습니다.”
전사가 여와 앞에 두 마리의 염소를 내려놓자 여와는 담담히 염소를 봤다.
“목을 비틀어라.”
“칼로 찔러서 죽이지 않습니까?”
보통의 경우에는 칼로 목젖을 찔러 죽였기에 전사가 여와에게 조심히 물었다.
“나는 추운 곳에서 살았었다. 저렇게 백성들이 힘이 아픈 것은 제대로 골고루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목을 비틀어라.”
그때 레드가 온 것을 알고 여와가 머리를 조아렸다.
“무슨 일이지?”
“백성들이 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돌보고 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돕고 싶어요.”
“네가 어떻게 돕는다는 거지?”
“보시는 것처럼 늑대 부족 출신들은 추워하지만 아프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여와와 여와와 함께 온 늑대 부족만이 눈동자에 생기가 흘렀고 피부에는 윤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레드였다.
“그렇구나. 어떻게 된 거지?”
“저희는 이끼나 수초를 먹을 수 없는 겨울에는 짐승의 피와 날고기를 먹으면서 살았어요. 그럼 아프지 않았고요.”
여와의 말에 레드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뱀파이어…….’
레드에게는 많은 기억이 있고 몬스터의 한 종류인 뱀파이어가 떠올랐다.
“왜 그러세요?”
레드가 인상을 찡그리자 여와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어떻게 하는지 보자. 여와의 말대로 해라.”
어떻게든 백성들을 아프지 않게 만들어야 하는 레드였다.
“알겠습니다. 폐하!”
그와 동시에 두 전사가 가지고 온 염소의 목을 비틀어 죽였다.
바지직!
파르르!
목이 부러진 염소는 바르르 떨다가 죽었고 여와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죽은 염소의 가죽을 빠르게 벗겨냈다.
“손이 빠르군.”
“여와 님은 늑대 부족에서도 뛰어난 전사였습니다.”
늑대 부족의 족장이었던 여와의 아비가 공손히 레드에게 말했다.
“피를 먹고 건강해졌나?”
“그렇습니다. 피와 생간 그리고 굽지 않은 고기를 가끔 먹으면 아프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삶의 지혜일 것이다. 부족한 비타민을 짐승의 피와 생고기를 통해 보충해 왔던 늑대 부족들이었다.
‘봄이 오면 고기만 구할 것이 아니라 먹을 수 있는 풀과 과일도 구해 말려야겠군.’
레드는 봄이 오기를 갈망했다. 다만 땅속에서일어서의 조선 왕국보다 광역 필드인 얼음계곡과 가까이 있기에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여와는 가죽을 벗긴 염소의 배를 하늘 쪽으로 보이게 해서 배를 갈랐고 뜨거운 창자와 염소의 부산물들을 꺼내 옆에 조심히 옮겨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