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72
1272회. 성녀님에게 감사하십쇼
한순간 시간이 정지했다.
아니, 정확히는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드마스터인 라르바 오마르 백작조차 하늘이 무너지는 검술에 놀라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말할 것도 없다.
호흡은 자동으로 일어나는 행위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한참 만에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하늘이 무너졌다.’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다.
정말 밤하늘이, 별들만큼이나 많던 검의 그림자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모래 언덕들이 평지가 됐다.
평생 검술 외길을 걸어온 그에게 암습자들의 생사는 이미 관심 밖이다.
그의 눈은 평지가 된 모래사막 위의 밤하늘에 고정되어 있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머리가 한창 검술의 이치를 더듬어 갈 때, 위태위태하게 서 있던 엘리오가 모래 위로 풀썩 쓰러졌다.
재빨리 달려가 엘리오를 쓸어안은 루나 마일러스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모여들었던 엘리오 일행은 군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루나 마일러스가 엘리오를 살피는 동안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 하워드 솔론 남작, 타인록은 암습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사막을 뒤지고 다녔다.
엘리오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피는 이내 루나 마일러스의 몸까지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우선 혈도를 찍어 지혈부터 했다.
펑펑 쏟아져 나오던 피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루나 마일러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지혈의 효과라기보다는 더 나올 피가 없어서 줄어든 것처럼 보여서다.
루나 마일러스가 떨리는 손으로 엘리오의 얼굴을 매만졌다.
믿을 수 없게도 엘리오는 죽어 가고 있었다.
영기지체로 환골탈태한 뒤로 반신의 경지에 이른 엘리오가 죽어 가다니?
그녀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상계의 인간이 만든 무기가 이처럼 어마 무시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니!
충격이 조금 가시자 그녀는 엘리오를 치료할 방법을 모색해 보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장기가 다발적으로 파열된 것을 치료할 방법은 없었다.
‘제발, 제발…….’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르른 그녀의 지혜도 이 순간 만큼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엘리오의 호흡이 조금씩 가늘어졌다.
가슴의 기복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되자 루나 마일러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라면 죽을 게 분명했다.
그녀는 간절하게 상계의 여신인 샤스트라 파라크티를 떠올렸다.
‘샤스트라 파라크티님! 엘리오를 살려 주세요! 죽어 가는 그를 치료해 주세요!’
그녀의 기도에 샤스트라 파라크티가 응답했다.
돌연 루나 마일러스의 머릿속으로 맑고 고아한 음성이 들려왔다.
―루나 마일러스. 나의 신성력이면 그를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여신의 말에 루나 마일러스는 이를 악물었다.
온 우주에서 그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고 값진 것은 없으니까.
‘상관없어요. 그를 치료해 주세요!’
―신성력을 쓰는 만큼 너와 나의 합일이 가까워진다는 걸 명심해라.
루나 마일러스는 망설이지 않았다.
자신이 이세계에 온 것은 그의 최후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윽고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샤스트라 파라크티님, 엘리오를 치료해 주세요.”
순간 밤하늘에서 달빛보다 짙은 신성력이 마치 폭포수처럼 사막 위로 쏟아져 내렸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롱소르를 치켜세우는 순간, 팔콘 용병단의 사수들은 사격에 더 집중했다.
그들의 눈에 젊은 모험가는 초짜 중에 초짜였다.
마력총의 사격이 시작되면 지면에 납작 엎드리는 게 당연하다.
심지어 소드마스터들도 처음에는 일단 웅크린다.
마력탄에 직격당하면 중상은 아니라도 부상 정도를 입기 때문이다.
가랑비에 속옷 젖는다는 말이 있다.
가벼운 부상도 중첩되면 중상이 되기에 소드마스터들도 일단 소나기를 피하는 심정으로 자세를 낮춘다.
그런데 목표물인 저 모험가는 표적이 되기 좋게 스스로 몸을 드러냈다.
