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01
1401회. 그 사람도 저를 닮아서
구름 위에서 연적하는 장탄식을 흘렸다.
홧김에 총사부의 동태를 살피러 왔다가 엄청난 것을 듣고 말았다.
황룡방을 없애겠다니.
물론 감히 남궁연에게 껄떡거린 황룡방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없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 ‘남맹이 그래도 되나?’ 하는 물음은 있다.
황룡방은 남맹이 아니라 석경장에 죄를 지었다.
그리고 남맹은 얼마 전까지 황룡방을 위해 심통에게 사과를 종용했다.
친구에서 적으로 손바닥 뒤집듯 바꾸다니 소름이 돋는다.
장인어른과 대총사의 대화 어디에도 신의(信義)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래서야 녹림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아! 진짜 정떨어진다.’
남맹 총단 위에 머무르던 구름 한 덩이가 바람 따라 조용히 흘러갔다.
***
청명절 무림대회 당일.
남비하(南肥河).
이른 새벽.
아홉 명의 무인들이 남비하를 향해 빠르게 걷고 있었다.
남맹을 떠나 절강성으로 돌아가는 황룡방이다.
후미에 있던 방도들 중 누군가 피곤한 얼굴로 옆사람에게 말했다.
“어차피 무림대회가 끝나려면 며칠은 걸릴 텐데, 쉬엄쉬엄 가도 되지 않나?”
“남맹이 해코지를 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는 거잖아. 남맹이 얼마나 잔혹한지 몰라? 한솥밥 먹던 호천맹에도 가차 없이 살수를 쓰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정사지간 방파를 그냥 둘 것 같아?”
“뭘 해도 무림대회를 끝내고 하지 않을까? 지금 무림대회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잖아. 게다가 손님으로 초대한 사람들에게 바로 칼을 들이대기야 하겠어?”
“방주님의 치료도 서둘러야 하니까 겸사겸사 그러는 거겠지.”
“하긴…….”
사내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남맹에서는 방주의 팔이 잘린 걸 알면서도 나 몰라라 했다.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서라도 한시바삐 절강성으로 돌아가는 게 나았다.
앞서 걷던 부방주 철혈검 장도우는 수하들의 수군거림을 애써 무시했다.
‘남비하를 건널 때까지 아무 일이 없어야 하는데…….’
남비하를 건너면 남맹에서 하룻길 정도로 거리가 벌어진다.
그 정도면 남맹의 암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침내 선두의 장도우는 강변의 마른 갈대밭으로 진입했다.
때마침 강바람이 갈대숲을 한차례 쓸고 지나갔다.
쓰아아아―!
그 소리가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자 장도우는 무심코 좌우를 살폈다.
‘헉!’
좌우편에서 갈대밭을 가르며 빠르게 이십여 명의 무인들이 쇄도하고 있었다.
파파팟―!
깜짝 놀란 장도우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누구냐!”
뒤늦게 황룡방도들이 도검을 뽑아 들었다.
“씨발! 뭐야!”
“뭐 하는 새끼들이야!”
그러나 좌우편에서 짓쳐 드는 이십여 명의 무인들은 대답 없이 칼질을 시작했다.
차차차창―!
감찰대는 오대세가의 정예들이다.
한쪽 팔이 부러진 황룡방도들은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썰려 나갔다.
방도들과 황룡신군 한비호가 죽고, 마지막으로 장도우만 남았다.
장도우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초대받아 왔더니 다짜고짜 칼질이냐! 그러고도 너희가 정파라 할 수 있느냐!”
그러자 감찰대 대주 낙월검 남궁원이 말했다.
“초대받아 왔으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했어야지. 감히 십전무후에게 지분대고 살아남기를 바랐더냐?”
“위선자 새끼들! 십전무후 핑계 대지 마라! 그에 대해서는 충분히 사과를 했다! 구천노도가 남맹 뜻에 따르지 않으니, 우리를 죽여 입을 봉하려는 것이 아니냐!”
그러자 서늘한 눈으로 장도우를 보던 남궁원이 벼락처럼 검을 휘둘렀다.
