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5
135회. 선녀님이시잖아요
구천동모의 눈이 뒤집히자 마을 사람들은 허리를 굽실거리며 열심히 손바닥을 비벼 댔다.
“어이쿠! 구천현녀님 오셨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곧이어 구천동모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경련하듯 몇 번이나 머리를 뒤틀었다.
그때마다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 번씩 높아졌다.
이윽고 구천동모의 떨림이 멎었다.
순간 마을 사람들은 숨도 쉬지 않고 그녀의 입에 집중했다.
구천동모가 하얗게 뒤집힌 백안(白眼)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많이 자랐구나, 아이야. 구천동모는 나의 대리인이니 그녀의 말을 들어라.”
“그러니까 내가 누구냐고요.”
“너는 무가의 자손이다. 뒷마당에 큰 감나무가 보이는구나.”
“감나무 없었는데요?”
“네가 태어나고 나서 베었을 게다. 잘 베어 냈지. 덕분에 네가 살아 있는 거니까. 네 어미가 산고를 꽤나 힘들게 치렀을 게다.”
“어?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어요.”
“그래도 너는 살았지 않느냐? 감나무를 베지 않았으면 너도 죽었을 게다. 형제가 있지?”
“네.”
“형제간에 우애가 좋지 않구나. 너의 죽음을 원하고 있는 걸 보니.”
“그, 그 정도예요?”
연적하가 계면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기야 지금쯤이면 삼장이 망하고도 남을 시간이니 그럴 만도 했다.
“내가 가르친 것은 잘하고 있느냐?”
“예, 틈날 때마다 수련하고 있어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유명교 십두마병들이 죽으면 괴물로 변하잖아요? 그런데 선녀님이 가르쳐 준 구천구검에는 맥을 못 추더라고요. 검술에 괴물을 제압하는 묘용이라도 있던 거예요?”
“구천구검은 구천 하늘에 닿는 검술이다. 그러니 설사 괴물이라 해도 구천구검을 피할 수가 없다.”
“아! 그런 것 같았어요. 구검(究劍)이라는 말에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연적하는 구천동모를 조금씩 인정했다.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니 의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연히 그의 말은 처음과 달리 공손하게 변해 있었다.
“선녀님, 그런데 왜 소진이를 죽이라고 한 거예요?”
“그 아이의 몸에는 악귀가 있다. 지난해에는 그 악귀가 동생을 조종해 물에 빠져 죽게 만들었지.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을 죽이게 될 게다. 그러니 안됐지만 그 아이는 죽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가 있으니까.”
“꼭 죽여야 하나요? 선녀님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지 않나요? 선녀님이시잖아요.”
연적하는 구천현녀의 능력을 믿었다.
그녀에게 신비한 방법으로 무공을 배웠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저승에는 저승의 길이 있고 이승에는 이승의 길이 있다. 이승에서 악귀를 처치하려면 몸주가 죽어야만 한다. 너의 자비심은 가상하나 아이의 집과 마을을 생각해 보아라. 한 사람의 죽음으로 여러 사람을 살릴 수가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
“…….”
연적하가 곤혹스러운 눈으로 장소진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어린애인데 대체 어쩌다 악귀가 들린 걸까?
연적하와 눈이 마주치자 장소진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와 구천동모의 말을 들으니 정말 자신에게 악귀가 붙은 것 같기도 하다.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겠어.’
장소진은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정한 장소진이 주춤주춤 구천동모를 향해 나아갔다.
“저어, 하라는 대로 할게요. 다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 제가 잘못된 거겠죠? 저만 죽으면 정말 모든 게 다 괜찮아지는 거죠?”
구천동모의 하얗게 뒤집힌 눈이 장소진을 향했다.
“기특하구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너는 죽어서 좋은 곳에 갈 것이다.”
장소진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죽으면 혼자 저승으로 갈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슬프고 처연한 분위기가 장내에 감돌았다.
그렇게 아이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던 마을 사람들조차 숙연한 얼굴이다.
“풋!”
그때 누군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연적하의 시선이 뒤쪽으로 돌아갔다.
