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66
1066회. 히르헤라의 수호자
베르나르도 후작은 흑마법사들에 관한 한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믿었다.
타메이온에서 흑마법사를 발견한 것도 그였고, 흑마법사들과 충돌한 것도 그인 까닭이다.
하지만 그런 후작의 기대와 달리 흑마법사들에 대해 엘리오가 아는 건 거의 없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흑마법사들을 잡으면 그걸 물어보고 싶네요.”
엘리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흑마법사라고 해도 결국은 인간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왜 인간이 빙벽을 부수고, 마족을 인간세계로 끌어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불사조 기사단장 엘런 파레스 백작이 끼어들었다.
“흑마법사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입니다. 이미 생각 자체가 인간보다 마족에 가깝지 않습니까? 로디나 대륙을 마족에게 바치려고 그러는 걸 겁니다.”
극단적인 주장이지만 베르나르도 후작과 엘리오는 동의도 반대도 하지 못했다. 지금으로서는 그걸 뒤집을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흑마법사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막사 밖에서 누군가 말했다.
“중대장님. 참모장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어? 알았다.”
엘리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로 가려는데 참모장인 메토 로베르트 자작이 휘장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베르나르도 후작과 엘런 파레스 백작을 발견한 메토 로베르트 자작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묵례를 했다.
“대장군님과 불사조 기사단장님이 먼저 와 계셨군요. 합석을 해도 되겠습니까? 안 된다면 이따가 다시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엘런 파레스 백작이 베르나르도 후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베르나르도 후작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좁지만 와서 자리에 앉게. 그렇지 않아도 여러 사람의 지혜가 필요하던 참이네.”
메토 로베르트 자작이 거듭 고개를 까딱여 보인 후 빈자리에 착석했다.
엘런 파레스 백작이 참모장에게 마족과 흑마법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추려 들려주었다.
네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었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베르나르도 후작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참모장이 방문한 이유를 확인하지 않았군. 무슨 일로 왔나? 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내용이라면 자리를 피해 주겠네.”
후작은 조금 전 메토 로베르트 자작이 한 이야기를 똑같이 따라 했다.
“아닙니다. 마족들의 뒤를 추적했다기에 제가 알아 두어야 할 일이 있을까 싶어 찾아와 봤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자리에 앉자마자 기사단장님이 말씀해 주셔서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그랬군. 참! 라미노프 왕국에도 사신을 보냈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뭐라 하던가?”
라미노프 왕국은 베일럼 왕국과 인접한 북부의 왕국 중 하나였다.
“파병에 앞서 현지 시찰단을 먼저 보내겠다고 합니다.”
“직접 확인하겠다? 우리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라미노프 왕가와 에스카토스 왕가의 교류가 활발한 것은 아니니까요.”
참모장은 견원지간인 라미노프 왕가와 에스카토스 왕가의 관계를 돌려 말했다.
“그래서 시찰단은 언제 보내겠다던가?”
“그마저도 통보해 주지 않았습니다.”
“라미노프 왕가답군. 제국이 발을 뺐으니 라미노프 왕국의 협조라도 받아야 하네. 아나킨이야 어찌어찌 막아 냈지만……. 몰록이 참전했으면 결과는 또 달라졌을 걸세.”
엘리오가 슬쩍 끼어들었다.
“몰록은 누구인가요?”
“몰록은 아나킨들의 주인이오. 모쿠바스의 군주이기도 한 그가 자기 종들의 패배를 알게 되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지도 모르오.”
“몰록도 마족인가요?”
이번에는 참모장이 후작을 대신해 답했다.
“최상위 마족으로 타메이온을 다스리는 칠십이 군주들 중에 하나네.”
“칠십이 군주요? 타메이온이 그렇게 넓어요?”
“상상할 수도 없지. 타메이온에 비하면 로디나 대륙은 빙산의 일각일세.”
기사단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서 로디나 대륙을 신의 은총으로 부르기도 한다오. 이 세상에서 로디나 대륙처럼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곳도 없으니까.”
“이 세계의 대부분이 타메이온처럼 위험하다는 뜻인가요?”
