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38
1138회. 제가 볼 때는 성질입니다
기사단장 올라프 그리드 자작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치안대장의 말을 들을수록 어째 열두살짜리 수인 계집애보다 마법사들이 의심스러웠다.
‘설마 수인 테이머를 노린 마법사들의 수작에 놀아난 건가?’
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은 오라 블레이드로 오비도스 백작의 성을 파괴하면서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의 적이 되었다.
적의 적은 당연히 친구다.
비록 이 모든 사달이 마탑의 거짓말로 비롯된 것이라 해도, 마탑과 엘리오 라고아 자작 간에 싸움이 벌어지면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은 분명 마탑의 편을 들게 될 터였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힐난하듯 물었다.
“그러니까 자백도 하지 않은 어린 수인을 살인자로 만들었다는 거야?”
치안대장 마크 드웨인 남작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게 마법사들이 목격을 했다고 해서…….”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 이상한지 남작은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 마법사들은 당연히 타불라 마탑이겠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누구신지?”
치안대장은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기사의 정체가 궁금했던지 뒤늦게 물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다. 너보다 어린 사람에게 반말 들으니 기분 나쁘냐?”
“아, 아닙니다.”
“그러게 잘하지 그랬냐. 그랬으면 나를 만날 일도 없었잖아. 안 그래요? 기사단장님?”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갑자기 자신을 끌어들이자 올라프 그리드 자작은 당황한 와중에도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
“아직 마법사들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게 드러난 것은 아닙니다.”
기사단장이 교묘히 빠져나가자 엘리오의 말투가 바뀌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겠지. 당신은 마법사들이 시체를 태워 버렸다는 거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어? 시체에 늑대가 물어뜯은 자국이 없으니까 그런 거잖아. 그 정도도 머리가 안 돌아가면서 용케 기사단장을 하고 있네?”
“…….”
그 지적에는 기사단장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 정도 살인 사건이면 시체를 보존하는 게 정상인 까닭이다.
엘리오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백작님이 볼 때는 어때요? 내가 억측을 하고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일가족이 살해됐다면 시체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연합니다. 시체를 봐야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더구나 살인자가 말도 안 통하는 수인이라면, 더더욱 남겨 뒀어야 합니다. 누구라도 마법사들의 행동이 의심스럽다고 생각할 겁니다.”
엘리오가 기사단장과 치안대장을 향해 말했다.
“들었어? 마법사들의 행동이 의심스럽다고 말씀하시잖아. 제국 백작령 수준이 어째 왕국보다 못하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기사단장 올라프 그리드 자작은 듣지 못한 척 딴청을 부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엘리오는 ‘울컥!’했지만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정황상 오비도스 백작가와 치안대도 타불라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속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사단장의 말대로 아직 마법사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도 없었다.
엘리오는 들고 있던 서류를 접어서 품에 넣고 밖으로 나갔다.
기사단장과 치안대장은 감히 돌려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넓게 뚫린 길을 터덜터덜 걷던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뭘 어떻게 해?”
심기가 불편한지 엘리오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파비안이 그의 안색을 힐끔 살핀 후에 지나가듯 말했다.
“뭔가 하려고 에밀리의 서류를 챙기신 것 같아서요.”
“타불라 마탑에 가서 목격자들을 만나 봐야지.”
“2년 전의 일이고, 증거도 없는데……. 다른 말을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마탑에서 마법사들을 고문할 수도 없고…….”
“진실을 토하게 할 방법이 고문밖에 없는 줄 알아?”
“또 뭐가 있습니까?”
“있어.”
엘리오는 마법사들에게 언법(言法)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말로 하는 것뿐인 언법이라면 탑주도 반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치안대에서 나온 엘리오 일행은 성문까지 쉬지 않고 이동했다.
성문을 앞에 두고 머뭇거리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기어코 물었다.
“라고아 경, 마차를 구하지 않고 그냥 나가도 되겠습니까? 돈이라면 저에게 있습니다만.”
