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74
1274회. 울화로 마음이 뜨거워져서 미친 거야[走火入魔]
하늘로 솟구친 동굴 같은 거대한 입이 엘리오 일행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순간 엘리오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롱소드가 거의 동시에 뽑혀져 나왔다.
검광과 함께 묵직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가각!
가가각―!
오 미터나 되는 입이 허공에서 사 등분 되더니 검격의 후폭풍에 휘말려 뒤로 날아갔다.
이윽고 사 등분된 주둥이가 ‘후두둑!’ 소리와 함께 사막 위로 떨어져 내렸다.
곧이어 멀쩡한 몸통이 달아나려는 듯 꾸물거리며 모래를 파고 들어갔다.
뒤늦게 메르데프가 달려 나가 롱소드로 기가 데스 웜을 찔러 댔지만, 안타깝게도 두꺼운 껍데기에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악에 받친 얼굴로 기가 데스 웜이 모래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 후 메르데프가 헐떡거리며 돌아오자 파비안이 물었다.
“저 마물 이름이 뭐라고?”
“기, 기가 데스 웜인 것 같습니다.”
방금까지 마물에게 칼질을 하고도 그의 대답은 애매모호했다.
순간 파비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같다고?”
“기가 데스 웜이 거의 확실합니다.”
“메르데프.”
“예?”
“전에 데스 웜을 봤다면서?”
“그게 멀리서 봐 가지고……. 그런데 저놈은 기가 데스 웜이 분명합니다. 사람이 많으면 데스 웜은 모래 밖으로 나오지도 않습니다.”
두 사람의 말을 듣던 엘리오가 짜증 섞인 어조로 말했다.
“거기까지만 해. 그런데 땅 밑으로 저런 마물이 돌아다니는데 안전지대라고?”
“그게 사람이 뭉쳐다니면 덤비질 않으니까요. 안전한 편입니다.”
“어비스에서는 저 정도 위험은 위험도 아니다 이거야?”
“예.”
“대단하네.”
엘리오는 이세계의 사고방식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상계인데 어째서 인간의 생명을 이처럼 가볍게 여기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안전지대라고 마음 놓고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잠시 후 엘리오 일행은 다시 전진했다.
다행히 해가 질 때까지 다른 마물과 조우하는 일은 없었다.
그날 밤.
엘리오는 여느 때처럼 루나 마일러스와 함께 숙영지 주변을 산책했다.
“……그때 수인족을 처음 봤어요. 에밀리라고 머리 위로 사슴뿔이 돋아 있는데, 진짜 귀엽더라고요.”
“그런 애가 왜 마탑에 있었던 거지? 더구나 살려 달라고 했다면서?”
“수인이 야수들을 잘 조련한다는 이유로 잡혀 왔더라고요.”
엘리오는 말이 나온 김에 타불라 마탑에서의 일을 들려주었다.
“……마법사들이 그 애를 고향에 돌려보내는 것으로 잘 마무리가 됐어요.”
“흠, 그 뒤로 엑시티움에 두 번이나 당했다? 타불라 마탑과 무슨 원한이라도 맺었어?”
“예?”
엘리오가 놀란 눈으로 루나 마일러스를 보았다.
자신도 이제야 긴가민가하는데 에밀리의 이야기만 듣고 바로 타불라 마탑을 의심하다니! 진짜 타불라 마탑이 이 습격의 배후일까?
“엑시티움을 만들 수 있는 곳은 마탑밖에 없다면서. 그런데 남들은 평생 구경조차 해 볼 일 없는 엑시티움에 두 번이나 당했다면 당연히 마탑이 사주한 일이잖아. 무슨 원한이기에 그랜드 마스터를 죽이려 하는 거냐고.”
“딱히…… 타불라 마탑을 조금 부수기는 했지만 그건 잘 마무리됐어요.”
“그것 외에는 없다는 거야?”
“예. 그 뒤로 피차 얼굴 붉힐 일은 없었어요.”
“에밀리에게는 별다른 일이 없었고?”
“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타불라 마탑의 마법사가 그 애를 죽이려고 했었어요. 몰래 뒤따라가던 저와 파비안이 막았지만.”
“돌려보내기로 한 수인족 아이를 굳이 죽이려고 했다?”