“알려진 곳은 그렇소.”
“알려지지 않은 곳도 많은가 봐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도 많소. 이 세상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오. 당장 이 로디나 대륙에도 미개척지가 많소. 어느 곳에서건 모험가가 환영받는 것도 그래서고.”
엘리오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베르나르도 후작이 참모장에게 거듭 말했다.
“몰록이 알면 정말로 마족과의 전쟁이 시작되게 될지도 모르네. 라미노프 왕국에 그와 같은 사실을 알리면 속도를 내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라미노프 왕국에 대해서는 원수님에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서두르는 게 좋을 걸세.”
“왕실의 비공정이 히르헤라에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비공정까지 나오자 후작은 더 닦달하지 않았다.
사실 비공정까지 나왔으면 할 수 있는 수단은 다 동원한 셈이었다.
***
엘리오 라고아 남작과의 대화를 마친 참모장 메토 로베르트 자작은 곧바로 에스카토스 공작을 찾아갔다.
“공작님. 엘리오 라고아 남작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래, 뭐라던가?”
“흑마법사들이 아나킨을 먼저 공격해서 생긴 일 같다고 했습니다.”
“확실한 건 아닌 모양이군?”
“아나킨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가 가진 하급 아티팩트의 성능을 생각하면 그 정도 소득도 기적입니다.”
“문제는 그게 믿을 만한 정보냐는 거지. 하급 아티팩트로 마족과 대화를 했다니……. 마법사들이 들으면 재밌는 농담이라고 할 걸세.”
“대화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라고아 남작은 단어 몇개만 겨우 알아들었다고 했습니다.”
“몇 개의 단어로 많은 걸 알아냈군.”
“운이 좋았습니다. ‘마법사’와 ‘복수 한다’라는 단어를 조합하면……. 라고아 남작의 추론에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솔직히 나는 틀렸기를 바라네. 그게 사실이라면 앞으로 더 큰 일이 일어날 테니.”
“몰록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키우던 개가 얻어맞고 돌아와도 주인은 기분이 나쁜 법이지. 하물며 수족처럼 부리는 종이 맞고 왔다는 걸 알면 어떻게 되겠나?”
“복수를 하겠다고 할 겁니다.”
“히르헤라에 구멍까지 뚫렸으니 몰록의 침공을 물리적으로 막는다는 건 불가능하네. 오늘의 일은 맛보기에 불과한 것일지도 몰라. 히르헤라에서 마족과 인간의 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보십니까?”
“히르헤라의 균열을 보게. 수천 년 역사에 없던 일이 이미 일어났네. 오늘은 아나킨들이 마물과 마수를 앞세워 쳐들어왔고. 내일 몰록이 군대를 이끌고 온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 않은가?”
“그렇긴 합니다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메토 로베르트 자작은 이 모든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대륙의 인간들이 히르헤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면 난리가 날 게다.
‘마족과의 전쟁이라니…….’
기가 막혔다.
“다른 말은 없던가?”
“후작께서는 마족과의 전쟁에 대비해 라미노프 왕국의 빠른 지원을 바라셨습니다.”
“라미노프의 시찰단은 여전히 소식이 없고?”
“예.”
“쯧! 게으른 건지, 뻔뻔한 건지…….”
“둘 다일 겁니다.”
“옵티머스 기사단장을 보내게. 그래도 뭉그적거리면 라미노프 쪽 담당자의 목을 베라고 해.”
과격한 에스카토스 공작의 말에 메토 로베르트 자작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보다는 기사단장에게 비공정을 내어 주시지요. 시간도 절약되지만 히르헤라의 긴박함도 잘 전달될 겁니다.”
“비공정은 라미노프에도 없네. 행여나 비공정을 보고 더 삐딱하게 나올 수도 있어.”
“후작께서는 비공정 정도는 보내야 이쪽의 진의가 전달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국왕 전하께서 비공정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했다는 건가?”
“설마 라미노프에서 비공정을 압류하기라도 하겠습니까?”
“그야 모르지. 라미노프 3세가 충동적인 사람이라는 건 경도 알잖나.”
