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83
1083회. 내 권속이 되어 인간 세계를 다스리겠느냐?
드라고드의 눈이 아나킨족의 족장 프롬푸트를 향했다.
그건 누가 봐도 아나킨족을 이끌고 가서 먼저 치라는 의미다.
그런데 상급자의 노골적인 눈길에도 프롬푸트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프롬푸트뿐이 아니다.
아나킨족 전체의 움직임이 인간을 확인한 뒤로 갑자기 굼떠졌다.
불쾌한 얼굴로 아나킨족을 노려보던 드라고드가 세르베지야를 돌아보았다.
“세르베지야! 저 멍청한 아나킨들에게 전사가 무엇인지 보여 주어라!”
“예!”
키가 3미터에 달하는 세르베지야가 사람 크기만 한 대검을 들고 달려 나갔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검을 들고 있음에도 세르베지야는 마치 마력탄처럼 쏘아 갔다.
단 한 호흡만에 인간 앞에 도달한 그는 대검을 수직으로 내려찍었다.
쾅―!
엘리오의 천둔검과 세르베지야의 대검이 허공에서 마주치자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허공에 떠 있던 세르베지야의 몸이 반동으로 5미터나 뒤로 날아갔다.
한순간 세르베지야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건 뭐지?’
단 한 번의 격돌로 그는 저 인간이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당장 자신과 인간의 상태만 봐도 그렇다.
반동으로 뒤로 밀려난 자신과 달리 인간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심지어 충돌의 여파로 무너졌어야 할 탑의 지붕도 멀쩡했다.
그건 인간이 충격을 완전히 흡수했다는 뜻이다.
열패감이 와락 밀려오자 세르베지야는 발작적으로 대검을 휘둘렀다.
“쿠에로(죽어라)!”
콰콰콰콰―.
농도 짙은 마력의 블레이드가 인간을 향해 노도처럼 밀려갔다.
세르베지야는 설사 상대가 소드마스터라 해도 저 마력의 블레이드에 맞서지 못하리라 믿었다.
사실 그래야 마땅했다.
인간의 마나보다 파괴적인 힘이 마력이라는 건 불변의 진리였다.
마법사들이 괜히 흑마법에 빠져드는 게 아니다.
마나와 재능의 한계에 봉착했을 때 그 돌파구로 마력을 선택한 자들이 흑마법사다.
그 파괴적인 힘에 끝내 자신까지 잡아먹히게 되지만 효과 하나는 확실했다.
그렇게 압도적인 마력의 블레이드니 세르베지야가 승리를 자신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상대는 이세계의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엘리오다.
엘리오가 무심한 얼굴로 천둔검을 휘둘렀다.
천둔검에서 일어난 진검강과 마력의 블레이드가 중간에서 충돌했다.
꽈광―!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음과 함께 충격파가 폐성 일대를 휩쓸었다.
‘크윽!’
세르베지야의 상체가 반탄력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젖혀졌다.
급히 자세를 바로 한 세르베이쟈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의 면전으로 롱소드가 날아오고 있었다.
간단히 대검으로 롱소드를 쳐 내는 그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훗! 미친놈.’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그렇지 무기를 던지다니?
이기어검을 모르는 세르베지야는 득달같이 앞으로 달려가 거리를 좁혔다.
그가 막 대검으로 인간을 베어 버리려는 순간이다.
콰직!
끔찍한 통증이 등짝에서 느껴지자 세르베지야는 ‘악’ 소리와 함께 지면으로 추락했다.
몸이 바닥에 처박히기 직전 그는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쿵―!
도약의 순간 예측하지 못한 공격에 부서진 갑주가 후드득 떨어져 나갔다.
인간 앞에 멈춰 선 세르베지야는 대검을 길게 늘어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롱소드 한 자루가 ―마치 새처럼― 성탑 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저건 뭐지?’
설사 자아를 가진 마법검이라 해도 저렇게 새처럼 하늘을 날지는 못하리라.
용족의 신체에 비하면 작은 검이라 무시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
갑주가 없는 상체에 직격당하면 아무리 용족의 피부가 질겨도 중상을 면치 못할 것 같아서다.
인간과 세르베지야의 대치가 길어지자 드라고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힐끔 아나킨 족장 프롬푸트를 보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참다못한 드라고드가 삼백 명의 용족에게 소리쳤다.
