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73
1273회. 딱 한 번 봤습니다
엑소도의 뿌리는 개척 캠프다.
마을로 성장했음에도 엑소도는 개척 캠프의 특징을 고스란히 유지했다.
예컨대 태번, 상가, 식당, 술집, 잡화점 등에 일체의 간판이 없다.
이용자들이 알아서 찾아가는 방식이다.
상당히 불친절해서 영업이 안 될 법도 한데, 아직 망했다는 사람은 없다.
개척 캠프처럼 지금도 종종 하루 아침에 갑자기 주인이 바뀌곤 한다.
돈벌이가 쏠쏠한 태번이나 술집 들이 유독 심했다.
팔고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도박 빚이나 사망 등의 이유로 전 주인이 사라졌다.
그래서 용병단 하나쯤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태번이나 술집 등의 운영이 불가능했다.
오래된 태번인 이곳의 주인도 소드 익스퍼트의 용병 출신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주인의 힘이 강하면 손님들의 안전도 보장받는다.
그런 이유로 태번은 모험가와 용병으로 가득했다.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태번의 일 층 구석에 두 남녀가 마주 앉았다.
암살 조직 크레센트의 최고의원이었던 흑마법사 찰스 맨슨과 팔콘 용병단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우리아 샤를이다.
엑소도에서 잘나가는 태번은 창녀들의 주요 활동 무대이기도 한지라, 곳곳에서 젊은 여자들의 교태 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창녀들에 둘러싸인 아우리아 샤를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찰스 맨슨이 야릇한 눈으로 아우리아 샤를을 응시하며 말했다.
“왜? 이 자리가 불편한가?”
“당신의 의뢰를 수행하다가 아끼던 부하들을 다 잃었으니까요.”
“아, 의뢰. 그래서 결과는?”
어디지 느슨하던 찰스 맨슨의 눈빛이 한순간 서늘하게 바뀌었다.
“이런 곳에서 말해도 되나요?”
“괜찮다. 소리를 차단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아우리아 샤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7서클의 흑마법사쯤 되면 그런 것도 가능한 모양이다.
“라고아 백작 일행을 노리는 용병들이 있더군요. 그런데 그 들이 생각보다 마력총을 잘 다루기에 끌어들였어요. 조금이라도 뛰어난 사수들을 쓰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라고아 백작 일행이 파르톤 산을 넘어 사막으로 가더라고요.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쏟아부었죠. 고맙게도 라고아 백작이 이성을 잃고 날뛰더라고요. 덕분에 열 발 이상 맞는 걸 봤어요. 온몸에 피칠갑을 해서 곧 쓰러지겠다 싶었는데…….”
아우리아 샤를은 입이 타는지 벌꿀주를 한 모금 마셨다.
“엑시티움에 열 발 이상 맞았으면 바로 죽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발악을 하더냐?”
“이상한 마법을 쓰더라고요. 거짓말처럼 밤하늘에 롱소드가 가득 차는 것을 봤어요. 별들만큼이나 많았어요.”
“환영 마법을 썼나 보군.”
“그걸 본 순간 소름이 오싹 돋아서 모래 속으로 파고 들어갔어요. 한참 들어가는데 등 뒤에서 계속해서 폭발음과 함께 충격이 전해지더라고요.”
“…….”
“너무 무서워서 바람 마스크를 쓰고 나가지 않았어요.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주변이 잠잠한 것 같아 밖으로 기어 나갔죠. 그런데 주변의 모래 언덕이 평지로 변해 있더라고요. 모래에 묻혔는지, 데스 웜이 먹었는지, 용병들 시체는 보이지 않았어요.”
“라고아 백작은?”
“죽었을 거예요. 엑시티움에 맞아 몸이 너덜너덜했으니까.”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군.”
“그야 제가 모래 아래에 숨어 있었으니까요. 모래 밖으로 나갔을 때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엑시티움에 그 정도로 맞았으면 죽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흠.”
