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54
1054회. 그거라면 지금 보여 드리겠습니다
엘리오가 황당한 눈으로 파비안을 보았다.
푸토코아 백작가의 남작이 자살한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라고?”
“유서에 자기가 독단적으로 암살을 의뢰했는데, 그 일로 푸토코아 백작에게 폐를 끼치게 돼 송구하다고 적혀 있답니다.”
“어째 대놓고 꼬리를 자르는 느낌이다?”
“그래도 필적은 존 미치 남작의 것이 맞다고 합니다.”
“존 미치 남작은 어떤 사람이야?”
“그리폰 기사단의 일원인데 기사단장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들리는 말로는 수족이나 다름없었다고 하네요.”
“그런 사람이 독단적으로 했다고? 이 사람들이 장난하나?”
“그래도 일단 유서가 진짜라면 푸토코아 백작의 주장에 힘이 실릴 겁니다.”
“존 미치 남작이 제도(帝都)의 암살 조직에 의뢰비를 지불할 능력이나 있겠냐고? 조금만 생각하면 헛소리라는 걸 알 텐데.”
“증언이야 다 말뿐이지만 유서는 확실한 증거가 되니까요. 암살 의뢰는 원래 비밀 보장을 위해 계약서도 없다면서요.”
“크레센트가 제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암살 조직이래잖냐. 그런 조직이 푼돈 벌겠다고 히르헤라까지 오겠냐? 소드 익스퍼트가 둘에다가 7서클 마법사도 하나 있었다. 그놈들 인건비가 한두 푼이겠냐고?”
“그야 그렇지만 평소 푸토코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귀족들은 믿는 척할 겁니다. 귀족들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습니까.”
“아, 몰라. 상관없어. 푸토코아 백작이 그 핑계로 피해 다니면 더 잘됐지. 하나씩 잡아서 족칠 거야. 그리폰 기사단장이 누구지?”
“콜라시오 키퍼 자작입니다.”
“그래, 잘됐네. 그 인간 수족이라니 내막을 알고 있겠지.”
“어차피 들이받을 거면 다른 귀족들이 징징대는 소리 듣지 마십쇼.”
“내가 그런 소리에 흔들릴 사람이냐?”
“중대장님 귀가 좀 얇아서 살짝 걱정이 됩니다. 마음 약해지실까 봐.”
“내가 귀가 얇아? 사람 잘못 본 거야. 나 남의 얘기 절대 안 들어.”
“그러셔야 합니다. 손을 데다 말면 처음부터 중대장님이 억지를 부린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귀족들은 중대장님보다 푸토코아 백작과 더 친하니 더 그럴 겁니다.”
“걱정 마라. 백작 족쳐서 배상 받아 낼 때까지 안 멈춘다.”
미심쩍은 눈으로 엘리오를 보던 파비안이 문득 말했다.
“참, 조만간 코드란테스 백작이 온다고 합니다. 그 일로 주둔지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소드마스터라고 했지?”
“예, 가급적 그분과는 충돌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소드마스터라서?”
“신망이 높으신 분입니다. ‘캄포데네브의 별’이라고 불리실 정도로요.”
“캄포데네브?”
“빙벽이 있는 대설원을 캄포데네브라고 부릅니다. 히르헤라는 그중에 한 지역이고요. 캄포데네브의 영주가 코드란테스 백작입니다.”
“땅 부자네?”
“북방의 땅이 쓸모가 없어서 좀 그렇지만, 거의 후작령에 맞먹을 정도로 큰 건 사실입니다.”
“코드란테스 백작을 본 적은 있고?”
“명성만 들었죠. 저 같은 하급 기사가 소드마스터 근처에 갈 일이 있나요.”
“기사면 다 같은 기사지 하급은 또 뭐냐?”
“소드 비기너도 못 되는 기사를 하급 기사라고 합니다.”
“누가 그렇게 불러? 난 처음 듣는데?”
“소드 비기너들이 저 같은 마나 유저를 그렇게 부릅니다. 같은 기사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는 거죠.”
“그럼 소드 비기너는 중급 기사냐?”
“예, 눈치가 빠르시네요. 소드 익스퍼트는 상급 기사, 소드마스터는 최상급 기사라고 합니다.”
