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65
1165회. 천공성을 못 찾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파가누스 백작은 자신이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음을 알았다.
편안해 보이는 상대와 달리 자신은 죽을 맛이었기 때문이다.
채앵―!
그는 다시 한번 힘껏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마법검을 튕겨 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명색이 마검사인데 지금은 마법 주문을 외울 시간도 없었다.
정신을 집중해 볼라치면 어느새 지랄맞은 마법검이 지척에 와 있다.
어찌나 튼튼한지 마나 블레이드로 작정하고 때려도 박살이 나지 않는 마법검은 다른 걸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끌려다니다가는 검에 꿰뚫리고 말 것이다.
‘방법을 생각해라. 방법을.’
파가누스 백작은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 괴랄한 마법검을 상대하다 마나가 고갈될 것 같아서다.
마검사인 그는 ―오마르 백작과 달리― 영기를 이용한 엘리오의 이기어검을 마법에 의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의 안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종합적으로 판단할 겨를이 없어 생긴 일이다.
그는 대륙 제일의 마검사답게 마법으로 반전의 계기를 만들려 했다.
채앵―!
‘바인드(Bind)로 잠시 묶어 둘 수 있을까?’
고민은 짧았다.
그는 바인드가 고급 마법 주문(4서클 이상)을 영창 할 동안 버텨 주기만 바랐다.
채앵―!
파가누스 백작은 마법검을 튕겨 내자마자 바인드를 펼쳤다.
맹렬하게 되돌아오던 마법검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바인드 마법의 구속력과 마법검이 가진 힘의 대결이 시작됐다.
그그극―!
그 순간 파가누스 백작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것 한 방을 준비했다.
그는 속으로 무려 6서클 마법이자 자신이 발전시킨 고유 마법 스타팀 프로즌(Statim Frozen)의 주문을 암송했다.
마법사로서는 5서클이지만 소드마스터의 힘으로 한계를 돌파한 것이다.
주문의 완성과 함께 그는 검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가리켰다.
츠츠츠―.
엘리오를 중심으로 하얀 서리가 몰아치더니 이내 그 주위가 얼어붙었다.
제대로 마법이 걸린 것이다.
바인드 마법과 힘겨루기를 하던 천둔검이 낙엽처럼 땅으로 떨어졌다.
파가누스 백작은 그것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블링크로 자작에게 이동했다.
스타팀 프로즌에서 블링크까지 망설임 없이 한순간 일어난 일이다.
파가누스 백작은 홍염의 마법 주문을 외우며 롱소드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화르륵―!
그의 롱소드가 검붉은 화염에 휩싸였다.
얼어붙은 북부의 기사에게 검이 없으니, 이제 파가누스 백작이 내려찍기만 하면 싸움은 끝날 터였다.
아라곤의 기사와 병사 들 얼굴에 환희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 얼어붙은 북부 기사의 머리 위로 붉은 검의 형상이 솟구쳐 올랐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검이었다.
콰직―!
붉은 검은 홍염의 검을 부수고 하늘 끝까지 날아올라 사라졌다.
무슨 조화인지 홍염의 검이 깨질 때 나오던 불꽃들조차 재가 되어 흩날렸다.
신맥에 잠들어 있던 구천검령이 깨어나면서 얼었던 엘리오의 몸도 녹았다.
엘리오는 한차례 눈을 끔뻑이더니 검결지를 안으로 오므렸다.
통제력을 잃고 땅에 떨어졌던 천둔검이 다시 날아올랐다.
쉬익―!
천둔검의 검극이 파가누스 백작의 길고 부드러운 목선에 닿았다.
마나를 한계치 이상으로 쏟아 낸 파가누스 백작은 눈을 감았다.
마법이 깨지고, 검마저 박살 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위가 조용해졌다.
아라곤의 기사와 병사 들은 숨도 쉬지 않고 북부 기사의 검에 주목했다.
잠시 생각하던 엘리오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파가누스 백작의 목에 닿았던 천둔검이 반원을 그리며 엘리오에게 돌아갔다.
아라곤의 기사와 병사 들은 그제야 ‘푸하!’ 하고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정작 파가누스 백작은 담담한데 아라곤의 기사와 병사 들이 숨을 헐떡였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파가누스 백작이 눈을 떴다.
“왜 손을 쓰지 않는 것이오?”
“변덕이라고 생각해요. 신도 죄인을 그때그때 심판하지는 않잖아요.”
실로 오묘한 말에 파가누스 백작은 한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고 많은 이유 중에 변덕이라니.
신이 악인을 바로 심판하지 않는 것에 빗대 말하니 의미가 명확하게 와 닿았다.
그건 정치적인 의도 없이, 정말 그냥 살려 줬다는 소리였다.
상당히 모욕적인 말이지만, 상대가 너무 강하다 보니 그런가 보다 싶다.
“감사하오. 가이어 남작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서는 그를 대신해 사죄하겠소.”
“그 사과 받아 주죠.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우리는 테러와 관계가 없어요. 그러니까 엄한 죄 뒤집어씌우지 말고, 다음부터는 그냥 들이대라고 해요. 테러 어쩌고 하지 않아도 싸워 드릴게. 그런데 다음에도 내가 변덕을 부린다는 보장은 없어요. 피바다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소리예요.”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오. 귀하의 일행이 테러와 무관하다는 것을 내가 보증할 테니. 그래도 되겠지요?”
말과 함께 파가누스 백작이 에우로스 아크레온 백작을 보았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불과한 아크레온 백작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관되지 않은 증거도 없지만 이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파가누스 백작이 계속해서 말했다.
“귀하의 일행이 로렌 공국으로 간다고 들었는데, 맞소?”
“맞아요.”
