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71
270.차드라의 패자 8
-빠각!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셀림의 뿔이 부러지고 피가 튀었다.
아자딘은 불타는 아우렐리아 던을 그 뿔의 단면에 지져 상처를 지혈시켰다.
“끄아아악! 내, 내가! 뿔을 다 잃다니!”
또 고소한 쇠고기 냄새가 사방에 퍼졌다.
그리핀들도 그 냄새에 식욕이 돋는지 침을 질질 흘리며 다가온다.
“으아….”
“셀림, 보아하니 어린 시절부터 그리핀을 훈련시켜서 소와 너는 공격하지 않는 모양이군. 하지만 이런 맛있는 냄새가 나면 어떨까? 본능을 못 참고 있는 것 같은데?”
아자딘은 셀림의 목에 아주어스틸 단도를 들이밀고, 아우렐리아 던으로는 계속 상처를 지졌다.
불타는 검에 밀려서 바닥에 머리가 처박힌 셀림은 차마 일어날 수도 없었다.
그나마 뿔이니까 아우렐리아 던의 화염에 버티고 있는 것이지 이 칼날이 그대로 피부에 닿았다가는 심한 화상을 입을 것이다.
불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이 셀림을 땅바닥에 처박히게 했다.
살타는 냄새가 진동하면서 그리핀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와 자신들을 키운 양육자의 위기, 두 가지 사건에 혼동을 느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다.
“아, 알겠다. 내가 졌다! 항복하지!”
“그럼 그리핀을 물려.”
셀림은 휘파람을 불었다.
“애, 애들아. 밖에서 사냥해 오렴. 아빠는 괜찮아.”
셀림이 그리 말하자 그리핀들은 셀림 주위를 배회하면서 반신반의하며 아자딘과 셀림을 바라보았다.
아자딘이 불타는 아우렐리아 던을 슬쩍 들어 휘두르자 그리핀들이 한 걸음 더 물러난다. 그러나 그 이상 도망치지 않고 계속 아자딘을 감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셀림이 완전히 안전해지기 전까지는 물러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일어나.”
아자딘의 명령에 셀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윽, 죄송합니다. 주교님. 제가 힘이 부족해서 이런 녀석에게….”
셀림은 여전히 세흐나트 주교를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자딘은 셀림을 밧줄로 묶고 완전히 제압했다.
“어… 셀림 경이 제압당했다?!”
아자딘이 셀림을 제압하자 셀림의 부하들, 마을의 병사들이 몰려왔다.
“다들 진정해! 이 녀석은 위험하다! 보통 놈이 아니니 날 구하려 무리할 필요….”
셀림은 부하들이 자신을 구하려고 아자딘에게 덤벼들지 않을까 걱정해서 말렸다.
하지만….
“이제 우린 살았어!”
“만세!”
“아자딘 경! 감사합니다!”
병사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아자딘의 승리를 기뻐했다.
“이제 저 지긋지긋한 그리핀들에게서 자유다!”
“야 이! 소대가리 놈아! 꼴 좋다!”
“…어?”
셀림은 자신이 부하들과 주민들에게 미움받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대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그러기는!”
“당신에게야 그리핀이 그냥 귀여운 동물일지 몰라도 우리에겐 살 떨리게 무서운 괴수란 말야!”
“괴물들끼리 처놀고 말야! 당신네 그리핀이 먹다 내던진 말 시체에 깔려서 우리 애 팔이 부러진 거 알아? 애 팔이 뒤틀려진 채로 붙어서 병신이 됐는데도 처웃기나 하고 말야! 내 아들 생각하면 네놈을 숯불에 구워 먹어도 시원찮았는데 그간 무서워서 참았을 뿐이다!”
“그리핀 똥으로 지붕이 허옇게 물들고 냄새가 나는 데, 청소하려고 해도 지붕에 무서워서 어떻게 올라가냐고!”
사람들은 그간 쌓인 울분을 토해내느라 목청이 터질 지경이었다.
아자딘이 없으면 자신들 손으로 셀림을 창으로 찔러 꼬치구이로 만들 기세였다.
