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27
1127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베일럼 왕국.
북부 도시 딜라트.
정오 무렵.
도시로 들어가는 거대한 탑으로 일단의 기사들이 다가갔다.
중갑을 착용한 백작의 친위대 넷과 기사복만 입은 백작과 엘리오, 파비안이다.
친위대가 들고 있던 깃발을 본 경비병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탑 앞에 도열했다. 영주인 오마르 백작가의 문양을 봤으니 그럴 만도 하다.
친위대 부대장 밀로스 아이작 남작을 필두로 백작 일행은 묵묵히 안으로 진입했다.
중앙 대로로 일곱 명의 기사(騎士)가 들어서자 사람들이 좌우로 비켜섰다.
엘리오가 신기한 눈으로 연신 좌우를 둘러보았다.
네 번째 하늘에 온 뒤로 설원에만 있다가 이렇게 큰 인간의 도시는 처음이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그런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옆으로 다가갔다.
“딜라트는 북부의 오래된 도시들 중에 하나요. 무역이 발달하다 보니 드나드는 외지인들도 많소. 딜라트의 시장이 자유주의자라 야인(野人)은 물론 수인(獸人)들까지 볼 수 있을 게요.”
“수인이야 그렇다 쳐도 야인은 표시가 납니까?”
엘리오가 백작을 힐끔 보았다.
수인이야 짐승의 외관을 하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야인은 사람이라 구별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가죽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십중팔구 야인이라고 보면 되오.”
“아하.”
“갑옷에 덧댄다면 모를까? 기사들도 가죽옷은 입고 다니지 않으니.”
“일반인들도 가죽옷을 입지 않나요?”
“가죽이 비싼 것도 있지만, 야인으로 오해를 받을까 봐 입지 않소. 야인을 차별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백작님은요? 야인이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까?”
“세금만 잘 낸다면 내 영지에서 야인이라 차별받는 일은 없소.”
“깊은 산에서 사는 야인이 세금도 내나요?”
“하하! 딜라트는 무역이 발달한 도시라 야인도 세금을 내오. 불법 거래소를 이용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오.”
“거래에 세금이 붙나 보군요?”
“맞소. 그걸 아껴 보겠다고 불법 거래소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작은 도시가 처음이오?”
“딜라트 같은 도시는 처음입니다.”
“그렇구려. 가까운 거래소에 들러 어떻게 운영되는지 보시겠소?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구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구매해 드릴 수도 있소만.”
“괜찮습니다. 원하는 게 딱히 없네요.”
“언제라도 말만 하시오. 다른 영지에 있는 것이라도 구해다 드릴 테니.”
“백작님.”
“말씀하시오.”
“나는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라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답으로 뭘 해 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뜨악한 얼굴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살다 살다 이런 소리는 처음이다.
제국의 황제도 아니면서 저렇게 낯 뜨거운 소리를 하다니…….
‘욕심이 없는 건가? 포악한 건가?’
어느 쪽이든 그런 말까지 들었으니 더 이상 권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선두의 친위대 기사들이 화려한 식당 앞에서 멈춰 섰다.
도시에서 점심을 먹고 가려는 모양이다.
이윽고 백작과 엘리오 일행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
딜라트 외곽.
도시의 중앙이 화려하고 깨끗하다면 외곽은 허름하고 지저분하다.
비밀스러운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도 도시 외곽이다.
대체로 거대한 도시의 외곽은 우범지대였는데 그 점에 있어서는 딜라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치안대나 자경단도 포기한 딜라트 외곽의 공터에 사람들이 모였다.
네블라 악시무스 백작가의 총사대다.
스벤 하우저 자작은 총사대의 옷을 평상복으로 갈아입힌 뒤 마일로 워커 자작에게 인계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은 이번 일과 관계없음을 강조한 후 떠났다.
마일로 워커 자작이 흡족한 얼굴로 총사대를 응시했다.
스무 명의 총사대라니!
일반 총병도 무서운데 저들은 마나를 각성한 총사다.
한 개 전투 중대에 열 명의 총병이 배치되니, 총사대 스무 명이면 실로 어머어마한 화력이라 할 수 있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중갑을 착용하지 않았으니 이 정도면 반드시 죽으리라.