꽃처럼 아름다운 남궁연이 한쪽 손으로 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작은 손 위로 드러난 두 눈이 부드럽게 휘어진 걸 보니 그녀가 웃은 것 같다.
“누님?”
연적하가 놀란 눈으로 보자 남궁연이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별일 아니야. 그저 너무 재밌어서 웃음이 났지 뭐야.”
“재미있다고요?”
연적하는 남궁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장소진의 죽음이 확정된 이 순간에 재미라니?
구천동모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여자야, 너는 누구이기에 그처럼 방자한 것이냐? 네 칼을 믿고 그러는 것이라면…….”
남궁연이 구천동모의 말을 끊었다.
“그럴 리가 있나요. 아주머니.”
“나는 구천현녀를 모신 구천동모니라.”
“어머? 지금 구천현녀님으로 강신한 거 아니었어요? 눈이 아직 하얀데 구천동모라고요?”
“발칙하구나. 나의 제자야, 너는 저 여자가 나를 능멸하는 걸 두고 볼 생각이냐?”
구천동모가 연적하를 끌어들였다.
그가 자신의 말을 귀담아들으니 그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연적하에게 남궁연은 구천현녀와 비슷한 존재다. 무엇보다 구천현녀경에서 본 구천현녀의 얼굴이 남궁연인 까닭이다.
당연히 구천동모의 말은 연적하에게 먹히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 걱정은 됐는지 연적하가 남궁연에게 넌지시 물었다.
“누님, 왜 그러세요?”
순간 남궁연의 시선이 심통에게 향했다.
하지만 자칭 늙은 여우라던 심통도 어안이 벙벙한 눈치다.
남궁연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강호에서 닳고 닳은 심통도 깜빡 넘어갈 정도니 연적하야 오죽할까.
“적하야.”
“예.”
연적하가 부드러운 눈으로 남궁연을 보았다.
마치 아이가 자신의 어미를 보는 듯 절대적인 신뢰가 담긴 눈빛이다.
“구천동모는 사기꾼이야.”
그 말에 구천동모가 발끈해 소리쳤다.
“감히 그런 소리를 하다니! 제자야! 저 여자에게도 악귀가 씌었구나. 아이에게 붙어 있던 것 중에 거짓말하는 악귀가 저리로 옮겨 갔다. 그래서 내가 아이를 죽여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연적하는 구천동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사기꾼이라고요?”
“나는 저 아줌마가 사기꾼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어.”
“정말요?”
그러자 구천동모가 악을 썼다.
“거짓말! 저 여자에게 사람을 속이는 귀신이 붙었다! 그 거짓된 말을 귀담아듣지 마라!”
구천동모가 자꾸 남궁연을 비방하자 연적하의 얼굴이 굳었다.
“시끄러워요! 선녀 아줌마는 좀 가만히 있어 봐요!”
‘선녀’라던 호칭에 어느새 ‘아줌마’라는 단어가 하나 더 붙었다.
구천동모는 분해서 부들부들 떨었지만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정도로 연적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얼굴이 남궁연을 향할 때는 다시 온화해졌다.
“어떻게요?”
“그러려면 네가 좀 도와줘야 해.”
“제가요?”
“그래, 저 여자가 스스로 구천현녀라고 했지?”
“네.”
“너에게 무공을 가르쳐 줬고?”
남궁연의 말에 다시 구천동모가 소리소리 질렀다.
“제자야! 저 거짓말하는 귀신의 말을 듣지 마라! 저 여자가 너를 망치고 있다는 걸 왜 몰라! 듣지 마라! 부정해라! 저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다 사악하다!”
“아줌마! 닥치고 있으라고요! 다시 끼어들면 선녀고 뭐고 가만 안 둬!”
우르르릉.
연적하가 버럭 소리 지르자 객잔이 한차례 흔들렸다.
눈을 까뒤집고 있던 구천동모는 객잔이 무너지는 줄 알고 주저앉아 사방을 더듬었다.
구천동모가 조용해지자 남궁연이 계속해서 말했다.
