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99
1299회. 그냥 강도가 한 짓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력탄이 날아들 때 보이는 기사들의 행동은 둘 중에 하나다.
총사를 처치하기 위해 돌진하거나 숨는 것이 그것이다.
타인록이 돌진할 때 파비안은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양쪽 끝은 절벽으로 막혀 있고, 출구는 미개척지뿐이었다.
그 미개척지에서 마력총을 쏘고 있으니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이내 파비안은 저 끔찍한 엑시티움의 목표가 자신들이 아님을 깨달았다.
만약 그랬다면 이미 죄다 죽었을 터였다.
‘저놈들 그냥 강도가 아니다!’
엑시티움도 그렇고, 전방이 아닌 후방을 노리는 것도 이상하다.
엑시티움은 소드마스터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전략 무기.
그걸 후방에 퍼붓고 있다는 건…….
‘노리는 게 오마르 백작님과 라고아 백작님이었구나!’
당장 그중 누구를 노리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라고아 백작 못지않게 오마르 백작도 정적이 많은 까닭이다.
순간 파비안은 뒤를 돌아보았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좌우편 절벽을 타며 달리고 있었다.
‘성녀님은?’
그의 시선이 협곡의 중앙으로 향했다.
피에 젖은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가 성녀의 앞을 지키고 있었다.
아니 지키고 있다기보다 그냥 인간 방패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수직의 절벽 면을 달려가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툭 떨어져 내렸다.
엑시티움에 맞은 것이다.
뒤이어 엘리오 라고아 백작도 퍼붓는 엑시티움에 결국 지면으로 내려왔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미동도 하지 않자 엑시티움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집중됐다.
그 와중에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롱소드가 뚝 부러졌다.
순간 파비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치명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가 가장 무섭다.
그는 용병단 잔당을 추격하던 하워드 솔론 남작과 크레아에게 소리쳤다.
“멈춰!”
그리고 하워드 솔론 남작과 크레아가 돌아보자 뒤쪽을 가리켰다.
“성녀님에게 돌아간다!”
말을 마친 파비안은 엑시티움이 날아드는 협곡으로 되돌아갔다.
엑시티움 수십 개가 쉴 틈 없이 날아가는 협곡을 본 하워드 솔론 남작은 멈칫했다.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도 아닌데 협곡으로 왜 간단 말인가?
성기사가 쓰러질 것 같으니 성녀를 지키러 가자는 것일까?
멈칫한 하워드 솔론 남작과 달리 크레아는 곧바로 돌아서 달렸다.
성녀에게 검술을 배운 그녀인지라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크레아마저 달려가자 어쩔 수 없이 하워드 솔론 남작도 발길을 돌렸다.
그 순간 찾아온 섬뜩한 느낌에 그는 고개를 쳐들었다.
“헉!”
머리 위로 기이한 질감의 검들이 우박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다?
그는 반사적으로 튀어 나갔다.
쿵―!
묵직한 폭발음과 함께 그가 서 있던 자리에 구덩이가 패였다.
그걸 본 하워드 솔론 남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한 아름은 됨 직한 구덩이 크기를 보니 파편만 없을 뿐 영락없는 마력포다.
저 검 하나하나의 파괴력이 마력포에 버금갈 줄이야!
그 끔찍한 검들이 자신의 주변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용병단 잔당들과 거리가 가까워 자신도 휘말리게 된 것 같았다.
그는 살기 위해 미친놈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쿠쿠쿠쿠쿵―!
죽음의 폭발음이 사방팔방에서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은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용병단의 경우 위치가 좋지 않았다.
천산검영의 외곽에 걸쳐 있던 파비안과 달리 용병들의 자리는 정중앙.
그들의 눈에는 사방팔방이 죄다 신비의 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먼저 마력총을 쏘던 용병들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중앙에서 조금 비껴 나 있던 미끼들도 달아나다 몸이 터졌다.
마나 유저들은 몸에 구멍이 났지만, 마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용병들의 경우 약한 육체가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마력포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몸으로 받았으니 당연하다.