“중갑을 착용하지 않은 기사가 둘이다. 그중에 검은 머리를 가진 야인을 먼저 쏘아야 한다. 알겠나? 검은 머리가 목표물이다.”
마일로 워커 자작은 총사대의 사기를 위해 목표물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라는 걸 밝히지 않았다.
상대가 야인이라고 하자 총사대의 반응이 어째 시큰둥하다.
안 되겠다 싶었던지 그가 살짝 겁을 주었다.
“검은 머리를 제압하지 못하면, 그의 손에 너희가 죽을 것이다. 그러니 살고 싶으면 검은 머리를 죽여라.”
“알겠습니다.”
그제야 총사대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마일로 워커 자작이 이번에는 휘하의 기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열두 명의 기사들이 자세를 바로했다.
“이번 전투는 마물이나 마족을 상대하듯 할 것이다. 먼저 마력탄을 퍼붓고, 그뒤에 기사들이 돌입하여 제압한다. 제압이 어려우면 죽여도 좋다. 목숨을 취함에 있어 추호의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나?”
“예!”
기사들은 총사대를 보고 고무된 듯 표정이 밝았다.
마일로 워커는 총사대의 무장을 점검한 후에 곧바로 딜라트를 떠났다.
***
딜라트 남부.
테살로스 협곡.
이른 아침.
마일로 워커 자작은 교차사격을 위해 열 명의 총사를 좌측, 그리고 나머지 열 명의 총사를 우측에 배치했다.
이윽고 열두 명의 기사들과 가까운 숲으로 들어갔다.
전방을 응시하던 데니스 라이브 남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어, 자작님?”
“왜 그러나.”
“정말 총사대만으로 되겠습니까?”
“무슨 소린가?”
“히르헤라에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총사대만으로 부족하다?”
“송구합니다만 총사대로 마족 군주를 잡을 수 있습니까?”
마일로 워커 자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그의 염려를 알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중무장을 했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도 보았지 않나? 그는 기사 정복만 착용했다. 그의 무위가 소드마스터를 능가한다고 해도……. 몸뚱아리에 마력탄이 박히면 죽는다. 마족 군주의 전투력과 단순 비교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
데니스 라이브 남작은 눈을 내리깔았다.
자작의 말이 맞는데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다.
그가 침울한 얼굴을 하자 와일드 바움 남작이 끼어들었다.
“자작님 말씀이 맞아. 맨 몸뚱아리에 마력탄을 맞으면 누구라도 죽는다고. 군신(軍神) 하네스 크나우프 대공도 죽을걸?”
그제야 데니스 라이브 남작의 얼굴이 펴졌다.
하네스 크나우프 대공이 마력탄에 맞아 죽는다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은 말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마일로 워커 자작이 협곡을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신화를 만든 것은 인간이다. 히르헤라의 영웅이라고 지레 겁먹을 것 없다. 그도 몸에 마력탄이 박히면 죽는 인간이니까. ‘베일럼의 호랑이’라고 불리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도 맥없이 쓰러지지 않더냐.”
묵묵히 듣고 있던 기사들의 얼굴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맞다.
‘베일럼의 호랑이’가 그렇게 맥없이 무너질 줄은 몰랐다.
그러니 ‘히르헤라의 수호자’도 마력탄 앞에서는 무력할 것이다.
협곡 안쪽을 감시하던 기사가 나직이 말했다.
“누가 옵니다. 상인은 아닌 것 같고……. 백작의 기사들입니다.”
그의 말에 기사들은 즉시 허리를 숙였다.
마일로 워커 자작의 얼굴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갔다.
많은 정적들을 암살했지만 지금처럼 가슴이 조마조마하기는 처음이다.
기사들의 선두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엘리오였다.
정확히는 백작이 길 안내를 하고 엘리오가 그와 나란히 가고 있었다.
파비안과 네 명의 친위대가 그 뒤를 따랐다.
땅에서 일어나는 먼지 때문에 백작과 엘리오가 앞장선 것이다.
“테살로스 협곡을 빠져나가 하루만 더 가면 내 성에 도달하오.”
협곡 좌우를 살피던 엘리오가 무심코 말했다.
“매복 공격하기에 딱 좋은 장소네요.”
“하하. 잘 보셨소. 과거 테살로스 협곡에서 많은 제국군이 죽었소. 제국군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곳이 바로 이 테살로스 협곡이오.”