얼마나 빨랐던지 장도우는 목이 베인지도 모르고 눈을 끔뻑였다.
“뭐…….”
뒷말을 채 잇지 못하고 장도우의 머리가 갈대밭으로 툭 떨어졌다.
감찰대는 황룡방도들에게서 신분을 증명하는 물건들을 회수한 뒤 자리를 떠났다.
***
합비.
도향촌 남맹.
사시 정(오전 10시) 무렵, 남맹 정문으로 고급스러운 이두마차 한 대가 다가왔다.
정문 인근은 몰려든 인파로 북적거렸다.
마차가 접근하자 사람들이 눈을 부라렸지만 마부는 고집스럽게 마차를 정문으로 몰아갔다.
마차를 알아본 남맹 무사들이 황급히 사람들을 좌우편으로 밀어냈다.
“마차가 들어가게 비키시오!”
“잠시 뒤로 물러서시오!”
“아! 밀치지 마쇼!”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마차를 세워야지! 왜 사람을 밀쳐?”
“순서를 지키라면서!”
입구에 있던 사람들이 항의했지만, 결국 마차가 먼저 들어갔다.
남맹 내부의 사정도 비슷했지만 마차는 멈추지 않았다.
마부는 외각을 지나 내각 깊숙이 들어가서야 마차를 세웠다.
내각에 있던 오대세가 원로들이 마차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잠시 후 마차에서 연적하 일가족이 내렸다.
남궁세가, 선우세가, 당가가 앞서고 모용세가와 팽가가 그 뒤를 따랐다.
그것은 마치 오대세가와 석경장의 거리를 보여 주는 듯했다.
남궁세가와 선우세가는 처음부터 연적하를 가까이한 반면, 당가는 연적하와 갈등을 겪은 뒤 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세를 낮췄다.
모용세가와 팽가의 경우 ―남맹 내부에서― 남궁세가와 주도권 다툼을 하는 처지라 연적하와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오대세가 원로들은 연적하 일가와 함께 외각의 비무대로 이동했다.
연적하 일가와 오대세가 원로들이 ―거대한 차양막이 쳐진― 귀빈석에 자리를 잡고 앉자 마침내 남맹의 비무대회가 시작됐다.
연적하는 비무대회의 개최식에만 참가하고 눈치껏 빠져나왔다.
연지안도 월아와 금아가 없어서인지 비무대회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과 내각으로 돌아간 연적하는 마차가 눈에 띄지 않자 운종술을 펼쳤다.
무림대회로 내각이 텅텅 비었기에 운종술을 보고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연적하 일가는 그렇게 조용히 석경장으로 돌아갔다.
남맹의 무림대회는 무려 열흘 만에 끝이 났다.
보통 사나흘, 길어야 닷새였던 과거의 무림대회를 생각하면 두 배나 걸린 셈이다.
그럴 정도로 수많은 무인들이 참여했다.
무림대회를 통해 최종 네 명의 강자가 배출됐고, 사람들은 그들을 사대천왕이라 불렀다.
남맹에서는 사대천왕의 우열은 가리지 않았다.
비무가 너무 치열했기에 사대천왕이 죽거나 다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열흘간의 비무대회로 사상자만 오십 명이 넘게 나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남맹의 비무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남맹이 곧 대륙으로 진출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남맹은 필연적으로 호천맹과 싸운다.
오랜 세월 칠파이문에 눌려 살던 무인들에게 남맹은 날개를 펼칠 다시없을 기회였다.
그들은 남맹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엇보다 남맹에는 남천 연적하와 십전무후가 있었기 때문이다.
***
사월 보름.
정오 무렵, 석경장으로 남맹의 맹주인 검왕 남궁벽이 찾아왔다.
며칠 전 미리 통보를 받은 바 있던 연적하는 집에서 장인을 맞이했다.
“장인어른, 어서 오십쇼.”
연지안도 석 달 만에 본 외할아버지에게 어색한 얼굴로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그래, 잘 지냈느냐?”
