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62
1362회. 부탁을 받았지만, 교단은 아닙니다
라울 브로스넌 국왕의 말에 엘리오는 쓰게 웃었다.
맞다.
지금의 전쟁만 생각하면 남부 왕국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우샤스 운드라를 신으로 섬기는 것도 잘못된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우샤스 운드라가 남부 왕국에 신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남부 왕국인들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이 전쟁이 조금 더 격화되고, 오래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를 따라가다 보면 당장은 좋아 보이지만, 더 깊은 절망에 처박히게 될 터였다.
“국왕 전하께서는 조금 전에 제가 한 말을 잊으셨나 봅니다?”
라울 브로스넌 국왕이 고개를 갸웃했다.
“우샤스 운드라의 목적은 남부 왕국의 승리가 아니라, 이 전쟁이 계속되는 것에 있습니다. 끝없는 전쟁으로 이 세계가 피폐해지면……. 마침내는 인간이 감당하지 못할 더 큰 혼란, 악신 샤이틴이 강림할지도 모릅니다.”
“마나 프트라스의 신관들이 그렇게 말했소?”
“아닙니다. 아직은 저의 생각일 뿐입니다.”
“창조신인 마나 프트라스와 그분의 충성스러운 성기사들이 있는데 무엇을 걱정한단 말이오? 그리고…….”
주위를 슬쩍 둘러본 국왕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제국군에게 지배당하느니 이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 더 낫소. 영원한 것은 없으니 언젠가는 끝이 나지 않겠소?”
엘리오는 할 말이 없었다.
국왕은 ‘이 세계의 미래’보다 ‘전쟁에 지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에게 블랙마켓 관리자인 마젠타가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 주십쇼.”
“그를 왜 찾소?”
“그가 우샤스 운드라라면 죽일 겁니다.”
신을 죽이겠다는 말에 라울 브로스넌 국왕은 흠칫했다.
“그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면 미안하지만 알려 줄 수 없소. 알고 있겠지만 남부 왕국에는 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오.”
“그러다 이 세계가 멸망한다고 해도요?”
“악신 샤이틴은 창조신인 마나 프트라스님께서 막아 줄 것이오.”
‘이 아저씨야, 꿈 깨. 그게 가능했으면 마나 프트라스가 나를 부르지도 않았어.’
하지만 엘리오는 차마 그런 말을 국왕에게 할 수 없었다.
그것 역시 신성 모독에 이단적 주장인 까닭이다.
복잡한 눈으로 국왕을 보던 엘리오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묻죠. 마젠타는 어디 있습니까? 가급적 스스로 대답하도록 하세요. 내가 마검사라는 건 아시죠?”
“설마…… 아드리아의 국왕인 나에게 정신 마법이라도 쓰겠다는 건가? 그랬다가는 남부 왕국들의 공적이 될 텐데?”
분노한 라울 브로스넌 왕의 말이 조금 짧아졌다.
국왕의 표정이 굳자 중앙 홀 분위기가 한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
잡담을 나누던 대귀족들의 시선이 상석으로 쏠렸다.
“정신 마법은 아니고요. 그냥 진실을 말하게 된다고 할까요? 물론 부작용 그런 것도 없습니다. 마음과 입이 따로 노는 경험을 하는 것뿐이죠. 어떻게? 그런 경험을 하고 싶습니까?”
이를 악물고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노려보던 국왕이 말했다.
“그럴 필요 없네. 원하는 대답을 해 주지.”
라울 브로스넌 국왕은 부작용이 없다는 라고아 백작의 말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정신 마법에 당해 털어놓느니 그냥 말해 줄 생각이었다.
“그는 지금 남부 왕국의 의뢰를 받아 제도에 있소.”
“제도라고 하면 너무 범위가 큽니다.”
“삼대마탑을 제외한 마탑주들을 만나고 있소.”
“마탑주들을요?”
라울 브로스넌 국왕이 뚱한 얼굴로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표정을 보니 더 말해 줄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
엘리오는 국왕이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
여기서 더 몰아붙이면 자칫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결정한 듯 라울 브로스넌 국왕의 입이 열렸다.
