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ithic Hunter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공격을 하면 다 죽어요. 제가 이달투를 죽이고 목을 잘라 왔으니 놈들도 우리가 공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내 말에 모두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기도 하겠군.”
“그러니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공격해야 합니다.”
“무엇을 준비하자는 거냐?”
악어머리 족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둠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죠.”
그게 핵심이다.
이달투 놈들도 동굴 속이 춥기 때문에 여기저기 모닥불을 피우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급습을 하면 아마도 모닥불부터 끌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이달투 놈들이라면 그럴 테니까.
“어둠을 극복한다고?”
“예.”
“어둠이라…… 모닥불을 들고 가면 됩니다.”
이빨이 말했다.
“모닥불에서 빼낸 불이 붙은 나무는 오래 못 갑니다.”
사실 처음에는 토끼 사냥을 할 때처럼 입구에 불을 피워서 연기가 나게 만들어 이달투 놈들이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동굴 안에는 잡혀간 여자들도 있고, 또 동굴이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동굴 안을 연기로 가득 채우려면 산 하나는 태워야 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설마 동굴에서 싸우자는 거냐?”
“여자들을 구하려면 그래야겠죠. 그리고 이달투 놈들은 절대 동굴 밖에서는 싸우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빨호랑이를 잡으려면 이빨호랑이의 굴로 들어가야 하죠.”
이렇게 말하면 내가 이빨호랑이도 잡은 것이 된다.
악어머리 족장은 내가 부리는 캭을 봤으니까.
“하지만 동굴은 어둡다.”
“그러니까 어둠을 극복할 준비를 해야죠.”
“방법이 있다는 거군.”
“예, 무기도 더 준비를 하고 대대적으로 이달투 원정대를 준비하는 겁니다.”
“원정대?”
“우리 하늘 부족은 깡그리 죽여야 할 놈들을 찾아 떠나는 것을 원정대라고 말하죠.”
내 말에 늑대발톱과 큰바위가 무슨 소리를 하냐고 보다가 흘러가는 분위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고기를 먹었다.
“이거 더 먹어라. 연꽃!”
마치 늑대발톱은 연꽃의 시아버지처럼 연꽃에게 잘 익은 부위를 챙겨 줬다.
“히잉…… 젓가락질이 잘 안 되네요.”
“나도 처음에는 힘들었다.”
“나중에 포크를 만들어 줄게.”
“포크?”
“이것보다 더 쉽게 집을 수 있는 도구야, 널 위해서 만들어 줄게!”
연꽃을 보며 웃었고 내 말에 연꽃은 얼굴이 빨개지며 나를 보며 미소를 보였다.
‘혀에 버터만 치면 다 넘어오겠네…….’
여자에게 이렇게 살갑게 말하는 남자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여자라는 동물은 현대에 살든 원시시대에 살든 이런 부드러운 말에 약하다는 거였다.
그리고 내가 이러는 것은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나라면…… 내가 악어머리 족장이라면…….’
자기 부족의 변영에 위협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연꽃에게 잘해 주는 모습을 계속 보여 줘야 한다.
“많이 먹어. 나는 연꽃이 먹을 때가 제일 좋다.”
내 말에 연꽃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연꽃을 보고 찰나지만 악어머리 족장이 보며 미소를 보였다.
‘처세지.’
처가가 힘이 세니 지금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며칠이나 걸릴 것 같으냐?”
“최소한 사나흘은 걸리겠죠. 더 걸릴 수도 있고요.”
“으음…….”
“여자 열 명을 구하기 위해 부족 전사 전체를 죽일 수는 없잖습니까? 또 언제 큰얼굴들이 공격해 올지도 모르고요.”
내 말에 악어머리 족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렇지,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
이래서 명성 수치가 중요한 거다. 강력한 적의가 없을 때 살살 구슬리면 대부분 넘어오니 말이다.
하지만 악어머리 족장은 내 말에 동의했음에도 다른 전사들의 눈빛은 묘했다.
‘……아냐, 아니겠지.’
나와 내 이모인 연꽃이 결혼하는 것처럼 근친혼 개념도 없는데 정조 개념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큰바위가 소리를 내면서 짝짓기를 했던 여자들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바로 짝짓기를 했으니 말이다.
