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61
1361회. 인간과 신의 바른 관계
크라시온행 역마차 안.
무료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던 엘리오가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오를로바 남작이 따라나서지 않은 게 이상해서.”
엘리오는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스컬 군단은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을 세르보에 떨구고 갔다.
‘검술이 약해 지원 부대로 재배치 받았다’고 했지만 자신이 볼 때는 아드리아 왕국 차원에서 파비안의 곁에 남겨 둔 것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크라시온까지 따라올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세르보에 남았다.
만나자마자 파비안에게 몸을 던진 사람치고 다소 허무한 결말이었다.
그러자 파비안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 이 바닥이 원래 그렇습니다. 만났을 때 뜨겁게 불사르지만 돌아서면 끝인 겁니다. 질척거리면 손가락질당한다니까요.”
“이 바닥이 어떤 바닥인데?”
“불꽃 같은 사랑을 하는 바닥?”
“놀고 있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 모르냐? 네가 뿌린 거 결국 다 거두게 되어 있다.”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뿌린 대로 다 거두면 가난한 사람도, 굶어 죽는 사람도 없게요? 악인의 최후는 죄다 비참해야 하지 않습니까? 실제로는 어디 그렇습니까? 그런 건 다 필요에 의해서 누군가 지어낸 말이라니까요.”
들어 보니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닌지라 엘리오는 반박하지 않았다.
역마차가 크라시온에 도착한 것은 해질 무렵이다.
창문 밖으로 도시를 보던 엘리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 사람 많네.”
왕성 크라시온의 거리는 전쟁 중임에도 일반인들로 넘쳐났다.
지금까지 봤던 도시에 병사들이 가득했던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대반격에 성공해서 그런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았다.
“그러게요. 전보다 더 시끌벅적해진 느낌입니다. 페로무로스의 승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역마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 등이 머무르고 있는 쿠스코 성으로 향했다.
쿠스코 성.
엘리오와 파비안이 쿠스코 성에 도착한 때는 때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두 사람이 식당에 들어서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하워드 남작, 크레아가 깜짝 놀란 얼굴로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라고아 경, 어서 오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세르보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직접 오셨군요.”
“아르테늄의 일로 아드리아 국왕을 만나 봐야 하니 제가 와야죠.”
“역시 알고 계셨군요. 그 문제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선은 좀 앉으시지요.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간 알게 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럴까요?”
꼬박 하루 동안 역마차에서 제공한 간편식만 먹은 엘리오는 빈자리에 걸터앉았다.
북부 대귀족에 대한 라울 브로스넌 국왕의 특별한 배려로 저녁 식사는 풍성했다.
덕분에 엘리오는 뜻하지 않게 대귀족의 정찬을 즐길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엘리오 일행은 중앙 홀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전 하워드가 파비안을 보며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형님은 이곳에 계실 때보다 안색이 더 좋아지셨네요? 티팝(도시 숙박업소) 음식이 샬레(산장)보다 좋았나 봅니다?”
파비안이 멋쩍은 얼굴로 뭐라 말하기 전에 엘리오가 끼어들었다.
“음식 때문이 아니야.”
“그럼 물이 좋았나 보네요?”
“물도 아니야. 이놈, 세르보에서 여자 만났다.”
“여자요?”
하워드가 놀란 눈으로 파비안 남작과 라고아 백작을 번갈아 보았다.
파비안이 뻘쭘한 얼굴로 말했다.
“어쩌다 눈이 맞아서 며칠 만난 것뿐이야. 신경 쓰지 마.”
“아, 술집 여자라도 만난 겁니까?”
엘리오는 하워드가 오해하자 간략하게 그간의 일을 까발렸다.
“……출발하기 직전까지도 만나고 와서는 허리가 아픈지 두드리더라고. 아주 내일 세상이 멸망하는 것처럼 오늘을 살더라.”
“…….”
한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파비안에게 꽂혔다.
전쟁터에서 만나자마자 그런 짓이 가능하다니? 다들 황당한 얼굴이다.
파비안이 변명하듯 말했다.