한쪽 어깨가 날아간 헬독 용병단장은 시체들 틈에서 덜덜 떨었다.
‘이, 이건 꿈이야.’
악몽이 분명했다.
어디서부터 악몽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런 현실은 없다는 점이다.
마력포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신비한 검들이, 마치 우박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런 검술은, 아니 마법은 들어 본 적조차 없다.
검으로 펼치는 메테오 스웜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씨벌…… 어쩐지 엑시티움을 펑펑 내주더라니.’
의뢰자가 세상 물정 모르는 병신인 줄 알았더니 사기꾼이었다.
저건 이야기로나 전해지는 그랜드 마스터의 비기가 분명하다.
‘그래야 말이 되지…….’
확실히 소드마스터 둘을 처치하는 데 육십 정의 마력총과 이백 발의 엑시티움은 과했다.
‘쿵!’ 하는 폭발음과 함께 옆에 있던 시체들이 튀어 올랐다.
그 기괴한 검이 떨어진 모양이다.
‘고향에 가야 되는데…….’
문득 곰 같은 마누라와 어린 자식들의 환영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검의 화신은 그의 마지막 바람도 앗아 갔다.
가족들에게 손을 뻗는 헬독 용병단장의 머리 위로 검의 화신이 떨어져 내렸다.
쿵―!
헬독 용병단장의 몸이 주변의 다른 시체들과 함께 들썩거렸다.
그렇게 세 개 용병단이 미개척지 입구에서 몰살당했다.
시체는 물론 마력총까지 온전한 형태를 남긴 것은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의 손길에 하워드 솔론 남작은 눈을 떴다.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중 등에 강한 충격을 받고 넘어진 것까지 기억이 난다.
착각은 아니었던 듯 엎어져 있는 지금도 등이 욱신거렸다.
“끙…….”
앓는 소리와 함께 파비안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한순간 아찔한 느낌과 함께 몸이 휘청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크레아가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오라버니! 무리하지 마세요. 등의 부상이 심하세요.”
“어느 정도나?”
“성녀님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예요.”
“그 정도였다고?”
하워드 솔론 남작이 황당한 눈으로 크레아를 보았다.
살짝 비끼고 지나간 것 같은데 죽었을 정도의 부상이었다니?
“파비안 오라버니가 그러는데 하늘의 검이 마나 블레이드만큼이나 강하대요.”
“그건 나도 안다.”
검이 떨어진 자리가 패인 걸 본 하워드 솔론 남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았어요. 오라버니 등뼈가 다 부러졌었다는 거 모르죠? 제대로 맞았으면 아무리 성녀님이라도 치료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의 상태는 좀 어떠냐?”
말과 함께 하워드 솔론 남작은 주변을 살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 그리고 파비안이 보였다.
크레아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타인록 경과 성기사님은 죽었어요.”
“…….”
하워드 솔론 남작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용병들이 퍼부은 엑시티움의 숫자를 생각하면 희생자가 많은 건 아니다.
그래도 가족처럼 지내던 타인록과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가 죽었다니 가슴이 먹먹했다.
“하아! 성녀님은?”
“마지막으로 오라버니를 치료하고…… 사라지셨어요.”
“혼자 떠나셨다는 것이냐?”
하워드 솔론 남작은 성녀가 교단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교단 외에 달리 갈 곳이 떠오르지 않아서다.
“아뇨. 성녀님의 몸이…… 안개처럼 허공으로 흩어져서…… 사라지셨어요.”
“왜? 설마 신성력을 다 써서 그렇게 된 걸까?”
“신성력은 다시 채우면 되잖아요. 자세한 건 라고아 백작님께서 아세요. 라고아 백작님과 대화를 나누신 뒤에 그렇게 된 거라.”
하워드 솔론 남작은 급히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황망한 얼굴로 앉아 있는 백작이 눈에 들어왔다.
적막한 가운데 시간이 흘렀다.