“자칭 구천현녀라는 아줌마에게 구천구검을 보여 달라고 해 봐. 일 초 반 식이라도 할 줄 알면 진짜 구천현녀겠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을걸?”
“와아! 진짜 그러면 되겠네요. 선녀 아줌마. 들었죠? 나에게 가르쳐 준 검법을 펼쳐 봐요. 그냥 대충 흉내만 내도 인정해 줄게요.”
구천동모가 ‘끙!’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얗던 백안은 어느덧 정상인의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아! 소협, 구천현녀께서 다시 선계로 돌아가셨어요. 내 공부가 부족해서 강신을 오래 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자 남궁연이 ‘깔깔’ 웃었다.
구천동모가 불쾌한 눈으로 남궁연을 쏘아보았다.
“소저, 왜 그렇게 웃는 거죠? 당신들은 구천현녀가 강신한 걸 목격하지 않았나요?”
“네, 똑똑히 봤죠. 아주머니가 연 동생에게 사기 치는 장면을요.”
“거짓말은 소저가 하고 있어요. 당신은 구천현녀가 존재한다는 걸 믿지 않나 보군요?”
남궁연이 연적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잘 봐. 이제 내가 저 아주머니가 한 걸 똑같이 해 보일 테니까. 아, 눈 돌아가는 건 빼고. 그건 너무 보기 흉한 것 같아서.”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던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연이 구천동모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나도 아주머니에 관한 모든 걸 알아요. 말해 볼까요?”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남궁연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주머니는 평범한 집안의 자손이에요. 집 마당에 감나무가 있었네요.”
“거짓말! 그런 건 없었어요.”
“아니에요.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태어난 후에 부친이 베어 버린 거예요. 잘 베어 냈죠. 그 덕분에 아주머니가 살아 있는 거니까. 아주머니가 태어날 때 모친이 산고를 꽤나 심하게 치렀을 거예요.”
“…….”
구천동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여자는 자신이 조금 전에 했던 말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었다.
“만약 부친이 감나무를 베지 않았으면 아주머니도 죽었을 거예요.”
“허, 헛소리하지 마세요.”
남궁연이 구천동모를 똑바로 응시했다.
순간 구천동모는 오싹한 전율에 흠칫 몸을 떨었다.
마치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헛소리라고요? 당신은 산동이 아니라 강남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당신의 집 근처에는 큰 물길이 있었을 거예요. 그래도 거짓말이라고 할 건가요?”
‘헉!’
구천동모가 놀란 눈으로 남궁연을 보았다.
자신이 강남 출신이라는 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처음 본 여자가 알아차린 것이다.
‘설마 저 여자는 무당인가?’
남궁연이 마을 사람들을 일견한 후에 말했다.
“나는 당신이 낳은 아이들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요. 심지어 그동안 당신과 함께 잠을 잔 남자들까지도요. 말해 볼까요?”
순간 마을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구천동모가 뭐라고 반박하려는데 그보다 남궁연이 더 빨랐다.
그녀의 손가락이 재빨리 구천동모 뒤에 있는 남자 넷을 가리켰다.
“당신, 당신, 당신, 당신. 이 네 명이 아주머니와 잠자리를 가졌네요. 어때요? 더해요?”
지적당한 남자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었다.
구천동모는 거의 혼이 나간 얼굴로 남궁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은 적당한 말장난으로 사람을 속여 넘겼는데 저 여자는 진짜였다.
“거, 거짓말……. 나는 정말 구천현녀를 모시고 있어요.”
하지만 이미 연적하 일행은 물론 마을 사람들까지 반신반의하는 모습들이다.
특히나 연적하는 빠드득 이를 갈기까지 했다.
“누님, 저 아줌마가 사기 치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남궁연이 연적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구천동모의 몇 마디 말에 홀랑 넘어가더니, 이제는 금방 구천동모를 사기꾼이라고 한다.
창고에 갇혀 지내 대인관계가 서툴다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심해 보인다. 아무래도 자신이 좀 더 신경 써 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