“비공정을 압류하면 우리 전하께서는 전쟁도 불사하실 겁니다. 라미노프 3세가 충동적인 건 사실이나 미친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아.”
에스카토스 공작이 장탄식을 내뱉었다.
비공정의 운항을 두고 벌써부터 이럴 정도라는 건, ‘비공정을 보내야 진의가 전달된다’는 주장이 옳음을 뜻했다.
“기사단장에게 비공정을 내어 주지. 기사단장에게는 비공정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말게. 괜히 지키겠다고 무리를 하다가 일이 더 꼬일 수도 있으니까.”
“예.”
메토 로베르트 자작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겨우 한고비를 넘었을 뿐인데 벌써 목적지에 도달한 것처럼 진이 빠졌다.
***
마족의 침공 이후 베일럼 왕국군 주둔지는 거의 초상집 분위기로 변했다.
균열 최전선에 배치됐던 크레타 중대가 전멸당한 때문이다.
하필 베일럼 왕국군의 배치일에 터진 일이라 내부적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다.
대귀족들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는 평가와 별개로 ‘베일럼 왕국군이 뚫렸다’는 것을 불명예로 생각했다.
베일럼 왕국군 지휘관들은 급히 최정예 병력을 모아 아니마 중대를 창설했지만, 귀족부터 병사 들까지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에스카토스 왕국의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베일럼 왕국군에 비해 피해가 덜하다지만 그래도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탓이다.
마족의 침공은 에스카토스 왕국과 베일럼 왕국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한 사람의 영웅을 탄생시켰다.
슬래시 랜드의 영주인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다.
일찍이 ‘균열의 기사’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던 그는 마족의 침공 이후 ‘히르헤라의 수호자’로 불렸다.
히르헤라가 작은 지역이기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피식 웃고 말 테지만, 히르헤라 주둔지에서 ‘히르헤라의 수호자’는 소드마스터보다 뛰어난 존재에 대한 애칭이었다.
마족의 침공 하루 뒤.
히르헤라 베일럼 왕국군 주둔지.
셀레투스 기사단.
베일럼 왕국군 원수인 허버트 리베라토 공작은 대장군 레토나 그라운드 후작, 궁정 마법사 드레이크 로젠바움과 함께 셀레투스 기사단을 방문했다.
일명 머스킷 기사단으로 불리는 마력 총사대가 최고 지휘관들의 방문에 발칵 뒤집혔다.
모든 왕국에 마력 총사대가 있지만 야전에서 최고 지휘부가 그들을 따로 찾아가 만날 정도로 대우를 받지는 못한다.
마력 총사대를 ‘근접전을 두려워하는 마나 유저의 집단’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사실 그 말이 어느 정도 맞기는 했다.
어느 왕국의 마력 총사대건 남자보다 여자의 비율이 더 높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 셀레투스 기사단에 최고 지휘관들이 방문했으니 놀랄 만도 하다.
숙소에서 쉬던 셀레투스 기사단장 조르바 아미쿠스 백작과 부단장 줄리 그린우드 남작이 허겁지겁 뛰쳐나가 지휘관들을 맞이했다.
셀레투스 기사단장 막사.
대장군 레토나 그라운드 후작이 조르바 아미쿠스 백작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조르바 아미쿠스 백작이 잰걸음으로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애나 로건 경을 불러라.”
“애나 로건 경 말입니까?”
“그래, 같은 이름을 두 번 말해야 알아듣겠나? 원수님께서 애나 로건 경과 만나고 싶어 하신다.”
“예!”
조르바 아미쿠스 백작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뛰어갔다.
레토나 그라운드 후작의 다소 거친 언행을 보면 베일럼 왕국에서 셀레투스 기사단장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법도 하다.
부단장인 줄리 그린우드 남작은 구석에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서 있었다.
잠시 후 기사단장이 애나 로건과 함께 돌아왔다.
기사단장 조르바 아미쿠스 백작과 부단장 줄리 그린우드 남작은 마치 시종들처럼 나란히 서서 원수인 허버트 리베라토 공작의 눈치만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