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38
1238회. 너는 나와 결투를 하겠느냐!
저렇게 강해 보이는 사람이 일검도 받아 내지 못한다니?
희롱당했다 생각한 타인록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향해 거친 투기를 드러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재밌다는 얼굴로 타인록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의 수준으로는 내가 적당한지도 모르겠군.”
확실히 타인록은 소드 비기너인 파비안에게는 벅찬 상대였다.
그렇다고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부탁할 수도 없다.
고작 견과류를 깨는 데 큰 망치를 사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늙은 모험가의 말에 타인록은 재빨리 흥분을 가라앉혔다.
강자와의 대결에서 흥분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천천히 롱소드를 뽑으며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너클스 산맥에서 온 모험가 타인록입니다.”
“베일럼의 모험가 오마르다.”
“한 수 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타인록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였다.
조금 전 자신이 버럭 한 일로 상대가 무자비하게 나오면 자신만 손해인 까닭이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먼저 덤비라는 듯 손을 까닥였다.
벌목된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던 파비안이 숲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숲으로 들어간 걸까요?”
“한 수 지도 부탁한단다.”
“갑자기 대련을요?”
“검술의 한계에 봉착했대.”
“오가는 길에 만난 모험가를 붙잡고 대련해 달라니 야인답네요.”
“오죽 답답하면 그러겠냐. 너는 운이 좋은 줄 알아야 돼.”
영지군이나 기사단에 있으면 대련의 기회가 많으나 호위로 떠돌면 그럴 일이 없다.
파비안은 엘리오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심심하면 어울려 주니 아쉬운 걸 몰랐다.
“가신인데 그 정도 혜택은 누려야죠.”
“이제 끝났네. 확실히 너보다는 오래 버틴다.”
“얼마나요?”
“1분?”
“에이, 그 정도면 별 차이도 없네요. 그의 상대로 오마르 경보다는 제가 더 낫지 않겠습니까?”
“너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 사람은 아닐걸?”
타인록에게 필요한 것은 강자와의 대결을 통한 깨달음이다. 자신보다 한 수 아래인 검사와의 대련에서 그걸 얻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
파비안도 바보는 아닌지라 더 이상 타인록과의 대련을 고집하지 않았다.
잠시 후 숲에서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타인록이 걸어 나왔다.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지 타인록의 얼굴은 그 잠깐 동안 핼쑥해 보였다.
타인록은 청년 모험가들이 자신을 보자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그는 오마르의 말을 믿지 않았기에 속으로 ‘그래도 내가 너희보다 강하다’고 중얼거렸다.
다소 도발적인 타인록의 시선에 파비안은 기분이 상했지만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철저하게 혼자가 된 그가 조금 애처로워 보여서다.
용병들의 습격 이후에도 솔론 남작과 미녀(크레아)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오직 그만이 솔론 남작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토플라 공국에 도착하면 솔론 남작 일행과 결별할 게 분명했다.
명색이 기사라는 사람이 홀로 된 사람을 핍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가드들이 돌아다니며 승차하라 외치자 승객들은 하나 둘 마차로 올랐다.
사두마차가 다시 도로 위를 내달렸다.
그 뒤로도 타인록은 쉬는 시간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따로 불러냈다.
귀찮아서 거절할 법도 한데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묵묵히 그의 요구에 응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쉬고 있는 엘리오 일행의 자리로 타인록이 찾아왔다.
파비안이 질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반나절만 더 가면 최종 목적지인 토플라 공국의 수도 프뉴마다.
그런데 저 야인 출신의 모험가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짤 기세였다.
“오마르 선배님, 잠시 시간을 내주십시오.”
야인 출신인 타인록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편하게 ‘선배님’으로 불렀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타인록은 혹시 못 들었나 싶어 약간 소리를 높여 다시 말했다.
“오마르 선배님, 잠시 시간을 내주십시오.”
태번에서 쉬던 다른 승객들이 무슨 일이 났나 싶어 힐끔거렸다.
묵묵히 차를 마시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무심한 눈으로 타인록을 돌아보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
타인록은 답하지 못했다.
맞다.
저 오마르가 자신의 요청에 응해 줄 의무는 없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다섯 차례나 대련을 해 준 것만도 감사할 일이었다.
뻘쭘한 얼굴로 서 있던 타인록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뒤 돌아섰다.
그때 엘리오가 말했다.
“오마르 경, 왜 자라나는 새싹의 기를 죽이고 그래요? 솔론 후작가에서 쫓겨나 갈 데도 없는 사람인데. 야인이 후작가까지 올라갔으면 성공한 거긴 하지만.”
막 발걸음을 떼려던 타인록이 멈칫했다.
바보라도 알 수 있다. 이건 의심의 여지 없는, 명백한 조롱이었다.
‘저들과 싸우면 승산이 있을까?’
그럴 리가 있나.
오마르만 해도 자신보다 한참 위의 실력이니 무참하게 깨지리라.
현실을 알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꼬리를 말 수는 없었다.
천천히 돌아선 타인록은 뺀질거리게 생긴 청년을 노려보았다.
“너, 지금 일행을 믿고 나에게 시비를 거는 건가?”
“아닌데요?”
이십 대 후반인 엘리오는 사십대의 타인록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뻔한 거짓말에 타인록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자라나는 새싹이니, 솔론 후작가에서 쫓겨났느니, 야인이 후작가까지 갔으면 성공한 거니 하는 말들은 뭔가?”
“사실이잖아요.”
“크흐흐흐!”
순간 타인록은 광소를 터뜨렸다.
지금까지 자신을 조롱하고 욕한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등 뒤에서 그랬다.
저놈처럼 ―물론 오마르를 믿고 그런 것이겠지만― 자신의 면전에서 그런 짓을 한 사람은 없었다.
