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06
1306회. 공허의 검(Void Sword)
대검이 돌이나 나무뿌리 등에 부딪치면서 나는 충격음과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투덜거림이 갑자기 멎었다.
부산스럽던 후미가 조용해지자 크레아는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그녀는 ―대검이 돌부리에 자꾸 걸리자― 화가 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멈춰 선 것으로 착각했다.
‘어?’
상상치 못한 광경에 크레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람 키만 한 대검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데, 그 위에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앉아 있다?
저건 마법일까?
아니면 검술의 영역일까?
크레아가 갑자기 멈칫하자 하워드 솔론 남작이 물었다.
“왜 그러느냐?”
“직접 보세요.”
크레아가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던 하워드 솔론 남작은 한순간 너무 집중하느라 그만 나무뿌리에 발이 걸리는 줄도 몰랐다.
“어이쿠!”
결국 하워드 솔론 남작이 나무뿌리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다행히 경사가 완만한 곳이라 혼자 두어 바퀴 구르는 것으로 끝났다.
하워드 솔론 남작이 일으킨 소란으로 선두가 멈춰 섰다.
뒤늦게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도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기행을 보게 됐다.
두 사람은 눈을 한차례 마주친 뒤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돌아갔다.
파비안이 대검과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라고아 경, 이건 무슨 수법입니까?”
“플라잉 소드(이기어검)를 응용한 거야.”
“아…….”
플라잉 소드라는 말에 파비안은 바로 돌아섰다.
소드 비기너에 불과한 자신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플라잉 소드를 다시 수련 중인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달랐다.
“영기로 검을 조종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속도와 방향을 원하는 대로 맞추면 이렇게도 할 수 있거든요.”
“몸의 중심을 잡는 게 관건이겠군요.”
“그것도 막상 해 보면 어렵지 않아요. 대검과 몸과 영기는 처음부터 이어져 있으니까요. 그 결속력을 단단하게 하면 몸도 떨어지지 않죠.”
“아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관건은 검과 몸과 마나를 한데 묶는 데 있군요. 플라잉 소드를 응용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습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플라잉 소드에 숙달되면 저렇게 검을 타고 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플라잉 소드에 막 입문한 단계지만, 언젠가는 자신도 엘리오 라고아 백작처럼 검을 타고 날아다닐 수 있으리라.
플라잉 소드로 고고하게 싸우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처럼 검을 타고 날아다닌다 생각하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크레아가 하워드 솔론 남작에게 속삭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대충은.”
마검사인 하워드 솔론 남작은 마나의 운용에 있어 크레아나 파비안보다 한 수 위라, 플라잉 소드의 비밀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저게 우리 같은 보통 사람에게도 가능한 일이에요?”
“플라잉 소드를 말하는 거냐?”
“그것과 응용 전부요.”
“당연히 보통 사람은 불가능하지. 오마르 경처럼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면 도전해 볼 수 있을 게다.”
“아, 먼저 소드마스터가 돼야 한다는 거군요.”
“그야 당연하지. 갓 태어난 아기가 달릴 수는 없지 않느냐.”
“전에는 소드마스터가 되면 검술의 끝에 도달한 줄 알았거든요.”
“나도 그랬다.”
하워드 솔론 남작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열심히 묻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보았다.
그는 아무리 봐도 끝이 아니라 출발점에 선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왜 이렇게 부러운지 모르겠다.
하워드 솔론 남작의 시선이 문득 파비안을 향했다.
파비안은 뚱한 얼굴로 먼 산을 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소드 비기너는 플라잉 소드를 수련하기에 앞서 소드 익스퍼트부터 돼야 한다.
소드 익스퍼트가 되어서도 플라잉 소드는 꿈도 꿀 수 없다.
플라잉 소드를 수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은 소드마스터.
빨라야 수십 년 후의 일이다.
아니 어쩌면 평생 플라잉 소드에 입문조차 할 수 없을지 모른다.
평범한 사람은 평생을 수련해도 소드마스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착잡해졌다.
하워드 솔론 남작의 표정이 멀리 떨어진 파비안을 닮아 갔다.
대화를 마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밝은 얼굴로 돌아섰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하워드 솔론 남작의 상반된 표정을 본 크레아가 ‘풋!’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왜 웃느냐?”
“오라버니와 파비안 오라버니의 표정이 너무 똑같아서요.”
그녀의 말뜻을 알아들은 하워드 솔론 남작이 피식 웃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오라버니들은 오마르 경보다 이른 나이에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말이라도 고맙구나.”
“물론 거기에는 저도 포함되어 있고요. 저도 꼭 플라잉 소드를 익히고 싶거든요.”
모든 기사들의 꿈은 소드마스터가 쓰는 마나 블레이드다.
그러나 파비안과 하워드 솔론 남작, 크레아는 마나 블레이드보다 플라잉 소드에 더 관심이 있었다.
마나 블레이드는 모든 소드마스터가 사용할 수 있지만, 플라잉 소드는 그중에서도 바윗길 장원[石徑莊]의 소드마스터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엘리오 일행은 다시 산을 내려갔다.
사람이 대검을 타고 날아다니는 게 신기한 것도 한두 번이다.
반나절 동안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플라잉 소드를 보아서 그런지, 산을 다 내려갈 즈음에는 다들 시큰둥했다.
그것은 마치 하늘고래를 보는 것과도 같았다.
뭐든 처음에만 놀라지 익숙해지면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엘리오 일행은 해가 질 무렵, 드디어 산을 내려갈 수 있었다.
