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35
1235회. 나오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육 인승 마차는 좌석으로 칸이 나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의 공간이다.
자연히 일등석에서 나누는 대화를 삼등석에서 들을 수 있다.
솔론 남작이라 불리는 젊은 귀족의 호탕한 말에 파비안이 중얼거렸다.
“상남자네요.”
“왜, 부러워?”
“아니라고는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라고아 경은 안 그렇습니까?”
“전세 마차가 부러운 거야? 미녀가 부러운 거야?”
“전세 마차죠.”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소리 해라.”
“겨울에 입술 트게 왜 침을 바르라고 하십니까?”
“내 고향에서는 거짓말하는 사람들한테 그렇게 말해. 이유는 나도 몰라.”
“아…… 침 바르고 거짓말하면 괜찮다는 말씀이시군요? 꽤나 험한 곳에서 자라셨나 봅니다?”
엘리오가 파비안을 힐끔 돌아보았다.
늘 쓰는 말이지만 그걸 저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니 의외다.
“험하다고? 이곳도 내 고향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아.”
“그렇습니까? 어디든 사람 살아가는 건 힘들군요.”
두 사람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각자 상념에 빠져들었다.
겨울이지만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날씨가 온화해졌다.
보름쯤 지나자 도로에서 더는 눈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기온이 올라갔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마을이 많아 역마차 여행도 수월했다.
1시간만 달려도 마을이 나오니 식사 시간을 앞당기거나 뒤로 늦추지 않아도 됐다.
노숙은 물론 도로에서 대충 식사를 때울 일도 없었다.
***
크로울리 공국.
샤인 홀 개척 마을.
붉게 타는 석양을 받으며 마차 다섯 대가 마을 입구로 진입했다.
제국에 속해 있건만 다른 곳과 달리 목책이 마을을 두르고 있었다.
목책 입구를 지키는 사람의 복장과 무기도 모두 달랐다.
그걸 본 엘리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여긴 영지병이 없는 곳인가 보네.”
“개척 마을일 겁니다.”
“개척 마을?”
“미개척지에는 영주가 병사를 파견하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 사람들이 몰려가 자리를 잡고 살아가면 개척 마을이라고 합니다.”
“그럼 저 사람들은 자경단인가?”
“그럴 겁니다.”
엘리오는 무슨 뜻인지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강호로 치면 화전민 마을 같은 것일 게다.
“그래도 개척 마을치고는 꽤나 번화하네?”
화전민 마을과 비교한 게 미안할 정도로 마을 안에는 번듯한 건물이 많았다.
“그러게요. 이 정도 규모면 곧 영주가 군대를 보내 마을을 접수할 겁니다.”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반반일 겁니다. 지금까지 안 내던 세금을 내야 하는 건 괴롭겠지만, 영주의 군대가 도적이나 야수로부터 마을을 지켜 줄 테니까요.”
“마을 사람들은 싫어하겠다. 세금 낼 돈이 없어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일 텐데.”
“그래도 이 정도 규모면 세금 낼 돈은 있을 겁니다.”
“모두가 부자는 아닐 거 아냐. 세금 낼 돈이 없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또 미개척지로 떠나야죠.”
“와 씨, 잔인하다.”
“그렇게 야금야금 영지를 개발해 나가는 겁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무법천지로 둘 수도 없잖습니까?”
“자경단이 알아서 지키는데 뭐가 무법천지냐.”
“자경단이라고 해 봐야 몇 명 안 될 겁니다. 그 정도 숫자면 용병 하나가 분탕질을 쳐도 막지 못합니다. 세금 낼 돈이 있는 사람들은 영주의 군대가 와 주기를 바랄 겁니다.”
“허.”
엘리오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개척 마을에서도 안정적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차는 다섯 대지만 그중 세 대가 짐마차라 승객은 열두 명에 불과했다.
열두 명의 승객들은 태번(tavern)에 들어가자마자 뿔뿔이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태번 구석 자리에 이 남 일 녀가 마주 앉았다.
하워드 솔론 남작과 그의 동행, 그리고 이등석의 덩치 큰 거한이다.
