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69
1269회. 없다면 내가 당신을 만나러 왔겠어요?
안전 지역 엑소도.
술집 바론.
구석진 자리에 여섯 명의 사내가 탁자 두 개를 붙이고 모여 앉았다.
거친 눈빛과 통일성 없는 갬비슨(누비 갑옷)을 보면 용병이 틀림없었다.
그들 중 어딘지 야비하게 생긴 용병이 좌우를 살피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런데 그 구름은 뭡니까? 아무리 대수림에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쏟아진다지만 그런 구름은 처음 봅니다. 그것도 노천 광산에만 생기다니. 그거 혹시 마법 아니었을까요?”
그러자 용병들의 시선이 일제히 리더인 레인 포레스트 남작에게 향했다.
그가 기획하고 추진한 일이니 뭘 좀 알고 있을까 싶어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건 레인 포레스트 남작도 예상치 못한 일.
그가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용병들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레인 포레스트 남작은 묵묵히 주석 잔에 벌꿀주를 가득 따랐다.
툼스톤의 술집들과 달리 엑소도에서는 벌꿀주를 주력 상품으로 팔았다.
어비스 내의 야생 꿀과 식용 베리 들을 이용해 제조한 벌꿀주는 술맛도 좋은 데다, 건강 유지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뜬금없이 웬 건강이냐고 하겠지만 그건 어비스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어비스는 눈에 보기 아름다운 풍광과 달리 인간에게 좋지 않았다.
힘을 쓰면 금방 피로를 느끼고, 신경도 날카로워져 숙면을 취하기 어렵다.
몇몇 학자들은 어비스와 바깥세상 간 대기의 질이 달라서 그렇다고 했지만, 그건 무엇 하나 증명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했다.
이유야 어떻든 벌꿀주를 마시면 피로는 물론 날카롭던 신경까지도 풀어졌기에, 어비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술은 벌꿀주였다.
주석 잔에 담긴 노란색 액체를 물끄러미 보던 레인 포레스트 남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씨발, 용병이 벌꿀주라니. 말세군.”
그러자 야비하게 생긴 용병, 드레인이 그를 대화에 끌어들일 요량으로 한마디 했다.
“대장님, 지금 벌꿀주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애송이 새끼들이 어비스에 적응하면 처치하기가 더 힘들어질 겁니다. 그 전에 어떻게든…….”
“아니면 마는 거지.”
레인 포레스트 남작의 말에 드레인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만둔다고요?”
“뭘 그렇게 놀라? 그럼 어비스에서 내내 그놈들만 따라다니려고 했어?”
“아까워서 그러죠. 그 여자들 보셨잖습니까? 제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여자들입니다.”
“여자가 보물보다 낫다는 거냐?”
“보물이야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겠지만 여자는 다르잖습니까? 어이, 친구들. 내 말 틀려?”
드레인의 질문에 다른 용병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그런 여자들은 제도에도 없을걸?”
“특히 하얀 옷 입은 여자는 여신만큼이나 아름다웠다고.”
“그 여자들이라면 확실히 보물보다 낫지.”
드레인이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들으셨습니까? 다들 여자가 보물보다 낫답니다. 대장님 인생에 똥물을 끼얹은 놈에게 복수도 하고, 여자도 취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해 봤지만 안 됐잖나. 괜히 무리하지 말자고. 정면으로 맞붙으면 우린 그들의 상대가 안 돼.”
“요즘 세상에 누가 정면에서 싸웁니까? 마력총은 본래 뒤에 숨어서 쏘는 겁니다.”
“쏴도 못 죽였잖나.”
“그때는 운이 안 따랐습니다. 갑자기 먹구름이 낄 줄 누가 알았습니까? 먹구름만 아니었어도 그 애송이들을 싹 다 해치울 수 있었습니다.”
“운도 실력이야.”
“에이, 왜 그러십니까? 설마 막상 죽이려니까 옛정이 떠올라 힘드십니까? 옛날 부하라서요?”
“옛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 새끼 때문에 내 인생이 작살났구만.”
“그런데 왜 자꾸 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어비스에서 모험가들 털어먹은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우리가 가진 마력총이면 힘든 일도 아닙니다.”
“그 마력총으로 안 됐으니까 하는 말이지.”
