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76
1276회. 카오스의 힘이 그렇게 강해요?
어비스 개발 지역.
사막에 들어선 지 7일째 되던 날, 선두에서 걷던 메르데프와 타인록이 멈춰 섰다.
이윽고 메르데프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외쳤다.
“바다입니다!”
뒤따르던 엘리오 일행의 걸음이 빨라졌다.
바다를 처음 봐서가 아니라 사막이 지겨운 마음에 서두른 것이다.
엘리오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 파비안은 피에스트라에서 몇 달 동안 항해를 한 경험이 있기에 시큰둥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내륙 사람들에게 바다는 동경의 대상인 까닭이다.
감수성 풍부한 크레아의 입에서 가장 먼저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아! 바다다!”
“이야! 보기만 해도 시원하네!”
하워드 솔론 남작이 호응하듯 말했다.
그러나 루나 마일러스와 성기사는 눈으로 감상할 뿐 딱히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도 바다를 본 덕분인지 언덕을 내려가는 사람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해안가에 도달하자 엘리오가 메르데프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항구가 있는 건 아닐 테고. 이대로 해안가를 따라가면 되나?”
말과 함께 엘리오가 좌우편 해안을 살폈다.
동서남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좌측과 우측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측으로 가면 페트라 산과 만나게 됩니다. 좌측은 저도 아직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좌측으로는 가 본 적이 없다고? 뭐가 있는데? 설마 미개척 지역이라도 되는 거야?”
“미개척 지역은 아니고 ‘저주받은 땅’이라 불리는 위험 지역입니다.”
“용케 누군가 개척은 했다는 거네?”
“위험 지역은 말이 개척이지 사실상 지도만 만든 수준입니다.”
“그래도 지도가 어디야. 가만, 개발 지역에서 신상을 봤다고 했으니까 좌측으로는 갈 필요가 없잖아?”
“그렇습니다. 우측으로 가시면 됩니다.”
“여기서 페트라 산까지는 얼마나 걸려?”
“한 달 정도 걸립니다.”
“이야, 한계를 초과한 날수네?”
피로와 난폭해지는 문제로 한 달 이상 어비스에 머무르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우측으로 가면 한 달 하고도 열흘 가까이 어비스에 머무르게 된다.
엘리오는 그것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래도 해안선을 따라가는 게 낫습니다. 열흘 정도 초과하는 건 견딜 만합니다.”
“신상이 목격된 곳도 이쪽 길이야?”
“예, 맞습니다. 이 길이 어비스 관리소에서 권장하는 이동 경로이기도 합니다.”
“한 달이 넘는 기간인데 권장하는 이동 경로라고?”
“가장 안전한 길이니까요. 관리인들은 피로와 난폭성을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한 달이라는 기간이 정확한 것도 아니고요.”
“아하.”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을 지켜야 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엘리오 일행은 다시 우측 해안가를 따라 이동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길은 내륙으로 꺾여 들어가 바다에서 점점 멀어졌다.
끝내 바다가 보이지 않게 되자 파비안이 선두 쪽을 향해 소리쳤다.
“해안선을 따라간다면서! 이게 어디를 봐서 해안선인가!”
그러자 메르데프가 답했다.
“지금은 지형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해안선이 나올 겁니다.”
“‘지금은’이라고? 페트라 산까지 해안선을 계속 따라가는 게 아닌가?”
“열흘쯤 지나면 완전히 내륙으로 들어갑니다.”
“쳇! 페트라 산까지 가는 줄 알았는데, 좋다가 말았네.”
자신도 처음에는 똑같은 말을 했기에 메르데프는 대꾸하지 않았다.
해안선을 따라간다고 해서 위험이 없는 건 아니었다.
사막의 청소부라 불리는 ‘데스 웜’이 시시때때로 접근했다가 멀어져 갔다.
사람 숫자가 적었다면 ‘데스 웜’이 조용히 물러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데스 웜’ 다음으로 위협이 됐던 건 ‘씨 크랩’이라 불라는 거대한 게다.
집채만 한 크기의 씨 크랩은 온순해서 먼저 덤벼드는 일이 없었지만, 그것도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흥분한 씨 크랩은 난폭하기 그지없다.