하워드 솔론 남작이 호위기사인 타인록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래, 뭐 하는 사람들이던가?”
“통성명을 해 봤는데 모험가라고 합니다.”
“용병 출신?”
“그보다는 말투나 복장을 보면 자유기사 출신 같습니다.”
“다행이군.”
그러자 동행한 미녀, 크레아가 입술을 삐죽이며 물었다.
“뭐가 다행이라는 거죠? 용병 출신이 아니라서요? 저도 용병이거든요?”
“그래서 너는 용병을 믿느냐?”
하워드 솔론 남작이 반문하자 크레아는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용병과 범죄자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인 때문이다.
그녀가 딴청을 하자 하워드 솔론 남작은 다시 타인록에게 고개를 돌렸다.
“검술 경지는 어때 보이던가?”
“가늠이 안 되는 걸 보면 저보다 뛰어난 것 같습니다.”
타인록은 가감 없이 솔직하게 답했다.
“아쉽게 됐군. 모험가만 아니면 내가 거두었을 텐데…….”
모험가들은 얽매이는 걸 싫어해 그들과 계약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모험가들을 살피던 크레아가 속삭였다.
“그들도 대수림으로 가는 걸까요?”
“모르지.”
“그게 아니라면 이 전란 통에 왜 남부로 가겠어요? 요즘은 황실에서 모험가들이 대수림으로 가는 걸 장려하고 있잖아요. 지금 제국 국경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건 모험가들밖에 없다고 하던데.”
어비스의 보물로 촉발된 전쟁이기에 제국에서는 모험가들을 대수림으로 보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역마차의 남부 왕국 출입조차 까다로워진 반면 모험가는 검문 검색도 생략한다나.
하워드 솔론 남작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정말 모험가라면 최종 목적지는 어비스일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으냐?”
“목적지가 같다면 함께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하워드 솔론 남작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불편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과 크레아 사이에 다른 남자 셋이 끼어드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글쎄다. 머릿수가 많으면 오히려 남부 왕국의 주목을 받아서 피곤해질 것 같은데.”
“피곤한 게 비명횡사보다 낫지 않을까요? 남부 왕국으로 들어간 모험가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너는 남부 왕국에서 제국 모험가들을 죽일 거라고 생각하느냐?”
“어비스의 보물로 제국과 전쟁까지 터진 마당에 무슨 짓인들 못 하겠어요?”
“그걸 알면서도 대수림으로 간다고?”
“저 역시 모험가니까요. 남작님 같은 든든한 조력자도 함께하는데 뭐가 두렵겠어요?”
“만약 내가 저들과 함께하는 것을 거절한다면? 너는 나를 떠나 저들에게 갈 것이냐?”
“그럴 리가요. 토플라 공국의 천재 기사인 솔론 남작님보다 더 능력 있는 조력자가 어디 있다고요.”
“그렇다면 더 이상 그 이야기는 꺼내지 마라. 나는 지금이 딱 좋으니까.”
“제가 좋은 건 아니고요? 훗! 정색하지 마세요. 농담이에요. 저도 제 주제는 잘 안다고요.”
크레아는 얼른 맥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하워드 솔론 남작은 토플라 공국의 유서 깊은 대귀족인 솔론 후작의 차남이다.
작위 승계와 거리가 멀었던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남작 작위를 획득했고, 가문의 평화를 위해 자유기사가 되어 제국을 떠돌았다.
그러던 중 파티마 공국에서 용병인 크레아를 만나 함께 다니게 된 것이었다.
호위기사인 타인록은 백작가에서 오래도록 그를 호위하던 기사였다.
타인록은 묵묵히 스튜를 떠먹기만 했다.
솔론 남작과 크레아의 말 모두 일리가 있었다.
숫자가 많으면 안전하지만, 남부 왕국의 이목을 끄는 것은 좋지 않다.
‘지금이 딱 좋다라…….’
그건 모르겠다.
애초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솔론 후작가의 기사가 된 것은 출세를 위해서였다.
공을 세워 작위를 받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건만 지금은 그것에서 꽤 멀어졌다.
