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79
1379회. 죽음이라……. 굉장한 이름이군요
아리에트 알바노를 두고 나갔던 파비안은 밤이 늦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제도의 야경을 보고 있던 엘리오가 그를 힐금 보더니 말했다.
“돈도 없는 놈이 어디서 뭐 하다가 이제 오냐?”
“근처를 한 바퀴 돌고 왔습니다.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탑주가 달아나서 못 만났다.”
“달아나요?”
“아드리아 왕국에서 알려 줬나 봐. 자기 찾지 말라는 편지를 남기고 튀었다. 탑주나 되는 마법사가 얼굴도 두껍지.”
“체면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라고아 백작님이 무서웠나 보죠.”
파비안은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의 도주를 이해할 수 있었다.
라고아 백작은 손을 쓸 때 신분의 고하를 따지는 사람이 아니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마탑에 있었으면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
“알고 보면 나같이 여린 사람도 없다.”
“라고아 경이 어딜 봐서 여립니까?”
“안 여리냐?”
“그런 분이 은촛대로 재상을 죽입니까?”
“남부 왕국 왕들이 겁 좀 먹으라고 그런 거야. 안 그러면 자꾸 나를 툭툭 건드릴 것 같더라고. 그럼 더 많은 피를 봐야 하잖아.”
솔직히 엘리오는 이번 소피아 남작의 전사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아드리아 왕국이 마력총 구매를 위해 자신의 지인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건 그랜드 마스터로서 자신의 존재감이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기사와 마법사의 지위가 떨어졌다고 하더니 그래서 그런 걸까?
“그 정도면 왕들치고 정중하지 않았습니까?”
“정중이라고 했냐? 너 뭘 착각하고 있는데 타메이온에서 왜 네가 살아남았는지 알아?”
“그야 라고아 백작님이 옆에 계셨기 때문이죠.”
“맞아. 그 단순 무식한 마족들도 너에게 손대지 못할 정도로 나를 두려워했어. 그런데 최근의 흐름을 봐. 제국군은 너를 체포해 고문했고, 아드리아 왕국은 소피아 남작을 죽였어. 그래도 정중했다는 말이 나오냐?”
“말씀을 들으니 그건 또 그렇네요.”
“제국은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제국군 특수 부대를 믿고 그런 짓을 했지. 그런데 아드리아 왕국에는 뭐가 있어? 고철 덩어리가 된 강철 골렘밖에 없잖아. 이상하지 않아?”
“그래서 오마르 백작님을 아드리아에 남겨 놓으신 겁니까?”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유 말고 뭔가 감추고 있는 게 있을 거야.”
“그게 뭘까요?”
“엑시티움이나 아르테늄처럼 전세를 뒤바꿀 만한 무기일지도 모르지.”
“아르테늄 같은 거면 좋겠습니다.”
“왜?”
“엑시티움 같은 파괴적인 무기가 또 등장하면 세상이 멸망할 것 같아서요.”
엘리오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득 어비스에서 만난 안타르 신(마족의 신)의 말이 떠올랐다.
샤이틴(악신)이 만든 세상은 티탄족(마나 프트라스의 종족)에 의해 멸망한 바 있다.
그렇다면…….
“파비안, 마나 프트라스의 세상이 멸망하면 다시 악신 샤이틴의 세계가 되는 걸까?”
“대혼돈의 세계요? 설마요. 이 세상이 하루아침에 어떻게 바뀝니까?”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죠.”
“그런데 말야. 원래 이 세상을 창조한 게 악신 샤이틴이라잖아.”
“안타르 신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하면 그랬죠.”
파비안은 차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지 사족을 길게 달았다.
“어쨌든 마나 프트라스도 악신의 세계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바꿨잖아. 그렇다면 악신도 그럴 수 있는 거 아냐?”
“그럼 타메이온이나 어비스의 미개척지처럼 변하는 겁니까? 대낮에 마족이 도시를 돌아다니면 볼만은 하겠네요.”
“볼 틈이나 있겠냐? 사람은 가축 신분으로 전락할 텐데.”
“어휴! 생각만 해도 오싹하네요.”
