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00
1300회. 나도 저러시는 모습은 처음 본다
엑소도의 술집.
흑마법사 찰스 맨슨은 가볍게 술을 마시며 용병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세 개 용병단이 엑소도를 떠난 지도 어인 칠 일.
미개척지에서 암습을 할 게 아니라면 이제 슬슬 돌아올 때가 됐다.
어비스는 넓지만 소문이 빠르다.
무엇보다 숨어서 지켜보는 눈이 많아서다.
전력이 약한 그룹은 다른 무리와 만나는 걸 꺼려해 항상 기척을 지우고 다녔다.
그런가 하면 왕국과 용병 길드는 주요 개척지에 염탐꾼을 파견해 감시하기도 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목격자가 없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칠 일이면 세 개 용병단의 생존자가 돌아오든, 누군가 우연히 목격했든, 혹은 곳곳에 깔려 있는 감시자들을 통해서든 말이 나올 때가 되었다.
구석진 자리에서 초저녁부터 술을 마시던 용병들의 음성이 조금 높아졌다.
“사흘 전 해골 골짜기에서 벌어진 교전 말야.”
“살벌했죠.”
“남부 왕국군과 제국 모험가들이 충돌한 거겠지?”
“박살 난 마력총 잔해를 보면 답 나오잖습니까. 대충 보니 백 정 가까이 되는 것 같던데. 마력총을 그렇게 가진 용병단은 없습니다.”
“야아! 마공학이 그렇게 발전했어도 아직은 마법의 상대가 안 된다는 거네?”
“그게 또 왜 그렇게 연결됩니까?”
“너도 벌집처럼 변한 미개척지 구릉을 봤잖아. 그 박살 난 마력총들 하며……. 마력총 수백 발을 쏘면 뭐 하나. 광역 마법 한 방에 싹 다 죽어 나가는데.”
그러자 옆자리에 있던 다른 용병이 끼어들었다.
“듣자 하니 제국 쪽 용병 같은데, 과장이 심하시네. 제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마력총 수백 발이면 벌집이 됐을 텐데, 무슨 광역 마법 한 방에 싹 다 죽였다는 거요? 제국 쪽에서 그렇게 소문내라고 합디까?”
한순간 소란하던 주변이 조용해졌다.
옆자리 용병은 사내의 말을 제국 쪽 공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술집에 있는 용병들의 이목이 두 그룹으로 집중됐다.
그들 모두 왕국 아니면 제국 출신이라 자신의 일처럼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처음에 말을 한 용병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제국 쪽이라니? 거 되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마시오. 우리는 쉐이드 왕국의 용병이오.”
말과 함께 사내가 품에서 용병패를 꺼내 옆자리 용병에게 보여 주었다.
그래도 옆자리 용병은 의심의 눈길을 바로 거두지 않았다.
제국쯤 되면 용병패 정도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가 때이니만큼 조심합시다. 어비스는 지상과 상황이 조금 다르지 않소. 왕국과 제국이 서로 돕지 않으면 개척지도 잃게 될 판인데……. 양측이 교전을 했니 어쩌니 하면 되겠소?”
그러자 쉐이드 왕국 용병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솔직히 어느 쪽이 왕국군이고 어느 쪽이 제국인지는 모르겠지만, 해골 골짜기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던 것은 사실이오.”
“당신들이 마력총 수백 발을 쏘는 걸 보았소?”
“봤으니 하는 말 아니오. 초저녁이라 시뻘건 마력탄의 궤적이 멀리서도 똑똑히 보였소.”
순간 옆자리 용병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지금 마력탄의 궤적이 시뻘겋다고 했소?”
“그렇소만.”
“당신, 혹시 영지전에 참가해 본 적 있소?”
“없소.”
“그럴 줄 알았소. 영지전에 참전해 본 사람이라면 그런 거짓말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총병 출신인데, 마력탄은 밤에 봐도 궤적이 생기질 않소. 오히려 어딘가에 제대로 박히면 파란 불꽃이 튀지. 만에 하나 궤적을 봤다 해도 파르스름하다면 모를까? 시뻘건 마력탄은 없소.”