“흐음! 라고아 백작과도 어느 정도 관계된 일이니 가르쳐 주리다. 제국군이 총병을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소. 가장 먼저 검방병을 총병으로 바꿀 모양이오.”
“전쟁 중에 그게 가능합니까?”
“원정군이 아니라 제국령에 있는 부대를 개편 중이라니…… 어려울 게 뭐가 있겠소? 본토의 부대를 개편하고, 원정군과 본토의 총병 부대를 바꾸면 그만인 것을.”
“아!”
엘리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자신이 너무 원정군 중심으로 생각했다.
제국령에는 원정군보다 훨씬 많은 부대가 남아 있었다.
그 부대들을 총병 부대로 훈련시킨 뒤 원정군과 교체한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게 저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제국령의 군대가 총병으로 바뀌든 말든 자신과 무슨 상관이라고?
순간 라울 브로스넌 국왕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불쾌했다면 지금은 흥미롭다는 얼굴이다.
“황태자는 제국의 총병들을 엑시티움으로 무장시킬 계획이오. 한두 개 특작 부대에만 주었던 엑시티움을 모든 총병들에게 주겠다는 것이오. 기사와 마법사 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나 할까.”
“제국에 그만한 돈이 있습니까?”
“그 사정을 누가 알겠소? 다만 삼대마탑이 엑시티움의 대량 생산에 들어간 것만은 사실이오.”
“마젠타는 왜 마탑주들을 만나고 있습니까?”
“왜긴 왜겠소? 삼대마탑이 엑시티움을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하면, 다른 마탑은 천천히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거요. 하여 소외된 마탑주들을 만나서 설득해 보라 했소. 남부 왕국에 엑시티움을 팔라고 말이오. 마젠타는 그런 중대한 임무를 수행 중에 있소. 백작은 그런 마젠타를 넘기라고 한 것이고.”
“그 점은 송구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됐소. 나로서는 마젠타가 우샤스 운드라가 아니길 바랄 뿐이오.”
라울 브로스넌 국왕은 마젠타를 노리는 라고아 백작이 싫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동감하고 있었다.
악신 샤이틴과 조금이라도 얽혔다가는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터였다.
자칫 전쟁이 끝난 뒤에 왕조가 바뀔 수도 있다.
그러느니 라고아 백작의 말에 따르는 게 나았다.
솔직히 반대한다고 해서 거부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국왕 전하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고맙다면 동맹인 남부 왕국을 위해 힘써 주면 안 되겠소?”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악신 샤이틴의 음모를 깨는 것이 우선인지라……. 죄송합니다.”
“악신 샤이틴의 음모라……. 마나 프트라스 교단은 뭐 하고 그 일을 백작이 나서서 하는 것이오? 혹시 교단의 청탁이라도 받았소?”
“부탁을 받았지만, 교단은 아닙니다.”
“기이하군. 그건 아무리 그랜드 마스터라 해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데. 하여튼 알겠소.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소?”
“들어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드리겠습니다.”
엘리오는 남부 왕국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젠타가 우샤스 운드라가 아니라면……. 백작이 제도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에게 도움을 배풀어 주셨으면 하오.”
“전쟁에 관계된 일은 할 생각이 없습니다.”
“아, 오해를 하셨구려. 그가 죽지 않게 지켜 달라는 말이었소.”
“저에게도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는지라 그를 찾아다닐 시간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제 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일은 없게 하겠습니다.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도움은 그 정도입니다.”
“그거면 충분하오.”
라울 브로스넌 국왕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시작은 좋지 않았지만 이만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마젠타가 우샤스 운드라가 아니기만 빌어야겠군.’
라울 브로스넌 국왕은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고 남은 건 신의 영역이다.
‘마나 프트라스시여. 마젠타가 우샤스 운드라면 남부 왕국은 멸망합니다. 그런 일만은 막아 주십시오.’
국왕과 라고아 백작의 눈치를 살피던 대귀족들은 다시 멈췄던 잡담을 이어 갔다.
