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66
1166회. 천공성을 찾으러 왔다는 겁니까?
로렌 공국에 진입했다고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고대시에 나온 아우로라이는 로렌 공국 동쪽 끝의 해안 지대 피에스트라.
내륙의 국경에서 바닷가까지 닷새를 더 여행한 후에야 엘리오 일행은 목적지인 피에스트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로렌 공국이 세로로 길게 늘어진 형태라 닷새지, 다른 공국들 같았으면 못해도 열흘은 걸렸을 것이다.
로렌 공국.
벨라누스 백작 영지 피에스트라.
이른 아침.
해안가 바위로 끊임 없이 파도가 밀려와 철썩! 철썩! 부딪쳤다.
그 바위 위에 세 남자가 마치 등대처럼 바다를 향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 라르바 오마르 백작, 그리고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이다.
한참 동안 수평선을 바라보던 엘리오가 파비안에게 말했다.
“파비안, 계획 좀 세워 봐.”
“예? 어떤 계획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여기서 노숙을 하느냐? 아니면 도시로 가서 여관을 잡느냐? 뭐 그런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천공성을 찾으러 셋이 몰려다닐 필요는 없잖아. 세 사람이 따로 움직이면 찾는 것도 세 배쯤 빨라질 테고.”
“따로 다니자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어떤가 싶어서. 왜? 같이 다니는 게 나을 것 같아?”
“그건 아닙니다. 자작님 말씀처럼 흩어져서 찾는 게 더 빠릅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워 보라고. 너 히르헤라에 있을 때 부대 운영 계획 많이 짜 봤잖아.”
파비안은 엘리오의 참모로 있으면서 그를 대신해 부대 운영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엘리오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그에게 계획을 세워 보라고 한 것이었다.
“아…… 이건 어떻습니까? 자작님은 이곳을 기준으로 북쪽 바다를, 그리고 백작님은 남쪽 바다를 조사하시는 겁니다. 그동안 저는 뭍에서 천공성의 정보를 수집하고, 거점을 확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백작님은 어떠세요?”
“저도 괜찮습니다. 즉석에서 나온 계획치고 탄탄해 보이네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파비안 남작을 보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 이상 가는 계획은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았다.
‘천재라고 하기에 농담인 줄 알았더니 제법 머리를 쓸 줄 아는군.’
대화 중에 즉석에서 저만한 계획을 세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역할 분담을 마친 세 사람은 오후 6시에 항구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흩어졌다.
***
피에스트라 중부.
벨라누스 백작가.
정오 무렵, 전마를 타고 달려온 젊은 기사 하나가 내성 입구에서 멈춰 섰다.
이윽고 말에서 내린 기사가 경비병들에게 다가갔다.
“나는 서부 검문소의 책임자인 견습기사 갬블이다. 셀레스 남작님을 뵈러 왔다.”
경비병들은 갬블의 얼굴을 보고는 즉시 옆으로 비켜섰다.
안으로 들어간 갬블은 곧바로 집사인 카델 셀레스 남작을 찾아갔다.
“서부 검문소에서 왔다고?”
벨라누스 백작가 집사인 셀레스 남작이 의아한 눈으로 견습기사 갬블을 보았다.
서부 검문소의 견습기사가 내성에 찾아올 만한 일이 떠오르지 않아서다.
제국과 남부 왕국 간 전쟁이 발발했지만 로렌 왕국은 거리가 멀어 휘말릴 일도 없었다.
남부 접경지로 1개 군단을 파병하지만 피에스트라는 그마저도 먼 이야기였다.
영지가 작기도 하지만 항구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제외된 까닭이다.
물론 적의 군함이 정박하지도 못할 정도로 작은 항구지만, 윗분들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는 건 비밀이다.
“오늘 아침에 북부의 귀족들이 서부 검문소를 통과했습니다.”
“북부의 귀족들?”
“예, 백작과 자작, 남작이었습니다.”