“아니, 진짜 시뻘겠다니까. 나만 본 게 아니오. 야, 말 좀 해 봐. 그게 빨갰냐? 파랬냐?”
쉐이드 용병과 한자리에서 대화하던 젊은 용병이 즉시 답했다.
“용암처럼 검붉었습니다. 절대 파란빛은 아니었습니다.”
“들었소? 진짜 빨갰다니까. 아, 진짜! 그쪽도 백여 개의 빨간 빛줄기들이 계곡 안쪽으로 날아가는 걸 봤어야 하는데.”
그는 처음에 말한 마력총 숫자가 있는지라 ‘백여 개의 빨간빛줄기’라고 살짝 부풀렸다.
하지만 열 개든 백 개든 옆자리 용병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내가 아는 한 빨간빛의 궤적을 가진 마력탄은 없소.”
중년의 용병은 더 관심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상체를 돌렸다.
본래 전력이 약해 숨어 다니던 쉐이드 왕국의 용병들은 반박하지 않았다.
자꾸 봤다고 주장해 봐야 말싸움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대화의 주제가 바뀌자 찰스 맨슨이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흘 전이라…….’
그 정도면 아직 격전의 흔적은 남아 있을 터였다.
술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간 그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다음 날 새벽.
해골 골짜기에 한 초로의 노인이 나타났다.
지난밤 엑소도의 술집에 있던 흑마법사 찰스 맨슨이다.
해골 골짜기를 유심히 살피며 전진하던 그의 걸음이 골짜기 끝 지점에서 멈춰 섰다.
절벽과 맞닿은 아늑한 곳에 ―흙이 채 마르지 않은― 무덤 두 개가 있었다.
“훗!”
두 개의 무덤 중 하나는 신적 존재의 소멸과 관계가 있으리라.
마침내 복수와 의뢰를 완수했다는 생각에 그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어진 미개척지를 살폈다.
역시나!
쉐이드 왕국 용병들의 말처럼 격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체는 그사이 야수가 먹어 치웠는지 안 보였지만, 움푹움푹 패인 지면에 널린 마력총 조각들은 자신이 용병단에 내어 준 게 분명했다.
그는 흙에 반쯤 묻혀 있던 용병패 하나를 주워 들고 살폈다.
음각된 뱀 문양을 보니 바이퍼 용병단이다.
“쯧! 불쌍한 놈들.”
광역 기술에 당해 달아날 틈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던 모양이다.
용병패를 내던진 그는 다시 두 개의 무덤으로 돌아갔다.
세 개 용병단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 일행을 공격한 것은 확실했다.
“두 개 중에 하나는 라고아 백작이겠지?”
말과 함께 그가 손을 휘저었다.
땅이 꿀렁거리더니 이내 무덤의 흙더미가 물처럼 흘러내렸다.
의심 많은 마법사답게 엑소도에서 모험가 일행을 기다리느니, 지금 자신의 두 눈으로 시체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썰물처럼 흙이 빠져나가고 두 구의 시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는 옷가지로 덮여 있었지만 복장을 보니 둘 다 남자다.
찰스 맨슨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이윽고 그는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격에게 다가갔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체형은 다른 한 구의 시체처럼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찰스 맨슨의 손이 시체의 머리를 가리고 있던 옷을 잡아당겼다.
‘이런!’
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일 거라 짐작했는데 웬 중년의 사내가 나왔다.
그래도 혹시 몰라 이번에는 거구의 시체를 덮은 옷까지 걷어 냈다.
역시나 얼굴 선이 굵은 중년 사내다.
‘제기랄! 그럼 누가 죽었다는 거지?’
교활한 사람과 달리 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얼마 전 별은 분명히 신에 필적하는 영웅의 죽음을 알려 주었다.
