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70
1270회. 어비스에 강도들이 그렇게 많아?
‘약초가 어떻게 생겼냐?’는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의 질문에 하워드 솔론 남작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도 기사 아카데미 출신이라 약초에는 젬병입니다.”
“아…….”
파비안이 탄성을 흘리자 옆에 있던 크레아도 한마디 거들었다.
“저도 약초는 구경해 본 적도 없어요. 타인록 씨라면 혹시 모르겠네요.”
순간 파비안의 시선이 선두의 타인록을 향했다.
파비안이 솔론 남작과 어울리면서부터 타인록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길 안내자인 메르데프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뒤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듣던 타인록은 파비안이 묻기 전에 먼저 말했다.
“야인이니까 약초에 대해 잘 알거라 단정하지 마라. 나는 전사다.”
모른다는 소리다.
파비안이 실망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냥 영지 관리에나 힘을 쏟아야지 약초는 무슨.”
그러자 젊은 크레아가 관심을 보였다.
“영지도 있으세요?”
남작의 작위와 봉토를 함께 주는 일도 있었기에 그렇게 물어본 것이다.
“내 영지가 아니라 북부와 제국에 있는 라고아 경의 영지를 두고 말한 거요. 라고아 경이 영지의 관리를 나에게 맡겼기 때문에…….”
“아!”
크레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클라우드 남작과 라고아 백작의 관계가 자신의 생각보다 더 긴밀한 느낌이다.
솔론 남작이 부러운 얼굴로 클라우드 남작을 힐끔거렸다.
자신은 ―거액의 빚 때문에― 종처럼 그를 섬기고 있는데 대리인이라니!
파르톤 산 정상 부근은 나무보다 암석이 더 많았다.
경사진 바위 지대를 오르던 메르데프와 타인록이 지쳤는지 멈춰 섰다.
그들의 뒤를 따라가던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 선두에 합류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파비안은 아래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다 산 중턱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을 발견한 파비안이 메르데프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일반인들 같은데 맞나?”
“맞습니다. 약초꾼들일 겁니다.”
“일반인은 잡부만 들어올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약초꾼도 가능한 모양이군.”
모험가와 용병의 짐을 들어야 하기에 잡부들은 어비스 진입이 가능했다.
“안전 지역이 만들어진 뒤로 규제가 조금 느슨해졌습니다. 지금은 약초꾼과 대장장이, 치료사까지 출입이 허가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엑소도에 대장간이 있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지속적으로 갑옷과 무기를 수리해야 하니까요. 화살 같은 건 툼스톤에서 사 와야 합니다.”
“수리만 하지 제작은 안 하나 보네?”
“제작할 시간이 없어서 그럴 겁니다. 대장간이 하나밖에 없거든요.”
“툼스톤보다는 엑소도에서 대장간을 여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일단 어비스 안에서는 뭘 해도 금방 지치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툼스톤에서 열 시간 일한다면 엑소도에서는 그 절반밖에 못 합니다.”
“아! 그런 문제가 있군. 공기도 대수림보다 맑고 시원한데 왜 그렇게 금방 지치지? 이해가 안 되네.”
“학자들은 대기의 질이 바깥 세상과 달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엑소도에 있는 치료사들은 조금 다른 말을 하더라고요?”
“뭐라는데?”
“어비스의 저주 때문에 그런 거랍니다.”
뜻밖의 대답에 엘리오 일행의 이목이 메르데프에게 집중됐다.
“어비스의 저주라고?”
“예, 쉽게 지치는 것도 있지만, 어비스에 계속 머무르면 환각이나 환청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건 위험한 어비스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 아닌가?”
대륙의 모든 아카데미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었다.
어비스를 연구한 학자들도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것으로 설명했다.
“치료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비스를 벗어나면 치료를 받지 않아도 모든 증상이 사라지니……. 저주가 분명하다고 합니다.”