“백작이 외유 중인가 보군. 그런데?”
셀레스 남작이 갬블을 응시했다.
방문자가 제국의 백작이라면 모를까?
고작 북부 귀족 셋을 두고 호들갑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검문소에서 신분 증명을 요구했더니 파가누스 백작가의 ‘불패의 징표’를 꺼내 보여 줬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아라곤 공국의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에게 준 펜던트?”
“그렇습니다.”
“파가누스 백작이 동행했더냐?”
“그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마차에 탄 사람은 그 셋이 전부였습니다.”
“펜던트의 진위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겠군.”
“예. 실물을 본 사람이 없으니까요.”
‘불멸의 징표’는 제국 연감에 등록된 만큼 생김새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물을 본 사람은 극히 드물어 진위 여부를 가리는 건 쉽지 않았다.
물론 감히 제국에서 가짜 ‘불멸의 징표’를 사용할 정신 나간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로 갔나?”
“하데스로 간다고 했습니다.”
순간 셀레스 남작은 얼굴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이 시기에 하데스라니?
하데스에는 피에스트라 유일의 항구가 있다.
명목상이지만 징집에서도 빠질 정도로 하데스 항은 중요한 곳이었다.
“수고했다. 알아서 조치할 테니 돌아가 보도록.”
“예!”
견습기사 갬블은 셀레스 남작에게 묵례를 올리고 돌아서 나갔다.
고민하던 셀레스 남작은 벨라누스 백작을 찾아가기에 앞서 기사단장 카밀로 쿠스만 자작과 만났다.
보리스 기사단.
셀레스 남작은 기사단장에게 갬블의 이야기를 전하고 조언을 구했다.
“……이런 시기에 하데스로 갔다니 그 저의가 의심스러워서요. 물론 하데스의 항구에 전함이 정박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니까요. 자작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교롭기는 하군. 올 한 해 왕국 귀족들의 방문이 있었나?”
“한 건도 없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왕국 귀족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하데스 항은 중부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로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하지만 제국의 항구라 왕국 귀족들의 발걸음은 뜸한 편이었다.
“흐음! 일단 기사단에 그들의 방문 목적을 알아 보라고 하겠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영주님께도 말씀을 올려야 할까요?
“북부 대귀족이 출현했으니 말씀은 드려야 할 걸세. 기사단에서 조사 중에 있다고 하고,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면 내가 직접 영주님을 찾아뵙겠다고 하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잠시 후 셀레스 남작이 돌아가자 기사단장은 기사들을 선별해 하데스로 보냈다.
***
항구 도시 하데스.
파비안은 하데스에 거처를 마련한 뒤,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중부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 도시답게 천공성에 대한 괴담이 많았다.
“바다로 나간 마법사와 기사 들 중에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반도 안 된다. 그들은 바다에 홀려 서로를 죽였고, 살아 돌아온 자들은 두 번 다시 바다로 나가지 않았다.”
“하데스에서 하루 정도 항해하면 마의 해역이 나온다. 마의 해역에서는 배가 침몰하지 않는다. 단지 실종될 뿐이다.”
“열 척의 배가 마의 해역에 들어가면 그중 세 척이 사라진다.”
“마의 해역에도 안전한 바닷길이 있다. 하지만 그 길로 가다 보면 목적지가 아니라 처음 출발지가 나온다.”
“마의 해역에는 세이렌(Siren)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모두 죽는다. 노래를 듣고도 운 좋게 살아 돌아온 사람이 다시 바다에 나가면 반드시 죽는다.”
“천공성에서 죄를 짓고 추방된 사람들이 세이렌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세이렌들이 천공성의 위치를 노래 속에 숨겨 두었다. 그러나 천공성의 위치를 알기도 전에 죽을 것이다.”
오후 4시경.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던 파비안은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철퍼덕 주저앉았다.
가을이라지만 낮의 햇살은 아직 따가웠다.