“원래 전쟁이라는 게 사람을 필사적이고 극단적으로 만들지 않습니까. 그러다 생긴 가벼운, 뭐랄까…… 찬란하게 불타는 유성 같은 만남이랄까. 한번 지나면 그만인 뭐 그런 관계였지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오마르 백작님은 어떤 느낌인지 아실 겁니다.”
“모르네.”
“…….”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단호한 부인에 중앙 홀은 한순간 조용해졌다.
뜻밖의 대답에 눈만 끔뻑이는 파비안에게 오마르 백작이 말했다.
“만약 그것이 연애관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나는 자네보다 라고아 경과 비슷하다고 알아 두게.”
첫사랑과 만나 결혼해 첩도 없이 지내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다.
그런 그이니만큼 파비안의 말에 정색을 하고 반대한 것이었다.
파비안이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만 나쁜 사람입니까?”
엄한 두 백작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하워드가 슬쩍 위로의 말을 건넸다.
“형님도 언젠가는 한 여자에게 정착하시겠죠.”
“하워드. 그건 새의 날개를 꺾는 행위야.”
그러자 엘리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개새에게 무슨 날개가 있다고 그러냐. 그건 그렇고 오마르 백작님, 아까 아르테늄의 일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는데, 뭔가요?”
파비안은 ‘개새’라는 말에 반박하려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고개를 떨구었다.
“마탑에서 아르테늄을 구매한 곳은 아드리아 왕국 왕실입니다. 정확히는 라울 브로스넌 국왕이 블랙마켓 관리자인 마젠타라는 인물을 통해 구입했습니다.”
“블랙마켓은 뭔가요?”
“음지에서 마탑의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 조직을 블랙마켓이라 합니다. 그곳의 관리자가 직접 국왕과 거래를 튼 겁니다.”
“마젠타를 만나면 그가 우샤스 운드라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마젠타와 연락이 가능한 인물은…… 지금으로서는 라울 브로스넌 국왕이 유일합니다.”
“국왕을 먼저 만나 봐야겠군요.”
“내일 아침에 제가 왕궁으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라고아 경이 찾아왔다고 하면 맨발로 달려나와 맞이할 겁니다.”
“에이, 설마요. 남부 왕국군이 제국군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뭐가 아쉬워서요?”
엘리오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제국군도 잘나갈 때는 자신의 측근인 파비안을 체포하기까지 했다.
인간이란 본디 그런 존재다.
“브로스넌 국왕은 그럴 겁니다. 우리에게 그가 아끼는 쿠스코 성을 내어 주고, 지금까지 국빈 대우를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강철 골렘에 아르테늄까지 있는데 뭐가 아쉬워서 그런대요?”
“글쎄요. 제국과 남부 왕국의 일을 자세히 알지 못해서……. 아무튼 저에 대한 브로스넌 국왕의 태도는 지금까지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건 라고아 경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런가요? 내일 만나 보면 알겠죠.”
두 사람의 대화가 얼추 끝나자 파비안이 우는소리를 했다.
“라고아 경, 개새는 취소해 주십쇼.”
“개새가 어때서? 본능에 충실한 개이면서, 동시에 하늘을 훨훨 나는 새의 자유로움. 딱 너한테 맞는 말이잖아.”
“풉!”
터져 나오는 웃음에 크레아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파비안이 그녀를 노려본 후 말했다.
“뜻은 좋은데 어감이 좀 그렇습니다.”
“그럼 네가 연구해서 알려 줘. 나는 개새보다 더 좋은 말을 못 찾겠으니까.”
엘리오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난 파비안은 적당한 표현을 찾자며 만만한 하워드를 끌어들였다.
두 사람의 의논을 지켜보던 엘리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우샤스 운드라로 추정되는 두 사람 중 하나의 위치를 내일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설렜다.
직감이라는 게 있다.
아드리아 왕국에 아르테늄을 공급한 블랙마켓 관리자가 아니면, 시기적절하게 아르테늄을 내어놓은 마탑의 마법사가 우샤스 운드라임이 틀림없다.
마젠타를 만나면 알게 되리라.
누가 우샤스 운드라인지.
하루라도 빨리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그는 마젠타가 우샤스 운드라이길 바랐다.
