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39
1239회. 원수가 됐다거나 그런 거 아니죠?
기사라고 검술만 익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거친 야생에서 생존해야 하는 야인들은 검술을 익히기 전에 체술부터 수련했다.
그건 타인록도 마찬가지다.
스몰 기가스라 불리는 너클스 산맥의 야인들은 커다란 체구에도 불구하고 민첩했다.
그야말로 호랑이가 먹잇감에게 덮치듯 번쩍하는 순간 어느새 엘리오 앞에 나타났다.
타인록이 롱소드를 뽑지 않은 건 상대의 부상을 염려해서가 아니다.
칼보다 손발로 가하는 직접적인 타격이 상대에게 더 모욕감을 준다.
그는 오늘 ―어딘지 묘하게 삐뚤어진― 젊은 야인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내릴 생각이었다.
타인록의 주먹이 엘리오의 얼굴을 후려쳤다.
순간 엘리오의 몸이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목표를 잃은 타인록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타인록의 뒤로 이동한 엘리오가 힘껏 발길질을 했다.
‘퍽!’ 소리와 함께 넓적다리를 걷어 차인 타인록이 비틀거리며 옆으로 물러났다.
엘리오가 다시 덤비라는 듯 손을 까닥였다.
모멸감을 주려다가 도리어 당한 타인록이 이를 갈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는 일단 상대를 잡으려고 팔을 길게 뻗었다.
야인 체술의 궁극은 ‘서서 타격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잡아서 뭉개는, 이른바 개싸움이다.
그러나 청년은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손을 뻗을 때마다 유령처럼 사라졌고, 그때마다 넓적다리나 엉덩이에 충격이 왔다.
퍽! 퍽! 퍽!
또다시 비칠거리며 물러난 타인록은 뒤늦게 자신이 체술로 그의 상대가 아님을 알았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서둘러 흥분을 가라앉힌 그는 내심 탄식하며 천천히 롱소드를 뽑았다.
“어디서 체술을 제대로 익혔군. 나의 장기는 체술이 아니라 검술이다.”
“어련하실라고요.”
롱소드를 뽑은 엘리오가 또 한번 손을 까닥였다.
애써 냉정을 되찾았던 타인록이 다시 울컥했다.
저건 연장자가 아랫사람을 가르칠 때나 보여 줄 법한 행동인 까닭이다.
“너 이놈! 감히!”
우우웅―.
타인록의 롱소드에 붉은 빛이 맺혔다.
‘마나의 축복’을 받은 소드 익스퍼트의 검광을 ‘마나 오라’라고 한다면, 야인들의 것은 ‘오라 디퓨전’이라 부른다.
외형은 비슷하나 둘의 강도는 당연히 마나 오라가 훨씬 강했다.
오죽하면 마나가 영기보다 두 단계나 높다고 할까.
흥미로운 눈으로 보던 엘리오가 자신의 롱소드에 영기를 밀어 넣었다.
엘리오의 롱소드가 하얀 빛에 휩싸였다.
순간 타인록은 속으로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평범해 보이는 저 청년이 자신처럼 오라 디퓨전의 경지였다니!
문득 어제 오마르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삼등석에 있는 두 청년은 어르신보다 약합니다.
―그러니 안목이 부족하다고 하는 걸세. 나는 그중 한 사람의 일검도 받아 내지 못하거든.
설마 오마르가 말한 사람이 이 청년일까?
말도 안 되는 상상에 타인록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 냈다.
저 나이에 오라 디퓨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놀랍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나이에 제법이구나. 네가 왜 그렇게 시건방을 떨었는지 알겠다. 하지만, 나 역시 이십 대에 오라 디퓨전을 터득했다. 같은 오라 디퓨전이라도 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 주마.”
“비 맞은 수도사처럼 중얼중얼 말 많으시네. 제발 빨리 알려 주세요.”
엘리오의 놀림에 타인록은 이를 빠드득 갈며 다시금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청년의 지척에 이르자 사력을 다해 롱소드를 휘둘렀다.
