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11
1311회. 성지를 더럽혔으니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엘리오 일행은 기간타스 전사 쿰의 장담대로 마물과 마수 따위와 마주치지 않았다.
근처에서 마물과 마수의 포효가 들리는 게 전부였다.
덕분에 이동은 편해졌지만 파비안과 하워드 솔론 남작, 크레아는 여전히 불침번을 섰다.
쿰의 괴랄한 식사를 강제로 보게 된 이후 그들은 마족을 더 경계했다.
쿰과 엘리오 일행은 사흘 동안 산 열 개를 넘었다.
높고 험산 산세를 생각하면 꽤나 빠른 속도라 할 수 있다.
정오 무렵, 크레아가 힘들어 하자 엘리오는 쿰을 멈춰 세웠다.
“쿰! 잠시 쉬었다가 가자!”
쿰은 암컷 인간의 상태를 힐끔 보고는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우지직―!
그의 엉덩이에 깔린 몇 그루 나무가 맥없이 몸을 눞혔다.
하워드 솔론 남작이 땀에 흠뻑 젖은 크레아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았다.
세상에 마력으로 알려진 카오스는 혼돈의 힘.
영기 수련자와 마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일수록 반발력도 크다.
폭력적으로 변한다거나, 야릇한 쾌감에 중독이 되는 것 등도 그 때문이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은 ‘작은 하늘 회로’를 돌려 그것을 다스리라고 했다.
그래서 모두가 열심히 ‘작은 하늘 회로’를 돌렸다.
하지만 ‘작은 하늘 회로’를 돌리는 데 들어가는 힘은 사람마다 달랐다.
예컨대 소드마스터인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다.
그다음은 파비안이다.
그는 북부에서 요령을 체득했다면서 어려워하지 않았다.
자신도 처음에는 고통스러웠지만 이젠 견딜 만했다.
물론 ‘가랑비에 속옷 젖는다’고 어비스에 머무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좋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크레아는 조금 달랐다.
그녀는 하루 종일 ‘작은 하늘 회로’ 돌리는 것을 어려워했다.
기이한 것은 ‘작은 하늘 회로’를 돌리면 돌릴수록 반발력도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미치는 거다.
‘작은 하늘 회로’를 돌리지 않으면 서서히 카오스에 잠식당해 부작용에 휘둘린다.
‘작은 하늘 회로’를 돌리면 강력한 반발력에 당장 몸과 마음이 힘들다.
“하아! 하아아―!”
크레아의 거친 호흡이 조금 가라앉았다.
하워드 솔론 남작은 그녀가 한숨 돌리자 슬쩍 말을 걸었다.
“괜찮으냐?”
“쉬니까 한결 낫네요. 그런데 제가 짐이 된 것 같아 부끄러워요.”
“그런 말 하지 마라. 너나 나나 무슨 차이가 있다고.”
“오라버니는 땀만 조금 흘리고 말잖아요. 저는 보다시피 숨이 가쁘다고요. 그냥 엑소도에 남아 있을 걸 그랬나 봐요.”
그러자 파비안이 한마디 했다.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다.”
“예? 뭐가요?”
“네가 짐이라고 한 말 말이다.”
“사실인데요 뭐…….”
크레아가 시선을 떨구었다.
한 시간만 걸어도 숨을 헐떡이는데 짐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쯧쯧!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우리 중에 오마르 경을 빼면 모두가 라고아 경의 짐이다. 자신의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
크레아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닌 게 아니라 라고아 경을 제외하고 어비스에서 생존이 가능한 사람은 오마르 경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짐이라고 자책할 것 없다. 알고 보면 하워드와 나도 잘 걸어다니는 짐에 불과하니까.”
무심한 얼굴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한마디 거들었다.
“거기서 굳이 나를 빼지 않아도 되네. 라고아 경의 눈으로 보면 자네들과 나는 별 차이 없을 테니까.”
겸손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말에 파비안이 손사래를 쳤다.