그게 엘리오 라고아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누군가를 의미했던 모양이다.
허탈한 얼굴로 서 있던 찰스 맨슨은 엑시티움에 생각이 미치자 미개척지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그것을 회수하려는 것이다.
부서진 마력총 근처를 샅샅이 뒤졌지만 엑시티움은 보이지 않았다.
용병들이 다 사용했든지, 이곳을 지나던 누군가 집어 간 것이리라.
그는 용병들이 모두 사용했기를 바랐다.
다른 용병들 손에 엑시티움이 들어가면 그것도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위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배후에 마탑이 있다는 걸 알 테지…….’
마탑이 털리면 자신의 존재도 곧 드러나게 될 것이다.
찰스 맨슨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페트라 산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
미개척 지대.
타인록이 사망한 뒤에도 홀로 선두를 지키던 파비안이 무심코 말했다.
“슬슬 케라톱스 서식지에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뒤늦게 타인록의 죽음을 자각한 파비안이 스스로 대답했다.
“땅에서 유황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케라톱스 서식지네. 어? 케라톱스다!”
파비안이 저도 모르게 우뚝 멈춰 섰다.
30미터쯤 전방, 갈라진 땅 위로 솟아오르는 하얀 연기들 사이에 악어만 한 크기의 뿔 달린 도마뱀이 서 있었다.
코뿔소처럼 코 부위에 솟은 거대하고 날카로운 뿔이 왠지 위험해 보였지만, 온순하다는 소문 그대로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뒤따라온 하워드 솔론 남작이 말했다.
“뿔이 무슨 창끝처럼 날카롭네요?”
“자기도 마물이라는 거지. 저게 미쳐 날뛴다고 생각하니 오싹하다.”
크레아도 한마디 거들었다.
“또 어떤 놈들이 케라톱스를 자극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 말에 섬뜩한 느낌을 받은 파비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시야가 닿는 거리에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휴우!”
파비안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요즘 파비안은 암습의 여파로 작은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형님, 너무 예민하신 거 아닙니까?”
하워드 솔론 남작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파비안을 보았다.
해골 골짜기의 암습 이후 파비안은 특유의 여유를 잃은 모습이었다.
“라고아 경이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나라도 정신 바싹 차려야지.”
“라고아 경은 괜찮아지시겠죠?”
요즘은 하워드 솔론 남작과 크레아도 파비안처럼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라고아 경’으로 호칭했다.
그래서 그런지 ‘모험가님’이라고 부르던 것보다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당연하지.”
“걱정입니다. 요즘 통 말씀이 없으셔서. 전에도 저런 적이 있으십니까?”
“나도 저러시는 모습은 처음 본다.”
그러는 동안 엘리오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선두에 합류했다.
넋 나간 얼굴로 서 있는 엘리오를 대신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물었다.
“왜 멈춰 선 건가?”
“케라톱스 서식지에 도착한 것을 알려 드리려고요. 저기 창날처럼 생긴 뿔을 달고 있는 놈이 케라톱스입니다.”
“이곳이 그 유황 지대군.”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용병 길드에서 잡부를 고용해 유황을 캐러 이곳까지 온다고 들었는데 조용했다.
“저기 땅 밑에서 올라오는 하얀 연기가 유황 가스 같습니다. 벌써부터 숨이 막히는 것 같네요. 조금 우회하더라도 가스가 덜한 곳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사람이 보이면 유의해서 살피게. 잡부로 위장한 암습자들이 케라톱스를 자극할 수도 있으니.”
“예, 그런데 라고아 경은 별말씀 없으셨습니까?”
파비안의 물음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성녀가 사라진 뒤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은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을 울리는 그랜드 마스터가 아니라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저래서야 우샤스 운드라와 싸울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성녀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보통 관계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녀가 사라진 게 그렇게나 충격받을 일인지는 모르겠다.
‘성녀는 언제고 떠날 존재인데…….’
이건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이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