그러자 파가누스 공작은 돌연 자신의 목에 걸고 있던 용이 장식된 고풍스러운 은제 펜던트를 풀어 앞으로 내밀었다.
“뭡니까?”
“황제 폐하께서 파가누스 백작가에 내리신 ‘불패의 징표’요. 국경 검문소에 보여 주면 신분 확인이나 조사 없이 통과시켜 줄 게요.”
“가보 같은데 남에게 줘도 돼요?”
“가보이긴 하나 ‘불패의 징표’를 내가 어찌 가지고 다닐 수 있겠소.”
농담인 듯 농담 아닌 파가누스 백작의 말에 엘리오는 펜던트를 받았다.
국경 검문소나 영지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신분을 증명하고, 목적을 설명하는 데 지친 탓이다.
자신과 오마르 백작은 덜했지만 파비안의 작위 증명서는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훗날 대수림에 가야 할 걸 생각하면 파가누스 백작의 펜던트를 받아 두는 게 나았다.
그때 가서 누더기가 된 신분 증명서를 재발급 받기 위해 에스카토스 왕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풀려난 마부 하비가 압류당한 사두마차를 끌고 오자, 엘리오 일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치안대를 떠났다.
멀어져 가는 사두마차를 보던 아크레온의 영주, 에우로스 아크레온 백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북부의 기사들이 테러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관계되었다는 증거도 없지만, 아니라는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그가 증거라고요?”
“나는 지금까지 강자가 저지르는 테러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아…….”
뒤늦게 아크레온 백작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검술 경지라면 굳이 테러가 아니더라도 아크레온 영지를 무너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
달리는 마차 안.
아크레온의 치안대를 벗어나자마자 파비안이 물었다.
“자작님, 그 마지막의 수법은 검술입니까? 마법입니까?”
그러자 엘리오가 흥미롭다는 눈으로 파비안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번갈아 보았다.
“백작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플라잉 소드(이기어검)가 검술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그 붉은 자이언트 소드의 정체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실체 같기도 하고 허상 같기도 하고…….”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검술과 마법이 뒤섞였다면 그런 모습일까?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파비안이 대답을 재촉했다.
“백작님도 모르신답니다. 그 붉은 검의 정체는 뭡니까?”
“마법에 가까워.”
“마법이면 마법이고 아니면 아니지, 가까운 건 또 뭡니까?”
“있다 그런 거.”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리자 파비안은 더 캐묻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다.
해거름 무렵, 엘리오 일행을 태운 사두마차는 쉬지 않고 달려 아크레온 영지와 크레토스 영지의 접경에 도착했다.
크레토스 영지 검문소에 도착한 엘리오 일행은 파가누스 백작이 준 펜던트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었다.
검문소 경비병들은 파비안이 펜던트를 제시하자 어디의 누구냐 따위의 기본적인 질문조차 하지 않고 통과시켰다.
아라곤 공국을 지날 때까지 엘리오 일행은 단 한 번도 작위 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펜던트의 힘은 아라곤 공국을 지나서도 여전했다.
아라무트, 샤르돔, 타우로스 공국까지 수십 개의 검문소를 그렇게 지났다.
그리고 사십여 일 후.
마침내 엘리오 일행의 마차는 로렌 공국 검문소를 통과했다.
창밖으로 지는 노을을 보던 엘리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아, 질린다. 이제 도착인가.”
“벌써 질린다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천공성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천공성.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하다.”
그러자 파비안이 은근한 어조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불렀다.
“자작님.”
“왜?”
“만약에 말입니다. 천공성을 못 찾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
엘리오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가 이세계에 온 것은 천자마(카마 데비아스)와 금사(우샤스 운드라)를 죽이기 위해서다.
천자마는 천공성, 금사는 어비스에 있다.
그런데 천공성을 찾지 못한다면?
“안 돼. 무조건 찾아야 돼.”
“현실적으로도 생각하셔야죠. 지난 수천 년간 아무도 천공성을 찾지 못했잖습니까?”
“난 찾을 거야.”
“못 찾으면요?”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내가 천공성 찾기를 바라는 게 좋을 거야.”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천공성을 못 찾으면 나는 미쳐 버릴지도 몰라. 코디악에서 내가 어땠는지 생각해 봐. 그런 사람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냐?”
순간 파비안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농담 삼아 가볍게 시작한 대화였는데 끝이 너무 소름 끼쳤다.
문득 생각해 보니 전혀 가능성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은 오직 그 목적으로 이 세계를 찾아왔다.
그 과정에서 어둠의 에테르를 먹고, 잠깐이지만 코디악에서 악신(惡神)에 버금가는 난폭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런 모습으로 대륙에서 살아간다?
그건 악신의 강림이다.
세상에서 유일한 그랜드 마스터가 미쳤다고 생각해 보라.
“어이쿠!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 하지 마십쇼. 무섭습니다.”
“농담 같냐?”
엘리오가 정색을 했다.
천공성을 찾지 못하면 자신은 지금보다 더 망가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파비안은 아니라 말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진심이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야인 부족과 함께 가족이 몰살당했다는 오해를 받고 있지만, 천공성을 찾지 못하면 가족과 영영 이별하게 된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그런 삶을 견딜 수 있을까?
가족들 곁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싸움터를 전전한 그는 진짜 미칠지도 모른다.
거기에 어둠의 에테르까지 먹었으니 미쳐도 크게 미칠 게다.
부르르 몸을 떨던 파비안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말했다.
“백작님, 천공성 꼭 찾아야 됩니다.”
“그러려고 오지 않았나.”
“찾을 때까지 베일럼은 잊으셔야 합니다. 저는 로렌 공국에 뼈를 묻을 각오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건 좀…… 베일럼을 오가면서 찾아도 되지 않나?”
“안 됩니다. 그러다가 역사의 죄인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