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09
1409회. 왜 너에게 추천장을 써 줬는지 알겠다
사흘 후.
조성찬 방주는 셋째 아들 조현덕을 하남성 낙양으로 떠나보냈다.
합비에서 낙양까지의 거리는 무려 천사백 리(약 550킬로미터).
하루에 백 리(약 40킬로미터)씩 가도 십사 일이나 걸리는 그야말로 대장정이다.
조성찬 방주는 병약한 아들을 위해 이두마차 한 대와 세 명의 호위무사를 붙여 주었다.
가는 길에 도적 떼라도 만나면 생사를 장담하기 어렵지만, 조현덕은 두 눈 질끈 감고 머나먼 여정에 올랐다.
다행히 초여름이라 먼 거리를 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호위무사들은 상방 소속이라 위험 지대를 요령껏 잘 피해 다녔다.
도적 떼가 출몰한다는 지역은 아예 빙 둘러서 갔다.
도착 날짜는 며칠 더 늦어지겠지만 그래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소규모 도적들은 호위무사들 덕분인지 아예 마주치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주구에서 큰 행운을 잡았다.
노변의 요릿집에서 낙양으로 가는 금린표국을 만난 것이다.
호위무사들은 머뭇거리는 조현덕의 등을 떠밀어 총표두 자리에 합석시켰다.
총표두 일각도 마전이 부드러운 낯빛으로 청년을 보며 말했다.
“조양상방 조 방주님의 셋째라고?”
“예, 조현덕이라 합니다.”
“조양상방이 합비에서 잘나가는 상방임은 알고 있네. 낙양에 분점이라도 낼 계획인가?”
“아닙니다. 제가 연가무관에 입관을 청하고자 가는 길입니다.”
“연가무관?”
나른하던 총표두의 눈에서 한순간 정광이 번득였다.
연가무관은 고금제일인 남천 연적하의 형이 운영하는 무관인 까닭이다
“예.”
총표두의 표정이 변하자 조현덕은 괜히 긴장해 허리를 빳빳이 세웠다.
“연가무관의 제자가 되기는 쉽지 않을 텐데……. 명문 무가의 직계들도 열 명이 지원하면 하나가 겨우 붙는다고 들었네.”
십칠 년 전 연적하가 천하십대고수 다섯을 격퇴한 뒤로 생긴 변화였다.
구천검은 천하제일의 검술로 알려졌고 당연히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줄을 섰다.
하지만 연가무관에서는 딱 정해진 숫자의 제자만 받았다.
연가무관이 받은 제자는 백 명.
그들 중 연가무관에서 살게 된 서른 명을 제외하면 모두 고성촌에서 지내야 했다.
이른바 칠십여 명이 외거 제자가 된 셈이다.
제자들 대부분이 권문세가, 상방 방주 등의 자녀들이었다.
마을에 집이 부족해지자 외거 제자들은 아예 새집을 건축했다.
그렇게 세워진 집만 오십여 가구나 됐다.
덕분에 한적하던 변두리 마을 고성촌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총표두가 설명하듯 말을 이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연가무관에서는 해마다 제자를 열 명씩 배출하고, 딱 열 명의 제자만 받는다네. 신입 제자를 받는 것도 봄에 끝났지.”
“아…….”
조현덕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연가무관이라고 해서 규모가 작으려니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자네는 무공을 수련했나?”
“아니요. 그동안은 과거를 준비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무공 수련으로 뜻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흐음!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데? 올해 몇이나 되나?”
“스물셋입니다.”
“무공의 기초는 좀 닦았고?”
“글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믿고 연가무관으로 가는가? 명문 무가의 자제들도 탈락을 밥 먹듯 하는데.”
총표두가 한심하다는 듯 볼 때, 조현덕이 깜짝 놀랄 말을 했다.
“열흘 전에 남천 대협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남천 대협께서 저에게 연가무관으로 가서 무공을 배우라 하셨습니다.”
“뭐? 자네가 남천 대협을 만났다고?”
“예. 저희 조양상방이 석경장에 물품을 대는데…… 그 일로 남천 대협이 조양상방을 방문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때 남천 대협에게 인사드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이한 일이로군. 남천 대협은 지난 십칠 년간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처음 만난 자네에게 그런 권유를 하셨다니.”