찰스 맨슨이 애매한 얼굴로 아우리아 샤를을 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엑시티움에 그 정도 맞았으면 죽었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라고아 백작의 죽음을 확인한 게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나도 그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의 의뢰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이의 있느냐?”
“하아! 어떻게 해 주면 되죠? 그 모험가들을 찾아가 확인하라는 건가요?”
“최고급 마력총 열 자루 값은 해야지.”
“그건 모두 사막에 묻혔어요.”
“네게 준 것은 온전한 물건이었다.”
“네에, 그랬죠. 그래서요? 용병들을 모집해서 그들의 뒤를 은밀하게 추적이라도 할까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소드마스터라는 것을 잊었느냐? 굳이 꼬리를 밟히고 싶다면 그래도 상관없다만.”
“그럼 어쩌라고요?”
“엑소도에서 다시 용병단을 재건하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려라. 어디를 갔든 한 달이 지나기 전에 다시 엑소도로 돌아올 것이다. 무리하지 않아도 그때가 되면 자연히 알 수 있을 게다. 라고아 백작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저에게 엑소도를 떠나지 말라는 소리군요?”
“설마 어비스에서 나갈 생각이었느냐?”
그러자 아우리아 샤를이 빈손을 들어 보였다.
“보시다시피 저는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어요. 용병단 재건이 아니라 마나석 채굴이나 약초 채집에 나서야 할 판이라고요.”
“쯧! 앓는 소리 하지 마라. 네가 모아 둔 돈이면 용병단을 재건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 엑소도에 돈이 없지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 않느냐.”
“제게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세요?”
아우리아 샤를이 찰스 맨슨의 눈치를 살폈다.
이번 의뢰를 깨끗이 정리하고 새 출발하려는데 어째 순순히 놔줄 것 같지가 않다.
“팔콘 용병단이 어비스에서 제법 잘나간다고 들었는데, 모아 둔 돈이 없다고? 내가 너에게 정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것 같으냐?”
“농담도 못 하겠네요. 알겠어요. 엑소도에서 모험가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릴게요. 그런데 당신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당신은 엑소도에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아시다시피 나는 용병이에요. 언제까지나 엑소도에서 당신을 기다릴 수는 없어요.”
“한 달 후에 이곳으로 오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때까지 모험가들이 엑소도로 돌아오지 않는다면요?”
“그럼, 다시 한 달 후에 찾아오겠다.”
“저는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들을 무작정 이곳에서 기다려야 하나요?”
“의뢰를 완수하려면 그래야겠지.”
“너무하시네요.”
아우리아 샤를이 입술을 삐죽였다.
마굴과도 다름없는 엑소도에서 살 걸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순간 찰스 맨슨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의뢰 대금이 최고급 마력총 열 정이다. 왕국인들은 구경도 할 수 없는 보물이지. 라고아 백작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네 목숨으로 배상해야 할 것이다. 일꾼을 고용해 사막에 묻힌 걸 발굴하겠다면 기다려 줄 수는 있다. 소문이 나지 않게 발굴할 자신이 있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지.”
“…….”
아우리아 샤를은 입술을 악물었다.
안전지대 사막에 파묻힌 마력총을 발굴한다?
물론 운이 따르면 몇 정은 되찾겠지만, 분실하는 게 더 많을 터였다. 다른 용병들이 바보처럼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목숨이 아깝다면 이곳에서 평생 몸을 팔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 말에 아우리아 샤를은 흠칫 몸을 떨었다.
뱀처럼 번들거리는 찰스 맨슨의 눈동자를 보니 농담 같지가 않았다.
“라고아 백작의 생사를 확인해 드릴게요. 그런데…… 만에 하나 그가 살아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때도 최고급 마력총을 물어내라고 할 건가요?”
아우리아 샤를이 이를 악물고 찰스 맨슨을 쏘아보았다.
‘최고급 마력총 열 자루와 엑시티움 서른 개로 그를 죽일 수 있다고 한 건 내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다행히 그녀와 내밀한 관계에 있던 찰스 맨슨은 그 정도로 저질은 아니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게 맞다.
