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25
1025회. 복수라도 하겠다고 하던가?
엘리오를 의식해 구석 자리에 앉은 건 롤프 프릿츠 남작의 실책이었다.
만약 그가 귀족들 한가운데 앉아 있었으면 연적하도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귀족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던 롤프 프릿츠 남작은 자신의 이점을 조금도 활용하지 못했다.
“에, 엘리오 경?”
당황한 롤프 프릿츠 남작은 주변부터 살폈다.
다행히 푸토코아의 귀족들은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자리가 구석인 탓도 있지만 좌천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인맥을 쌓지 못한 때문이다.
롤프 프릿츠 남작의 맞은편에 털썩 앉은 엘리오는 시간이 넉넉지 않음을 알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내가 경고했을 텐데, 야인 부족들에게 화풀이하면 가만 안 둔다고. 그런데 푸토코아에서 치료소로 야인들의 귀를 보냈더라고?”
“그, 그건…….”
“내가 왜 귀족이 되려는 줄 알아? 정정당당하게 야인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야.”
“나는 그 일에 관여하지 않았소. 당시 나는 기사단에서 쫓겨나 영지군에 편입된 상태였소. 기사단장은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는지 나를 가장 힘들다는 골리앗 중대로 보냈고. 나는 피해자요.”
롤프 프릿츠 남작이 억울하다는 눈으로 엘리오를 보았다.
그에게 얻어터진 죄로 기사단에서 쫓겨나 가장 힘들다는 부대에 배치받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산의 부족’을 죽인 건 누구야?”
엘리오의 음성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는 감정적이지만 자신의 적이 누군지 모를 정도로 아둔하지 않았다.
“기사단장이 그리폰 기사단원 중에서 서른 명을 선발했소. 그들이 저지른 짓이오.”
“그걸 사주한 사람은 푸토코아 백작의 장자고? 맞나?”
“맞소. 푸토코아 백작의 후계자가 그 일을 직접 지시했소.”
고개를 주억거리던 엘리오가 불현듯 물었다.
“당신은 그 후계자에게 내 경고를 제대로 전했어? 야인 부족을 건드리면 내가 보복한다고 전하랬잖아.”
“그건 전하지 못했소. 야인에게 얻어터진 죄로 입도 뻥긋할 수 없었으니까. 경도 귀족 모임에 참가해 봤다면 알 거 아니오? 기사단에서 병신 취급당하는 죄인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소? 어차피 말해 봐야 통하지도 않았을 거요.”
엘리오가 롤프 프릿츠 남작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화가 났다.
그의 무책임으로 푸토코아 백작가를 향한 자신의 정당한 복수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서다.
이렇게 되면 푸토코아 백작가에서 자신의 경고를 몰랐기에 관례대로 했다고 변명할 수도 있었다.
알고도 무시한 것과 몰랐기에 행한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푸토코아 백작가에게 동정받을 여지를 남긴 것은 전적으로 롤프 프릿츠 남작의 책임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엘리오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런 쓰레기 같은 마음으로 잘도 기사 놀이를 하고 있네? 쫄아서 말도 제대로 못 전하는 게 푸토코아의 기사도냐? 한심한 새끼.”
갑작스러운 엘리오의 욕설에 롤프 프릿츠 남작의 낯빛이 굳었다.
남작이나 돼서, 그것도 ‘히르헤라의 영웅’ 소리를 듣다가 욕을 먹으니 한순간 ‘울컥’한 것이다.
파르르 떨고 있는 롤프 프릿츠 남작에게 엘리오가 말했다.
“왜? 모욕적이야? 그럼 결투를 신청해 새끼야. 그게 무서우면 푸토코아 귀족들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
“…….”
롤프 프릿츠 남작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할 때 식판을 비우러 갔던 로어 아드리안 남작이 돌아왔다.
“누구……신지?”
로어 아드리안 남작이 롤프 프릿츠 남작과 젊은 기사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는 심상치 않은 지금의 분위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히르헤라의 영웅’이자, ‘소드 비기너’인 롤프 프릿츠 남작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젊은 기사라니?
“엘리오입니다. 그러는 그쪽은 누구신지?”