쐐애액―!
얼마나 전력을 쏟았는지 대기 가르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멀찍이서 보던 하워드 솔론과 크레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극도로 분노한 타인록이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폭주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워드 솔론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러면 안 되는데…….”
“큰일 났네요.”
그때 걱정하던 두 사람을 놀라게 할 일이 벌어졌다.
청년 모험가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롱소드를 들어 타인록의 칼을 막았다.
쩡―!
묵직한 충돌음이 길게 울려 퍼졌다.
전력을 다해 롱소드를 휘둘렀던 타인록은 한순간 움직이지 못했다.
끔찍한 반탄력에 내부가 흔들린 때문이다.
롱소드가 아니라 무슨 철벽을 후려친 것 같았다.
내부의 고통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는 이를 악물고 다시 칼을 휘둘렀다.
쐐액―!
쩡―!
이번에는 아예 타인록의 롱소드가 뒤로 튕겨 나기까지 했다.
그 바람에 타인록의 상체가 균형을 잃고 뒤로 기울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엘리오가 득달같이 달려 나가며 롱소드로 내리찍었다.
롱소드가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자 타인록은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막았다.
콰창―!
어설프게 들어 올린 타인록의 롱소드에서 듣기 거북한 파열음이 울렸다.
타인록은 자신의 롱소드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고 허겁지겁 뒷걸음질 쳤다.
마음 같아서는 그만하자 외치고 싶었지만 자존심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엘리오가 상대의 사정을 봐줄 리 없다.
그는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생각할 틈 없이 상대를 밀어붙였다.
그래도 바로 절단 낼 생각은 없는지 그의 롱소드에서 빛이 사라졌다.
챙! 챙! 챙! 채앵―!
자신의 롱소드에 금이 갔다고 생각한 타인록 역시 오라 디퓨전(검광)을 거둬들였다.
그야말로 순수한 검술의 대결이 펼쳐진 셈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갑자기 ‘챙!’ 소리와 함께 타인록의 롱소드가 부러져 버린 것이다.
당황한 타인록이 멈칫할 때 엘리오의 롱소드가 그의 목에 닿았다.
“내 말 맞죠?”
“뭐가 맞다는 것이냐?”
“아저씨 자라나는 새싹이잖아요. 그 실력으로 후작가까지 올라갔으면 나름 성공한 인생이고. 맞는 말을 했는데 왜 발끈하세요?”
“…….”
타인록은 기막힌 눈으로 청년을 보았다.
영기를 수련했지만 소드마스터를 목전에 둔 자신에게 자라나는 새싹이라니.
하지만 상대에게 무참히 패배한 지금 그걸 반박할 수는 없었다.
타인록의 눈에서 투기가 사라지자 엘리오는 검을 거둬들이고 돌아섰다.
그가 막 걸음을 떼어 놓으려 할 때 타인록이 소리쳤다.
“왜냐! 왜 너의 오라 디퓨전은 그렇게 강한 것이냐!”
과거 기사단 시절, 자신의 대련 상대 중에는 소드 익스퍼트들도 많았다.
그들의 마나 오라도 저 청년의 오라 디퓨전만큼 강하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그랬다면 그때도 롱소드가 부서졌을 테니까.
하지만 다른 소드 익스퍼트들과의 대련에서 검이 깨진 적은 없다.
자신의 오라 디퓨전은 소드 익스퍼트의 마나 오라에 부서질 만큼 약하지 않다.
그런 믿음이 오늘 무명의 야인 출신 청년 모험가에게 무참히 박살 났다.
내가 지금까지 뭘 했나 자괴감이 밀려오지만, 달리 생각하면 영기 수련자인 자신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그건 야인의 ‘오라 디퓨전’도 제국 기사들의 ‘마나 오라’만큼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엘리오가 그를 힐끔 돌아보았다.
“남의 속옷이 뭔지 궁금해 하지 마요. 물어보면 내가 친절하게 가르쳐 줄 거 같아요? 훗!”