“준비를 하자.”
“하지만 족장님, 그렇게 되면…….”
전사 하나가 뭔가 말을 하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나도 알고 있다.”
“겨울이 지나면 잡혀간 여자들은 이상한 것을 낳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또 이상한 것도 죽여야 하고 여자도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알고 있다고 했다!”
악어머리 족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 정말 잡종 교배가 되는 거야?’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달투의 새끼를 밴 여자들이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
그때마다 때가 되면 출산을 했고, 잡종이 태어난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다르기에 갓난아기를 죽여 왔던 것 같다.
‘……이 원시시대에도 다르다는 것은 잘못된 거군.’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연꽃이 잡혀 갔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아마 그랬다면 여기서 이렇게 설득을 하며 고기를 구워 먹지 못했을 것 같다.
* * *
사이네는 아침부터 강가에 앉아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사실 사이네는 활을 만들 재료인 부레를 얻기 위해 왔다. 어제 고기를 잡기 위해 통발을 설치해 놨고, 하루가 지나 통발을 확인하려고 이곳에 왔지만 통발은커녕 멀리서 앉아 한숨만 쉬고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어.’
사이네는 원시시대에는 절대 쓰지 않는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운수 대통…….’
자신에게 각궁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 준 헌터를 떠올리는 사이네였다.
‘그 아이가 혹시…….’
사이네는 흐르는 생각에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악어머리 족장이 자신에게 어떤 목적이 있는지 짐작하고 있기에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애야…… 애가 되어 버리셨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은 사이네는 다시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만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지?”
그때 사이네를 따라온 큰눈이 야릇한 눈빛을 지으며 말했고, 그제야 사이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큰눈을 봤다.
“……아무 생각도 안 해요.”
“선물을 줬는데?”
“그런데 왜요?”
“나는 족장의 아들이다. 곧 내가 족장이 된다.”
“그래서요?”
“나는 네가 좋다. 네 젖을 빨고 나중에 내 아들이 네 젖을 빨게 만들고 싶다.”
고백을 참 더럽게 하는 큰눈이다.
물론 원시인들은 대부분 여자들에게 고백할 때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큰눈도 이렇게 말한 거였다.
아마 원시시대에서는 최고로 로맨틱한 청혼이었겠지만 사이네는 원시인 여자가 아니기에 기분이 상해 와작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큰눈이 자꾸 자신의 가슴만 보는 것 같아서 불쾌했다.
“제게 청혼을 하는 건가요?”
“청혼?”
큰눈은 청혼의 뜻을 모를 수밖에 없다.
“짝짓기를 하고 싶냐고요.”
“그렇다. 당장이라도 하고 싶다. 여기 아무도 없다. 나랑 짝짓기를 하면 겨울에도 굶지 않아도 되고, 네가 낳는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게 클 수 있다.”
가장 평범한 원시인의 발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큰눈이었다.
“나는 당신하고 짝짓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왜? 나는 족장의 아들이다.”
큰눈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지금까지 큰눈이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안 잡는 여자들이 없었다.
족장의 아들이니 여자들도 큰눈에게 잘 보이려는 여자들이 많았다.
“당신이 싫으니까요.”
“왜 내가 싫지? 나는 족장의 아들이다.”
“족장은 아니죠.”
땅속에서일어서가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하는 사이네의 말에 큰눈의 눈빛이 변했다.
“너도 나를 무시하는 건가!”
큰눈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사이네에게 성큼 다가섰다.
“다가오지 마요.”
“힘을 써서라도 짝짓기를 한다. 너도 좋아할 거다. 내가 족장의 아들이니까.”
큰눈이 사이네를 겁탈이라도 하려는 듯 달려들었다.
“내가 하자면 하는 거야.”
퍼억!
큰눈이 사이네를 덮치려고 마구잡이로 달려들자 사이네는 타이밍을 노려 큰눈의 낭심을 강하게 걷어찼다.
지금까지 재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악어머리 족장에게 신세를 진 것도 있고, 떠날 때까지 그냥 잠자코 있으려고 했는데, 방금 행동은 도가 넘었다.