***
론디니움 제국.
수도 페트로폴리스 중구.
마나 프트라스교 대신전.
대신전의 하나뿐인 신관, 알마티오가 근엄한 얼굴로 사제들을 보았다.
“성하께서 최근 대귀족에게 괴이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셨다. 제국과 남부 왕국의 전쟁에 신들이 관여되었다는. 그것에 대해 아는 자가 있느냐?”
프로타우스 사제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고개를 갸웃하던 데프테로 수석 사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알마티오 님. 저도 얼마 전 그와 비슷한 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저 허튼소리로 여겨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성하께서 거론하실 정도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까?”
“데프테로 수석 사제는 알고 있었단 말이로군. 그걸 왜 나에게 보고하지 않았나? 나는 성하의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듣기만 했다.”
알마티오 신관이 나무라듯 말하자 데프테로 수석 사제가 급히 변명했다.
“죄송합니다. 워낙 허황된 소리라…… 곧 사그라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프로타우스 사제장이 데프테로 수석 사제에게 슬쩍 물었다.
“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허황되다 하는가?”
“신관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제국과 남부 왕국의 전쟁 배후에 신들이 있다고 합니다. 악신 샤이틴이 창조신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인간을 이용한 것이라고…….”
“악신 샤이틴은 스쿠툼(북부의 빙벽) 너머에 영원히 봉인되었는데 무슨 수로?”
“그게…… 악신 샤이틴의 본거지가 스쿠툼 너머 타메이온이 아니라 어비스라고 합니다. 어비스에 마물이 있는 것도 그래서라고…….”
“미친 소리. 어비스는 우샤스 운드라의 거처다. 그런데 어떻게 악신 샤이틴이 그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 이단들의 궤설이야! 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한다는 말인가?”
마나 프트라스 교단에서 우샤스 운드라는 마나 프트라스를 따르는 여러 신들 중에 하나.
그런 우샤스 운드라의 거처인 어비스에 악신 샤이틴이 있다는 말은 크게 어긋난 소리였다.
사제장이 언성을 높이자 알마티오 신관이 손바닥으로 가볍게 탁자를 두드렸다.
“조용. 남부의 원정군에서 흘러나온 소문이다. 이제는 제도의 대귀족들이 모일 때마다 그걸 주제로 떠들어 댄다고 한다. 황실은 그 소문을 교단에서 정리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그러자 프로타우스 사제장이 물었다.
“원정군에서 나온 소문이라면 황실이 정리하는 게 더 빠르지 않습니까?”
“소문의 최초 발원지에 문제가 있다. 그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다. 어비스의 미개척지를 탐사했다고 하여…… 더 파급 효과가 컸던 모양이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라는 말에 사제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북부 출신의 그랜드 마스터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벌린 흉험한 사건 사고 들을 생각하면, 이단 소리가 나오다가도 쏙 들어갔다.
시끄럽던 사제들이 한순간 조용해지자 알마티오 신관은 ‘쯧!’ 하고 혀를 찼다.
물론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당사자가 없는데 입도 뻥끗 못 하는 걸 보니 좀 짜증이 난다.
“사제장, 팔라딘 메타트론에게 라고아 백작을 조사하라는 지령서를 보내라. 그가 이단 궤설을 퍼트린 것이 확인되지 않았으니 예를 갖추라 하고.”
메타트론이 이단에게 잔혹해 특별히 덧붙인 당부였다.
“예.”
프로타우스 사제장은 군말하지 않았다.
메타트론은 소드마스터와 그랜드 마스터의 중간쯤에 이른 강자다.
신성력을 사용하니 세속의 기준으로 보면 마검사라, 실제 실력은 그랜드 마스터보다 위일 거라는 나름 그럴싸한 주장도 있다.
크나우프 대공과 만날 일이 없어 아직은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러니 라고아 백작의 조사에 그만한 적임자도 없다.
이단이라면 유난히 치를 떠는 메타트론이 마음에 살짝 걸리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알아서 잘 처신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