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28
1028회. 기사단의 호위를 받는 기분은 어떨까요?
기사단장의 야단에 토드 프리먼, 켈리 렌, 듀크 윌리암스 남작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야인에게 패했다고 마나를 버리다니?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말이다.
마나를 잃어버린 것도 원통한데 저런 소리까지 들으니 미치고 팔짝 뛸 것만 같았다.
듀크 윌리암스 남작이 수치심을 무릅쓰고 고백했다.
“단장님. 저희는 마나를 버린 게 아닙니다. 엘리오가 강제로 저희에게 영기를 주입해서……. 마나가 깨진 겁니다.”
“강제로 영기를 주입했다고? 나는 그런 소리는 평생 처음 듣네.”
기사단장이 황당한 눈으로 듀크 윌리암스 남작을 보았다.
“사실입니다. 놈이 제 머리를 잡았을 때 마나와 다른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게 제 등줄기를 타고 아랫배에 내려오자 마나가 흩어졌습니다.”
토드 프리먼 남작이 거들었다.
“저도 그랬습니다. 마나가 흩어진 직후 놈은 저희를 ‘영기 수련자’라고 불렀습니다. 앞으로는 영기를 수련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오가 강제로 영기를 주입해 ‘마나 유저’였던 경들이 ‘영기 수련자’로 변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세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사단장인 콜라시오 키퍼 자작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야인이 마법을 썼다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소리로군.”
물론 그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초기 마나 유저들 중에는 마나와 영기의 융합을 연구한 사람들이 있었다.
더 강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단 한 번의 시도로 끝났다.
그들이 영기를 수련하자마자 마나가 그들에게서 떠난 것이다.
그 뒤 마나와 영기는 상극으로 여겨졌고, 누구도 그 모두를 익히려 하지 않았다.
기사단장이 기이한 눈으로 세 남작들을 보았다.
과거의 실험은 스스로 영기를 수련한 경우였다.
엘리오처럼 강제로 마나 유저에게 영기를 불어넣은 야인은 역사상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뭐 그런 정신 나간 야인이 없었으니까.’
마나 유저라면 못해도 기사다.
감히 기사의 몸에 영기를 주입할 야인이 있을 리가 있나.
그런데 그 악몽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그리폰 기사단을 상대로.
더 끔찍한 일은 이게 시작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엘리오가 무슨 마법을 쓰던가?”
“……블링크였습니다.”
“그건 불가능하네. 경이 잘못 본 게 틀림없어.”
블링크는 무려 5서클의 마법.
기사단장은 영기를 수련한 야인이 궁정 마법사 메이지 칼로스와 같은 5서클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자가 뭘 잘못 먹었나. 영기로는 마법 자체가 불가능한데 무슨 5서클.’
그러자 듀크 윌리암스 남작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분명히 그는 공간이동술을 사용해 마치 유령처럼 저희들의 뒤에 나타났습니다.”
“그 부분은 내가 더 알아보도록 할 테니 다른 데 가서는 그런 소리를 하지 않도록 하게.”
기사단장은 자칫 ‘블링크’라는 말 때문에 그리폰 기사단이 조롱을 당할까 봐 입단속부터 시켰다.
자기가 말하고도 자신이 없었던지 듀크 윌리암스 남작은 더 이상 블링크를 주장하지 않았다.
“허어!”
기사단장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오늘의 일이 베르나르도 후작가에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베르나르도 후작가에서 이번 일에 대해 항의하면 더 이상 엘리오를 응징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리폰 기사단의 남작 셋을 폐인으로 만든 걸 묵과하고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
고민하던 기사단장이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세 남작이 움찔했다.
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다.
지금 당장은 전력에 보탬이 안 되고, 그리폰 기사단의 명예를 실추시킨 세 남작을 히르헤라에서 치워야 한다.
“경들은 푸토코아로 돌아가 있는 게 좋을 것 같군. 가서 상처도 좀 치료하고……. 푹 쉬도록 하게. 아, 그리고 영지성에는 얼굴을 비치지 않아도 되네.”