“마차 없어도 돼요.”
“아, 그렇습니까? 탑주들의 모임에 늦지 않으려면 마차가 필요할 것 같은데…….”
“더 빠른 게 있어요.”
“성 밖에 말이라도 준비해 두셨습니까?”
“말보다 빨라요.”
“그런 게 있습니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눈을 끔벅였다.
‘설마 비공정(飛空艇)은 아니겠지.’
비공정은 그 자체로도 비싸지만, 유지비가 어마어마하게 든다.
그래서 어지간한 왕국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에스카토스 왕가도 비공정을 운용하느라 헐벗고 지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제국의 공작이나 되면 모를까?
북방 영주인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비공정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때 파비안이 실실 웃으며 끼어들었다.
“비공정보다 더 좋은 겁니다. 곧 보게 되실 겁니다.”
“비공정보다 더 좋은 게 있나?”
“일단 자작님의 것은 유지비가 안 들어갑니다. 그것만 해도 굉장하지요.”
“유지비가 안 들어가는 비공정이라……. 아니, 비공정은 맞는 건가?”
“비공정은 아닙니다.”
“그렇군.”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얼굴에 허탈한 미소가 떠올랐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비공정은 아니란다.
비공정이 아니라는 소리에 백작은 약간의 기대를 털어 버렸다.
세 사람은 경비병들에게 어떤 제지도 받지 않고 성문을 빠져나갔다.
성 밖은 번화하던 성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집 한 채 보이지 않았다.
빽빽한 잡목림 사이로 넓게 뚫린 길이 전부였다.
엘리오 일행은 숲길을 한참 걸어 들어갔다.
마침내 성벽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되자 엘리오가 멈춰 섰다.
“파비안, 몇 시쯤 됐냐?”
“서너 시쯤 된 것 같습니다.”
그러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정확한 시간을 불러 주었다.
“3시 30분입니다.”
“해가 지려면 아직 한참 남았네요? 슬슬 속도를 올려야겠죠?”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말에 백작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뛰어가려는 것은 아닐 테고, 왜 저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엘리오는 길에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 운종술의 주문을 외웠다.
엘리오를 중심으로 하얀 구름이 모여들었다.
“헉! 이, 이건 마법입니까?”
구름으로 한걸음 내딛는 엘리오와 달리 백작은 뒷걸음질 쳤다.
경험자인 파비안이 구름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토르누비스’라고 구름을 쫓아가는[雲從術] 마법이랍니다.”
“아아! 역시 마검사셨군요.”
뒤늦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구름 위로 조심스럽게 올라섰다.
분명히 구름을 밟았건만 발이 땅바닥에 닿지 않았다.
이윽고 세 사람을 태운 구름이 수직으로 솟아올랐다.
“으아아아아―!”
평소 근엄하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란 백작은 본능적으로 파비안 남작의 팔을 붙잡았다가 슬며시 놓았다.
***
제도 페트로폴리스 북구.
페르모사 에스텔라.
해거름 무렵, 세 명의 기사가 페르모사 에스텔라로 들어섰다.
엘리오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 그리고 파비안이다.
세 사람을 알아본 관리인이 환하게 웃으며 마중을 나갔다.
“오랜만에 다시 오셨군요. 칠 일 전에 사용하시던 방을 다시 내어 드릴까요? 아니면 다른 방을 사용하시겠습니까?”
파비안이 일행을 대신해 답했다.
“전에 쓰던 방을 사용하겠소.”
“알겠습니다.”
부리나케 계산대로 돌아간 관리인이 열쇠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아참! 사흘 전에 타불라 마탑에서 자작님을 찾아왔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조만간 다시 오실 거라고 하자, 이렇게 편지를 주고 갔습니다.”
말과 함께 관리인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편지를 건넸다.
그리고 세 사람에게 열쇠를 나누어 주고 돌아갔다.