죽여 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용병들이 사격에 몰입할 때 단장인 아우리아 샤를은 슬쩍 몸을 뺐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하물며 그랜드 마스터가 그냥 죽어 줄 리 있나.
그녀는 어떤 식으로든 반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반격이라고 해 봐야 용병 몇 사람을 죽이는 것에 불과할 테지만, 우라지게 재수 없는 그 몇 사람 중에 하나가 될 생각은 없었다.
용병 몇을 잃는 건 일도 아니다.
툼스톤에는 팔콘 용병단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용병들이 줄을 섰으니까.
그때 밤하늘이 유난스럽게 반짝였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리던 아우리아 샤를이 눈을 부릅떴다.
‘뭐, 뭐야!’
구름 한 점 없는 사막의 밤하늘이 롱소드 형상으로 가득했다.
순간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다.
‘저런 마법이 있다고?’
문득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마검사임을 떠올린 그녀는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허공 3미터 지점에서 몸을 뒤집으며 지면으로 에다포스를 펼쳤다.
에다포스는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적진을 돌파하는 그녀만의 필살기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 박혀 있던 롱소드들이 우박처럼 사막 위로 떨어졌다.
아우리아 샤를은 두더지처럼 모래 속으로 파고들었다.
불안한 예감대로 등 뒤에서 묵직한 충격이 쉬지 않고 전해졌다.
부하들의 생사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아우리아 샤를은 한 방울의 마나도 남기지 않고 에다포스에 쏟아부었다.
콰드드드―!
어비스의 모래가 가볍고 부드럽지 않았다면 진즉에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드럽고 가벼운 사막 모래는 소드 익스퍼트의 칼끝에 시원하게 길을 내 주었다.
미친 듯 파고 들어가던 아우리아 샤를은 몸을 둥글게 말고 마스크를 썼다.
어비스 사막의 모래 폭풍에 대비해 사 두었던 ‘바람 마스크’다.
‘이걸 여기서 쓰게 될 줄이야.’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 기괴한 마법의 공포에 몸이 덜덜 떨렸다.
모래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그녀는 극심한 피로감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우리아 샤를은 찍어 누르는 압박감에 눈을 떴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그녀는 마지막으로 본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피칠갑한 몸을 떠올렸다.
못해도 엑시티움에 열 발 이상 직격당했으니 지금쯤 죽었으리라.
그랜드 마스터의 마지막 발악다웠다.
‘부하들은 몇이나 살아남았을까?’
‘최고급 마력총은 몇 자루나 회수할 수 있을까?’
웅크린 채로 팔콘 용병단의 재건을 계획하던 아우리아 샤를은 천천히 팔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스슥―.
모래 위로 사람의 손 하나가 불쑥 솟아올랐다.
이윽고 모래 아래에서 사막 위로 한 사람이 꾸물꾸물 기어 올라왔다.
아우리아 샤를이다.
잠시 후 모래 밖으로 나온 그녀는 바람 마스크를 벗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흠! 하아!”
이윽고 아우리아 샤를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막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깨끗했다.
용병들의 시체는 물론 찰스 맨슨에게 받은 최고급 마력총도 보이지 않았다.
모래에 묻혔거나 사막 청소부인 데스 웜의 배 속으로 들어간 게 틀림없다.
“쯧쯧! 아까워라.”
용병들이야 다시 모집하면 되지만 최고급 마력총은 그렇지 못하다.
혀를 차던 아우리아 샤를은 파르톤 산을 향해 나아갔다.
비록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지만 지금은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
어비스 사막.
오아시스.
눈을 뜬 엘리오는 잠에서 깬 사람처럼 요란하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으아아아! 삭신이 뻐근하네.”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던 루나 마일러스가 빙그레 웃었다.
“일어났니?”
“내가 꿈을 꾼 건 아니죠? 싸우다가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말과 함께 엘리오는 자신의 가슴과 배를 더듬었다.