“그 위는?”
“그랜드마스터요? 그걸 부르는 호칭은 없습니다. 누가 있어야 만들어 부르죠. 흐흐.”
어딘지 익숙한 파비안의 웃음에 엘리오가 흠칫 몸을 떨었다.
“야, 너 그렇게 웃지 마라.”
“예?”
“징그러우니까 조금 전처럼 웃지 말라고.”
“웃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합니까?”
“다시 기본기 수련으로 돌아갈까?”
순간 파비안은 얼른 태도를 바꿨다.
드래곤 플라이가 이제 막 몸에 익을 참인데 왜 기본기로 돌아간단 말인가!
“아닙니다. 제가 조심하겠습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예! 그런데 이 식인 드래곤 소드[龍武天祥]는 언제 가르쳐 주실 겁니까?”
“드래곤 플라이에서 드래곤이 튀어나오면 가르쳐 줄게.”
“에이, 농담하지 마시고요.”
“진짠데?”
“검술에서 어떻게 드래곤이 튀어나옵니까?”
“보여 줘?”
“예, 보여 주고 그렇게 하라고 하십쇼.”
“따라와.”
엘리오가 천막 입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뭐야? 농담이 아니었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파비안이 애매한 얼굴로 그의 뒤를 따랐다.
중대장 막사를 벗어난 엘리오는 중대 막사 뒤쪽의 공터에서 멈춰 섰다.
아직 환했지만 히르헤라 특유의 한파로 오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엘리오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천둔검을 뽑아 들었다.
“딱 한 번 보여 줄 테니까 잘 보고 딴소리하지 마.”
말과 함께 지면을 향하던 그의 검이 하늘로 솟았다.
슈아아악―.
대기를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순간 파비안의 입이 쩍 벌어졌다.
회오리바람 속에 반투명한 드래곤이 날아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 드래곤이 왜!”
엘리오가 검을 거두자 회오리바람도, 드래곤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봤지? 드래곤이 보이면 드래곤 소드를 가르쳐 줄게.”
“그, 드래곤은 뭡니까? 진짜 드래곤입니까?”
“멍청아. 머리는 장식이냐? 진짜 드래곤이 검술 속에 있겠냐고?”
“그럼 뭡니까?”
파비안이 눈을 깜빡였다.
검형(劍形)이 뭔지 모르는 파비안에게 회오리바람 속의 드래곤은 신비 그 자체였다.
“검술에 그 검술을 창시한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 정도는 알지?”
“그야 물론이죠.”
“드래곤 플라이를 창시한 분의 마음이 그런 형태[心像]로 나타난 거야.”
“왜요?”
파비안은 엘리오 중대장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륙의 검술은 실용적인 동작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당연히 마음의 형태라는 게 있을 리 없다.
검술이란 그저 막고, 베고, 찌르기 좋은 움직임의 연속일 뿐이다.
결과가 중요하지 검술을 창시한 사람의 마음은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은가?
“왜냐니? 검술은 흉내를 내는 거잖아? 맞아 아니야?”
“흉내가 아니라 칼싸움에 최적화된 경로를…….”
“그걸 뭐라고 부르든 따라 하는 거잖아. 아니야?”
“뭐, 결과적으로는 맞습니다.”
검술 고수의 막고, 베고, 찌르는 방식을 후대의 검사가 따라 하는 거 아니냐고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기본적으로 검술이든 체술이든, 잘 싸우는 누군가를 따라 하면서 조금씩 고쳐지고 체계화된 거야. 맞지?”
“예.”
그 부분에 있어 파비안은 전적으로 동의했다.
이미 여러 사람을 가르쳐 본 엘리오는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 나갔다.
“드래곤이 얼마나 잘 싸우겠어. 이 검술의 창시자는 그걸 검술에 담아낸 거야. 이해됐어?”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 드래곤이 싸우는 걸 봤다는 게 좀…….”
“뭐가 좀이야?”
“그런 걸 본 사람이 있습니까?”
“왜 이 검술의 창시자가 사람이라고 생각해?”
“아!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하기야 사람이 그 정도의 검술을 만들 수는 없었겠지요? 대체 ‘나인 스카이 검술’의 창시자가 누굽니까?”