파비안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치료사들의 사회적 위치가 보잘것없기에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아카데미 출신들은 대체로 권위자의 의견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건 파비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강호에서 구른 엘리오는 다르다.
루나 마일러스와 파르톤 산의 풍광을 감상하던 엘리오가 물었다.
“메르 씨도 환각이나 환청을 경험했어?”
“예, 팔콘 용병단이 툼스톤으로 나간 것도 그걸 치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밖으로 나가면 치료가 되고?”
“그렇습니다. 툼스톤에서 하룻밤 묵으면 거짓말처럼 싹 사라집니다.”
“얼마나 오래 머무르면 환각이나 환청을 듣게 돼?”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한 달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밌네.”
엘리오가 관심을 보이자 파비안이 끼어들었다.
“워낙 위험한 곳이라 한 달이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겁니다.”
그것이 ‘어비스의 저주’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응임을 돌려 말한 것이다.
“파비안.”
“예?”
“어비스에 누가 더 오래 머문다고 생각해? 아카데미 교수? 치료사?”
“치료사요 하지만 그들은 무지합니다.”
“무지해도 어비스의 현상만큼은 아카데미 교수들보다 잘 알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거기까지. 한 달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저주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내 말이 맞죠? 성녀님?”
루나 마일러스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지식의 뿌리는 경험이니까.”
“들었지? 파비안. 너도 나랑 내기할래?”
“스트레스와 어비스의 저주요? 그거라면 저는 스트레스에 걸겠습니다.”
“내가 언제 어비스의 저주라고 했어?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잖아.”
“여하튼 저는 스트레스입니다. 오랜 세월 누적된 연구 결과를 얕보지 마십쇼.”
“나는 어비스의 저주이거나,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쪽에 걸지. 어때?”
“좋습니다. 그런데 뭘 거시게요?”
“솔론 남작처럼 백 골드 어때?”
“배, 백 골드요?”
파비안이 황당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그런 거금이 자신에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타인의 결점으로 자신의 결점을 고치라’는 말이 있다.
솔론 남작이 없는 돈으로 내기를 했다가 나락에 떨어진 걸 본 파비안은 고개를 저었다.
“저 돈 없습니다.”
“꼭 있는 돈으로만 내기에 임하지 않아도 돼. 솔론 남작도 그랬잖아.”
“솔론 남작의 현실을 보고도 그런 내기를 하라는 겁니까? 저는 못 합니다.”
“아카데미 교수들에 대한 믿음이 없구나?”
“돈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네 수중에는 없지만 이번에 한해 있다고 인정해 줄게. 백 골드 내기 어때?”
솔깃한 파비안은 저도 모르게 솔론 남작을 보았다.
순간 하워드 솔론 남작은 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파비안은 강하게 거부했다.
“싫습니다. 안 하겠습니다.”
“알았어. 아카데미 교수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거로 알게.”
“…….”
파비안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닌지라 못 들은 체했다.
문득 엘리오가 하워드 솔론 남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워드. 너는 어떻게 생각해?”
“예?”
하워드 솔론 남작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 주자 깜짝 놀랐다.
“치료사와 아카데미 교수들 중에 누구 말이 맞는 것 같냐고.”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클라우드 남작처럼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고아 백작과 성녀의 대화를 듣고 난 뒤로 왠지 자신이 없어졌다.
“좋아, 백 골드를 건다면 어디에 걸 거야?”
“저는 돈이 없습니다.”
“누가 걸래? 건다고 가정하면 어느 쪽에 걸 거냐고.”
잠시 고민하던 하워드 솔론 남작은 의외의 답을 했다.
“둘 중에 하나라면 치료사를 선택하겠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도 같지만요.”
“그래? 나랑 생각이 같네?”
그러자 파비안이 딴지를 걸었다.
“빚이 무섭네요. 기사의 양심보다 빚쟁이 눈치를 보고 있는 거잖습니까.”
“모두가 너 같은 줄 알아? 하워드는 그런 사람 아니야.”