가볍게 그를 비웃은 엘리오는 느긋하게 왔던 길을 돌아갔다.
부러진 롱소드를 들고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는 타인록에게 하워드 솔론 남작과 크레아가 다가갔다.
그래도 어제까지 동료였던지라 걱정이 됐던 것이다.
머뭇거리던 하워드 솔론이 입을 열었다.
“칼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결투라 다행입니다. 적과 싸우던 중에 그랬으면…….”
타인록이 그의 말을 끊었다.
“내 칼에는 문제가 없었소. 그의 오라 디퓨전이 강해서 생긴 일이오.”
“…….”
하워드 솔론 남작이 멋쩍은 얼굴로 입을 다물자, 이번에는 크레아가 나섰다.
“그는 정말 영기 수련자였나요?
“부끄럽게도, 사실이다. 그가 사용한 힘은 마나가 아닌 영기였다.”
타인록은 호위기사를 그만두었기에 크레아에게는 반말을 사용했다.
하워드 솔론 남작은 귀족이라 말투를 조심해야 하지만, 용병 출신의 크레아에게까지 그럴 이유는 없었다.
“세상에…….”
크레아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토록 젊은 영기 수련자가 ―어지간한 용병대 대장보다 강한― 타인록을 이기다니?
자신의 눈으로 보고도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영기 수련도 오래할수록 강해지지 않아요? 그렇게 들었는데 아닌가?”
“맞다. 영기 수련의 시간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흑마법의 도움을 받은 걸까요?”
순간 타인록의 시선이 하워드 솔론 남작에게로 향했다.
그가 마법을 배웠으니 무심코 그를 본 것이다.
“그걸 알려면 진실의 눈이라는 마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건 4서클 마법이라…….”
그가 2서클 마법사라는 걸 알고 있던 타인록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크레아가 한껏 소리를 낮춰 말했다.
“프뉴마에 도착하면 치안대부터 들르는 게 어때요? 요즘 흑마법과 관계된 건 무조건 치안대에 신고하라고 하잖아요.”
그러자 하워드 솔론 남작이 고개를 저었다.
“안 될 일이다. 신고 과정에서 우리 신분이 드러나면 후작가에서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넘겨요? 흑마법의 도움을 받은 게 틀림없다니까요. 타인록 씨가 말했잖아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워드 솔론 남작이 타인록을 보았다.
“정말 불가능한 일입니까?”
“그렇소.”
타인록은 단언했다.
야인 세계에서 영기를 수련한 시간보다 앞선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치안대에 신고를 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에……. 프뉴마에 제가 잘 아는 마법사가 있으니 은밀히 그에게 조사해 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준다니 고맙소.”
세 사람이 수도에서 할 일을 논의할 때 가드가 멀리서 소리쳤다.
“곧 출발하겠습니다! 마차로 돌아가 주십쇼!”
하워드 솔론 남작 일행은 용병단 습격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함께 움직였다.
마차가 다시 움직였다.
하워드 솔론 남작 일행과 엘리오 일행 사이에 묘한 긴장이 흘렀다.
이상 기류를 눈치챈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속삭였다.
“대련에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없었는데? 왜?”
“그런데 분위기가 왜 이럽니까? 오마르 경이 대련하고 왔을 때와 너무 다릅니다.”
“그래? 난 모르겠는데?”
그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엘리오는 남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았기에 누가 콕 찍어 말해 주지 않으면 알지 못했다.
“잘 지도해 주신 거 맞죠? 원수가 됐다거나 그런 거 아니죠?”
“잘해 줬어.”
엘리오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파비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
말과 달리 파비안은 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도 하워드 솔론 남작 일행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면 벌써 뭐라도 말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하워드 솔론 남작 일행은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묵묵히 앉아 있었다.
평소 자신보다 말 많던 하워드 솔론 남작과 별거 아닌 사소한 일에도 유쾌하게 웃던 미녀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라도 참관할 걸 그랬나.’
너무 뻔한 결과라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