“아! 균열의 기사? 나는 히어로 중대장 로어 아드리안 남작이오. 말씀은 많이 들었소. 그런데 롤프 프릿츠 남작과는 어떤 문제로?”
“그건 당사자에게 물어보시길. 그럼 이만.”
엘리오는 로어 아드리안 남작에게 눈인사를 보내고 돌아섰다.
황당한 얼굴로 멀어져 가는 엘리오를 보던 로어 아드리안 남작이 롤프 프릿츠 남작에게 말했다.
“저거 아직 작위도 받지 못한 기사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말하는 투가 상당히 건방지네요?”
“곧 작위를 받는다니 그러는 거겠지요.”
롤프 프릿츠 남작은 그런 쪽으로 몰아갔다.
자신과 엘리오의 관계가 알려져서 명예로울 게 없는 까닭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따끔하게 한마디 하지 그러셨습니까? 평민인데도 저러니 작위를 받으면 한 대 치겠습니다?”
“‘소드 비기너’치고 그의 검술이 상당하니 아드리안 남작께서도 그냥 피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에 대해 아시는 것 같군요. 혹시 그와 검을 겨루어 보았습니까?”
“부끄럽게도 패했습니다.”
“…….”
충격적인 고백에 로어 아드리안 남작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광염의 히드라’를 잡을 때 롤프 프릿츠 남작의 검술은 눈부셨다.
그런 그가 저 젊은 기사에게 패했다니?
“그날 경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나 봅니다? 틀림없이 그랬을 겁니다. 내가 본 경의 검술로는 질 수가 없습니다.”
롤프 프릿츠 남작은 씁쓰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오의 검술을 보면 그런 소리를 못 할 겁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삼켰다.
그런 건 남이 말해 준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식당 막사를 나서는 롤프 프릿츠 남작의 눈빛에 결기가 어렸다.
‘엘리오. 내가 받은 모멸감을 고스란히 돌려주마.’
한편 식판을 든 엘리오가 알파 중대 기사들의 자리에 앉자 파비안이 말했다.
“잘 참으셨습니다. 혹시라도 싸우실 거면 귀족들이 없는 곳에서 하십시오.”
“나는 보란 듯이 할 건데?”
“설마 프릿츠 남작에게 결투라도 신청하실 겁니까?”
“왜? 하면 안 돼?”
“하더라도 봉작 절차를 끝낸 뒤에 하십쇼. 소문을 들으니 영지 얘기도 솔솔 나오던데. 받을 거 다 받고 싸우시는 게 좋죠.”
“남자가 그런 거 일일이 계산하고 그러면 안 돼.”
“에이, 그래도 위에서 주겠다고 할 때 하나라도 챙기십쇼. 기사 월급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아! 맞아. 돈 문제가 있구나.”
엘리오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 속에서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걸 깜빡했다.
베르나르도 후작의 밑에서 영원히 있을 게 아니라면, 재정 관리에 대해서도 대책을 세우는 게 나았다.
돈이 있어야 제국이든,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다닐 걸 생각하니 문득 비공정이 떠올랐다.
“비공정은 비싸겠지?”
“당연하죠. 우리 왕국에도 한 대밖에 없습니다. 그게 에스카토스 공작님 숙소 뒤편에 정박해 있는 겁니다.”
“아! 얼마 정도나 할까?”
“예전에 왕실 십 년 재정이면 비공정 한 대를 살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포기.”
연적하는 머릿속에서 비공정의 존재를 털어 냈다.
***
그날 저녁.
롤프 프릿츠 남작은 그리폰 기사단장 콜라시오 키퍼 자작을 찾아갔다.
떠오르는 샛별의 방문에 콜라시오 키퍼 자작은 격하게 환영했다.
“여어! 프릿츠 남작. 아니, ‘히르헤라의 영웅’이라고 불러 줘야 되나? 이곳까지는 어쩐 일인가?”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뭐, 늘 그렇지. 경을 골리앗 중대로 보내고 후회를 많이 했는데, 오히려 잘 풀려서 다행이야. 이제야 말이지만 경을 골리앗 중대로 보낸 건 내 뜻이 아니었네.”
그는 은근히 그것이 후계자인 토비아스 푸토코아 백작의 지시인 것처럼 포장했다.