“그런데 말야. 우샤스 운드라가 ‘혼란의 선봉장’이잖아. 그게 마족들이 신전까지 세워 줄 정도로 대단한 공적인가?”
“그러니까 신전을 세워 주겠죠?”
순간 엘리오는 ‘혼란’과 ‘멸망’을 떠올렸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파비안의 말처럼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뀔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
전선이 다시 출렁거렸다.
두 달에 걸쳐 물자 보급을 끝낸 제국군이 페로무로스를 나선 것이다.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제국군은 해일처럼 아드리아 왕국을 휩쓸었다.
남부 왕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그들은 강철 골렘을 아예 전선에 내세우지도 않았다.
강철 골렘을 꺼내 봤자 엑시티움에 벌집이 되니 후방으로 빼돌린 것이다.
남부 왕국에도 총병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제국군에 비해 숫자가 너무 적었다.
남부 왕국군의 주축은 아직 기사단과 검방병이고, 총병은 보조적 위치에 불과했다.
자연히 남부 왕국군은 총병이 주축인 제국군에 쓸려 나갔다.
나흘 만에 제국군은 왕성 크라시온을 점령했다.
그건 역마차의 이동 속도와 거의 같아서 남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기사와 마법사로 대변되는 남부 왕국군이 총병에 밀렸다!”
“남부 왕국군도 총병을 중심으로 재편성해야 한다!”
“엑시티움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이대로라면 남부 왕국은 멸망한다!”
“북부 왕국은 왜 동맹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가!”
“북부 왕국이여 일어나라! 제국은 남부에 이어 북부까지 점령할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총병과 엑시티움, 그리고 북부 왕국의 행보에 쏠렸다.
한때 전장의 지배자라 불리던 강철 골렘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보름 후.
국경선까지 밀린 남부 왕국군은 아드리아에서 인접한 살람 왕국으로 후퇴했다.
제국군이 쉐이드 왕국에 이어 아드리아 왕국까지 점령한 것이다.
그즈음 드니로프 왕국에 집결했던 남부 왕국군 7개 사단이 살람 왕국으로 이동했다.
그들과 달리 우름 왕국에 집결했던 남부 왕국군 6개 사단은 쉐이드 왕국으로 진격한다.
길게 늘어진 제국군 보급로를 끊기 위해 벌인 전격적인 작전이었다.
하지만 남부 왕국군 6개 사단은 노토스의 제국군 1개 사단에 대패하고, 끝내 우름 왕국으로 후퇴했다.
‘노토스 전투’라 불린 그 사건으로 ‘기사단과 검방병 무용론’이 또 한차례 남부 왕국을 휩쓸었다.
오랜 세월 기사와 마법사를 숭상하던 남부 왕국은 ‘노토스 전투’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다.
왕가와 대귀족들도 이제는 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병이 답이다.”
“군대를 개편하라!”
후방의 남부 왕국들은 마력총 수급에 열을 올렸다.
그들은 왕국의 모든 재정을 마력총 구매에 쏟아부었다.
한편에서는 이미 늦었다고 말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이야말로 적기라고 주장했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마력총 제작이 마탑에 일반화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마탑은 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명한 마탑은 제국으로 진출했지만, 왕국에도 뿌리가 남아 있었다.
엑시티움 같은 전략 무기를 만들 마공학자는 제국에 있지만, 마력총은 왕국의 마탑에서도 얼마든지 생산이 가능했다.
물론 성능이야 제국 마탑에 미치지 못했지만, 최소한 활보다는 나았다.
후방의 남부 왕국들은 제국군처럼 기사단과 검방병을 없애고, 총병들로 군대를 개편했다.
마력총은 아직 부족했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손을 본 것이다.
***
살람 왕국.
왕도 다르에스.
고성(古城) 마지드.
살람 왕국으로 피신한 아드리아의 왕 라울 브로스넌은 왕도 다르에스의 마지드 성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이제나저제나 블랙 마켓 관리자 마젠타에게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준비한 피신이었기에 왕가의 재물과 군대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계약을 목숨처럼 여겼기에 마력총은 걱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엑시티움에 버금가는 신무기다.
개발이 거의 끝났다고 들은 지도 꽤 오래전인데,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니 환장할 노릇이다.
