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05
1305회. 나는 왜 하늘에 빌고 있지?
엘리오의 고민을 빙자한 명상이 길어졌다.
그러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그의 주변에 아무도 가지 못하게 했다.
뒤늦게 파비안도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상태를 알고 제 머리를 후려쳤다.
‘딱!’ 하는 소리에 놀란 하워드 솔론 남작이 그를 돌아보았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라고아 경이 수련 중인 걸 모르고 방해를 한 것 같아서.”
“저도 날파리를 쫓아내려고 손을 휘저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지?”
파비안은 금방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하워드 솔론 남작은 빠른 그의 태도 변환에 이제는 놀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라고아 경의 경지에도 수련할 게 있습니까? 그랜드 마스터면 검사 최후의 경지에 도달한 거 아닙니까?”
“신의 경지를 노리시는지도 모르지. 그러실 만하잖아.”
“인간이 신이 될 수 있습니까?”
“신이 별거냐? 인간의 경지를 초월하면 신이지.”
엘리오가 태양신을 죽이는 걸 본 파비안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하워드 솔론 남작은 그것도 말이 된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간 ‘득물’에 대한 엘리오의 고민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비스의 혼돈으로 생긴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가만 그러고 보니 나는 왜 하늘에 빌고 있지?’
천둔검을 사용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일찍이 검선 여동빈은 자신의 천둔검을 하늘에 감추었다.
그걸 꺼내 쓰고 돌려놓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하늘을 향했다.
하지만 여동빈의 천둔검은 파괴됐고, 저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자신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 손을 벌리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무중생유(無中生有)로 만들고, 여동빈처럼 허공에 숨긴 뒤에 했어야 할 일이었다.
‘이런 멍청한 놈.’
뒤늦게 엘리오는 혼돈이 아니라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천둔검과 같은 법보를 만들어 보겠다고 너무 그것에 집착했다.
부지불식중에 천둔검을 찾으니 될 리가 있나.
순간 기다렸다는 듯 구천기가 단전에서 맹렬하게 끓어올랐다.
구천기의 본질은 허무다.
루나 마일러스와 사별 아닌 사별을 경험한 엘리오의 구천기는 이전과 확연하게 달랐다.
돌연 엘리오의 앞 허공에 홍염의 불길이 피어났다.
화르르륵―!
불길은 지옥의 겁화처럼 타오르더니 이내 청색을 거쳐 순백으로 변해 갔다.
츠츠츠츳―!
엘리오는 득물(得物)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대장장이가 쇠를 단련하듯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떠올렸다.
고오오오―!
마침내 백색 불꽃을 튀기며 순백의 불길이 사그라졌다.
파직! 파직! 파직―!
구천기로 만들어진 길죽한 하얀 덩어리에서 백색 불꽃이 쉬지 않고 튀었다.
엘리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콰직! 콰직! 콰직!
이번에는 백색 덩어리가 불꽃을 튀며 압축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중생유로 만든 순백의 덩어리는 형상을 갖추었다.
잠시 후 엘리오의 앞에 거대한 대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롱소드의 세 배쯤 되는 압도적인 크기다.
불꽃이 모두 사라졌다.
엘리오는 더 이상의 제련은 불가능함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하아!”
그는 비로소 참아 두었던 숨을 길게 토해 냈다.
얼굴에 맺혀 있던 땀방울들이 비 오듯 아래로 흘러 떨어졌다.
자신의 염원이 컸던 탓일까?
아니 어쩌면 지금의 구천기가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검 한 자루를 만드는 데 너무 힘이 들어간다.
천자마인 태양신 카마 데비아스와 싸울 때보다 몇 배는 고된 느낌이다.
바다만큼이나 많던 구천기가 절반쯤 줄어든 정도면 말 다했다.
‘어비스의 혼돈 속에 만드느라 더 어려운 거겠지?’
엘리오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대검은 그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늘고래처럼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천천히 대검을 움켜잡았다.
여전히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검은 무식하게 커 보이는 것과 달리 깃털처럼 가벼웠다.
‘이거 너무 가벼운 거 아닌가?’
병기가 너무 가벼워도 위력이 반감된다.
엘리오는 무심코 대검으로 여태 앉아 있던 바위를 쿡 찍었다.
쑤욱―.
마치 두부를 찌른 것처럼 대검이 바위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
저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깃털처럼 가벼운 것에 비해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바위에 대검을 꽂아 넣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무래도 대검에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서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 등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눈치를 보던 파비안이 물었다.
“라고아 경, 지금 뭘 하신 겁니까?”
“보면 몰라? 내 롱소드가 부러져서 새로 만들어 봤다. 어때?”
“아니,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떻게 저런 걸 만드신 겁니까?”
“있고 없고는 다 마음에 달려 있는 거야. 가르쳐 줘도 넌 몰라. 그냥 그러려니 해.”
“그건 마법입니까?”
파비안은 아무리 봐도 검술과는 거리가 먼지라 마법이려니 생각했다.
“그래, 마법이라고 치자.”
엘리오는 건성으로 대꾸했지만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워낙 유명한 마검사니 마법의 하나로 생각한 것이다.
파비안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대검을 살피며 말했다.
“전에 쓰시던 그 롱소드(천둔검)와는 크기나 모양새가 완전히 다른데요?”
“본질은 같아. 만든 사람이 다르니까 다른 모양이라고 생각해.”
“전에 쓰시던 롱소드는 다른 사람이 만든 겁니까?”
“어.”
“그런데 라고아 경의 키를 생각하면 너무 큰 거 아닙니까? 이런 크기면 거인족들에게나 맞을 것 같은데…….”
“가벼워서 괜찮더라고.”
“가볍다고요?”
