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37
1137회. 개가 짖는다고 사자가 물러나는 걸 본 적이 있나?
제국의 대귀족들은 왕국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사실 ‘뒷감당’ 운운한 것은 상대를 희롱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제국의 대귀족인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의 입장에서 볼 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방문 목적은 선을 넘는 행위였다.
고작 북방 왕국의 백작이, ‘제국 백작의 영지에서 불법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조사를 요청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그것도 수인 계집애 하나가 한 말을 믿고서 말이지.’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빤히 보았다.
그는 당연히 북방 영주가 당황해 어쩔 줄 모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상대는 딱히 놀란 것 같지 않았다.
도리어 추궁하듯 묻기까지 했다.
“마탑과 짜고 벌인 일입니까?”
너무도 직설적인 질문에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은 말문이 막혔다.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이 머뭇거리자 그와 함께 있던 기사단장이 으르렁거렸다.
“말조심하시오! 귀하가 서 있는 곳은 베일럼 왕국이 아니라 제국의 오비도스 백작가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중년을 넘긴 기사를 힐끔 보았다.
분위기가 딱 백작과 함께 다니는 기사단장이다.
작위는 높아 봐야 자작일 텐데 백작에게 하오체를 사용한다?
제국의 분위기를 알기에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조금 불쾌했다.
소드마스터에 근접한 한 사람의 기사로, 자신보다 한참 아래의 기사가 입을 함부로 놀리니 불편한 것이다.
‘쯧! 나도 아직 멀었군.’
그는 불필요한 감정을 털어 내고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거 내가 한 방 맞았군. 북방의 귀족들이 거칠고 무례하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당해 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어. 지금 나에게 마탑과 짰냐고 했소? 그런 일은 없소. 마탑과 죄수 양도의 계약을 체결하고 마력총 세 자루를 받은 게 전부요. 이 정도면 답이 되었소?”
“그러시다면 에밀리 양의 사건 기록에 대한 열람을 허가하여 주십시오. 아울러 치안대 담당자와도 만날 수 있게…….”
“불가하오.”
“왜입니까?”
“백작은 수인족의 말을 믿나 본데, 나는 수인족보다 마탑을 더 믿소. 수인족, 그것도 범죄자의 말 한마디에 치안대와 마탑을 조사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고.”
“만약 서류가 조작된 것이라면 수인은 범죄자가 아니라 범죄의 피해자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수인보다 치안대와 마탑을 더 믿소. 그만 돌아가시오. 백작이 나에게 저지른 결례를 문제 삼지는 않겠소.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자비를 베풀었다고 생각하오. 올라프? 손님들을 배웅해 드리게.”
“예.”
백작의 지시에 올라프 그리드 기사단장은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홀 벽 쪽에 서 있던 열 명의 기사들이 천천히 중앙으로 이동했다.
올라프 그리드 기사단장도 성큼성큼 라르바 오마르 백작 앞으로 다가갔다.
오비도스 백작가는 오십 년 전 제국전쟁에서 이름을 떨친 바 있다.
당연히 기사들의 수준도 상당했다.
오비도스 백작가의 아이언 기사단은 포메른부르크 공국에서도 손가락 안에 드는 무력을 가졌다.
기사단장과 열 명의 기사들이 발산하는 투기에 중앙 홀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소드 비기너인 파비안은 가공할 압박이 전신을 조여 오자 급히 작은 하늘 회로(small heavenly circuit, 小周天)를 돌렸다.
그제야 숨통이 트이며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소드마스터에 근접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파비안처럼 허둥대지 않았다.
그는 탑처럼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켰다.
아직 소드 익스퍼트인 그에게 기사단장과 열 명의 기사는 대적하기 어려운 상대지만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믿고 버티는 것이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 앞에 선 기사단장 올라프 그리드 자작이 강압적으로 말했다.
“백작님? 그만 나가 주셔야겠습니다.”
“개가 짖는다고 사자가 물러나는 걸 본 적이 있나?”