씨 크랩이 흥분할 때는 씨 크랩들끼리 싸울 때다.
싸움이 끝난 뒤에도 흥분은 바로 가라앉지 않고 서너 시간이나 지속된다. 이때의 씨 크랩은 온순함과는 거리가 먼 마물이다.
쌔액! 쌔액―!
모래 위에 쪼그리고 있던 ‘씨 크랩’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메르데프에게 달려들었다.
“으헉!”
순간 메르데프가 비명을 내지르며 내륙 방향으로 달아났다.
씨 크랩의 거대한 집게발이 이번에는 타인록을 향했다.
자존심 강한 타인록은 달아나지 않고 롱소드로 집게발을 후려쳤다.
터엉!
한쪽 집게발이 뒤로 튕겨 났지만 그것으로 씨 크랩의 흥분도가 더욱 상승했다.
씨 크랩의 다른 집게발이 타인록의 뒤통수로 날아갔다.
그때부터 타인록과 씨 크랩의 혈투가 시작됐다.
타인록은 너클스 산맥의 야인으로 ‘스몰 기가스’라 불릴 만큼 키가 크지만 씨 크랩 앞에서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래도 소드 익스퍼트 초입인 타인록은 오라 디퓨전으로 당당하게 맞섰다.
캉! 캉! 캉! 카앙―!
타인록의 롱소드와 집게발이 맞부닥칠 때마다 쇳소리가 울렸다.
한차례 접전 후 힘에서 밀린 타인록이 후다닥 뒤로 몸을 빼냈다.
타인록마저 달아나자 씨 크랩의 눈이 뒤따라온 엘리오 일행을 향했다.
쌔액! 쌔애액―!
잔뜩 흥분한 씨 크랩이 집게발을 ‘딱! 딱!’ 맞물리며 엘리오 일행에게 다가갔다.
파비안과 하워드 솔론 남작, 크레아가 뒷걸음질 쳤다.
그들보다 강한 타인록이 싸우다 달아났으니 당연한 행동이다.
성기사는 루나 마일러스 옆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씨 크랩이 성녀에게 돌진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게 틀림없었다.
좌우를 둘러보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그때 루나 마일러스와 나란히 서서 구경하던 엘리오가 롱소드를 가볍게 날렸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며 롱소드가 씨 크랩에게 날아갔다.
씨 크랩이 롱소드를 잡으려는 듯 집게발을 내뻗었다.
롱소드는 마치 나비처럼 씨 크랩의 집게발 사이를 날아다녔다.
딱! 따악―!
집게발이 허공을 움켜잡을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엘리오는 이기어검으로 씨 크랩을 바다로 유인했다.
흥분한 씨 크랩은 롱소드를 따라 점점 바닷물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마침내 씨 크랩의 전신이 물에 잠기자 엘리오는 롱소드를 거둬들였다.
목표를 잃어버린 씨 크랩은 물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차가운 바닷물에 흥분이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하고, 눈앞에 보이는 게 없어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묘한 얼굴로 구경하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물었다.
“그건 마법입니까? 검술입니까?”
“검술요.”
“아!”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미진한 얼굴을 하자 엘리오가 계속해서 말했다.
“영기를 몸 밖으로 발출해서 조종하는 건데 마나로도 가능할 겁니다.”
엘리오는 손가락으로 마나홀이 있는 심장에서 검결지까지의 이동 경로를 가리켜 보였다.
“그리로 마나를 인도하는 겁니까?”
“맞아요. 그다음 이 손가락 끝으로 마나를 방사해서 검에 닿게 하는 겁니다. 이 손가락을 소드핑거[劍訣指]라고 해요.”
오래전 파비안에게 ‘마나 혈관 이동술’을 배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엘리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 그게 소드핑거 검술이었군요?”
“뭐, 그렇죠?”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후 성기사의 옆으로 이동했다.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가 슬쩍 말을 걸었다.
“오마르 백작님은 라고아 백작님의 말을 알아들으셨습니까?”
“예.”