“그래 보이네요. 협곡에 도적도 있나요?”
“없을 거요. 딜라트의 치안대가 상인들을 위해 주기적으로 토벌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왜 매복이 있죠?”
엘리오의 말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반사적으로 말고삐를 당겼다.
히이잉―!
거친 투레질 소리와 함께 백작의 말이 멈춰 섰다.
그래도 엘리오는 무덤덤한 얼굴로 계속해서 전진했다.
멍하니 보던 백작은 다시 말을 몰아 엘리오 라고아 자작과 나란히 달렸다.
“매복이 있는데 그냥 가시려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의아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테살로스의 협곡은 매복 공격에 취약하다.
백작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행동을 만류하고 싶었다.
“똥이 있으면 치우고 가야죠. 무섭다고 안 갈 수 있나요.”
“하지만…….”
“백작님은 아직 몸도 성치 않으니 뒤로 가세요.”
“하아! 마음 같아서는 딜라트로 가서 병력을 모아 오고 싶은데……. 경이 돌아갈 것 같지 않으니 그냥 가겠소. 부디 조심하시오.”
뒤처진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파비안과 말 머리를 나란히 했다.
엘리오는 백작이 뒤로 물러나자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따그닥. 따그닥.
흙먼지를 일으키며 엘리오의 말이 정면으로 달려 나갔다.
긴장한 총사대 대장 발테르 스카르스 남작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검은 머리의 기사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상대는 최소한 소드 익스퍼트, 어쩌면 소드마스터일지도 모른다.
평범한 기사에게 스무 명이나 되는 마력 총사대가 동원될 리 없다.
‘그러고도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죽는다고 했지.’
그건 저 젊은 기사에게 스무 명의 마력총사대를 죽일 힘이 있다는 뜻이다.
그는 마력총으로 기사의 머리를 겨누었다.
보통 때는 헤드샷을 사용하지 않지만 오늘은 다르다.
반드시 죽여야 하는 상대라면 헤드샷을 써야 한다.
명중이 어렵다지만 자신은 헤드샷의 스페셜리스트였다.
그가 숨고르기에 들어가자 총사들도 일제히 목표물을 조준했다.
한참을 달려도 매복이 잠잠하자 엘리오는 말의 속도를 줄였다.
순간 우측 숲에서 ‘펑!’ 하고 마력탄 발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쐐액―! 퍽―!
엘리오의 관자놀이 한 치 앞에서 파란 불꽃이 튀었다.
호신강기와 충돌한 마력탄이 폭발한 것이다.
그것을 신호로 좌우편 숲에서 수십 개의 마력탄이 날아왔다.
퍼퍼퍼퍼퍽―!
파란 불꽃이 엘리오의 호신강기와 부딪쳐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그중 몇 개가 말의 몸통에 박혔다.
말이 구슬픈 소리와 함께 지면에 머리를 처박았다.
엘리오는 넘어지는 말등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허공으로 도약한 그에게 총사들이 다시 마력탄을 쏘아 댔다.
퍼퍼퍼펑―!
퍼펑―!
엘리오의 주변에서 파란 불꽃이 쉬지 않고 피어올랐다.
‘마력 총사대?’
마력석에만 의지하는 일반 총병들은 이렇게 빠른 연사를 하지 못한다.
빠른 연사가 가능한 것은 마나를 가진 마나 유저들뿐이다.
처음부터 평범한 도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마력 총사대는 심했다.
마력 총사대는 대귀족들만 가진 까닭이다.
즉, 저들은 최소한 백작가의 기사단이라는 소리였다.
문득 마일로 워커 자작과 스벤 하우저 자작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둘 중 하나와 관계된 것이리라.
‘당신들도 마구잡이로 쏘아 댔으니까……. 나를 원망하지 말라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엘리오가 테살로스 협곡 좌우편으로 천둔검을 휘둘렀다.
구천구검 사 식 현녀강우(玄女降雨)가 펼쳐졌다.
마력탄 크기의 진검강이 우박처럼 테살로스 협곡에 쏟아졌다.
퍼퍼퍼퍽―!
한여름 소나기처럼 수백 수천의 진검강이 테살로스 협곡을 휩쓸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