“그럼 죽이실 겁니까? 교수대를 마련할까요?”
“미노타우르스니까 교수대도 엄청 커야겠네. 체중이 많이 나가서.”
병사들은 신이 나서 셀림을 매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자딘은 그들을 제지했다.
“잠깐. 누가 죽인다고 했지?”
“네?”
“아, 아니 당연히 처형할 줄 알고….”
“주, 죽이셔야 합니다. 저희가 피해 본 걸 아시잖아요.”
셀림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들이 반감을 품는다는 사실만 드러낸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셀림이 죽어줘야 그들의 안전이 보장되는데….
“지금 이 자를 처형하지 않으면 저희가 죽습니다.”
“처형하면? 그리핀들이 감당은 되고? 알에서 부화시킨 그리핀들은 이 자를 자기 부모라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애초에 말들은 공격해도 소는 공격하지 않는 건 셀림이 미노타우르스여서, 소머리를 한 녀석들은 공격하지 않는 거 아냐?”
“…….”
아자딘의 질문에 다들 말문이 막혔다. 셀림이 직접 알에서 부화시킨 그리핀들은 셀림을 부모라고 여기고 있기에 통제가 되는 것이다.
만약 셀림이 죽으면 그리핀들은 통제불능의 괴물이 되어 계속 퍼져나갈 것이다.
차드라 용천지의 야생동물들을 잡아먹으며 불어날 그리핀들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해진다.
“자 그럼 셀림.”
“으윽… 크윽. 으허허어엉.”
놀랍게도 셀림은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울고 있었다.
“다들 날 미워하고 있었다니! 크윽… 흐어어어. 난 성기사가 되고 싶었는데!”
“…….”
다 큰 어른, 아니 그것도 미노타우르스가 대성통곡을 하자 다들 난감해했다.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지!”
“그게 그, 그리핀 때문에 무섭다고 말했잖아요?”
병사들이 그렇게 말하자 셀림은 꺼이꺼이 울어댔다.
“나도 미노타우르스라 무섭다고 했잖아?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자자. 진정하고.”
아자딘은 셀림을 달래고 카밀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카밀라는 셀림의 사무실에서 챙겨온 서류를 아자딘에게 내밀었다.
“주교의 명령서야. 아자딘 네 수배서? 초상화도 있어.”
“어디….”
아자딘은 받은 서류를 펼쳐보았다.
과연 그곳에는 차드라 고원 각지의 요새와 마을을 관리하는 이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고 그중엔 아자딘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죽이라는 이야기는 없군. 당연한 이야기인가?”
세흐나트 주교가 바보가 아닌 이상 살인지령 같은 걸 물증으로 남길 리 없다. 아마도 죽이라는 건 구두로 전했으리라.
“주, 주교는 날 보고 여기 있는 이들이 사교도들이 기사단에 잠입시킨 스파이라고 했어. 사교도들로부터 기사단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증언할 수 있겠어?”
“즈, 증언? 할 수 있지. 하지만 연락책은 입을 씻을 거고 나도 미노타우르스라 교단에서 믿어주지 않을 텐데? 주교가 패트론이니까 그나마 내가 교단에서 자리를 잡은 건데….”
셀림이 눈물 콧물을 닦아내며 흐느꼈다.
자신을 기사단에 넣어준 패트론, 주교를 확신하던 그였다.
하지만 자신에게 충성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부하들, 사이가 좋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마을 사람들이 사실은 자신을 죽일 만큼 증오했다는 걸 알게 된 셀림은 이제 모든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설령 이들이 진짜 스파이라고 해도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제거하는 건 말도 안 되지. 정말 사교도라면 오히려 이들을 잠입시킨 사교도 조직의 정보를 빼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안 해봤나?”
“안 해봤어. 주교님은 내가 구난기사단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이끌어 준 분이라서 지금까지 그분을 의심할 생각조차 안 해봤다.”