여기저기 엑시티움에 맞은 것 같았는데 어디 하나 아픈 구석이 없다.
“진짜 꿈인가? 응? 옷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네? 꿈이 아니었나 본데?”
그러자 근처에서 그가 깨기를 기다리던 파비안이 한마디 했다.
“꿈이라뇨! 다 죽어 가는 라고아 경을 성녀님이 살려 주셨습니다. 성녀님의 힐링은 기적입니다, 기적. 성녀님에게 감사하십쇼.”
엘리오가 계면쩍은 얼굴로 루나 마일러스를 보았다.
“누님에게 그런 재주도 있었어요?”
“일단은 성녀의 몸이니까. 샤스트라 파라크티님의 능력을 조금이나마 사용할 수 있는 거지.”
“와아! 몰랐네요. 그럼 이제 마음 놓고 다녀도 되겠네요? 다치면 누님이 치료해 줄 테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 신성력을 쓰면 안 돼.”
“왜요?”
“신성력을 쓰면 여신과 합일되는 시간이 단축되거든.”
루나 마일러스는 감추지 않았다.
자신이 사라지고 엘리오가 받게 될 충격을 생각하면 그래야 했다.
“…….”
순간 엘리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그녀의 수명을 깎아 먹었다니 기가 막혔다.
이를 갈던 엘리오가 버럭 소리쳤다.
“파비안!”
“예?”
“누구 짓이냐?”
“……용병입니다.”
“용병? 그게 다야? 그건 이미 알고 있던 거잖아. 배후를 알 수 있을 만한 다른 건?”
“기억 안 나십니까? 하늘에서 쏟아진 검에 모래 언덕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그게 평지가 되면서 용병들이 싹 다 모래 아래에 묻혔습니다.”
“그래서 단서가 하나도 없다고?”
“모래 더미 속에서 용병 시체 하나를 찾기는 찾았습니다.”
“소지품 뒤져 봤어?”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아는 사람? 설마 저번에 만났던 그 중대장?”
“예, 소지품을 뒤져 봤는데 용병패 외에 별다른 건 없었습니다.”
“그럼, 그놈들이 노리던 게 너일 수도 있다는 거네?”
그러자 루나 마일러스가 말했다.
“그건 아니야. 어비스 입구에서 우릴 노렸던 용병들이 포레스트 남작 일행이었을 거야. 그때 사용한 마력탄과 어제 사용된 마력탄이 달라.”
“그럼 포레스트 중대장의 시체는요?”
“두 그룹의 용병들이 투입됐던 거 같아. 입구에서 포레스트 남작 일행이 우리를 노리는 걸 누군가 보고, 나중에 끌어들인 것 같아. 어제 사용된 마력탄은 입구에서 사용된 것과 완전히 달랐으니까.”
“아!”
엘리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루나 마일러스의 설명을 들으니 어떤 상황인지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엑소도에 가면 마지막으로 레인 포레스트 남작 일행과 어울린 용병들이 누군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는 궁금해도 참아.”
“그래야겠네요. 그런데 여긴 어디죠? 나무도 있고, 물도 있네?”
“오아시스야. 칠 일 정도 더 가면 바다가 나온다는구나.”
“이곳에 오는 동안 신상 같은 건 못 봤죠?”
“응.”
엘리오가 실망한 얼굴을 하자 파비안이 한마디 했다.
“그렇게 발견하기 쉬우면 아직까지 ‘봤다더라’는 설로 남아 있겠습니까? 그런데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어제는 완전히 너덜너덜하셨는데.”
“보면 모르겠냐? 멀쩡하다.”
기운 찬 음성과 달리 엘리오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자신에게 쏟아부은 신성력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씨벌! 내가 병신이지. 엑시티움의 위험성을 알면서 왜 미친놈처럼 날뛰었을까?’
자신이 침착했더라면 쉽게 제압할 수 있었는데, 왜 광전사처럼 지랄을 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