“와아! 지친다. 차라리 내가 바다로 나간다고 할걸.”
잠시도 쉬지 않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더니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래도 예상보다 소득이 많았다.
하데스 항구에서 만난 사람들도 마탑 마법사들 못지않게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덕분에 현장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마의 해역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특히나 바다에서 마법사와 기사 들이 서로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생각할수록 섬뜩했다.
‘그런데 세이렌들이 천공성의 주민이었다는 말은 사실일까?’
만약 그게 진짜라면 노래 속에 천공성의 위치를 숨겨 놓았을 것도 같기도 하다.
그가 항구에서 수집한 정보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고 있을 때다.
규칙적인 발소리와 함께 십여 명의 기사들이 나타났다.
파비안은 근처에서 무슨 일이 났나 싶어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거리는 조용하기만 했다.
‘설마 나를 찾아온 건가?’
파비안이 고개를 갸웃할 때 한 기사가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보리스 기사단의 기수 벤젤입니다. 기사님이 북부에서 왔다는 귀족입니까?”
파비안은 일어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벤젤을 올려다보았다.
뜻밖에도 금발의, 그것도 미모의 여기사를 본 파비안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기수라. 작위는 받지 못했나 보군?”
“아직 수습기사입니다. 작위를 받으셨습니까?”
“남작이다. 무슨 일인가?”
벤젤은 북부 귀족들의 작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무슨 일로 피에스트라에 오셨는지 조…… 알아 오라는 기사단장님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벤젤은 ‘조사’라고 하려다 너무 세게 나가는 것 같아 ‘알아 오라’로 순화시켰다.
“내가 모시는 라고아 자작님은 신화나 전설에 대한 관심이 많으시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천공성을 찾기 위해서다.”
“관광 목적이 아니라 천공성을 찾으러 왔다는 겁니까?”
벤젤이 황당한 눈으로 젊은 남작을 보았다.
이제는 그저 전설로 남게 된 천공성을 찾으러 왔다니?
진심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그렇다.”
순간 벤젤은 상대가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남작님이라고 하셨는데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파비안 묵묵히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작위 증명서를 꺼내 보였다.
작위 증명서를 확인한 벤젤이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다른 일행이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작위와 이름도 말씀해 주십시오.”
“베일럼 왕국의 라르바 오마르 백작님과 에스카토스 왕국의 엘리오 라고아 자작님이시다.”
벤젤은 품에서 종이를 꺼내 귀족들의 작위와 이름을 적은 뒤, ―아주 살짝 개인감정을 실어― 고압적으로 말했다.
“출항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항구에 오래 머무르지 마십시오.”
“하데스에 숙소를 잡았다.”
“…….”
벤젤은 클라우드 남작을 쏘아보았다.
항구에 오래 머무르지 말라고 했더니 숙소를 잡았단다.
이건 그냥 항구에서 생활하겠다는 소리였다.
“전시(戰時)에는 외지인들의 항구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숙소를 옮기는 게 좋을 겁니다.”
파비안이 수습기사를 지그시 응시했다.
통보인 줄 알았더니 권유다?
눈앞의 이 수습기사가 독단적으로 하는 말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기야 전쟁의 위험이 눈곱만큼도 없는 이런 곳을 통제할 리가 없다.
‘왜 삐딱하게 굴지?’
남작인 자신이 묻는 말에 정중하게 다 답해 줬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매일 배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어디로 옮기란 말인가?”
“굳이 하데스 항에서 출항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도 매일?”
“천공성을 찾는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과 같은 전시에요? 그런 핑계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제길. 핑계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우리가 북부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온 것은 천공성을 찾기 위해서란 말이다.”
“기사단장님께 그렇게 보고 올리겠습니다만, 저라면 그럴듯한 다른 핑곗거리를 찾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것 같군요.”
벤젤은 클라우드 남작에게 고개를 까딱여 보인 후 홱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