“그건 참으로 멍청한 짓이로군. 호스피탈러라면 그저 미덕만이 등불이 되어 앞길을 밝혀야 할 것이다. 어느 개인에 대한 충정은 미덕으로부터 눈멀게 하는 맹목일 뿐이지. 대체 셀림. 당신은 왜 기사가 되고 싶었지?”
아자딘은 문득 셀림에게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셀림이 뒤적뒤적 자신의 품을 뒤지더니 뭔가를 꺼냈다.
히포그리프를 타고 날고 있는 기사를 그려둔 도자기 조각이었다.
도자기 조각을 깨지지 않게 황동 로켓에 끼워둔 것이었다.
“어렸을 때 우연히 이걸 주웠어. 예뻐서 가지고 있었고 계속 생각날 때마다 봤는데….”
“헹? 고작 그런 이유로?”
다른 병사들은 놀랄 만큼 사소한 이유에 비웃음을 던졌다.
그러나 아자딘은 셀림이 진심이라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는 진심이다. 그대들이 셀림의 폭거에 고통받았다는 건 알겠지만, 이걸로 모욕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되는군.”
“앗. 네….”
“죄송합니다 아자딘 경.”
병사들은 일제히 아자딘에게 사죄했다.
“나에게 사죄할 일이 아닐 텐데. 하지만 이해한다.”
사람들은 셀림에게 사죄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동안 셀림이 그리핀들을 부화시키면서 입은 피해가 막심하니 감정의 앙금이 너무 크다.
자신이 믿던 것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셀림은 바닥에 엎드린 채 머리를 땅에 박았다.
“흑흑. 난 멍청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역시 나 같은 건 기사가 될 자격이 없어.”
병사들은 대성통곡하는 셀림을 보며 난감해했다.
‘일단 진심으로 후회하는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아자딘 경이 저런 소리에 넘어가서 셀림 경을 풀어주면 어쩌지?’
‘나는 교수대에 매달자고까지 했는데. 큰일인데.’
다들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할 때 아자딘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자, 다들 셀림 경에게 불만을 털어놔서 보복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건 알겠는데. 그는 내가 관리하겠다. 당신들에게 보복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 그렇습니까?”
“그렇다면야.”
“사실 셀림 경이 멍청해서 그렇지 또 나쁜 놈은 아니니까요.”
사람들은 셀림에게 악감정은 없는지 아자딘이 셀림을 맡겠다고 하자 안심했다.
아자딘은 셀림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럼 일어나라 셀림 경. 나는 네가 필요하다.”
“그, 그렇지만. 당신은? 당신은 세흐나트 주교와 뭐가 다른데? 당신도 뭔가 야심이 있으니까 차샨을 포함해서 다 물리치고 뭔가 꾸미는 거 아니야? 나는 더는 아무도, 나 자신도 못 믿겠어.”
“하긴 한 번 속았으니, 또 속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 그러나 셀림 경. 나는 맹목을 요구하지 않는다.”
“음?”
“세흐나트 주교에게 충성하듯 맹목적일 필요가 없다. 그저 미덕을 자신의 등불로 삼아 나아가고 그 길 앞에 내가 장애물이라면 나조차 베고 나아가라.”
“…하지만 나는 뭐가 옳은지 모르는데.”
“적어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지 않았나. 비싼 교육비를 냈지만, 교훈이란 그런 것이지. 책에 쓰여 있는 지식을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알기 위해서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그것을 배우는 데 꽤 많은 걸 지불했지.”
문득 미디암이 보고 싶어졌다. 과연 무사는 할까?
“아, 알겠어. 아니 알겠습니다.”
셀림은 아자딘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나는 무지해서 어리석은 죄로 악에 종사하였으니, 아자딘 경.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다만… 당신이 말하는 대로 미덕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그때는….”
“마음대로 해라.”
“그렇다면….”
셀림은 아자딘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도끼를 뒤집어 아자딘에게 넘겼다.
“당신께 제 도끼를 바칩니다.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아자딘 경.”
아자딘이 그 도끼를 받았다가 다시 돌려주는 것으로 충성 서약이 끝났다.
차드라 오걸 중 한 명, 미노타우르스 셀림 경이 아자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