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touch Eldmia Ega RAW novel - Chapter (548)
에밋의 특강을 받으며 시간을 보내길 이틀 째 되는 날, 목적지의 정보가 내게도 들어왔다.
요새 도시 쏘르.
최대한 많은 우호 세력을 규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절찬리 진격 중인 왕국군과의 합류까지도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있다는데, 지도를 함께 본 것은 아니었기에 어디에 있고 어느 수준의 규모인지는 모르겠다.
“쏘르의 영주는 여러모로 독특한 구석이 있는 자입니다. 기회주의적인 면모가 있는 반면,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엎어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기로 유명하죠.”
데오니 성녀님은 악마 사건 때 이티스엘로 넘어오기 위해 산맥에 들어서기 전에 그곳을 경유한 적이 있어서 조금은 면식이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괴짜라서 처음엔 적당히 듣기만 하려고 했던 나조차 미간을 찡그리며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신뢰하기 힘든 사람 아닙니까?”
말만 들으면 마왕군에게 우리를 팔아먹기 위한 빅픽처일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 쏘르의 영주였다. 아무리 내가 교단과 함께하는 지휘관들과 라이토르 백작을 어느 정도 신뢰한다고는 해도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곳에 머리부터 들이미는 것인지 의구심부터 드는 인선이다.
그건 성녀님도 딱히 부정하지 못하는 눈치였으나, 그럼에도 뭔가 참 애매하다는 듯 뿔 끝자락을 긁적이면서 설명을 이어나가셨다.
“솔직히 쏘르의 게이트가 외부에 있었다면 아무도 신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의 게이트는 도시 중심에 위치하고 있고, 도시 전체를 병력으로 장악하는 게 아닌 이상 저희를 함정에 빠뜨리고 얻을 이익보다 손해가 더 커서 믿는 것에 가깝죠. 무엇보다…”
“무엇보다?”
“…자신과 도시에 불이익이 떨어지지 않는 한 더할 나위 없이 신실합니다.”
그걸 과연 신실하다고 표현해도 되는 것일까…?
쏘르 영주의 행보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인지 위정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절대다수가 지금은 믿을 만하다라고 결론 지은 사안이었기에 더 따지고 들지 않았다.
“다 쉰 거 같으니 다시 수업을 시작하지.”
그렇게 대화가 일단락되자마자 조용히 차를 마시며 침묵을 지키던 에밋이 자신의 외투를 띄워 만든 의자에서 일어나며 수업의 시작을 알렸다. 성녀님은 아주 살짝 코를 찡그리며 불만을 표하셨지만 딱 그 정도까지만 의사를 표현한 뒤 물러나셨고, 나는 그녀가 준비해줬던 찻잔을 치우며 에밋에게로 다가 갔다.
이틀간 겪어본바, 에밋은 굉장히 뛰어난 실습 강사였다. 내가 이번에 마족령에 와서 얻어가는 건 칼 칸시와 에밋이라는 인재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마법에 대해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마나와 마력의 차이 때문에 비교 선상에 두긴 매우 힘들지만 스승님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그럼… 알려 줬던 마법 내에서 시전할 테니, 방해 해 보게나.”
대답은 필요 없었다. 강의가 시작되면 무슨 대답을 하든 결국 마법이 날아왔으니까. 난 마력시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최대한 집중하며 그의 지팡이와 손을 주시했다.
이렇게 연습하는 건 에밋의 제안이었다.
항상 마력시를 사용하며 다니는 게 아니니 다른 마법사들처럼 맨 눈으로 징조를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에밋의 설명은 반박할 여지가 없는 정론이었고, 덕분에 겨우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마법사들이 어떻게 마법을 이해하는 것인지 겉핥기로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
“화염, 응축, 2중첩, 사출.”
“3중첩일세. 2중첩인 걸 들키지 않으려고 들어간 것처럼 흐르는 주문의 흔적을 잘 보게. 그게 감춰진 중첩이야.”
“……들어도 모르겠습니다.”
“껄껄껄, 보였다고 하면 자네 능력을 썼다고 생각했을 걸세. 이거 엄청 고등 기술이거든.”
화염이든 얼음이든 번개든 뭐든 간에 마법은 수많은 부속품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완성품과 같은 거였다.
모르고보면 그저 불길이 형성되는 과정에 튀어나오는 불씨에 불과하지만 알고 보면 그 불씨 하나가 화염구의 안정성을 강화시키고 형태를 구체로 유지시켜 주는 핵심 주문의 흔적이다.
전생에서 눈에 포토샵을 이식한 것처럼 색깔만 봐도 RGB값을 맞추는 사람들이 있던 것처럼 마법사들 역시 그런 정신 나간 능력을 기르고 숙달하는 과정이 존재했던 것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땐 그야말로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지만… 이젠 그렇지만도 않다.
조금 진솔하게 말하자면 소소한 재미마저 느끼는 중이다. 마법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디스펠마저도 이 정도이니, 왜 마법에 심취해서 그렇게 밤낮없이 연구를 하고 성취를 이루려고 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즐거움만이 아니라 좆같음도 함께 느끼긴 했다.