총표두가 반신반의한 눈으로 보자 조현덕은 가슴이 답답했다.
남천 대협의 호의가 믿어지지 않기는 자신도 마찬가지다.
남이 듣기에도 황당한 이야기일 것이다.
“갑작스러운 일이지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남천 대협께서는 연가무관으로 가라고 하시며 추천장까지 써 주셨습니다.”
“추천장을?”
총표두가 눈을 치떴다.
추천장이란 본시 아무에게나 써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남천 대협이 한낱 서생에게 무관에 입관하라고 추천장을 써 줬다니?
총표두의 눈빛이 서늘해지자 조현덕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사실만 말했는데 왜 분위기가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다.
총표두 일각도 마전이 가까이 있던 표사 하나를 손짓해서 불렀다.
“예, 총표두님.”
“가서 연 표두를 잠시 불러 오게. 내가 개인적으로 물어볼 게 있어서.”
“예.”
잠시 후 외팔이 검객 하나가 총표두의 자리로 다가왔다.
외팔이 검객, 무정검 연승백이 뚱한 얼굴로 물었다.
“부르셨습니까?”
그러자 총표두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오! 연 표두. 잘 왔네. 내 오늘 한 사람을 자네에게 소개를 시켜 주려고 하네.”
연승백의 시선이 낯선 청년에게 향하자 총표두가 과장스러운 손짓으로 조현덕을 가리켰다.
“소개하지. 조양상방의 셋째 아들인 조현덕일세. 연가무관에 입관하러 가는 중이라더군. 그런데 놀라운 게 뭔지 아나?”
연승백은 묵묵히 총표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은거한 지 십칠 년이 넘어가는 남천 대협에게 추천장을 받았다고 했네. 그것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말이지. 그 추천장의 진위를 자네라면 확인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불렀네.”
연승백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조현덕의 아래위를 살폈다.
연적하가 이 청년의 뭘 보고 그런 걸 써 줬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한편 조현덕은 일이 점점 꼬이는 듯하자 안절부절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조현덕이 그러거나 말거나 총표두가 소개를 이어 갔다.
“이런, 내가 소개를 하다가 말았네그려. 조 소협, 소개하지. 이쪽은 내가 은퇴하면 우리 금린표국의 총표두를 맡아 줄 무정검 연승백 표두라네. 연씨라는 성에서 짐작했듯 연가무관 관주님의 동생이며, 남천 대협의 바로 위 형님이시지.”
총표두의 소개에 놀란 조현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안녕하십니까? 조현덕이라 합니다.”
연승백이 멋쩍은 얼굴로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초면에 예가 과해. 강호에서 지나친 예는 비겁해 보일 수 있으니 자제하게.”
연승백의 점잖은 충고에 조현덕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적하가 추천장을 써 주었다고?”
“예.”
“이러 줘 보게.”
조현덕은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추천장을 내밀었다.
연적하의 성격답게 추천장은 기본적인 밀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연승백은 조심스럽게 추천장을 꺼냈다.
과연! 괴발개발의 필체는 연적하의 것이 틀림없었다.
피식 웃던 연승백은 읽기를 포기하고 다시 조현덕에게 돌려줬다.
“총표두님, 추천장은 아우가 쓴 것이 맞습니다. 조현덕이라고 했나?”
“예.”
“나는 연가무관을 나와서 금린표국에 자리를 잡았다. 무관에 가서 관주님을 만나게 되면 내 안부를 전해다오. 동문이 될 사이에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
“예? 예! 물론입니다.”
추천장이 진품으로 밝혀지자 총표두는 얼른 태도를 바꿨다.
“조 소협, 축하하네. 남천 대협의 추천장이라면 입관은 따 놓은 당상이지. 마침 우리가 낙양으로 가는 길인데, 우리와 동행하는 건 어떻겠나?”
순간 조현덕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 제안이야말로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뒤에서 보고 있던 호위무사들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금린표국과 함께 움직인다면 더 이상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어서다.