솔론 남작의 호위로 임명받았을 때 출셋길이 막혔다는 걸 알았다.
기사는 적법한 승계자, 즉 장자에게 가야 앞길이 열린다.
평범한 귀족의 호위기사로 있어 봐야 자기가 모시는 귀족의 작위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야인 출신이라 그런 거겠지.’
대귀족들은 호위기사를 선발할 때도 출신과 혈통을 따진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이제 자신이 출세할 수 있는 길은 솔론 남작이 공을 세워 위로 올라가는 것뿐이다.
그런데 정작 솔론 남작은 모험가가 되어 여자와 시시덕거리고 있으니…….
‘다 때려치우고 그냥 용병이나 될까.’
그것이 요즘 그의 고민이었다.
태번이 손님들로 북적거렸지만 엘리오 일행은 모두 마나 유저들이라 귀가 밝았다.
어쩌다 솔론 남작 일행의 말을 엿들은 파비안이 피식 웃었다.
“누가 뭐랬다고 웃어? 인생이 우울하다가 즐겁다가 그래?”
“저 안 미쳤습니다. 일등석의 솔론 남작 일행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왜?”
“말하는 게 모험가들인 것 같습니다.”
“너 또 남의 말 엿들었냐?”
“엿들은 게 아니라, 저절로 귀에 들어오는 걸 어떻게 안 듣습니까?”
“들었으면 흘려보내야지. 오마르 경은 귀가 없어서 안 듣는 줄 아냐?”
“저는 아직 경지가 낮아서 흘려보내기가 잘 안 됩니다.”
“경지 문제가 아니라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아서 그래. 궁금한 게 있으면 정정당당히 묻지 뭘 자꾸 엿들어.”
“아, 진짜. 엿들은 게 아니라니까요. 저 그렇게까지 저질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 모험가들인데 뭐 어쩌라고?”
“저들도 대수림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그게 어때서? 두 발 달린 짐승이 어딘들 못 가. 가라고 해.”
엘리오는 관심 두지 않았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대수림에 가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여자는 우리와 함께 갔으면 하는데, 남작이 반대를 하네요.”
“네가 여자를 밝힌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나 보다.”
“앞으로 저 남작 일행과 자주 마주치게 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든지 말든지.”
엘리오는 아예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함께 가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해도 들어줄까 말까 한데 알아서 싫다니 고마울 뿐이다.
그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지나가듯 한마디 했다.
“제 옆에 앉은 남자 말입니다. 영기 수련자입니다. 야인 출신 같습니다.”
“덩치 큰 남자요?”
엘리오가 관심을 보였다.
‘야인’이라서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영기 수련자’라서 흥미가 생긴 것이다.
그 남자야말로 이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영기 수련자인 까닭이다.
“예, 얼마 전 살짝 기운을 방출할 때 느낌이 왔습니다. 제 경지를 떠보려고 그랬던 것 같은데……. 라고아 경의 기운과 닮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오마르 경의 경지를 떠보려고 기운을 방출했다는 건가요? 대범한 사람이네.”
몸이 맞닿은 상태에서 기운을 방출하다니!
그건 자신의 무력에 대한 확신이 있기 전에는 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악의가 느껴지지 않아서 모르는 척 눈감아 줬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순간 의기소침해 있던 파비안이 되살아났다.
“저만 그런 게 아니었네요. 저쪽도 우리가 누군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엘리오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더 이상 솔론 남작 일행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대화가 시들해지자, 결국 파비안도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렸다.
다음 날 아침.
개척 마을을 출발한 역마차 운송 협회 마차들은 돌로스 회랑에 진입했다.
그렇게 삼십 분쯤 달렸을까?
갑자기 ‘펑! 펑―!’ 마력탄 소리가 울리더니, 선두에서 달리던 마차가 멈춰 섰다.
선두에서 달리던 가드들이 황급히 마차로 되돌아가며 소리쳤다.
“습격이다!”
“마차에서 나오지 마십쇼!”
“적이 많습니다!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나와서 가드들을 도와주십쇼!”
가드들의 외침에 파비안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나오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