“마탑을 지키려고 그랬다더라고요. 소문나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테니까 그런 거겠죠? 이세계도 체면이 목숨보다 더하다니까요.”
“그 말이 단지 체면만 의미하는 게 아닐 수도 있어.”
“예?”
“에밀리가 타불라 마탑의 중대한 비밀과 관계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야.”
“그렇게 어린 수인이요? 늙은 수인과 야수만 조련했다고 하던데. 아! 혹시 그 늙은 수인과 관계가 있나?”
“늙은 수인?”
“마탑에서 에밀리를 도와준 수인이 있어요. 이름은 까먹었는데……. 하여튼 마법사가 그 늙은 수인에 대해서 자꾸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마탑에서 왜 야수를 조련하는지 알아?”
“마탑에서 골리앗이라는 골렘을 만드는데……. 거기에 길들인 야수의 영혼이 필요하다고 들었어요. 2세대 골리앗이라나 뭐라나.”
“2세대 골리앗이라……. 그건 3세대, 4세대도 나올 수 있다는 말이구나.”
“그게 그렇게 되나요?”
“2세대에 야수의 영혼을 넣었다면, 3세대에는 어떤 영혼을 넣을까?”
“야수보다 더 좋은 걸 넣으려나요? 에이, 설마……. 그래도 사람은 아니겠죠? 그건 흑마법사들이 하는 짓과 다를 바가 없잖아요.”
“그런 게 외부에 알려지면 타불라 마탑이 망할 거야. 에밀리를 죽일 이유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
순간 엘리오는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은 지금까지 왜 그 간단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타불라 마탑의 마법사들은 에밀리를 납치하기 위해 숲지기 가족을 살해하고, 골렘에 야수들의 영혼을 갈아 넣는 연구를 해 왔다.
그야말로 인간성과는 완전히 담을 쌓은 괴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자들의 눈에 사람이 사람으로 보일까?
충격에 빠진 엘리오의 귓가로 루나 마일러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에밀리가 죽으면, 너의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되니까, 너도 죽어야 하고.”
“역시…… 배후는 타불라 마탑인가요?”
“엑시티움이 대거 사용된 순간 그건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비밀이야. 이제 타불라 마탑에서는 본격적으로 너를 죽이려고 들 거야.”
“에밀리는…… 어떻게 됐을까요?”
“살아 있기를 바라자꾸나.”
“…….”
엘리오는 눈을 질끈 감았다.
타불라 마탑 마법사들의 집요함을 생각하면 그건 망상에 불과한 까닭이다.
다시 눈을 뜬 엘리오의 눈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잠들어 있던 에둠의 에테르가 깨어난 것이다.
“내가 이 개새끼들을……. 누님, 마탑에 좀 다녀올게요.”
말을 마친 엘리오는 루나 마일러스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뒤이어 사막 하늘 위에서 구룡번신(九龍翻身)이 펼쳐졌다.
오래전 ‘어디서 오는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다[無所從來 亦無所去]’라는 구룡번신의 극의를 깨달은 엘리오다.
한순간 엘리오의 신형이 허공에서 ‘퍽!’ 하고 사라졌다.
공간 이동술로 제도의 마탑까지 날아간 것일까?
그러나 곧이어 사라지던 모습 그대로 허공에서 엘리오가 툭 튀어나왔다.
타불라 마탑의 마법사들을 만나고 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빠른 시간이다.
엘리오의 신형이 사막 위로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고개를 갸웃하던 엘리오가 다시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이윽고 구룡번신으로 사라지더니, 금방 같은 자리에서 툭 튀어나왔다.
마치 투명한 막에 막혀 튕겨 난 모양새다.
미련하게 같은 짓을 반복하는 그를 보다 못한 루나 마일러스가 소리쳤다.
“엘리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엘리오가 그녀의 옆으로 가볍게 떨어져 내렸다.
“불렀어요?”
엘리오의 눈에 감돌던 붉은 빛은 처음보다 많이 약해져 있었다.
“뭐 하는 거니?”
“구룡번신으로 타불라 마탑에 가려는데 잘 안 되네요? 이런 건 처음인데……. 왜 안 날아가지죠?”
“어비스라서 그럴 거야.”
“예? 어비스에서는 구룡번신이 안 돼요? 왜요?”
“그건…… 그보다 진정 좀 해. 눈빛이 그게 뭐야. 눈에 빨간 숯불이 있는 것 같다고.”