엘리오는 ‘샤스트라 파라크티[九天玄女]’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거기까지는 몰라도 돼. 여하튼 검술이 극에 도달하면 검술을 창시한 사람의 마음까지도 알게 된다는 것만 알아 둬.”
“극에 도달하면 저도 드래곤을 불러낼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 내가 불러내는 거 봤잖아?”
“그걸 불러내야 드래곤 소드를 가르쳐 주신다고요?”
“어.”
“제가 드래곤 플라이의 극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나는 모르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소드마스터라고 해도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너 소드마스터를 너무 낮게 보는 거 아냐?”
“예, 중대장님을 따라다니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소드마스터가 검사의 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중대장님의 검술은 그 너머에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드래곤 플라이의 극에 도달하는 건 자신 없습니다. 문턱을 조금만 더 낮춰 주십쇼.”
곰곰 생각하던 엘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극의에 도달해야 이 식을 가르치겠다는 건 좀 억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럼, 회오리바람만이라도 일으켜 봐. 그럼 이 식을 가르쳐 줄게.”
그러자 파비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거라면 지금 보여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파비안은 롱소드를 뽑아 들고 드래곤 플라이를 펼쳤다.
쉬이익―.
처음에는 약했지만, 검식을 두 번 연거푸 펼치니 세찬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숨을 헐떡이던 파비안이 엘리오에게 소리쳤다.
“중대장님! 어떻습니까!”
“…….”
엘리오는 파비안의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형제들이나 배다른 형제들과는 확실히 차이가 났다.
‘역시 마나로도 구천세법을 펼칠 수 있었구나.’
마나가 영기보다 상위의 힘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도 같았다.
그는 파비안에게 이 식 드래곤 소드를 가르쳐 주고 터덜터덜 막사로 돌아갔다.
***
루퍼스 중대장 막사.
엘리오의 시선이 탁자 위에 놓인 책으로 향했다.
‘기초 마나론’이라고 파비안이 교재로 사용하는 책이다.
창조신 마나 프트라스에 대한 설명과 찬사가 내용의 대부분이라 은근 무시했는데,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창조신 마나 프트라스라…….’
그 신은 정말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게만 마나의 축복을 내리는 걸까?
파비안의 성취를 보면 마나가 궁금하기는 하다.
영기보다 상위의 힘이라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가 막 책을 펼칠 때 밖에서 음성이 들렸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님. 계십니까?”
엘리오가 고개를 들었다.
귀에 익은 음성이었지만 누군지 금방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들어와요.”
엘리오가 답하자 기다렸다는 듯 중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베르나르도 후작의 서기인 글랜 테일러 남작이었다.
“서기님?”
“예, 후작님의 심부름으로 찾아왔습니다. 전할 것과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앉으세요. 뭔데요?”
엘리오가 맞은편 자리를 권하자 글랜 테일러 남작은 사양하지 않고 앉았다.
“전할 내용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리폰 기사단의 존 미치 남작의 죽음과 그가 남긴 유언장입니다. 어젯밤 존 미치 남작이 유언장을 남기고 자살했습니다. 단검으로 정확하게 심장을 찔렀더군요.”
글랜 테일러 남작이 자신의 심장 부위를 빈주먹으로 툭 쳐 보였다.
엘리오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유언장에는 암살 의뢰가 자신의 독단적인 행동이었고, 그 일로 푸토코아 백작에게 폐를 끼치게 되어 송구하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일 정오경 코드란테스 백작이 히르헤라에 도착합니다. 오후에 푸토코아 백작과 코드란테스 백작의 회동이 예정되어 있고요. 여기까지는 후작님이 전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확인은 무엇에 대한 거죠?”
“유언장은 코드란테스 백작을 끌어들일 명분에 불과합니다. 후작님은 엘리오 라고아 남작께서 어디까지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십니다.”
“어디까지요?”
“이를테면 푸토코아 백작과의 직접적인 싸움까지 가느냐, 그 전에 적당한 선에서 협상을 할 것이냐 하는 거겠지요?”
순간 엘리오는 후작에게 조금 실망했다.
그걸 다시 묻다니, 소드마스터의 등장이라는 강력한 변수 앞에 겁이 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