엘리오가 또 이름을 불러 주자 하워드 솔론 남작의 얼굴이 환해졌다.
파비안은 더 반박하지 않았다.
들뜬 하워드 솔론 남작의 앞에서 계속 부정적인 발언을 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때 엘리오가 말했다.
“좋아! 하워드, 너를 위해서 내가 백 골드를 걸어 주지.”
하워드 솔론 남작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숨도 쉬지 않았다.
멍한 얼굴로 눈만 끔뻑이는 그를 대신해 파비안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없는 돈 내가 걸어 준다고. 하워드 말이 맞으면 빚에서 해방되게 될 거야.”
“틀리면요? 제 말이 맞으면 백 골드를 저에게 주실 겁니까?”
“너는 내기에 참여를 안 했잖아. 틀리면 조금 뻘쭘하고 마는 거지. 왜? 내기할래? 갑자기 사라졌던 아카데미 교수들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도발에 파비안은 ‘울컥!’했지만 넘어가지 않았다.
지금 백 골드를 받아 봐야 쓸 곳이 없는 반면, 내기에 지게 될 경우 감당해야 할 대가가 너무 컸다.
‘참자. 솔론 남작에게 그랬던 것처럼 몸으로 갚으라고 할 거야.’
거기까지 생각한 파비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합니다. ‘기사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오! 그것도 아카데미에서 배운 거야?”
“예.”
“좋은 거 배웠네. 아카데미 교수들이 영 바보는 아닌가 봐?”
이제 엘리오는 대놓고 아카데미 교수들을 비웃었다.
그래도 파비안은 흔들리지 않았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내기에 참가해 봐야 자신에게 돌아올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어비스에 대한 이야기가 시들해질 즈음, 메르데프와 타인록이 다시 움직였다.
잠시 후 엘리오 일행은 마침내 파르톤 산의 정상에 올랐다.
가야 할 개발 지역 방면을 보던 엘리오가 황당한 얼굴로 중얼 거렸다.
“뭐 이런 데가 다 있냐?”
파르톤 산 너머는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어려운 사막 지대였다.
누가 일직선으로 선을 그은 것처럼 산이 끝나는 지점부터 바로 사막이다.
좌우편을 봐도 마찬가지다.
뭐랄까? 창조신이 대충 만들다가 갑자기 손을 뗀 것 같았다.
기괴한 광경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파비안.”
“예?”
“우리가 저 사막에 들어섰을 때 말야. 여기서 마력총을 쏘면 어떻게 될 것 같냐?”
“기습당하기 딱 좋은 곳이네요. 그놈들이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을까요?”
그러자 엘리오가 메르데프에게 시선을 돌렸다.
“메르 씨, 개발 지역으로 가는 길이 여기 하나뿐이야?”
“지금까지 알려진 건 그렇습니다.”
“페트라 산과 에브리마 평원 쪽은?”
“둘 다 위험 지역과 맞닿아 있어서 개발을 하다가 중지한 상태입니다.”
“외길이라는 소리네?”
“그런 셈입니다. 기습이 우려된다면 해가 진 뒤에 사막으로 진입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팔콘 용병단도 느낌이 좋지 않으면 그렇게 하곤 했습니다.”
“어비스에 강도들이 그렇게 많아?”
“한 달을 넘기면 사람들이 난폭해져서 어떻게 돌변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돌겠네. 어비스 밖으로 안 나가는 사람들이 많은가?”
본래 용병과 강도가 종이 한 장 차이인데, 거기서 더 난폭해진다니!
“어비스에 오래 있을수록 폭력적으로 변하지만, 쾌감도 증대됩니다. 쾌감에 중독되어 그냥 눌러앉은 모험가와 용병도 많습니다.”
“개판이네.”
엘리오는 갑자기 어비스가 싫어졌다.
환각, 환청까지는 그렇다 쳐도 쾌감은 너무했다.
평화로워 보이던 엑소도(안전지대 마을)를 떠올리자 소름이 오싹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