루나 마일러스의 지적에 엘리오는 몇 번 눈을 끔뻑거렸다.
그럴 때마다 붉은 기운이 조금씩 줄어들더니 마침내 본래의 눈빛으로 돌아왔다.
그의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루나 마일러스가 물었다.
“대화하다 말고 갑자기 왜 그런 거야?”
“타불라 마탑의 마법사 놈들을 잡아 족치려고요.”
“그래서 이 밤중에 혼자 미친 사람처럼 펄쩍거린 거야?”
“그게…… 구룡번신이 안 되니까.”
“한 번 안 되면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그럼 원인을 따져 봐야지. 내가 부르지 않았으면 지금도 계속 구룡번신을 펼치고 있었을걸?”
“그, 그러게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너 화가 나면 눈이 마족처럼 변한다고 했지?”
“예.”
“사람을 죽여도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고.”
“예.”
“울화로 마음이 뜨거워져서 미친 거야[走火入魔].”
“제가요?”
“응.”
“‘마음이 뜨거워져서 미친 거’면 쓰러지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람마다, 그가 익힌 무술마다 조금씩 달라. 너의 경우 아무 생각 없이 날뛰는 거지. 며칠 전에 암습자들이 마력총을 쏠 때도 그랬어. 마력탄이 빗발치는데 혼자 바보처럼 서 있다가 죽을 뻔했잖아.”
엘리오는 변명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흥분하면 손속만 잔인해지는 줄 알았는데 그런 부작용이 있었다니!
“화가 나면 너는 너를 화나게 한 것만 생각하게 돼. 그리고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거지.”
“…….”
“흥분한 멧돼지처럼.”
“누님, 멧돼지는 좀 너무 나간 거 아니에요?”
“아, 그런가? 맞아. 그건 멧돼지에게 실례지. 너와 달리 멧돼지도 위기를 느끼면 달아나니까. 하지만 너는 죽을 때까지 화만 낼 뿐이잖아.”
“저어, 누님. 다 저의 잘못입니다. 저는 멧돼지보다 못한 놈이에요. ‘마음이 뜨거워져서 미치는 거’를 고칠 방법이 없을까요?”
“한 가지 있어.”
“뭔데요?”
“내 신성력을 쏟아부으면 돼.”
“다른 방법은요?”
“어둠의 에테르를 몰아낼 수 있는 건 신성력밖에 없어. 지금 치료해 볼까?”
“싫어요.”
엘리오가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그가 주화입마의 치료를 거부하자 루나 마일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딱딱하게 굳은 그의 얼굴을 보면 진심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번처럼 정신을 잃지 않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
“너를 치료한다고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야.”
“그건 모르죠. 내 안에 있는 놈은 굉장히 질기다고요.”
구천기로도 녹이지 못한 어둠의 에테르니 어마어마한 신성력을 쏟아부어야 할 터였다.
그건 루나 마일러스의 생이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오는 죽으면 죽었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멧돼지처럼 죽겠다고? 이세계에 또 뭐가 너에게 위협이 될지 모르는데?”
“내가 더 조심할게요.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참으면 되잖아요.”
“전에는 안 참아서 그렇게 됐어?”
“네.”
엘리오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지금까지 거칠 게 없던 인생이라 눈곱만큼도 참지 않았다.
신도 죽였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다고.
하지만 엑시티움에 두 번이나 당하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세계의 인간은 야수보다 연약하지만, 마공학은 신만큼이나 강했다.
그걸 알게 되었으니 풀어 놓았던 마음을 추스리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못 참으면? 그래서 또 이성을 잃고 폭주하면 어떻게 할래?”
“…….”
엘리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안 그럴 자신이 있지만 미래는 모르니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때는 치료받겠다고 약속해.”
“누님.”
“약속해.”
“못 해요. 아니 안 해요. 그러다가 갑자기 누님이 사라지게 되면요? 나 때문에 그렇게 되면, 내가 마음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죽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야. 언젠가 강호에 돌아가면, 다시 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 누님과 지금의 누님이 어떻게 같아요!”
울컥한 엘리오가 소리를 버럭 질렀지만 루나 마일러스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완전히 똑같아. 그러니까 약속해. 다시 이성을 잃고 멧돼지처럼 날뛰면 치료받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