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37
37화
“벌, 벌이다, 벌!”
붉은개의 울부짖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나는 바로 허리에 차고 있는 돌칼을 뽑아 들었다.
‘그냥 벌 독에 뒤져라.’
하지만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붉은개가 벌에 놀라 움막 밖으로 튀어나온다면 정신이 없을 것이고 그게 내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놈이 벌에 놀라 혼비백산을 해서 튀어나오게 된다면 바로 뽑아든 돌칼로 단번에 목젖을 찔러 죽일 것이다.
‘뭐든지 철저하게.’
끝장을 보아야 한다.
“벌이다! 아악! 으으윽!”
수백 마리 이상의 벌이 한꺼번에 덤벼들면 장사라 하더라도 버틸 재간이 없을 거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비명 소리도 들렸다가 조용해졌다.
‘으음…….’
아마 다른 사람들은 벌에 쏘여 죽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우웅! 부우웅!
조금 시간이 지나자 성난 벌들이 진정했는지 날갯짓 소리가 줄어들었고, 온몸이 퉁퉁 부은 붉은개가 온몸을 쏘인 듯 퉁퉁 부은 곳이 없는 상태로 거의 기다시피 비틀거리며 막사 밖으로 나왔다.
‘정말 질긴 놈이군.’
다른 사람들의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데 저렇게 벌에 쏘인 상태에서 기어 나오다니 내심 놀랍기까지 했다.
“……붉은개!”
한차례.
그의 이름을 차가운 어투로 불렀다.
내 목소리를 들은 붉은개는 기겁을 하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진흙을 뒤집어쓴 나를 보고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그 자리에서 멈칫거렸다가 진흙을 뒤집어쓴 존재가 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눈이 커졌다.
“너…… 너는……!”
아마 붉은개에게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내 얼굴과 돌칼이 빠르게 보였을 거다. 그래서인지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수욱!
나는 바로 붉은개가 피할 틈도 없이 목을 노리고 돌칼을 쑤셔 넣었다.
아무리 벌에 쏘였다고 해도 죽음을 느낀 존재들은 상상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고 이 찰나의 순간이 내게는 마지막 기회라면 기회일 것이다.
“커억!”
푸욱 하고 끔찍한 소리와 느낌이 돌칼을 통해 손으로 전해졌다. 심장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두근, 두근 맥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덜덜 떨리는 손에 간신히 힘을 주어 돌칼을 뽑자 붉은개의 피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울컥! 울컥!
붉은개의 목젖에서 피가 뿜어졌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꿀렁꿀렁 땅에 쏟아진 붉은개의 피를 푸른 달과 별빛이 비추고 있었다.
“컥, 너…… 너, 이 망할 놈의 땅속에서일어서…….”
붉은개의 입에서 바람이 섞인 쇳소리가 흘렀다.
“그래, 나다.”
나는 놈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확인 사살을 하듯 계속해서 칼을 높이 치켜들다가 내려찍었다.
수욱!
“으으으윽…….”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반복하여 덜덜 떨리는 돌칼을 양손으로 꽉 움켜쥐고 높이 쳐들고 내려찍었다.
붉은개의 움막에서 난리가 났지만 다른 씨족들은 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쿵.
그리고 결국, 붉은개는 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
움직임이 없다.
온몸에 벌에 쏘여서, 그리고 내 칼에 찔려 죽었다.
-레벨 업.
순식간에 두 단계나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떴다.
-미션 클리어!
-레벨 업.
-미션 클리어에 의해 보상으로 +스텟의 수치가 각각 10포인트씩 상승했습니다.
-땅속에서일어서
종족 : 헌터(현생인류)
특성 : 군림하는 자
레벨 : 10
생명력 : 600
근력 : 10(+17)
민첩 : 10(+13)
마력 : 20(+10)
지혜 : 112(+13)
명성 : 225(+10)
공격력 : 35(+45)
방어력 : 3
메시지가 떴고 나는 오픈된 홀로그램을 봤다.