“허어! 역시 소드마스터가 되면 생각하는 게 남다른가 봅니다. 저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던데. 마나를 손끝으로 방사하라니……. 몸 밖으로 내보낸 마나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허허. 남들이 모르니 비전이지요. 알면 그걸 비전이라고 하겠습니까?”
“아! 비전. 혹시 오마르 백작님은 라고아 경과 같은 검술을 배우셨습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저와 클라우드 남작이 라고아 백작에게 검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
알메트 하레브가 놀란 눈으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힐끔 보았다.
북부의 유명한 소드마스터가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검술을 배우다니!
‘소드마스터에게 검술을 가르치다니. 성녀님의 눈에 든 인간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씨 크랩의 위험이 사라지자 엘리오 일행은 다시 해안선을 따라 이동했다.
한참을 걷던 엘리오가 문득 루나 마일러스를 불렀다.
“누님.”
“응?”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카오스의 힘이 구룡번신(九龍翻身)의 공간 이동술을 막았다고 했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어째서 영기로 검을 움직이는 건(이기어검) 가능한 거예요?”
“그 전에 내가 말한 걸 기억해 봐. 카오스가 무엇인지.”
“공허한 혼돈의 상태요?”
“맞아. 거기에 질서를 부여하신 분이 마나 프트라스님이시지. 질서는 마나의 근원이라 할 수 있어. 동시에 카오스와는 상극이고.”
“그런데요?”
“영기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마도 네 눈이 닿는 범위일 거야.”
“아! 구룡번신은 그 너머에 있어서 안 되는 건가요?”
“영기도 질서에 속한 힘이야. 카오스의 혼돈과는 상극인 셈이지. 네 눈이 닿는 곳은 통제가 되지만 그 이상은 혼돈에 휘말린다고 할까.”
“카오스의 힘이 그렇게 강해요?”
“응. 네 영기뿐 아니라, 마나의 운용에도 한계가 있어. 그게 어비스의 무서운 점이지.”
“카오스는 대체 뭐예요? 어떻게 마나까지 힘을 못 써요?”
“그건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있을 거야.”
“지금 가르쳐 주면 안 돼요? 아니면 누님도 잘 모르는 거예요?”
“반반.”
말과 함께 루나 마일러스가 웃으며 두 손으로 엘리오의 팔을 잡았다.
***
론디니움 제국.
제도 페트로폴리스.
타불라 마탑.
탑주의 집무실에 두 남녀가 마주 앉았다.
타불라 마탑의 탑주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과 원정군 참모장 레이드 코스탁 후작이다.
처음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대화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특히 레이드 코스탁 후작은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원정에 3세대 골리앗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하아! 지원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지원할 형편이 못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답답하다는 얼굴로 참모장을 보았다.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이제 겨우 프로토타입 제작에 성공한 3세대 골리앗을, 무슨 수로 원정군에 대량으로 공급한단 말인가!
“황태자 전하께서 3세대 골리앗을 확보하라 하셨소. 나는 원정군 총사령관이신 황태자 전하의 명령에 따를 뿐이오.”
“어디에서 오해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제 프로토타입 제작에 성공했을 뿐입니다. 정식 생산하기 전에 거쳐야 할 단계가 까마득하게 남았습니다.”
“문제가 발생해도 상관없소. 솔직히 황제 폐하께서는 3세대 골리앗보다 엑시티움에 더 기대를 걸고 있으니까.
필드 테스트를 전선에서 한다고 생각하시오.”
참모장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도 한풀 꺾였다.
“그렇다 해도 대량 생산은 불가능합니다.”
“마나석과 아머가 부족하다면 제국군에서 지원해 줄 수 있소.”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소울 스톤의 제작 성공률이 5퍼센트가 안 되는데 무슨…….”
“소울 스톤?”
참모장이 묻자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아차!’ 싶어 얼른 말을 돌렸다.
“3세대 골리앗에 들어가는 재료예요. 지금으로서는 출정식까지 한 기가 최선이에요.”
“안 될 말이오. 황태자 전하께서는 최소 열 기를 받아 오라 하셨소. 바탈리온 일 개 중대를 운영하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하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기막힌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황태자에게 3세대 골리앗의 성공을 흘렸더니 빚 받으러 온 사람처럼 저 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