그때부터 조현덕 일행은 금린표국과 동행했다.
낙양까지 가는 칠 일 동안 연승백과 조현덕은 자주 어울렸다.
정확히는 연승백이 틈만 나면 조현덕을 불렀다.
연적하가 조현덕을 연가무관으로 보내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낙양까지 가는 칠 일 동안 이것저것 물었지만 허사였다.
조현덕도 연적하가 왜 자신을 연가무관으로 보내는지 알지 못했으니 당연하다.
칠 일 후 낙양에 도착한 조현덕 일행은 금린표국과 작별했다.
***
고성촌.
해거름 무렵, 이두마차와 세 명의 무사가 마을 어귀로 들어섰다.
낙양을 떠난 조현덕 일행이다.
조현덕 일행은 물어물어 연가무관을 찾아갔다.
조현덕이 감동한 얼굴로 ‘연가무관’이라고 적힌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조양상방을 떠난 지 이십 일 만이었다.
일행이 좀 더 많았다면 보름이면 충분했을 거리지만, 다치지 않고 온 게 어딘가!
그때 호위무사 중에 하나가 연가무관의 대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중년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구요?”
호위무사 중 선임이 정중하게 답했다.
“남직례성에 있는 조양상방의 셋째 공자님이 연가무관에 입관하기 위해 왔습니다. 남천 대협께서 써 주신 친필 추천장이 있습니다.”
남천 대협의 추천장이라는 말에 대문이 활짝 열렸다.
조현덕은 호위무사들에게 작별을 고한 뒤 대문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다시 연가무관의 대문이 닫혔다.
호위무사들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이두마차를 끌고 돌아갔다.
연가무관 안채.
연가무관 관주인 와룡검객 연무백이 추천장을 서탁 위에 내려놓았다.
오십이 넘어서 그런지 막내의 글자를 판독하니 눈알이 다 뻐근하다.
뻑뻑한 눈을 몇 차례 깜빡이던 그가 정감 가는 어조로 물었다.
“조양상방 방주의 셋째라고?”
“예.”
“무공은 몇 살부터 익혔느냐?”
순간 조현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금린표국의 총표두도 저 질문에 답을 듣고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글공부를 하느라…… 아직 익히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용케 적하의 눈에 들었구나? 특별한 점이 있었다는 건데…….”
중얼거리던 연무백이 조현덕을 응시했다.
강호의 고인들 중에는 근골을 만져 보면 안다지만 자신은 그러지 못하다.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것이 있느냐?”
“시화(詩畫)에 조금 뛰어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현덕은 솔직한 사람이라 ‘조금’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괜히 상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글공부를 했다니 암기 하나는 잘하겠구나.”
“내세울 만큼 잘하지는 못하고, 그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겸손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내세울 정도로 잘했다면 진즉에 과거에 급제를 했을 터였다.
말 속에 담긴 뜻을 간파한 연무백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조현덕의 말대로라면 그는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무슨 말만 하면 ‘조금’이라거나,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라고 설명부터 하는 걸 보면 소심하기까지 했다.
“연가무관은 몸을 쓰는 곳이다. 체력도 남들 만큼 되느냐?”
나름 유연하게 대처하던 조현덕이 처음으로 삐그덕거렸다.
“그게, 저어…….”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소생은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체력으로는 남들보다 못합니다.”
뜻밖의 대답에 연무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현덕은 갑작스러운 연무백의 침묵에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수그렸다.
저 유명한 연가무관에 뭐 하나 내세울 것 없고, 체력마저 떨어지는 놈이 지원하다니!
관주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연적하가 추천장을 써 주었어도 화가 날 터였다.
의기소침해 쪼그리고 있는 조현덕의 귓가에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핫!”
조현덕은 벼루에 맞아도 이상하지 않은데 도리어 웃음이 날아들자 슬그머니 얼굴을 들어 올렸다.
연무백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어깨까지 들썩이고 있었다.
한참 웃던 연무백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끝으로 찍어 내며 말했다.
“적하가 왜 너에게 추천장을 써 줬는지 알겠다.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다. 방 하나를 내어 줄 테니 오늘부터 그곳에 묵도록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