영지성에 그리폰 기사단 본부가 있으니 기사단에서 나가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세 남작은 침통한 표정이었지만 ‘기사단에 남아 복수하겠다’며 고집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엘리오에 대한 복수심과는 별개로 자신이 그리폰 기사단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알아서다.
토드 프리먼, 켈리 렌, 듀크 윌리암스 남작은 기사단장에게 꾸벅 묵례를 한 뒤 조용히 천막을 떠났다.
홀로 남은 기사단장이 ‘쯧!’ 하고 혀를 찼다.
“단승 작위에 영지도 없는 사람들이니……. 다시 만날 일은 없겠군.”
보통 기사단에서 쫓겨난 경우 자유기사로 떠돌곤 하는데, 마나가 없으니 그러기도 어려울 게다.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없다면 뒷골목이나 전전하다가 끝날 인생들이었다.
“그나저나 영기 수련자가 마법이라니. 흑마법의 도움이라도 받은 건가?”
흑마법은 영혼을 바치기만 하면 뭐든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영기 수련자가 마법을 쓰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주둔지에 있는 5서클의 궁정 마법사 메이지 칼로스를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메이지 칼로스가 ‘진실의 눈’으로 흑마법을 꿰뚫어 볼 수 있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흑마법의 능력을 드러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 대체 뭐지?”
기사단장은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장탄식을 터뜨리던 그는 천천히 막사를 나섰다.
아무런 대책 없이 새 영주 토비아스 푸토코아 백작을 찾아가는 그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
“그러니까 ‘돌아오라’는 내 지시를 거부하고 베르나르도 후작가로 넘어간 야인이 바로 ‘균열의 기사’로 불리는 엘리오다?”
토비아스 푸토코아의 말에 기사단장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리폰 기사단의 기사 셋이 놈과 싸웠는데……. 도리어 당해 폐인이 되었고?”
“예.”
“영기 수련자인 야인 한 놈에게 ‘소드 비기너’ 셋이 당했다는 말입니까?”
그래도 토비아스 푸토코아는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다고 측근인 기사단장에게 존칭을 썼다. 삼십 년 이상의 나이 차가 나니 둘만 있는 자리에서 말을 놓기 어려운 탓이다.
“놈이 마법까지 사용했다고 합니다. 놈이 마검사라면 같은 ‘소드 비기너’라도 당해 내기 어렵습니다.”
“어떤 대단한 마법이기에 소드 비기너 셋이 당해 내지 못했다는 겁니까?”
“그게…… 블링크를 썼다고 합니다.”
순간 토비아스 푸토코아가 탁자를 후려쳤다.
나무로 만든 탁자가 부러지며 주저앉았다.
지금까지 존대를 사용한 게 무색할 정도로 난폭한 행동이었다.
기사단장을 노려보던 토비아스 푸토코아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블링크가 몇 서클 마법인지 압니까?
“5서클입니다.”
“그래요. 경은 지금 야인이 저 궁정 마법사 메이지 칼로스와 같은 5서클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저도 기사들의 입단속을 시켰습니다. 다만 공간이동술로 보일 만큼 대단한 놈의 수법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블링크가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마법의 바탕은 마나입니다. 영기 수련자 중에 마법사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러니…….”
잠시 멈칫했던 토비아스 푸토코아가 동의를 구하듯 기사단장에게 물었다.
“혹시 놈이 흑마법의 도움을 받았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나, 히르헤라 주둔지에 메이지 칼로스가 있는데 그랬을까요?”
“뭐 당장 살아남으려면 무슨 짓인들 못 하겠습니까? 일단 놈이 흑마법의 도움을 받았다고 먼저 몰아붙입시다. 이런 일은 공격하는 쪽보다 해명하는 쪽이 더 손해를 보기 마련입니다. 설사 아닌 게 밝혀지더라도 오해했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기사단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후계자의 말대로 푸토코아에서 의혹을 제기하면,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엘리오를 흑마법사와 손잡은 것으로 의심하는 사람도 생겨날 터였다.
“알겠습니다. 허면 다가오는 귀족 모임에서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겠습니다.”
“남작들은 어딨습니까?”
“기사단에 남아 있어 봐야 짐이라 푸토코아로 돌아가라 명했습니다.”