파비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롱소드 세 개쯤 되는 크기인데 가볍다니 영 믿기지 않아서다.
“제가 한번 들어 봐도 되겠습니까?”
“해 봐.”
파비안이 대검을 한 손으로 잡아 뽑았다.
아니, 뽑으려 했다.
그러나 바위에 박힌 대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바위의 일부분이 된 것 같았다.
오기가 치밀어 오른 파비안은 두 손으로 검 손잡이를 잡고 힘을 썼다.
상체를 뒤로 젖히며 용을 썼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 가며 힘을 쓰던 파비안이 뒤로 물러났다.
“와아! 안 뽑히네! 왜 안 뽑히지?”
그러자 이번에는 마검사인 하워드 솔론 남작이 나섰다.
“라고아 경, 제가 해 봐도 됩니까?”
“얼마든지.”
하워드 솔론 남작이 냉큼 바위 위로 올라가 두 손으로 대검 손잡이를 잡았다.
그는 자신의 팔에 버프까지 부여해 힘을 썼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하워드 솔론 남작은 파비안처럼 녹초가 될 때까지 매달리지는 않았다.
파비안이 안 되는 걸 봤기에 적당한 선에서 물러났다.
크레아도 호기심에 허락을 구하고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향했다.
대검을 유심히 살피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입을 열었다.
“라고아 경?”
“오마르 경도 해 보시게요?”
“이런 기회가 자주 있는 건 아니니까요. 나중에 손주들이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 보세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바위로 성큼 올라가 대검 손잡이를 잡았다.
손바닥에 잡히는 느낌이 묵직한 게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는 순수하게 육체의 힘만으로 대검을 잡아 뽑았다.
역시나!
대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깊게 박혔는지 대검과 바위가 한 몸처럼 느껴진다.
잠시 멈칫하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그그극―!
그제야 대검이 천천히 바위에서 빠졌다.
구경하던 파비안과 하워드 솔론 남작, 크레아가 ‘오오!’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체구 역시 큰 편이었지만 대검에는 맞지 않았다.
내친김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대검을 들고 휘둘러 보았다.
붕! 붕! 부웅―!
소드마스터답게 날카로운 파공성이 주변에 울려 퍼졌다.
세 번 대검을 휘둘러 본 후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보기보다 훨씬 더 무겁군요. 라고아 경이 들고 있을 때는 가벼워 보였는데.”
말을 마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대검으로 힘껏 바위를 내리찍었다.
콰드득―.
기묘한 소리와 함께 대검이 바위에 박혔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처럼 대검을 바위에 꽂자 파비안 등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역시! 소드마스터는 다르군요!”
“대단하십니다!”
“멋있어요!”
세 사람의 칭찬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피식 웃어 보이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윽고 바위로 올라간 엘리오가 한 손으로 대검을 뽑았다.
‘이렇게 깃털처럼 가벼운데 무겁다고?’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헛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니 사실이리라.
엘리오가 손목의 힘만으로 대검을 휘휘 돌리자 파비안이 물었다.
“무겁지 않으십니까?”
“어.”
‘대검이 젓가락보다 가볍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것 같았다.
“무게는 둘째치고 너무 커서 가지고 다니기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대충 매고 다니면 돼.”
말이 나온 김에 엘리오는 마하담(공간 창고)에서 가죽을 꼬아 만든 줄을 꺼냈다.
줄로 검신을 잘 묶어 등에 둘러매자 파비안이 한마디 했다.
“차라리 아공간에 넣고 다니는 게 낫지 않습니까?”
“…….”
한순간 엘리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맞다.
그렇게 하면 간단한 일을 왜 생각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이럴 때 보면 확실히 파비안의 잔머리가 자신보다 한 수 위였다.
‘천둔검처럼 하늘에 숨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어비스에 충만한 혼돈의 기운으로 넣고 빼고 할 자신이 없었다.
영기를 방사하는 것도 어려운데 대검을 무슨 수로 하늘에 숨기냐 말이다.
그렇다고 파비안의 말대로 하자니 자신이 멍청해 보였다.
“검사는 몸에서 검을 떼어 놓으면 안 되는 거야.”
“아!”
엘리오의 속을 모르는 파비안은 새로운 가르침이려니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잠시 후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이 다시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후미에서 걷던 엘리오는 등에 맨 대검이 불편해 몇 번이고 줄을 고쳐 맸다.
대검이 흘러내려서가 아니라, 사람 키만 한 대검의 크기에 뭐가 자꾸 걸려서다.
대검이 워낙 크다 보니 검첨 부위도 손바닥만 했다.
돌부리나, 굴곡진 길에 넓은 검첨이 걸릴 때마다 상체가 뒤로 젖혀졌다.
몸에 닿으니 무게는 느껴지지 않았는데 뒤에서 턱턱 잡아당기니 허리까지 아팠다.
‘젠장, 파비안만 아니면 마하담에 넣고 다니면 딱인데.’
괜히 현자 흉내를 내려다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
턱―!
또 검첨이 튀어나온 돌부리에 닿아 허리가 뒤로 젖혀졌다.
‘악!’
그동안의 충격이 쌓였던지 이번에는 악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아팠다.
‘으으, 안 되겠다.’
무슨 수를 찾아야지 이러다 허리가 박살이 날 것 같았다.
‘사람이 대검을 업고 다니는 꼴이네.’
대검이 사람을 태우고 다녀야지, 사람이 대검을 엎고 다니면 쓰나.
엘리오는 등에 맸던 대검을 앞으로 툭 던졌다.
그리고 둥둥 떠 있는 대검 위에 걸터앉은 뒤 어검비행을 펼쳤다.
“그래 이거지.”
대검에 올라탄 엘리오가 미끄러지듯 산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