열쇠를 챙긴 엘리오 일행은 식당으로 향했다.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여행 중의 부실한 식사로 허기가 졌기 때문이다.
요리를 주문하자마자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물었다.
“날짜가 정해졌답니까?”
“어, 모레 정오에 디오니시 마탑에서 열린단다.”
“디오니시는 또 어디랍니까?”
“북구 어딘가에 있겠지. 북구 마탑의 모임이라니까.”
“모레라…… 마차를 탔으면 하루가 지난 뒤에 도착했겠네요.”
“타불라 마탑에서 워낙 좋은 정보를 받아서 큰 기대는 안 한다.”
“그래도 뭔가 소득은 있을 겁니다. 오랫동안 마탑들이 연구를 했다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고 타불라 마탑은 언제쯤 방문하실 겁니까?”
“오늘.”
“예에? 지금 막 제도에 도착했는데요? 좀 쉬셔야지요.”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가만히 있으면 막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루 정도는 쉬었다가 가십쇼.”
“요즘 내가 잠을 통 못 잔다고. 또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싶지는 않아.”
“성질을 좀 죽이십쇼.”
“인마, 이런 건 성질이 아니라 ‘거룩한 분노’라고 하는 거야.”
“제가 볼 때는 성질입니다. 자작님은 진득하니 기다리는 걸 못 합니다.”
“왜 기다려야 되는데?”
“피곤하니까요. 사흘 내내 토르누비스 마법을 사용하셨잖습니까? 하루 정도는 푹 쉬셔도 누가 뭐라고 안 합니다.”
“화가 나서 잠이 안 온다니까!”
“그러니까 성질을 죽이시라는 겁니다.”
“거룩한 분노라고!”
두 사람의 대화가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끼어들었다.
“남작, 그만하게. 라고아 경이 알아서 잘 하실 걸세.”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구름을 탄 이후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맹신자가 되었다.
그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타불라 마탑에 간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았다.
소드마스터를 뛰어넘는 검술에 하늘을 비행하는 마법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를 위태롭게 할 만한 인간은 없었다.
요리가 나오자 대화는 흐지부지 끝이 났다.
엘리오 일행이 요리를 절반쯤 먹었을 무렵, 은은한 하프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덧 바르도스의 연주 시간이 된 것이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엘리오는 물어뜯던 돼지 뼈를 내려놓았다.
어느새 주변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도 음식에서 손을 떼고 편안하게 앉았다.
연주를 듣던 파비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허! 신기하다. 배가 부르니까 비파 소리가 귀에 들리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입가에 묻은 돼지기름을 닦으며 화답했다.
“본래 예술이 그런 것이네. 배부르고 등 따뜻해야 즐길 수 있지.”
때마침 하프를 연주하던 아리에트 알바노가 빙그레 웃자, 파비안이 호들갑을 떨었다.
“엇! 지금 바르도스가 저를 보고 웃는 거 보셨습니까?”
“너를 보고 웃은 게 아니라 그냥 웃는 거야. 찡그리면서 연주하면 보기 흉하니까.”
엘리오가 부정하자 파비안이 억울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진짜 저랑 눈이 마주쳤다니까요! 제가 이런 일로 거짓말하는 거 보셨습니까?”
“어, 많이 봤어. 너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잖아.”
“제가요? 언제요?”
“너 행정국에 가서도 거짓말했잖아. 내 친우가 오비도스 백작령으로 갔다고.”
“그건 정보를 얻어내기 위한 기술입니다.”
“어쨌든 거짓말.”
“이번에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래서, 장래를 약속한 세라 경을 두고 연애라도 하시게?”
“누, 누가 연애를 하겠다고 했습니까? 그냥 저 미녀 바르도스가 저에게 추파를 던졌다는 사실을 말한 겁니다.”
“그만하자. 바르도스가 이쪽으로 온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말에 파비안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정말 미녀 바르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