“가서 인간을 찢어 죽여라! 그 살을 씹고, 피를 마셔라! 드라고니안의 두려움을 알게 하라!”
“우오오오!”
삼백 명의 드라고니안들이 대검을 들고 빛살처럼 날아올랐다.
눈치만 보던 프롬푸트는 드라고니안들이 움직이자 마지못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용기백배해 소리지르는 드라고니안들과 달리 아나킨들은 조용하기만 했다.
드라고니안과 아나킨이 합세하자 폐성의 하늘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캄캄해졌다.
엘리오는 즉시 천둔검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일과지유 포라천지 일즉다 다즉일(一颗只有 包羅天地 一卽多 多卽一)’의 구결대로 천둔검을 이끌었다.
스스스스슥―.
엘리오의 몸 뒤로 마치 후광처럼 수백 개나 되는 천둔검이 도열했다.
이윽고 엘리오가 두 손을 앞으로 뻗자 천둔검들이 마족들에게 날아갔다.
천산검영이 ‘검의 화신’이라면, 저 천둔검들은 하나하나가 여동빈의 법력이 담긴 신기(神器)라 할 수 있다.
마족들은 검에 담긴 힘을 미처 알지 못하고 가볍게 대검으로 쳐 냈다.
콰콰콰쾅―!
천둔검과 충돌한 대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졌다.
부서진 검편과 천둔검이 마족들을 휩쓸었다.
“크아악!”
“악!”
“끄윽!”
“안 돼!”
드라고니안과 아나킨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뒤에서 드라고드가 도망치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지만 소용없었다.
오직 세르베지야만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아나킨의 족장 프롬푸트조차 자신의 무기가 박살 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아니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엘리오가 허락하지 않았다.
천둔검 중 하나가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프롬푸트를 쫓아갔다.
프롬푸트가 전력으로 달렸지만 천둔검의 속도를 이기지 못했다.
콰직―!
기어코 천둔검이 그의 등짝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우두커니 서서 제 가슴에 뚫린 구멍을 바라보던 프롬푸트가 천천히 쓰러졌다.
황망한 눈으로 동족의 시체를 보던 드라고드가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절규했다.
“크아아아! 감히 인간이 드라고니안을 죽이다니! 인간족을 모두 죽여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만악의 근원이며 마력의 원천이신 샤이틴이시여! 저를 바치오니 인간을 심판해 주소서!”
순간 폐성 위를 감돌고 있던 마기가 소용돌이치며 드라고드에게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드라고드가 황홀경에 빠진 얼굴로 외쳤다.
“우오오오! 태초의 힘이 느껴진다! 내가 진리의 계승자이자, 불멸의 심판자인 드라고드다!”
드라고드의 몸집이 점점 커지더니 종국에는 이십여 미터 크기의 블랙 드래곤으로 변했다.
살아남은 마족들이 황망히 폐성과 거리를 벌렸다.
광오한 얼굴로 마력의 힘에 취해 있던 드라고드가 엘리오를 향해 불을 뿜었다.
전설에나 나오는, 무엇이든 녹이기로 유명한 드래곤의 브레스였다.
그러자 엘리오는 건곤번천(乾坤飜天)으로 맞받아쳤다.
성탑으로 날아가던 브레스가 돌연 방향을 바꿔 마족들에게 떨어졌다.
화르르르륵―!
갑자기 날벼락을 맞게 된 마족들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천둔검에 맞고도 진형을 유지하던 용족들이 드라고드의 브레스 앞에 무너졌다.
당황한 드라고드는 브레스를 멈추고 인간을 향해 소리쳤다.
“얼어라!”
이른바 절대 마법의 언어인 용언(龍言)을 사용한 것이다.
한순간 성탑 일대의 공기가 얼어붙었지만 엘리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추운 히르헤라에서 빙결 마법은 조금 더 차가움이 느껴지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엘리오가 가진 영기의 양이 드라고드의 마력보다 많았던 탓에 그는 빙결 마법에서 자유로웠다.
보란 듯 팔을 붕붕 휘두르던 엘리오가 검결지로 블랙 드래곤이 된 드라고드를 가리켰다.
쐐애애액―!
천둔검이 대기를 가르며 드라고드의 가슴으로 날아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천둔검은 드라고드의 심장 어림에 박혔지만, ‘퍽!’ 소리와 함께 튕겨 났다.
천둔검은 블랙 드래곤이 된 드라고드의 피부에 생채기를 냈을 뿐 뚫지는 못했다.