“흐음, 아무리 용사라지만 좀 적응이 빠르긴 한데… 이것도 용혈의 영향인가?”
그야말로 눈알이 빠질 것만 같고 주문 간섭에 알맞은 주문을 생각하느라 뇌가 바짝 마를 것 같은 착각이 들 때쯤이 되어서야 맞이하게 된 달콤한 휴식 시간 동안 널브러져 있는 꼴을 덤덤하게 내려다보는 에밋을 마주 보는 순간이 바로 그 좆같음의 피크를 찍는 순간이다.
당연히 에밋에게 죄는 없다. 그는 그저 자기 말마따나 돈값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뿐이다. 그래도 저렇게 관찰하듯 구경하면 얄미울 수밖에 없다.
“그냥 제가 타고 난 것일 가능성도 있잖습니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 알 거라고 생각하네.”
비겁하게도 반박 불가의 팩트였기에 곱게 입을 다물었다.
에밋의 말대로였다. 그의 가르침은 분명 뛰어났으나,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건 이론이 아닌 실기다. 몸이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그가 해준 설명을 듣고 괜히 마법을 배우겠다고 깝쳤나 싶었던 나다. 근데 막상 해 보니 생각보다 할 만하고 성취도 빠르게 두각을 드러내고 있으니 이상할 수밖에.
“용살자들의 기록에 공통으로 남아 있는 특징이 뛰어난 감각이긴 한데… 그게 마법에도 연관되어 있나?”
“그들 중에 마법사는 없었습니까?”
“당연히 없지. 맞붙어서 무식하게 싸우는 전사들조차 어쩔 수 없이 뒤집어쓰는 건데, 어느 미친 마법사가 일부러 그걸 뒤집어쓰겠나?”
신랄한 말이었지만 이번에도 팩트였다. 슈퍼 하이 리스크에 랜덤 리턴인 게 용의 피가 지닌 효과였으니까.
애초에 용도 죽일 수 있는 힘을 지닌 사람이 아쉬워서 목 매달 수준조차 아닐 것이다. 분명 도박 중독자가 아닌 이상 뒤집어쓸 이유가 없겠지.
“듣고 보니 제가 운이 매우 좋았던 거군요.”
“자네가 평생의 운을 다 가져다 쓴 결과였다고 주장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겸허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준이긴 하지.”
“왜 대부분입니까?”
“일부는 설령 그렇다고 해도 말이 안 된다고 바득바득 주장할 거니까. 참고로 정상적인 반응일세.”
분명 에스테가 지닌 정화의 힘이 작용한 결과겠지만 그래도 행운은 행운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돌뿌리 부관 새끼의 운빨도 아주 조금은 납득됐다.
…씹새끼, 하필 그때 재수가 좋아가지고.
다시금 샘솟는 아쉬움을 뒤로 미루며 휴식을 취하는 사이, 잠시 자리를 비웠던 성녀님께서 칼 칸시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오, 그래도 상태가 많이 좋아졌나보네 손님. 움직이기도 하고.”
“그러는 너도 어디 안 다친 거 같아서 다행이네.”
마력 검사를 위해 한 번은 나를 만나러 온 에밋과 달리 칼 칸시는 계속 감염체 처리를 위해 밖으로만 돌아다닌 탓에 오랜만에 보는 거였다. 이쯤 되면 나도 용사파티를 꾸려볼 만하겠다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자연스럽게 다가와서 내 몸 상태를 확인하신 성녀님이 품에서 문서 몇 장을 꺼내 건네주셨다.
“이게 뭡니까?”
“왕국의 첩자가 가져온 전보입니다. 저희가 마왕군의 눈을 피해 움직이는 동안 접선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어제 도착했더군요. 검증 과정을 거치느라 이제야 넘어왔습니다.”
굳이 나한테 보여 줄 만한 내용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받아보니, 약도와 함께 작전 계획 그리고 랑데부 포인트로 짐작되는 위치의 랜드 마크를 꽤 디테일하게 묘사한 스케치가 그려져 있었다.
덕분에 이제서야 이 라이토르라는 곳과 요새 도시 쏘르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 쏘르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동부 전선보다 레비엥에 좀 더 가깝군요.”
생각해 보면 해안가를 따라 렌기에 에파가시에라에 도착해서 그대로 남서쪽으로 우회하며 이동한 뒤 수인들의 영역을 낀 채 북상하다시피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간 만큼 꽤 많은 거리를 이동했었다는 게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예. 그래서 레비엥의 지원이 있을 거라고 합니다. 당초의 목적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전선의 병력들과 합류하여 빠지는 것이었으나, 잘 밀리던 전선에 갑작스러운 정체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마침 성녀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읽고 있었기에 설명은 필요 없었다.
“침식체가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했군요.”
언럭키 헐크와 감염체가 전선에서 활동하기 시작해서 여러모로 발목을 붙잡히고 있다는 내용은 결코 유쾌한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