“늑대도 무리를 지으면 사자를 사냥할 수 있습니다. 좋게 말할 때 물러나십쇼.”
하수들이나 도발에 쉽게 넘어간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인 올라프 그리드 자작은 ‘개’를 ‘늑대’로 유연하게 받아쳤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피식 웃었다.
“자네는 늑대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뒤에 계신 분은 사자가 아니라, 전신(戰神)이라네.”
순간 올라프 그리드 자작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등 뒤를 힐끔 보았다.
‘설마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라는 청년을 두고 하는 말인가?’
하지만 어머니 배 속에서 마나의 축복을 받았어도 나이를 생각하면 전신은 무리다.
하물며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마나가 아닌 영기였다.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옵니까? 전신은 영기 수련자에게 가져다 붙일 칭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기사단장의 조롱에 엘리오가 기지개를 켜며 나섰다.
“으아아아! 지친다 지쳐. 백작님, 뒤로 좀 빠져 봐요.”
“예.”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군말 없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뒤로 물러났다.
순간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은 물론 기사단장인 올라프 그리드 자작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왕국의 백작이 북방 영주인 자작의 지시에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오가 기사단장을 보며 말했다.
“내가 야인 부족 출신이라 영기를 익혔습니다. 불만 있습니까?”
야인 부족 출신이라는 말에 올라프 그리드 기사단장이 눈을 찌푸렸다.
대륙에서 야인을 가장 천대하는 게 제국인 까닭이다.
“나는 그대가 영기를 익힌 것에 관심이 없다. 알량한 재주로 작위를 받았나 본데, 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말로 할 때 물러가라.”
“물러가지 않으면 어쩔 건데요? 강제로 나를 내보낼 수 있겠어요?”
엘리오의 도발에 넘어간 기사단장이 검을 뽑아 들었다.
“나는 이미 몇 차례 경고했다! 제국 영주의 떠나라는 명령에 불복했으니 너를 체포하고, 베일럼의 왕에게 그 책임을 묻겠다!”
“나는 에스카토스 왕국에서 작위를 받았는데?”
“그렇다면 에스카토스의 왕이 책임을 져야겠지.”
“그러시든가. 그런데 나는 누구에게 당신들의 잘못을 따져 물어야 하지?”
“흥! 연줄이 있다면 포메른부르크 공작 전하께 청원을 넣도록 해라. 그럴 기회도 없겠지만. 검을 뽑아라.”
그래도 기사라고 올라프 그리드 자작은 상대에게 칼 뽑을 기회를 주었다.
엘리오가 천천히 검을 뽑았다.
“미리 말해 두는데 나는 칼을 뽑으면 그냥은 안 집어넣어. 뭐라도 잘라야 돼. 뭘 잘라야 잘 잘랐다고 소문이 나려나.”
말과 함께 엘리오가 검 끝에 영기를 밀어 넣었다.
우우웅―!
검 끝에서 오라 블레이드가 뻗어 나갔다.
엘리오가 장난하듯 가볍게 검을 한차례 휘둘렀다.
쓔아악―!
뻗어 나간 오라 블레이드에 중앙 홀 뒷벽이 쩍 하고 갈라졌다.
곧이어 갈라진 틈새로 벽돌이 무너지며 성이 가볍게 흔들렸다.
콰르르르―!
오라 블레이드의 위력을 본 기사단장 올라프 그리드 자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저건 누가 봐도 소드마스터의 힘이다.
싸움이 벌어지면 소드 익스퍼트 중급과 열 명의 기사는 일격에 참살될 터였다.
그는 황급히 자신의 주군인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을 돌아보았다.
“백작님?”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도 놀랐지만 빠르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신은 비록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지만 포메른부르크 공국에도 소드마스터가 둘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과 에스카토스 왕국 간의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면, 멈추시오!”
그러나 엘리오는 그 말을 듣고 한 번 더 오라 블레이드를 날렸다.
동쪽 벽이 쩍 갈라졌고, 이번에는 더 요란하게 성이 흔들렸다.