“윽!”
외마디 비명을 지른 큰눈은 모래사장에 쓰러진 채 끙끙댔다. 사이네는 큰눈을 노려보고 머리에 꽂혀 있는 비녀를 뽑아 들었다.
“으윽…… 이…… 이 망할…… 뭐…… 뭐 하려는 거야!”
슝! 푹!
사이네가 쓰러진 상태에서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큰눈의 머리에 비녀를 강하게 꽂아 버렸다.
“여자한테는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멍청아!”
매섭게 노려보다가 사이네가 일어섰고, 악어머리 부족을 잠시 봤다.
“……떠나야겠어.”
그리고 바로 뛰기 시작해 빠르게 강의 상류 쪽으로 사라졌다.
“이…… 이 망할 년아아아아!”
여전히 고통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큰눈은 소리만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큰눈은 고통에 겨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소금이 있었어!’
땅속에서일어서가 소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떠올리고는 강 상류를 향해 달려갔다.
물론 강 상류로 간다고 해서 땅속에서일어서를 만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큰눈을 저렇게 만들었으니 더 이상 악어머리 부족에도 있을 수 없었다.
사이네는 소금 바위만을 떠올리며 곧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을 하며 뛰었다.
* * *
저벅저벅!
하늘 씨족이 새로 터를 잡은 대나무 숲 근처에서 다섯 명의 네안데르탈인이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부족에서 죽인 사람의 다리를 꼬챙이에 끼워서 모닥불 위에 올려놓고 구우며 쉬다가 어딘가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땅에 두었던 돌도끼를 집어 들었다.
“누런얼굴일 수도 있다.”
네안데르탈인 전사 하나가 나직이 말했다.
“알았다.”
네안데르탈인 전사들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저벅! 저벅!
“여기서 보는군.”
그들은 사이네를 찾기 위해 레드가 보낸 다른 네안데르탈인 추격조였다.
“사퉁!”
“와상카! 네 못생긴 얼굴을 여기서 보니 반갑다.”
“사이네는 찾았나?”
“그 망할 년의 발뒤축도 못 봤다.”
“이렇게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네안데르탈인 전사 사퉁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 레드 님이 찾으라면 찾아야지. 나는 아직도 레드 님의 그 붉은 눈을 떠올릴 때마다 숨이 막힌다.”
제법 유창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사퉁과 와상카였다.
“왜 사이네를 찾으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사이네는 레드 님의 인질이지.”
“인질?”
“그때 우리 목을 단칼에 베어 버렸던 그 헌터, 기억이 나나?”
“그 망할 놈을 어떻게 잊어?”
네안데르탈인 전사가 자신도 모르게 목을 만졌다.
“목이 떨어져 나간 몸통을 보며 죽는 것은 아주 기분이 더러운 느낌이었다.”
“그 헌터가 좋아하는 년이 바로 사이네다.”
“그래서?”
“레드 님이 인질로 잡아 둔 거지.”
레드가 사이네를 소환한 것은 인질로 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건 레드의 오판이 분명했다. 사이네가 이렇게 도망을 칠 줄은 생각도 못한 레드였으니 말이다.
“저기를 봐라!”
그때 사퉁과 와상카가 이야기를 할 때 네안데르탈인 전사 하나가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켰다.
“연기다.”
“연기가 있는 곳에…….”
“사람이 있다.”
“먹을 것이 충분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사퉁이 와상카에게 말했다.
다리 한쪽으로는 덩치가 커다란 다섯 명의 네안데르탈인 전사의 배를 채울 수가 없었다.
“너희들 줄 것은 없다.”
“너희들 먹을 것도 부족해 보인다.”
“……그러니까!”
묘한 미소를 보이는 사퉁이었다.
“연기가 나는 곳이 멀지 않다. 가서 배불리 먹자.”
“좋다.”
이건 대나무 목책에서 쉬고 있는 할머니에게는 최대의 위기가 분명했다. 물론 땅속에서일어서가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떠났지만 말이다.
“가자!”
“흐흐흐! 모처럼 배를 채울 수 있다.”
그렇게 열 명의 네안데르탈인 전사가 연기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