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10
1410회. 그놈이 사고를 쳤어요?
놀랍게도 조현덕이 배정받은 숙소는 안채에 딸린 사랑방이었다.
연무장 옆의 공동 숙소를 사용하는 다른 제자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의 대접이다.
연가무관의 출관과 입관은 삼월에 열린다.
그로부터 무려 넉 달이나 지난 뒤에 홀로 입관한 청년이, 공동 숙소가 아니라 ―마치 빈객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랑채를 사용하니 제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연가무관에서는 ‘공동 숙소에 빈자리가 없어 사랑채를 내주었다’고 설명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여하튼 그렇게 조현덕은 연가무관에 자리를 잡았다.
연가무관에 입관하면 길게는 십 년, 짧아도 삼사 년은 수련을 한다.
조현덕 역시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처럼 수련 기간을 채우리라 결심했다.
그래야 출관 후에도 동문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얼떨결에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되었지만, 무인으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연가무관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비록 연가무관 관주인 와룡검객 연무백에게 환대를 받았지만 조현덕의 체력이 문제였다.
어릴 때부터 병약하던 그는 평생 책을 읽으며 살았다.
당연히 조현덕은 대여섯 살부터 내외공을 익힌 동문들의 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조현덕의 실체가 드러났다.
연가무관의 사범들은 물론, 동문들도 그가 약골에 그냥 나이만 먹은 서생임을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수련생들은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내부적으로는 동문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사제도, 큰형님도 아닌 ‘아저씨’라는 호칭을 조현덕은 묵묵히 받아들였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연가무관의 제자들 나이는 평균 십 대 초중반에 불과한 때문이다.
여름이 다 가도록 조현덕은 진검을 들지 못했다.
사범들은 조현덕의 팔 힘과 악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진검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칫 검술을 연습하다 다른 수련생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어 막은 것이다.
열네 살이 되면 진검 사용을 허락받으니 열네 살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은 셈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배움이 부족하다 보니 본능에 충실하다.
언제부터인가 우월감에 빠진 소년 소녀 들이 자근자근 그를 괴롭혔다.
“아저씨는 뭔데 사랑방에서 혼자 지내요?”
“조양상방의 기둥 뿌리라도 뽑아서 바쳤어요?”
“수련을 게을리하니까 몸이 그 모양이죠. 아저씨는 연가무관의 수치예요!”
“부족함을 알면 열심히라도 해야지, 나이 먹고 그게 뭡니까? 몸이 약하다는 핑계로 뺀질뺀질, 어린애들 보기 미안하지 않아요?”
“삼 년 채울 생각하지 말고 겨울이 되기 전에 나가요.”
“어른이 석 달 동안 수련하고 열네 살짜리보다 못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인맥 다지려고 왔어요? 그럼 뭐라도 좀 사 주시든가.”
가을내 붉게 물들었던 정원의 나뭇잎이 메말라 하나 둘 떨어져 내렸다.
그때까지도 조현덕은 진검을 허락받지 못했다.
연무장에서 목검을 쓰는 사람은 어린아이들과 조현덕뿐이었다.
석양이 지기 시작하자 연무장에 가득하던 소년 소녀 들도 하나 둘 사라졌다.
오가며 눈이 마주쳐도 조현덕에게 알은체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새벽이면 서리가 내리는 날씨라 해가 지면 바람이 차가웠다.
목검을 휘두르는 조현덕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훅훅 뿜어져 나왔다.
우연히 연무장을 지나가던 사범 하나가 다가와 그를 불렀다.
“조현덕.”
조현덕이 목검을 내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예? 하아! 하아! 하아―!”
사범은 헐떡이는 그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다 한마디 했다.
“너무 무리하면 오히려 몸이 상한다. 날이 차가우니 그만 들어가 쉬어라.”
겨우 호흡을 가라앉힌 조현덕이 문득 물었다.
“사범님.”
“왜 그러느냐?”
“저는 언제쯤 진검을 들 수 있겠습니까?”
“목검으로 빠르게 내려치기를 쉬지 않고 몇 번이나 할 수 있느냐?”
“백 번 정도요.”
“천 번을 하게 되면 말해라. 그때 진검을 쓰게 해 주겠다.”
“…….”
조현덕이 망연자실한 얼굴을 하자 사범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후 멀어져 갔다.
사범의 말을 곱씹던 조현덕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천 번이라니?
백 번을 휘두르면 사지가 덜덜 떨리는데 어느 세월에?
이대로라면 내년 한 해도 목검만 휘두르다가 끝날 게 분명하다.
삼월에 들어올 신입 관원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는 목검을 들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밀려들었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남천 대협은 왜 나를 이곳으로 보냈을까?
반년이 지났는데 진검조차 들지 못하는 내가 무인으로 살아도 되는 걸까?