***
왕성 크라시온.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라울 브로스넌 국왕은 대귀족들과 함께 정원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건 공왕이나 남북부 왕국의 왕들을 맞이할 때나 보이던 행동이었다.
크라시온 성의 중앙 홀에서도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의자는 라울 브로스넌 국왕의 옆에 나란히 놓였다.
라울 브로스넌 국왕의 파격적인 자리 배치에 아드리아 왕국의 대귀족들은 전혀 귀띔받지 못했던 듯 입을 쩍 벌렸다.
곧이어 왕궁 집사장이 나와서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아드리아 왕국의 대귀족들을 한 사람씩 거명하며 소개했다.
잠시 후 소개를 마친 집사장이 격조 있는 걸음으로 물러났다.
그 뒤로 국왕과 엘리오, 그리고 대귀족들 간에 가벼운 잡담이 오갔다.
어느 정도 대화가 무르익자 라울 브로스넌 국왕이 슬쩍 운을 뗐다.
“지난 칠 일간 오마르 백작이 무시로 찾아와 이것저것 묻더이다. 혹시 라고아 백작께서 크라시온을 방문한 것이 그것과 관련이 있소?”
엘리오는 말을 돌리지 않았다.
“예.”
“들어 보십시다.”
“제국과 남부 왕국의 전쟁을 이용하려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가 누구요?”
“악신 샤이틴입니다.”
“허!”
뜻밖의 이름에 브로스넌 국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제국의 황제나 남부의 어느 왕이라 생각했는데 악신 샤이틴이라니?
그건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이름이었다.
“악신 샤이틴은 이 전쟁으로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혼란의 선봉장으로 우샤스 운드라를 내세웠지요.”
엘리오는 신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괜히 말했다가 이단으로 몰리면 그것도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우샤스 운드라는 마나 프트라스를 따르는 신인데…….”
라울 브로스넌 국왕이 황당한 얼굴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상대가 그랜드 마스터만 아니면 헛소리 말라며 바로 내쫓았을 것이다.
“우샤스 운드라는 자의든 타의든 악신 샤이틴의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제가 얼마 전 어비스에서 마족들을 만나 확인했으니 틀림없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라울 브로스넌 국왕도 더는 반박하지 못했다.
“이해 못 할 소리지만, 그런 말을 나에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나는 악신 샤이틴은 물론 우샤스 운드라와도 관계가 없지 않소?”
“우샤스 운드라가 인간의 몸으로 현신하여 이 전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저는 남부 왕국에 아르테늄을 판매한 마젠타나, 아르테늄을 개발한 마탑의 마법사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전쟁이 더 격화되었으니까요.”
“허어! 이거 참.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려.”
잠시 뜸을 들리던 라울 브로스넌 국왕이 물었다.
“라고아 백작과 제국의 사이가 좋았다면……. 제국의 앞잡이라 오해받기 딱 좋을 소리라는 건 알고 있소?”
“제가요?”
엘리오가 황당한 눈으로 국왕을 보았다.
“마탑에서 개발한 아르테늄을, 마젠타가 나에게 팔지 않았다면 남부 왕국군이 어떻게 제국군과 싸워 이겼겠소? 백작은 지금 남부 왕국의 은인들을 악신 샤이틴의 주구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오.”
“남부 왕국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샤스 운드라는 남부 왕국을 위해 그걸 제공한 게 아닙니다. 그의 목적은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는 겁니다.”
“백작은 우리 남부 왕국이 제국군 발에 짓밟히기를 바라시오?”
“그럴 리가요.”
“왠지 제국군이 전쟁을 빨리 종식시키기를 바라는 듯해서 해 본 말이오.”
“나는…….”
엘리오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솔직히 이세계와 무관한 그는 누가 이기든 관심이 없었다.
라고아 백작의 입을 보던 라울 브로스넌 국왕이 먼저 치고 나갔다.
“나는, 우리 남부 왕국의 사람들은, 제국에게 굴복할 마음이 없소. 우샤스 운드라가 남부 왕국을 돕는다면, 우리는 우샤스 운드라를 섬길 수도 있소. 그것이 인간과 신의 바른 관계가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