비록 나라를 잃었지만 남부 왕국의 왕들은 자신을 과거보다 더 극진하게 대접했다.
엑시티움에 맞설 신무기 개발을 거의 끝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오늘도 라울 브로스넌 왕은 창가에 서서 마지드의 출입문을 쳐다보았다.
‘마젠타여, 그대에게 남부 왕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너무 늦어도 안 된다.
남부 왕국들이 제국군에 다 점령당하면 신무기도 쓸모가 없다.
‘마나 프트라스시여! 남부 왕국에 살길을 열어 주소서.’
그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마젠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
론디니움 제국.
제도 페트로폴리스 남구.
아도브 마탑.
그 시간 마젠타는 한 늙은 마공학자와 함께 아도브 마탑을 방문하고 있었다.
아도브 마탑 탑주인 바스코 피오렌자 백작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메기스투스 님. 존귀하신 아크 메이지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크 메이지는 마공학의 최고에 도달한 이를 부르는 호칭이다.
바스코 피오렌자는 마탑 탑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추었다.
메기스투스의 주름 가득한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후후. 별말씀을. 그런데 저의 조언이 필요하시다고요?”
타불라 마탑의 마공학자인 메기스투스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예, 실은 최근 우리 마탑에서 엑시티움과 비슷한 물질을 개발했습니다. 우리 마공학자들은 핵심 물질이 다르면 개발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부분을 확인받고 싶어서 모셨습니다.”
엑시티움의 개발자 중에 한 사람인 메기스투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엑시티움의 핵심 물질은 루비도늄입니다. 루비도늄과 다른 연금술의 재료들로 버무려 만든 것이라고나 할까요? 엑시티움도 그러한데 어찌 우리가 욕심을 부리겠습니까? 루비도늄을 복제한 게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조마조마한 얼굴로 듣고 있던 바스코 피오렌자 백작의 안색이 밝아졌다.
“우리가 만든 물건에는 루비도늄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용한 것은 노블륨이라는 신물질입니다.”
“제가 확인해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셔야지요.”
바스코 피오렌자 백작은 두말하지 않고 메기스투스를 마공학 연구소로 데리고 갔다.
아도브 마탑 마공학 연구소.
바스코 피오렌자 백작이 중년의 마공학자에게 눈짓을 보냈다.
마공학자가 마력총을 들고 한쪽 구석으로 이동했다.
벽 쪽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강철 파츠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바스코 피오렌자 백작이 강철 파츠를 가리키며 말했다.
“강철 골렘의 부품인 강철 파츠입니다. 마력총으로는 생채기조차 낼 수 없다고 알려져 있지요.”
그때 마공학자가 마력총을 발사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마력총에서 파란빛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이윽고 큼지막한 강철 파츠에 어른 손가락만 한 구멍이 뚫렸다.
잠시 후 마공학자가 마력총에서 손가락 두 개를 합친 크기의 마력탄을 뽑아 와 탑주에게 건넸다.
바스코 피오렌자 백작이 마력탄을 연금술 제작대 위에 올려놓은 뒤 말했다.
“분석해 보시면 루비도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노블륨과 여타의 연금술 재료로 만들어진 신물질입니다.”
물론 여타의 신물질은 엑시티움과 동일하지만, 그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호기심 어린 얼굴로 마력탄을 분해해 살피던 메기스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루비도늄이 없군요. 개발진 중에 유일한 생존자인 저는 이 신물질에 저의 독점적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순간 아도브 마탑의 마공학자들은 ‘와아!’ 하고 환호를 내질렀다.
사실 그들이 만든 신물질은 주요 소재만 다르지 엑시티움과 똑같았다.
마공학자들이 찔려서 개발자를 은밀히 모셔 오기까지 할 정도면 말 다했다.
그 신물질에 대해 엑시티움 개발자가 면죄부를 준 것이었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마공학자들을 보던 메기스투스가 물었다.
“그런데 이 신물질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타나토스라 지었습니다.”
“죽음이라……. 굉장한 이름이군요. 아도브 마탑의 기술 수준에 탄복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탑주에게 묵례를 하고 돌아선 메기스투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