콰르르릉! 콰르르―!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과 아이언 기사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성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자 파비안도 안절부절못했다.
“자작님. 진정하시죠! 이러다가 다 죽습니다!”
“죽긴 누가 죽는다고 그래? 엄살은.”
말과 달리 조금 신경이 쓰였는지 엘리오는 영기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책임은 나중에 각각 묻기로 하고, 어떻게? 협조해 줄 마음이 좀 들어요? 또 치안대를 믿느니, 마탑을 믿느니 그러면…… 성을 무너뜨릴 거야. 두 번만 더 휘두르면 무너질 것 같은데.”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은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파르마 포메른부르크 공왕과 그의 기사단장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회답이 올 때까지 열흘은 걸리기 때문이다.
“기사단장이 치안대로 안내해 줄 것이오. 올라프 그리드 자작, 손님들을 안내하고 치안대에도 협조하라 이르게.”
“예!”
납검을 하는 올라프 그리드 기사단장은 죽다가 살아난 얼굴이었다.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만하면 됐소? 더 바라는 게 없다면 이만 가 줬으면 하는데.”
“없어요. 그러게 진즉에 협조적으로 나왔으면 좋았잖아요. 다른 사람 돕겠다고 멀리서 없는 시간 쪼개서 온 건데.”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은 대꾸하지 않고 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공왕 전하나 기사단장님이 도착하실 때면 이미 떠났을 테고……. 결국 타불라 마탑으로 찾아가야 하나.’
타불라 마탑이 이번 사달의 원인을 제공해서 찜찜하지만 그래도 그게 최선이었다.
자존심에 상처 입은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이 복수를 계획할 때 엘리오 일행은 기사단장과 함께 중앙 홀을 떠났다.
***
오비도스 백작령.
치안대.
올라프 그리드 기사단장의 예고 없는 방문에 치안대 대장 마크 드웨인 남작이 허겁지겁 마중을 나왔다.
“기사단장님,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지금까지 치안대에서 마탑에 보낸 죄수가 몇이나 되나?”
“2년 전에 한 명 보낸 게 전부입니다.”
“손님들이 그 죄수에 대한 기록을 열람하기를 원하신다. 가지고 와라.”
“예.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마크 드웨인 남작이 기사단장 일행을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엘리오 일행과 기사단장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올라프 그리드 자작은 어색한 듯 연신 시선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마크 드웨인 남작이 서류 몇 장을 들고 돌아왔다.
“여기 있습니다.”
그는 일단 서류를 기사단장에게 넘겼다.
기사단장은 죄수 이름을 확인한 후에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건넸다.
“에밀리 맞습니까?”
“맞아요.”
서류를 받아 읽던 엘리오가 치안대 대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쪽은 이름이?”
“마크 드웨인 남작입니다.”
“남작, 에밀리를 체포한 사람이 치안대가 아니라 마법사들이네?”
“지나던 길에 살인을 목격하고, 죄인을 체포해 치안대에 넘긴 것입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묻혔을 겁니다.”
“그러니까 우연히 지나던 길에 열두 살짜리 소녀가 살인하는 걸 목격해서 체포했다? 살해당했다는 숲지기 가족은 마법사들이 화장을 했고?”
“예.”
“열두 살짜리 여자애가 숲지기 가족을 살해했다고?”
“마법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어린 수인(獸人)이 늑대를 부려 물어 죽였다고 합니다. 시체만 봤으면 동물에게 물려 죽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어차피 시체는 못 봤을 테고. 마법사들이 화장을 했으니까.”
“그렇습니다.”
“재판 절차는 거친 거야?”
“목격자의 신분이 확실하고…… 범인이 수인이라…… 재판은 하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즉결 처형시키는데 마법사들이 원해서 넘겨준 겁니다.”
“수인이 자기가 죽였다고 자백했어?”
“그건…… 대륙 공용어를 모르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해서……. 그래도 마법사들이 목격했으니 확실하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