오기가 발동한 엘리오는 천둔검의 크기를 블랙 드래곤에 맞게 키운 뒤 다시 검결지로 검을 쏘아 보냈다.
거대화된 검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드라고드는 홀드 마법으로 검을 허공에 붙잡아 놓은 뒤 힘껏 브레스를 내뿜었다.
화르르륵―!
시뻘건 화염이 거대한 천둔검을 휘감았다.
천둔검이 시뻘겋게 달구어지는가 싶더니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천둔검이 다 녹아 사라지자 드라고드는 큰 소리로 인간을 비웃었다.
“크하하핫! 어떠냐 인간이여! 이것이 드래곤의 힘이다. 검처럼 너도 녹여 주마. 시간이여 멈춰라! 심판의 불길로 태워 주마!”
드라고드가 브레스를 뿜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가 막 브레스를 내뿜으려는 순간,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붉은 검 한 자루가 뚝 떨어져 내렸다.
콰드득―!
구천검령 한 자루가 블랙 드래곤의 심장을 관통해 설원에 박혔다.
“캑! 이, 이건…… 대체…….”
불신의 눈으로 자신의 몸통을 내려보던 드라고드의 머리가 설원에 툭 떨어졌다.
마족이 쓰러지자 엘리오는 누가 볼세라 구천검령을 회수했다.
숨이 끊어지자 드라고드의 몸은 블랙 드래곤에서 다시 용족으로 돌아왔다.
황망한 얼굴로 인간을 보던 세르베지야가 대륙 공용어로 물었다.
“이 세계에 너와 같은 인간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너는 누구냐!”
“너는 내가 누군지 알 자격이 없어. 군주는 어디에 있지?”
“으흐흐흐! 네 검술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몰록 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군주가 몰록이라고? 그래서 어디에 있는데?”
“몰록 님은 악신 샤이틴님의 아들로, 어둠의 에테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계시다.”
그때 검은 마기의 회오리가 드라고드의 시체 위를 지나갔다.
회오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드라고드를 빨아들인 회오리는 성탑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난 뒤에 세르베지야의 옆에 멈춰 섰다.
이윽고 마기가 사라지더니, 그 자리에 아름다운 얼굴을 한 남자가 나타났다.
모쿠바스의 군주인 몰록이다.
언제 왔는지 몰록의 뒤로 여섯 명의 마족이 시립하듯 서 있었다.
몰록이 흥미로운 눈으로 폐성 일대와 인간을 번갈아 보았다.
단 한 사람에 의해 마수와 마물은 물론 아나킨과 드라고니안까지 초토화될 줄이야!
자신이 소집한 군단의 시체 앞에 그는 분노보다 호기심을 더 느꼈다.
그래서 칼을 뽑기 전에 대륙 공용어로 말부터 걸었다.
“인간이여! 나로 하여금 올려다보게 하지 마라. 요새를 무너뜨려 눈높이 맞추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면, 내려와 내 앞에 서라.”
제법 정중한 마족의 요청에 엘리오는 천천히 허공을 걸어 내려갔다.
그가 앞에 서자 몰록이 말했다.
“이 몸이 네가 찾던 모쿠바스의 군주이자, 악신 샤이탄님의 아들인 몰록이다. 너는 누구냐? 누구의 허락으로 나의 권속들을 이렇게 무참히 죽인 것이냐?”
엘리오는 몰록의 나이가 자신과 비슷해 보이자 바로 말을 놓았다.
“나는 슬래시 랜드의 영주인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다. 나를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것들을 죽인 것뿐인데 허락까지 받아야 해?”
몰록은 마족답게 생명을 등한시하는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저들은 모두 내 권속들이다. 죽어 마땅한 나약한 것들이지만, 그래도 주인으로 권속들의 죽음에 책임을 물어야겠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여! 너는 무엇으로 네 죄를 속죄할 텐가? 만약 네가 죽은 드라고드를 대신해 내 권속이 된다면 인간 세계의 왕이 되게 해 주마. 그렇게 된다면 마족과 마물이 빙벽을 넘어올 일도 없겠지. 어떠냐? 내 권속이 되어 인간 세계를 다스리겠느냐?”
몰록이 만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엘리오 라고아 남작을 응시했다.
그에게 한 제안은 거짓이 아니다.
몰록은 엘리오 라고아 남작을 자신의 대리자로 만들어 대륙을 지배할 요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