“말씀드렸다시피 그때는 운이 안 따라서…….”
드레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불쑥 끼어들었다.
“운이 아니야. 그리고 당신들이 가진 허접한 마력총으로는 그들을 절대 못 죽여.”
용병들이 갑자기 끼어든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팔콘 용병단 단장 아우리아 샤를이 레인 포레스트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더니, 옆에 앉아 있던 용병 둘에게 말했다.
“거기 두 사람은 잠깐 다른 데 가서 마셔 봐. 당신들 대장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까.”
두 사람은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팔콘 용병단 단장에게 찍히면 어비스에서 죽은 목숨이라 알아서 기는 것이다.
무덤덤한 눈으로 팔콘 용병단장을 응시하던 레인 포레스트 남작이 물었다.
“우리가 이전에 만난 적이 있소?”
“없어요.”
“그런 것치고는 우리를 잘 아는 것처럼 말씀하시던데?”
“오늘 낮에 우연히 당신들을 봤어요. 어비스 입구에서 모지리들이나 하는 짓을 하고 있더군요.”
“봤으면 자경단으로 달려가시지 않고.”
“증거가 없는 것도 있지만, 나도 당신만큼이나 그들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들을 잘 아시오?”
레인 포레스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말투를 보니 팔콘 용병단장은 그 모험가들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았다.
“당신보다는 잘 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아까 보니 마력총을 쓰던데, 어디서 구한 거죠?”
순간 레인 포레스트는 상대가 마력총 때문에 찾아왔다고 오해했다.
“마력총이 목적이라면 잘못 찾아왔소. 나는 팔 생각이 없으니까.”
레인 포레스트가 정색을 하자 아우리아 샤를이 피식 웃었다.
“오해하지 말아요. 내가 뭐라고 했는지 잊었어요?”
멈칫하던 레인 포레스트는 ‘허접한 마력총’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물론 우리가 가진 게 좋은 품질의 마력총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대다수 용병단은 그런 허접한 마력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제국과 왕국에서 일반의 마력총 거래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투에서 자부심을 느낀 아우리아 샤를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상대를 보았다.
‘하긴 여섯밖에 안 되는 용병들에게 마력총이 두 자루나 있다니…….’
다른 용병단이 알면 뒤집어질 일이기는 했다.
팔콘 용병단 같은 중급 용병단에도 마력총 한 자루 없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미리 말해 두지만 나는 당신의 마력총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궁금하기는 하네요. 어떻게 마력총을 두 자루나 가질 수 있었던 거죠?”
“나는 북부의 귀족이었소. 왕국군에 뼈를 묻을 생각이었는데, 사회성이 결여된 부하의 잘못으로 보직을 박탈당하고 쫓겨났소. 영지로 돌아가니 영주도 불명예 제대한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더이다. 미래가 안 보이는 영지를 떠나기 전에 병기 창고에서 훔쳤소.”
“호홋!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당신의 인생을 절단 낸 부하가 모험가 일행 속에 있나요?”
“그렇소.”
“아하! 그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습을 했던 거군요.”
아우리아 샤를의 말에 레인 포레스트 남작이 발끈했다.
“말도 안 되는 기습이라니. 운 없게 먹구름만 끼지 않았다면 성공했을 거요.”
“먹구름이 끼지 않았어도 성공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니, 어쩌면 먹구름이 당신들의 생명을 구했는지도 모르죠.”
“먹구름이 우리를 구했다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먹구름이 끼면서, 기습에 차질이 생기자 당신들은 바로 현장에서 빠져나갔죠?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겠지만.”
“맞소. 그런데 당신은 아직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소.”
아우리아 샤를이 측은한 눈으로 레인 포레스트 남작을 보았다.
“당신은 당신의 부하가 얼마나 출세를 했는지 잘 모르나 봐요?”
“그놈이 출세를 했소?”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 북부에서는 ‘균열의 기사’라고도 불리고 있어요. 처음 듣나요?”
“그놈이 벌써 남작의 작위를 받았소?”
“쯧쯧! 북부 출신이면서 북부 사정에는 어둡군요. 아! 그랬겠구나.”
제국에서 북부의 정보를 숨긴 탓에 아직 그들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자신만 해도 찰스 맨슨에게 듣고서야 알지 않았던가.