남궁벽은 ―오랜만에 만났으니 한 번쯤 안아 줄 만도 한데― 인사를 받기만 했다.
그리고 이내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와 나눌 이야기가 있어 찾아왔다.”
남궁벽이 바로 일 이야기를 꺼내자 남궁연은 딸을 데리고 안채로 돌아갔다.
그녀는 마치 말을 하지 않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중간에 끼어 머리를 긁적이던 연적하는 서둘러 장인을 따라갔다.
객청.
여종이 다과상을 내올 때까지 남궁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연적하가 두 개의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찻물이 우러나자 남궁벽은 느긋하게 차를 마시시 시작했다.
연적하는 뜨거운 차를 홀짝거리며 장인의 눈치를 살폈다.
심통이 모용각을 때린 일로 온 것 같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잠시 후 찻물이 미지근해질 즈음, 남궁벽이 지나가듯 말했다.
“듣자하니 첫날 잠깐 얼굴을 내비치고 다시 비무대회에 참관하지 않았더구나.”
“참가자 중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그렇지. 참가자 대부분이 너를 보겠다고 온 사람들인데.”
연적하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기도 하거니와 또 비무대회가 열려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연적하가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자 남궁벽은 화제를 돌렸다.
“황룡방의 일은 들었다. 연이에게 큰 잘못을 했다지? 심통이 손봐 주었다기에 남맹도 그들과의 관계를 끊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남맹이 절강성에 진출할 때 필요한 방파 였다고 들었는데.”
“절강성에 황룡방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신경 쓸 것 없다.”
“아, 예.”
“그런데 심통이 황룡방을 손보면서 남맹의 총사까지 건드렸더구나.”
“…….”
연적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딱히 할 말도 없었다.
“모용세가와 팽가는 남맹에서 남궁세가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입김도 세지. 모용세가에서 이번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으려 할 것이다.”
“예에.”
연적하가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남궁벽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솔직히 말하마. 모용세가에서 그 일을 나에게 떠넘겼다. 심통에게 주의를 주라는구나. 이 문제에 대해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글쎄요. 장인어른은 심 노인에게 주의를 주고 싶으십니까?”
“심통이 보기에 모용각의 언행이 괘씸하겠지만…….”
“장인어른은요?”
연적하가 자신의 말을 끊자, 남궁벽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나?”
“예, 연 누이는 장인어른의 딸이잖습니까? 장인어른은 황룡방에 사과하라는 모용각의 언행이 기분 나쁘지 않으십니까?”
“흐음.”
남궁벽은 대답 대신 묵직한 침음성을 흘렸다.
물론 기분 나쁘다.
황룡방주가 자신의 딸을 작부 취급했으니 죽여 버리고 싶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모용각의 경우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는 남맹의 총사로 ‘황룡방을 포섭하라’는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모용각은 총사부의 결정에 따랐을 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심 노인의 머릿속에는 석경장 식솔들의 명예와 안위밖에 없습니다.”
연적하는 한결같은 장인의 태도에 쓰게 웃었다.
자신의 처가 장인에게 거리를 두는 것도 이래서다.
장인에게는 딸보다 남맹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그러니 남이라 할 수 있는 심통도 분개하는데 남맹의 편을 들겠지.
자신이 남궁연이래도 본체만체할 게다.
“적하야.”
“예.”
“사내란 큰일 앞에서 때로는 사사로운 정을 덮어 두어야 할 때가 있다.”
“가족도 돌보지 못하면서 천하를 논하는 것은…… 좀 그런 것 같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필부들이 하는 말에 불과하다. 성인군자라 해도 가족은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요, 순, 우의 경우만 해도…….”
남궁벽은 자식 농사에 실패한 옛 성군의 경우를 들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뚱한 얼굴로 듣던 연적하가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래서 장인어른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데요?”
“일단은 심통이 알아듣게 주의를 주려 한다.”
“아, 예에.”
“그래도 괜찮겠느냐?”
“저야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심 노인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도 저를 닮아서.”
연적하가 애매한 눈으로 장인을 보았다.
심통의 성격에 바로 난리를 칠 텐데 대화가 잘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