일행 중에 최하가 소드 비기너임을 생각하면 산이 얼마나 험한지 알 수 있다.
엘리오가 적당한 평지에 천막과 침구 따위를 꺼내 놓자, 파비안 일행이 달라붙어 빠르게 천막을 세웠다.
쌀쌀한 날씨에 모닥불을 피우려는 크레아를 엘리오가 만류했다.
“불 관리하기 피곤할 텐데 파이어 스톤으로 해요.”
말과 함께 엘리오는 마하담에서 파이어 스톤 한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내친김에 삼매진화를 일으켜 불까지 붙였다.
사람들이 하나 둘 파이어 스톤 주위로 모여들었다.
이윽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하워드 솔론 남작과 크레아가 파이어 스톤의 불을 이용해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라고 해 봐야 이것저것 투입한 잡탕 스튜와 구운 고기가 전부였지만, 허기가 져서인지 다들 맛있게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닥불이면 나뭇가지를 장만하고, 넣느라 분주할 테지만 파이어 스톤은 그럴 필요가 없다.
화르르륵―!
주변이 조용하다 보니 파이어 스톤 타오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불과 며칠 전 가족처럼 지내던 일행을 잃은 탓에 숙연한 분위기다.
그때 파비안이 엘리오의 옆에 놓인 대검을 힐끗 보며 말했다.
“라고아 경의 검은 개성이 강한 것 같습니다.”
“차이가 나?”
“예. 전에 쓰시던 검이 기사라면, 이번 검은 용병 같습니다.”
순간 엘리오가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이 만든 게 검선 여동빈의 것보다 못하다는 소리처럼 들려서다.
“지금 게 더 나쁘다는 거야?”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뭐랄까, 지난번의 롱소드는 규격에 딱 맞았는데, 지금 대검은 파격적이라고 할까요? 훨씬 자유분방해 보인다는 뜻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생김새가 그렇다는 거지?”
“겉모습뿐 아니라 전해지는 느낌도 그렇습니다. 롱소드가 잔잔한 호수라면, 대검은 폭풍 직전의 바다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제야 엘리오의 표정이 풀어졌다.
한편으로 법보(法寶)의 차이를 알아차린 파비안이 대견스러웠다.
어릴 때 ‘클루톤의 천재 기사’ 소리를 들었다더니 보통이 아니다.
새삼스레 대검을 살피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롱소드와 대검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으나, 파비안 경의 말을 들으니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는군요. 왜 롱소드와 대검이 그토록 다른 것입니까?”
잠시 생각하던 엘리오가 답했다.
“롱소드는 알메트 하레브 님(성기사) 같은 분이 만들었어요. 이 대검은 보시다시피 제가 만든 거고요. 만든 사람의 기질이 롱소드와 대검에 투영된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실 기질뿐 아니라 롱소드와 대검은 재질 자체가 다르다.
롱소드(천둔검)는 내단, 대검은 영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오는 굳이 그 부분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걸 이해시키려면 입이 아프도록 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검에 대한 궁금증이 풀어졌는지 다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파이어 스톤의 불길을 응시하던 파비안이 문득 엘리오를 불렀다.
“라고아 경.”
“왜?”
“그 대검의 이름이 뭡니까?”
“아직 안 정했어.”
“생각해 둔 게 없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공허의 검(Void Sword)요.”
“공허의 검? 이렇게 큰데?”
“대검을 든 라고아 경의 모습이 좀 그렇게 보였습니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잠시 생각하던 엘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것 같다.”
공허, 즉 허무는 구천기의 원천이기도 하다.
루나 마일러스를 잃은 뒤에 만든 검이니 ‘공허의 검’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엘리오는 대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무심무사(無心無事) 한 눈으로 물끄러미 보다 의념(意念)을 일으켰다.
검신에서 하얀 불꽃이 튀더니 대륙 공용어로 ‘공허의 검’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거대한 검신에 새겨진 대륙 공용어는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엘리오가 감상에 잠겨 있을 때 파비안이 말했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그걸 타고 다니실 겁니까?”
“왜?”
“오마르 경이 ‘플라잉 소드를 수련하는 데 엄청난 마나가 들어간다’고 하시더군요. 영기의 소모는 마나보다 더 많겠죠?”
“좀 많이 들어가는 편이지.”
이기어검보다 어검비행에 드는 영기가 더 많은 건 사실이다.
검에 사람의 무게가 더해지고, 방향과 속도를 조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 우샤스 운드라(금사)와 마주칠지 모르는데 영기를 좀 아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
예리한 지적에 엘리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기회를 잡은 파비안이 날카롭게 몰아붙였다.
“아공간에 천막과 침상까지 보관하시면서, 왜 그 큰 대검은 들고 다니십니까? 넣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도 되잖습니까?”
“험, 검사는 검을 몸에서 떼어 놓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
“그거야 저 같은 소드 비기너에게나 할 소리고요. 그랜드 마스터쯤 되면 떼어 놓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사실 적응하느라 가까이 두었던 거뿐이야. 대검의 크기가 좀 커야 말이지. 그렇지 않아도 슬슬 공간 창고에 넣을 생각이었어.”
“아! 왜 그렇게 미련한 짓을 하시나 의아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저는 지기 싫어서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했지 뭡니까.”
순간 엘리오는 속으로 뜨끔했다.
천둔검과 대검의 차이를 말할 때 알아봤지만 눈썰미가 뛰어난 놈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늘 느끼는 바지만 실로 대단한 주인과 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