“어이쿠! 별 차이가 없다뇨? 소드마스터와 소드 비기너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큽니다.”
“자네도 소드마스터가 되면 내 말뜻을 자연히 알게 될 걸세. 그러니 애써 띄워 줄 것 없네.”
라르바 오마르 백작까지 나서서 한마디 하자 크레아의 마음이 진정됐다.
사실은 자질 탓이다.
겉으로 보기에 행동이 가벼워 보이지만 파비안과 하워드 남작은 천재다.
그에 반해 자신은 마나의 축복을 받았지만 평범한 사람이었다.
파비안 남작이야 라고아 경과 만난 지 오래됐으니 비교할 수 없지만, 하워드 남작이 검술을 습득하는 걸 보면 기가 막힌다.
같은 시기에 배웠는데 검술의 깊이가 다르다.
자신이 성녀에게 배운 걸 흉내 내는 단계라면, 하워드 남작은 이미 체득했다.
그런데 그런 오라버니들과, 심지어 소드마스터인 오마르 경도 라고아 경 앞에서는 보통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하워드 솔론 남작이 크레아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아뇨.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마음 쓰게 해서.”
“크레아, 너는 성녀님의 유일한 후계자야. 마음이 약해지려고 할 때마다 그걸 생각해.”
“네.”
크레아는 이를 앙다물었다.
맞다.
그걸 깜빡했다.
자신은 성녀인 루나 마일러스의 검술을 배운 유일한 후계자다.
자질이야 어떻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깨를 펼 자격이 있다.
그리고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될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크레아의 호흡이 안정된 뒤에도 엘리오는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과 달리 일행에게 누적된 피로가 상당함을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몸이 달아 엉덩이를 들썩이는 건 쿰이었다.
“인간, 조금만 더 가면 대족장님이 계신 곳이다. 안 갈 건가?”
“가. 그런데 여기는 어디야?”
“카르나크 산지다.”
“어련하실라고.”
사흘 동안 산을 열 개나 넘었는데 아직도 카르나크 산지란다.
“지금 움직이면 어두워지기 전에 대족장님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더 늦으면 밤에나 대족장과 만나게 된다는 소리였다.
엘리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조금이라도 환할 때 대족장을 만나는 게 낫겠다 싶어서다.
그가 출발 준비를 하자 다른 사람들도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쿰은 마음이 급한지 길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요란한 그의 움직임에 고요하던 산이 소란스러워졌다.
잠시 후 엘리오 일행의 앞에 먹물로 그린 듯 시커멓게 생긴 산이 나타났다.
기세 좋게 걷던 쿰도 검은 산 앞에서 한순간 멈칫했다.
산 중턱에서 피어난 검은 안개가 쉼 없이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산을 보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흐음! 가공할 어둠의 에테르로구나.”
파비안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물었다.
“오마르 경, 혹시 산 중턱에서 피어오르는 저 안개가 어둠의 에테르인가요?”
“글쎄. 안개에 가까이 가서 직접 보기 전에는 모르겠네.”
그러자 파비안의 시선이 이번에는 엘리오를 향했다.
“라고아 경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라고 여기서 보고 알겠냐?”
엘리오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가뜩이나 카오스 때문에 제약이 심해 멀리서 본 것으로는 알기 어려웠다.
쿰은 자기들끼리 떠드는 인간들을 뒤로하고 검은 산으로 진입했다.
엘리오 일행도 내키지 않는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부지런히 산을 오르던 하워드 솔론 남작이 파비안에게 말했다.
“돌도 검고, 풀과 나무도 검네요. 타메이온도 이랬습니까?”
“아니. 나도 이런 건 처음 본다.”
파비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족 군주들이 살고 있는 성도 이러지 않았는데 이건 뭔가 싶다.
하늘고래만큼이나 이해가 가지 않는 산이다.
‘작은 하늘 회로’를 돌리던 파비안이 크레아에게 말했다.