메시지가 밝힌 것처럼 괄호 안에 있는 +스텟들이 각각 10포인트씩 상승했다.
‘……아니다. 나는 복수를 위해 놈을 죽인 것뿐이다. 레벨 업을 위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 아니, 죽이지 않을 것이다.’
다짐을 곱씹으며 급하게 돌아섰다.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빠르게 뛰어 울타리 쪽에 있는 움막까지 뛰었고 그때 움막에서 누런개가 나왔다.
“제비꽃이 할망구 움막에 있지. 흐흐흐!”
놈은 자신의 속마음을 마음껏 표출해 내고 있었다.
‘……숙모.’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졌다. 누런개는 이 밤에 제비꽃을 겁탈하기 위해 할머니의 움막으로 가고 있는 거였다.
‘망할 새끼, 너도 내가 죽인다.’
어금니가 꽉 깨물어졌고 나는 조심스럽게 어둠 속에 숨어 누런개의 뒤를 밟았다.
* * *
“크흐흐…… 형님이 죽으면 내가 족장이다. 흐흐흐!”
역시 붉은개 씨족은 망조가 든 것이 분명했다.
누런개는 주위를 살피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마치 붉은개가 벌써 제비꽃을 자빠뜨리지는 않았을까 살펴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붉은개는 이젠 없다. 그리고 내가 죽인 땅강아지는 할머니의 움막 반대편에 있다.
수상한 것을 알아차릴 리가 없는 누런개는 발뒤꿈치를 들고 제비꽃이 있는 할머니의 움막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제비꽃도 데리고 가야지.’
나는 고양이처럼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놈의 뒤를 밟았다.
놈은 끝내 할머니의 움막 안으로 들어섰다.
‘으음, 제비꽃이 비명이라도 지르면…….’
그 비명에 깨어난 전사들이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움찔했다.
깨어난 전사들이 죽은 땅강아지와 붉은개를 보게 된다면 나 또한 끝장난다.
“꺄아…… 읍!”
내 예상처럼 제비꽃은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누런개의 손에 의해 입이라도 막혔는지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직 붉은개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는 누런개에게도 이 상황이 발각되는 것이 달갑진 않을 것이다.
‘정신이 나가 있겠지.’
여자를 덮치는 놈은 정신이 나갈 수밖에 없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움막 안으로 들어선 나는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누런개에게 깔려 발버둥을 치는 제비꽃과 어떻게든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눌러 내리고 있는 누런개의 뒷모습이 보였다.
보통 원시인들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후배위를 하는데 발버둥을 치는 제비꽃을 제압하기 위해 누런개는 위에서 제비꽃을 깔아뭉개고 있었고, 나는 천천히 숨소리까지 죽이며 놈에게 다가섰다.
그 순간 제비꽃이 나를 발견했고, 깜짝 놀라 눈동자가 커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누런개의 목을 잡고 힘껏 돌칼로 목을 찔렀다.
수욱!
“켁!”
누런개는 갑작스러운 습격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급하게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제비꽃이 힘껏 누런개를 껴안았다.
한눈에 내 의도를 알아차린 제비꽃이 반항하려는 누런개를, 소리 지르려고 하던 놈을 저지하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나는 온몸에 누런개의 피를 뒤집어쓴 제비꽃을 한번 보고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누런개의 등을 노리고 수차례 찔러 댔다.
푹푹! 퍼억! 푹!
“컥…….”
놈의 입을 가리고 돌칼로 찔렀기에 놈은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털썩!
누런개가 아래에 깔려 있는 제비꽃의 몸 위에 쓰러졌다.
-레벨 업.
누런개를 죽이니 다시 레벨 업을 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제 내 레벨은 11이다. 그러니 이제 +스텟을 쌓으려면 레벨 1때에 비해 11배 이상 노력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내 마음은 무겁지 않고 오히려 후련했다.
내가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은 모두를 죽이고 끝내 복수는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럼 된 것이다.