애초에 그런 제안을 한 쪽이 타불라 마탑의 마법사였으니 말이다.
“나는 그의 생사만 확인하면 된다. 최고급 마력총은 되돌려 받지 않겠다.”
그 말에 아우리아 샤를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 고마워요.”
“천만에. 마력총과 엑시티움으로 죽일 수 있다고 한 건 나지 네가 아니지 않느냐.”
“그래도 당신이 물고 늘어지면 약자인 나는 당할 수밖에 없으니까……. 고맙다고 한 거예요.”
“말로만?”
찰스 맨슨이 다시 은근한 눈으로 아우리아 샤를을 보았다.
아우리아 샤를은 자신을 가지고 노는 그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뭐가 이 사람의 진짜 얼굴이지?’
흑마법사를 절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내가 다시 흑마법사와 어울리면 사람이 아니라 개다.’
그런 마음속 다짐과 반대로 그녀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럴 리가요. 제가 드릴 건 사랑밖에 없는데, 그래도 되죠?”
물론 사랑이 아니라 몸이다.
주변에 창녀들이 그득해서 그녀는 지독한 모멸감을 느껴야 했다.
***
어비스.
사막.
정오경.
선두에서 걸어가던 메르데프가 우뚝 멈춰 서자 타인록이 물었다.
“왜 그러나?”
“방금 저 앞에 있던 선인장이 모래 아래로 쑥 꺼지지 않았습니까?”
메르데프는 자신의 위치가 가장 밑바닥임을 알기에 모두에게 존대를 사용했다.
“나는 못 봤지만 당신이 봤다니 그랬겠지. 마수나 마물의 짓인가?”
“사막의 모래에 데스 웜이라는 마물이 살고 있습니다. 마물이지만 공격적이지 않아서 청소부라고 불리지요. 데스 웜들은 잡식 마물인데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먹이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가 데스 웜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엘리오 일행이 모여들었다.
“사람을 피해 다닌다는 건가?”
“아니요. 한두 사람일 경우에는 데스 웜도 공격합니다. 하지만 서너 사람들만 모여도 쥐 죽은 듯 모래 속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우리 앞에서 선인장을 먹어치운 겁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가 데스 웜일까요?”
“기가 데스 웜?”
“길이가 수십 미터 되는 거대한 데스 웜을 기가 데스 웜이라고 합니다. 사막에서 만나는 가장 큰 골칫덩이죠. 뭔지 몰라도 지금은 선인장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으니 잠시 기다려 보시죠.”
엘리오 일행은 한곳에 모여 삼십 미터쯤 앞에 있는 선인장 군락을 응시했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 키보다 큰 선인장들이 모래 속으로 쏙쏙 빨려 들어갔다.
한참을 지켜 보던 파비안이 물었다.
“메르데프, 데스 웜을 본 적이 있나?”
“딱 한 번 봤습니다.”
“어떻게 생겼나?”
“강철 피부를 가진 거대한 지렁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지렁이?”
“다만 입이 동굴처럼 뻥 뚫려 있는데, 그 입안에 창끝 같은 이빨이 수천 개가 돋아 있습니다.”
“그 안에 빨려 들어가면 가루가 되겠군.”
“맞습니다. 다행히 다른 마물들에 비해 덜 공격적이라 위험도는 상당히 낮습니다.”
엘리오 일행이 자신의 말에 집중하자 메르데프는 계속해서 설명을 늘어놨다.
“위험한 건 기가 데스 웜입니다. 그놈은 크기도 데스 웜보다 서너 배 이상 크지만, 사람들을 만나도 마구잡이로 덤벼들어서 아주……. 어?”
“왜?”
“데스 웜이 이쪽으로 오는 것 같습니다!”
엘리오 일행이 있는 곳과 일직선상의 모래가 분수처럼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엘리오 일행이 미처 피하기도 전에 모래 속에서 시커먼 뭔가가 툭 튀어나왔다.
지름 오 미터쯤 되는 동굴 같은 입이다.
동굴 같은 입천장에는 창끝같이 날카로운 이빨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