“증인들에게 그러면 쓰나요. 당분간 데리고 있으세요. 이 일이 끝나면 그때 돌려보내도 늦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기사단 숙소에 머무르라 명하겠습니다.”
“푸토코아의 체면이 있으니 기사단 숙소 밖으로 나다니지 못하게 하세요. 식사도 가져다주고. 구금하듯 철저히 관리하라 이 말입니다.”
구금하듯 하라는 말에 기사단장이 슬쩍 운을 뗐다.
“팔이 잘렸는데 치료는 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는 개인이 알아서 하라고 하세요. 균열에서 마물이 튀어나와 사상자가 쏟아져 나오는 이 마당에, 그들을 챙길 여력이 있습니까?”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기사단장은 팔이 잘린 세 사람을 위해 나서지 않았다.
그들이 마나 유저라면 모를까?
기사단에서 내보낼 사람들을 위해 무리할 이유는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알파 중대는 디바 중대와 균열 감시 임무를 교대했다.
자리 배치가 완료된 직후 중대장 데니스 로빈 남작이 엘리오에게 다가갔다.
“엘리오 경. 오늘은 궁정 마법사 메이지 칼로스께서 균열을 보수하시기로 한 날입니다. 마법사가 균열 보수를 어떻게 하는지 참관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죠.”
엘리오는 거절하지 않았다.
딱히 개인적으로 할 일도 없는 데다가 이 세계에 만연한 마법의 발현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궁정 마법사 메이지 칼로스가 온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옵티머스 기사단과 벨라토스 중대의 엄중한 호위 속에 나타난 메이지 칼로스를 본 데니스 로빈 남작이 부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기사단의 호위를 받는 기분은 어떨까요?”
“글쎄요. 저도 아직 그런 걸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엘리오 경은 이번에 영지를 하사받는다지요?”
“그런 소문이 있지만 확실한 건 아닙니다.”
“받을 겁니다. 벌써 영주가 된다니 부럽습니다.”
데니스 로빈 남작과 엘리오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벨라토스 중대가 균열 앞을 차단했다.
옵티머스 기사단에게 둘러싸인 메이지 칼로스가 지팡이 든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얼음과 눈의 결정이여! 여기 헤르헤라의 빙벽에 나타나 갈라진 균열을 메우라! 무로 데 케오(얼음의 벽이여), 아고라(나타나라)!”
그는 5서클의 메이지답게 고대어로 마법을 마무리했다.
콰드드드득―!
갈라진 균열 좌우편 바닥에서 얼음이 솟아올라 균열을 덮었다.
그러나 메이지 칼로스가 만든 얼음의 벽은 스쿠툼(방패)이라 불리는 빙벽에 비하면 너무도 약했다.
균열을 다 메우지 못한 얼음 벽은 균열 사이를 몰아치는 바람에 위태롭게 들썩거렸다.
메이지 칼로스가 두 번이나 더 ‘아이스 월’이라 불리는 마법을 영창하자 들썩거림이 멎었다.
그러나 세 번의 마법 영창으로도 균열을 완전히 메꾸지는 못했다.
‘아이스 월’로 막아 내기에는 빙벽의 균열이 너무도 거대한 까닭이다.
전심전력을 쏟아 낸 듯 메이지 칼로스의 몸에서 하얀 김이 풀풀 피어올랐다.
휘청거리던 메이지 칼로스가 막 자세를 바로 세웠을 때,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얼음 벽이 터져 나갔다.
콰앙!
뒤이어 뻥 뚫린 빙벽의 균열 사이로 붉은 몸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잠시 후 온몸을 드러낸 그것은 한 손에 거대한 해머를 든 외눈박이 마족 싸이클롭스였다.
마물보다 윗단계인 마족의 출현에 놀란 벨라토스 중대와 옵티머스 기사단은 한순간 숨도 쉬지 못했다.
기이한 침묵이 인간의 진영을 휘감았다.
로디나 대륙 최초로 흑마법사의 소환술과 무관하게 나타난 마족 앞에서 헤르헤라 주둔군은 ―마치 뱀 앞의 개구리처럼― 굳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