“땅…… 땅속에서일어서야!”
제비꽃이 놀란 듯 내 이름을 불렀다.
“일어서요. 지금 당장 도망가야 해요.”
나는 발을 들어 누런개를 옆으로 밀치고는 제비꽃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어…… 어디로?”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요.”
내 말에 제비꽃이 입고 있는 삼베옷을 추스르고는 내 손을 잡고 일어났고, 나는 조심스럽게 움막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살폈다.
“지금부터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뛰어야 해요.”
“……응.”
나는 제비꽃의 손을 꼭 잡았고 제비꽃도 내 손을 맞잡았다.
“지금이에요, 뛰어요!”
그 후로 정말 미친 듯이 뛰었다.
어느 정도 부락에서 거리를 벌린 후, 내가 일어난 일이 발각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부락 방향을 향해 뒤돌아보았다.
부락 방향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무런 소란도,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다시 가족이 있는 대나무 숲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던 그때, 나는 바로 그 자리에 엎드렸다.
“엎드려요.”
“왜?”
“어서 엎드려요!”
제비꽃의 손을 잡아당기자 그녀도 상황이 심상찮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따라 바닥에 엎드렸다.
“저…… 저 불빛은 뭐야?”
강 반대편에서 불빛이 어른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삽시간에 움막이 모여 있는 부족에서 거대한 불길이 사납게 치솟았다.
“……습격이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전신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야간에 습격할 때 제일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불을 지르는 것이다.
나는 그 불길을 보는 순간 부락이 습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 저게 뭐야?”
제비꽃도 놀라 목소리가 커진 상태에서 내게 물었다.
“쉿! 조용해 해요.”
“누가 우리 부족을 공격하고 있어.”
“이제는 우리 부족이 아니죠. 망할 배신자 놈들의 부족이죠.”
“……응.”
문제는 붉은개 씨족 놈들을 공격하는 놈들이 나와 제비꽃을 봤느냐는 것이다.
‘저들이 우리를 봤을까?’
놈들이 우리를 봤다면 지금은 움직여서는 안 된다.
습격자들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도망치는 것을 봤다면 나를 쫓아올 수도 있다.
그러니 이곳에서 납작 엎드려 없는 듯이 있는 것이 상책이다.
“가만히 있어야 해요.”
“알았다.”
제비꽃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내 행동에 무척이나 놀란 것 같다.
“원래 부족끼리 자주 싸우나요?”
인간은 원래 남의 것을 빼앗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
“다른 부족끼리는 자주 싸우지만 악어머리 부족 때문에 우리를 공격하는 부족은 없었어.”
울타리가 낮았던 이유는 다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거다.
“악어머리 부족이라고요?”
“그래, 내 아버지의 부족이야.”
“굉장히 큰 부족이군요.”
“응, 그런데 땅속에서일어서야!”
“왜요?”
나는 습격을 당하고 있는 부락을 보면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제비꽃에게 대답했다.
“어떻게 그렇게 큰 전사처럼 용기를 냈니?”
제비꽃의 목소리가 다시 떨렸다.
“가족을 지켜야 하니까요.”
“대단하구나, 대단해.”
“쉿, 조용히. 가만히 계세요.”
“알았다.”
제비꽃이 악어머리 부족 때문에 인근에 사는 다른 부족이나 씨족은 감히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말한 것과는 달리 지금 부락이 공격을 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붉은개 부족을 공격한 것은 멀리서 새로 이주한 부족이거나 악어머리 부족보다 더 큰 규모의 부족이라는 것이다.
대체 누가 습격을 하는 건지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습격한다는 것은 약탈하겠다는 의미고, 절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을 테니까.
“아아악!”
“야만족이다!!”
전사들의 울부짖는 소리와 여자들의 비명이 밤하늘을 갈랐고, 이내 참혹한 살육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덕분에 습격자 놈들의 형체가 선명하게 보였다.
“저…… 저 생김새는……!”
아는 만큼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