“아직은 힘들겠지만 포기하지 말고 악착같이 버텨 봐라. 고비를 넘기면 어느 순간 갑자기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질 테니까.”
“후읍. 예.”
어둠의 에테르 농도가 진해지자 크레아가 흘리는 땀도 많아졌다.
파비안은 과거 타메이온에서 한차례 경험한 일이기에 더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쿰과 엘리오 일행은 산 중턱에 이르렀다.
마치 화산 지대라도 되는 것처럼, 지표면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잠시 멈춰 선 쿰이 황홀한 표정으로 코까지 벌름거리며 검은 안개를 들이마셨다.
못마땅한 얼굴로 보던 엘리오가 소리쳤다.
“그렇게 좋은데 왜 여기서 안 살아?”
“이런 곳에서는 상위 종밖에 살 수 없다. 능력 없는 마족이 기웃거렸다가는 잡아먹히기 딱 좋지.”
“상위 종이 사는 곳이라 잡아먹히기 싫어서 피한다고?”
“간단히 말하면 그렇다.”
“기간타스는 마족 중에 하위 종이냐?”
“중간은 간다.”
“그런데 대족장은 어떻게 여기에 살아? 기간타스가 아니야?”
“대족장님은 종을 초월하신 분이시다. 기간타스지만 기간타스가 아니다.”
엘리오는 인간으로 치면 소드마스터나 그랜드 마스터쯤 되나 보다 생각했다.
그때 하늘에서 일단의 마족이 쿰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처처척―!
키는 3미터로 쿰보다 작았지만 그들을 본 쿰은 얼음처럼 굳었다.
인간의 형상을 한 상위 마족, 아스타로이드였다.
날개와 머리의 뿔만 아니면 그냥 거인이라 생각해도 될 정도다.
아스타로이드 전사 중 하나가 화염검으로 쿰을 가리키며 말했다.
“감히 기간타스가 인간과 함께 이곳을 더럽히다니! 정당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당장 찢어 죽일 것이다!”
쿰은 순종의 표시로 개처럼 두 손으로 지면을 짚고 답했다.
“기간타스의 대족장이신 헤카론 님을 만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자 아스타로이드 전사가 무리의 리더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스타로드 전사들의 리더인 아네트의 입이 열렸다.
“기간타스는 가도 좋다. 그러나 인간은 성지를 더럽혔으니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그녀의 살벌한 말에 쿰이 서둘러 말했다.
“저희 족장님이 인간을 헤카론 님에게 데리고…….”
“닥쳐라! 성산에 인간이 발을 디딘 역사가 없거늘, 기간타스 주제에 무슨…….”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엘리오가 끼어들었다.
“거기까지. 쿰! 이 날파리들은 뭐냐? 해 떨어지기 전에 대족장 만나려면 시간 없는데, 싹 다 악신에게 보내 줄까?”
“…….”
한순간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누구도 움직이거나 말을 하지 않았다.
쿰의 목울대로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꾸울꺽!
단순 무식한 중급 마족 쿰은 마족 군주만큼 강한 인간과 상급 마족인 아스타로이드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상급 마족이 강하다 해도 마족 군주에 비하면 하루살이만도 못하다.
하지만 중급 마족인 그에게는 상급 마족이나 인간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
쿰이 눈알만 뒤룩뒤룩 굴리자 아네트가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이런 미친! 감히 인간 따위가…….”
그녀가 화를 참지 못하고 파르르 떨자, 처음 나섰던 아스타로이드 전사가 들고 있던 화염검으로 인간을 찍었다.
슈아악―!
그러자 엘리오는 마하담에서 꺼낸 공허의 검으로 가볍게 화염검을 쳐 냈다.
콰앙―!
폭발음과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일격에 화염검을 박살 낸 공허의 검이 아스타로이드 전사의 허리를 잘랐다.
서걱―.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아스타로이드 전사의 상반신이 옆으로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뒤이어 반듯하게 잘린 몸통에서 피가 분수처럼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 비현실적인 참극에 아네트의 몸이 석상처럼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