밤이 깊었음에도 엘리오는 천막이나 침상 따위를 꺼내지 않았다.
그는 성녀를 떠나보낸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이 다가가 말을 붙여 보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일체의 답을 하지 않았다.
기온이 쌀쌀해지자 크레아가 나뭇가지를 주워다 불을 피웠다.
“용병 할 때 쓰던 부싯돌을 버릴까 하다가 그냥 가지고 다녔는데……. 이렇게 써먹네요.”
크레아가 멋쩍은 얼굴로 모닥불 앞에서 손을 탁탁 털었다.
대견한 눈으로 지켜보던 파비안이 그녀를 칭찬했다.
“수고했다. 네 덕분에 오늘 밤 추위를 면하게 됐다. 빨리 라고아 경이 마음을 추스르셔야 하는데…….”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이야기가 나오자 하워드 솔론 남작이 슬쩍 물었다.
“성녀님이 라고아 백작님과 말씀을 나눈 후에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형님은 성녀님이 왜 사라지셨는지 아십니까?”
“몰라. 성녀님이 라고아 경과 따로 말씀을 나누셨거든.”
“정말 안개처럼…….”
“그만.”
더 말하지 말라는 듯 파비안이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막아 보였다.
평소와 다른 진중한 모습에 하워드 솔론 남작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앞으로 성녀님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 마. 라고아 경께서 직접 말씀하시면 모를까. 묻지도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마. 크레아 너도.”
“예.”
하워드 솔론 남작과 크레아가 한목소리로 답했다.
문득 하워드 솔론 남작이 물었다.
“그런데 형님과 크레아는 괜찮았습니까? 엑시티움이 빗발치는 곳으로 달려갔잖습니까?”
“엑시티움보다 무서운 게 라고아 경의 검술이다. 그걸 피하기 위해 안전한 곳으로 가자고 했던 거다.”
“아…….”
성녀라는 말은 빠졌지만 하워드 솔론 남작은 바로 알아들었다.
그때 파비안이 ‘성녀님에게 돌아간다!’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성녀님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들어 보니 그쪽으로 대피하라는 소리였다.
“라고아 경이 화가 나면 폭주를 하는데, 거기 휘말리면 그냥 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돼.”
“저도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너는 검술이 미치는 영역의 가장자리에 있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거야. 조금만 더 빨랐으면 다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형님이 하신 말뜻을 생각하느라 잠깐 머뭇거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어. 다 자기 운명대로 사는 거지. 네 운은 이번에 다 썼다고 생각해라.”
“예. 그런데 대체 어떤 놈들일까요? 총병의 숫자도 그렇지만, 엑시티움은 돈이 많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노천 광산과 사막에서의 습격도 그냥 강도가 한 짓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절대 아니지.”
“그 정도 동원력이면 배후에 제국이나 왕국이 있는 거 아닙니까?”
“그들은 아닐 거야.”
“아니라고요?”
하워드 솔론 남작이 놀란 얼굴로 파비안을 보았다.
제국이나 왕국이 아니면 대체 누가 그 정도 재력과 권력을 가졌다는 것일까?
“제국이나 왕국이 얼마나 라고아 경과 오마르 경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서로 자기들을 도와 달라고 사정한다면 모를까? 밑도 끝도 없이 암살은 말도 안 되지.”
“제국과 왕국 외에 두 분을 노릴 만한 세력이 있습니까?”
“마탑.”
“마탑이 왜요?”
하워드 솔론 남작이 황당한 눈으로 파비안을 보았다.
물론 세력과 재물만 놓고 보면 마탑도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된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져 산다는 마탑에서 왜 두 사람을 노린단 말인가?
“제도에서 라고아 경과 마탑이 충돌한 적 있거든. 마법사들이 속 좁고 뒤끝 길기로 유명하잖아. 그래서 그런 걸 수도 있어.”
파비안은 이번 암습의 배후로 마탑을 의심했다.
마법사들의 고고한 자존심과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마음을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