하지만 롤프 프릿츠 남작은 따지고 들지 않았다.
자신을 골리앗 중대로 좌천시킨 사람이 누군지는 관심도 없었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보다는 자작님. 문제가 좀 생길 것 같습니다.”
“문제? 균열의 복구가 더디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갑작스러운 마물의 출현?”
그리폰 기사단장답게 그의 관심은 조금 더 거국적인 것에 있었다.
롤프 프릿츠 남작이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히르헤라로 오기 전에, 푸토코아 영지에서 그리폰 기사단이 야인 부락 하나를 처리하지 않았습니까?”
“‘산의 부족’을 말하는 거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생존자를 남겨 두지 않았으니까. 생존자가 있다 해도 야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네. 후계자께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신 거니까. 누가 봐도 세금 도둑들이잖은가.”
기사단장이 자꾸 딴소리를 하자 롤프 프릿츠 남작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베르나르도 후작가에서 거둬 간 야인이 앙심을 품고 있습니다.”
“…….”
콜라시오 키퍼 자작이 황당한 눈으로 롤프 프릿츠 남작을 보았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된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그래 봐야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세. 야인 하나가 푸토코아 백작가를 상대로 뭘 할 수 있겠나.”
“그냥 야인이 아닙니다. ‘균열의 기사’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알지. 베르나르도 후작가에서 요즘 띄워 주고 있는 기사들이 아닌가. 우리가 자네를 밀어주고 있는 것도 그에 대응해서잖나. 그게 왜?”
“그중 하나인 엘리오라는 이름의 기사가……. 그 야인입니다. 베르나르도 후작이 직접 거둔.”
“이번에 작위 상신을 했다는 엘리오가 그 야인이라고?”
“예.”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기사단장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물었다.
“그게 문제가 되나?”
“될 겁니다.”
“무슨 문제? 푸토코아 백작가를 남작 하나가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일세.”
기사단장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들렸다.
정 번거롭게 굴면 기사단을 움직여 처리할 수 있는데 그걸 왜 문제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자가 복수에 나설 것 같아서 드린 말씀입니다.”
“자세히 말해 보게.”
“오늘 점심때 식사 중인 저에게 그가 찾아왔습니다. 로어 아드리안 남작이 목격했으니 나중에 확인해 보십쇼. 제가 엔아르케의 치료소로 그를 찾아갔을 때, 그가 했던 경고가 있습니다.”
“경고? 그런 말은 없었잖나?”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기사단장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일단 선부터 그었다.
“푸토코아의 정당한 계승자이신 토비아스 푸토코아께서 주재하던 회의실 분위기에 눌려 제가 말하지 못했습니다만, 그자가 경고를 했었습니다.”
토비아스 푸토코아가 아직 에스카토스 4세에게 승인을 받지 못했기에 그는 ‘정당한 계승자’라는 표현을 썼다.
기사단장이 계속 말하라는 듯 턱짓을 했다.
“야인 부족을 건드리면 보복이 뒤따를 거라고.”
“그게 전분가?”
기사단장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롤프 프릿츠 남작은 보다 극단적인 표현을 끄집어냈다.
“더 있습니다. 만약 자신의 일로 푸토코아 백작령의 야인들을 괴롭히면 새로운 후계자를 찾아야 할 거라고도 했습니다. 그자는 귀족의 품위와 거리가 먼 완전히 미친놈입니다.”
역시나, 단번에 기사단장의 얼굴이 굳었다.
“놈이 영주님까지 거론했다고?”
“사실입니다. 기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 그런 미친놈이…….”
기사단장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기사들은 자신의 영주가 모욕당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하물며 새로운 후계자 운운했다면 모욕을 넘어서 반역이다.
“경은 그런 소리를 듣고도 가만히 있었나? 바로 놈의 목을 베었어야지!”
“송구합니다. 그자와의 대결에서 패한 직후 들었던 말이라……. 적절히 대처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젠장!”
끝내 기사단장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남작을 골리앗 중대로 내려보낸 것도 그 일 때문이었다.
“그래서, 복수라도 하겠다고 하던가?”
기사단장은 설마 하는 눈으로 롤프 프릿츠 남작을 보았다.
아무리 야인의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 해도 그 정도로 주제를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