아우리아 샤를의 말에 레인 포레스트 남작이 이를 빠드득 갈며 물었다.
“그놈이 무슨 공을 세웠소?”
“지난 겨울 북부의 스쿠툼(빙벽)에 균열이 생겼었다네요. 그 균열로 마족들이 넘어와서 북부 왕국들과 전쟁을 벌였는데, 그때 엘리오 라고아와 파비안 클라우드가 큰 공을 세웠답니다. 그때의 공적으로 파비안 클라우드는 남작의 작위를 턱 하고 받은 거죠.”
“빌어먹을! 내가 쫓겨나지만 않았어도…….”
레인 포레스트 남작은 속이 타는지 벌꿀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중요한 건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당신의 부하는 당신과 달리 운이 아주아주 좋았어요. 그가 북부에서 모시던 상관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거든요.”
“파비안이 따라다니던 그 젊은 모험가를 말하는 거요?”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이름에 레인 포레스트 남작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요. 그가 누군지 알면 당신도 ‘먹구름이 당신들의 생명을 구했다’는 말에 동의 할 거예요.”
“그가 소드마스터라도 되오?”
“훗! 놀라지 마세요. 그는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랜드 마스터예요. 그래서 최근 제국에서 백작의 작위를 받기도 했고요.”
“엘리오 라고아 백작? 그 젊은 모험가가 정말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란 말이오?”
“맞아요. 이제 당신들이 얼마나 운 좋은 사람들인지 알겠나요?”
“…….”
레인 포레스트 남작은 실감이 나지 않는지 한동안 눈만 끔뻑였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그렇죠? 그런 평범한 얼굴을 보고 누가 그를 그랜드 마스터로 생각할 수 있겠어요? 나도 알았기에 망정이지 모르고 만났다면 큰일 날 뻔했어요.”
“젠장.”
세상 참 좆같다.
자신을 망하게 한 파비안이 벼락출세를 할 줄이야.
레인 포레스트 남작이 체념한 얼굴로 술병에 손을 뻗었다.
파비안의 옆에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있다면 복수는 물 건너갔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귓가로 아우리아 샤를의 음성이 들려왔다.
“벌써 포기한 얼굴이네요. 원한이 깊지 않아서 그런가? 그런데 이 세상에 그랜드 마스터를 죽일 수 있는 게 있다면 어쩌겠어요?”
“그런 게 있소?”
“없다면 내가 당신을 만나러 왔겠어요?”
아우리아 샤를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레인 포레스트 남작을 보았다.
***
파르톤 산.
중무장한 아홉 명의 남녀가 녹음이 우거진 산의 초입에 나타났다.
개발 지역을 찾아가는 엘리오 일행이다.
산 곳곳에 쳐진 금줄을 본 엘리오가 선두의 메르데프에게 물었다.
“형씨! 저 줄은 뭐야?”
“소유자가 있는 곳이니 들어가지 말라는 표시입니다.”
“던전에 무슨 주인이 있다고?”
“처음 이곳을 개발한 왕국과 제국, 용병 길드 들이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겁니다.”
“순 날강도 같은 놈들이네. 저 금줄 안에 뭐가 있어?”
“희귀한 약초 군락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줄 하나로 되나? 몰래 넘어가서 채집하는 사람도 있을 거 같은데?”
“곳곳에 감시 초소가 있어서 걸리면 죽습니다. 그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몰래 채집해 가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살벌하네. 그럼 내가 약초 군락지를 새로 발견하면? 거기에 금줄을 쳐도 돼?”
“개인은 그걸 지킬 힘이 없으니 용병단이나 귀족가에 위치를 알려 주고 돈을 받습니다. 그럼 그들이 금줄을 새로 치는 식이죠.”
“이야, 자기 땅도 아닌데 줄 긋고 주인 행세라니. 어이가 없네. 파비안, 약초 있나 없나 눈 부릅뜨고 살펴라. 노천 광산이 별거냐? 우리도 금줄 한번 쳐 보자!”
“예!”
욕망에 불타는 눈으로 수풀을 살피던 파비안이 문득 하워드 솔론 남작에게 물었다.
“그런데 약초는 어떻게 생겼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