한순간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곧이어 타인록의 활활 타오르는 눈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향했다.
“오마르 선배, 당신은 저런 놈의 뒤까지 봐줄 셈입니까? 당신이 저놈의 뒤를 봐준다고 해도 상관없소.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그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그의 말을 끊었다.
“거기까지만 해라. 나를 누구의 뒤나 봐주는 사람으로 봤다니 실망이군. 약속하지. 나는 이번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겠다.”
말을 마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느긋하게 냉차가 든 찻잔을 집어 들고 냄새를 맡았다.
이에 용기백배해진 타인록이 청년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가 믿는 분은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너, 그 잘난 주둥이로 다시 한번 말해 보거라. 방금 뭐라고 했느냐?”
“무슨 말요? 내가 기억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서요.”
“이놈! 조금 전 나에게 새싹이니, 쫓겨났느니, 성공한 거니 하는 말들을 하지 않았느냐!”
“자신에 대해 잘 알고 계시네요. 맞아요, 그런 말을 했어요. 그게 왜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부들부들 떨던 타인록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건 나에 대한 모욕이다. 너도 기사라면 동료 뒤에 숨지 말고 나와 겨루자.”
“한 수 가르쳐 달라는 거예요?”
“그래. 누가 누구를 가르칠지 몰라도, 너는 나와 결투를 하겠느냐!”
“야아, 나한테 도전하다니 용기 있는 아저씨네. 그럽시다. 까짓것. 결투가 뭐 어려운 거라고. 언제, 어디서 할까요?”
“지금 당장. 따라나와라.”
타인록이 즉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자 엘리오가 느긋하게 그 뒤를 따랐다.
살벌한 분위기에 가드들은 감히 이래라저래라 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하워드 솔론 남작과 크레아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다가갔다.
“모험가님, 일행을 혼자 보내실 겁니까? 타인록은 화가 나면 이성을 잃습니다. 일행이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 참관을 하시지요?”
“우리는 됐네. 타인록이 걱정된다면 자네들이나 따라가 보게.”
“…….”
예상과 다른 원로 모험가의 냉정한 태도에 하워드 솔론 남작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만 보낼 수는 없었다.
“크레아, 누구 한 사람 다치면 일이 커질 수 있으니 우리라도 참관을 해야겠다. 가자.”
말이 누구 한 사람이지 그는 청년이 크게 다칠 거라고 생각했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막상 일행이 중상을 입으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후작가의 힘을 동원하지 못하게 된 지금 타인록이 사고를 치면 수습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일이 커지지 않게 어떻게든 적당한 선에서 수습해야 했다.
한참 동안 앞만 보고 걷던 타인록은 마을 어귀에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뺀질뺀질한 얼굴의 청년이 따라오고 있었다.
‘응?’
그런데 그의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그를 보호하기 위해 동행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불쌍한 놈이군.’
하워드 솔론 남작 일행에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자신과 비슷한 인생이라니!
그렇다고 해서 그를 봐줄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한층 더 화가 났다.
그런 주제에 자신에게 그따위 말을 하다니, 오마르가 뒤를 봐주지 않을 만도 하다.
마을 외곽의 공터에서 멈춰 선 타인록은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최강의 검사 오마르는 보이지 않았다.
그건 저 젊은 모험가를 자신의 뜻대로 요리해도 된다는 소리였다.
살짝 흥분한 타인록은 습관처럼 두 주먹을 번갈아 쥐어 우드득 소리를 냈다.
그때 참관인이 될 요량으로 따라온 하워드 솔론 남작이 타인록에게 말했다.
“타인록, 저 사람을 너무 다치게 하지는 말게.”
“솔론 남작, 지금도 내가 남작의 호위기사인 줄 아시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뒤로 빠지시오.”
차가운 타인록의 말에 하워드 솔론 남작은 바로 말투를 바꿨다.
“반나절만 가면 프뉴마입니다. 자칫 치안대로 끌려갈 수도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신성한 결투에 치안대가 왜 끼어든단 말인가?”
“그의 신분을 모르니 하는 말 아닙니까.”
“…….”
타인록이 이를 악물었다.
기사라고 하지만 자신은 준귀족일 뿐 아직 귀족의 작위를 받지 못했다.
만에 하나 청년이 귀족이라면 솔론 남작의 말처럼 치안대로 불려 갈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엘리오가 피식 실소를 흘렸다.
그걸 본 타인록의 눈이 뒤집혔다.
“네놈이 귀족이든 아니든 오늘 내가 너를 가만히 두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
타인록이 한 마리 호랑이처럼 청년을 덮쳤다.
칠 미터 거리를 단숨에 좁힌 타인록은 주먹으로 청년의 얼굴을 후려쳤다.
엘리오가 슬쩍 반걸음 뒤로 물러나며 주먹을 피했다.
뒤이어 ‘부웅!’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첫 공격이 빗나가자 타인록은 더 빠르고 위력적인 체술로 청년을 몰아붙였다.
부웅! 붕! 붕!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대기 가르는 소리가 섬뜩하게 났지만 엘리오의 표정은 평화롭기만 했다.
쉬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던 타인록이 훌쩍 뒤로 물러났다.
“예사 놈이 아니었구나!”
“아저씨, 같은 야인 출신끼리 밖에서 욕하지 말자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순간 타인록은 멈칫했다.
“너, 야인이었느냐?”
“뭐, 내가 제국인도 왕국인도 아닌 건 사실이야.”
“흥! 말을 빙빙 돌리는 걸 보니 야인 출신이라는 게 부끄러운가 보군.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니, 야인 출신이라니 더욱 제대로된 가르침을 내려야겠다.”
롱소드를 뽑아 든 타인록은 상대에게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앞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