가산 앞을 지날 즈음, 정처 없이 걷는 그를 누군가 불러 세웠다.
“헉! 대사저!”
깜짝 놀란 조현덕이 황급히 머리를 숙였다.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연가무관에서 대사저로 불리는 연소윤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불러도 못 들은 걸까? 고향에 두고 온 아가씨라도 그리워하고 있던 거야?”
“아, 아닙니다.”
조현덕은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연소윤은 스물아홉이지만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인 반면, 조현덕은 제 나이보다 들어 보여 존댓말이 상당히 어색해 보였다.
“고민이라도 있어?”
연소윤은 조현덕이 연가무관에서 적응하지 못해 겉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한참 어린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한다는 것도.
하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연가무관은 무인을 배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머뭇거리던 조현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반년 동안 목검을 들고 있는 저 자신에게 회의가 들어서요. 글공부에도 재능이 없는데 무공마저 그렇다니……. 눈앞이 아득합니다. 남천 대협께서 이런 저를 왜 연가무관으로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남천 대협이 추천장까지 써 주었을 때만 해도 자신에게 무재(武才)가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늦은 나이지만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막상 닥쳐 보니 상상과 달랐다.
벌써 반년이 지났지만 자신은 연가무관의 열네 살짜리보다 못했다.
자신은 문무(文武) 어느 쪽으로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인생이었다.
“남천 대협의 생각이 궁금하면 내가 가르쳐 줄 수도 있어.”
“정말요? 그렇다면 알려 주십시오. 정말 궁금해서 미치겠습니다.”
물끄러미 조현덕을 보던 연소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칠 정도면 안 되지. 나도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네가 어린 시절의 남천 대협을 닮았대. 그래서 너를 이곳까지 보냈을 거라고 하시더라.”
“제가요? 저는 무공에 재능이 없는데요?”
대사저의 말에 조현덕은 기쁘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자신의 어떤 점이 남천 대협과 닮았다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연소윤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착각하지 마. 그런 쪽은 아니니까. 어릴 때의 남천 대협은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았대. 약해서 핍박도 많이 받았고. 그래도 순수함은 잃지 않으셨대.”
“그러니까 제가 평범하고 약해서 남천 대협이 동병상련을 느꼈다는 말씀이십니까?”
“왜 다른 하나는 빼먹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함을 잃지 않은 게 중요해. 아무리 어린 시절과 닮았어도 순수하지 않았다면, 사제를 이곳에 보내지 않았을 거야. 남천 대협은 그런 분이시니까.”
연소윤이 아련한 눈으로 붉게 타들어 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연적하는 단지 ‘작은아버지’가 아니라 새 삶을 살게 해 준 은인이었다.
조현덕은 대사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올봄 먼발치에서 보았던 석경장의 아가씨보다 대사저가 더 아름다워 보였다.
***
남직례성.
합비.
여강현 석경장.
막 겨울에 접어들었을 때 석경장으로 비보가 날아들었다.
개봉의 금선상방에서 일하다 은퇴한 풍연초가 노환으로 사망한 것이다.
연적하는 운종술로 날아가 슬픔에 잠긴 풍연초의 가족들을 위로하고, 떠나기 전 아들 풍운비에게 석경장의 총관 자리를 제안했다.
부친의 뒤를 이어 금선상방에서 일하던 풍운비는 망설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금쪽 같은 자식들에게 석경장의 무공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풍운비와 작별하고 먼저 석경장으로 돌아온 연적하는 그날 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그의 귓가에 남궁연의 음성이 들려왔다.
“왜? 무슨 걱정이라도 있니?”
“하아. 기분이 이상해서요.”
“풍 대협 때문에?”
“네, 여름에 오봉산채의 형제들을 구했다고 좋아했는데……. 정작 큰형님이 이렇게 가시다니…….”
과거 네 번째 하늘에서 남궁연이 했던 말을 기억해 토벌군의 손에서 오봉산채를 구했다.
하지만 풍연초의 죽음이 갑자기 찾아오니 기가 막혔다.
“사람인 이상 생로병사는 어쩔 수 없어. 우리도 벌써 사십 대가 넘었잖아. 앞으로 더 많은 지인들의 부음(訃音)을 듣게 될 거야.”
“그렇겠죠?”
연적하가 침울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지나가듯 남궁연이 말했다.
“참, 오늘 연가무관에서 보낸 새해 선물을 받았는데 알아?”
“네, 해마다 이맘때면 왔잖아요.”
“혹시 네가 연가무관에 보낸 사람이 있어?”
“예? 왜요?”
뜨끔해진 연적하가 되물었다.
조양상방에 입단속을 시킨 뒤로 잊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가 싶다.
“재밌는 이야기를 들어서.”
“연가무관에서요?”
“올여름에 조양상방의 셋째 공자가 제자로 들어왔다는데 몰라?”
“험, 험. 왜요? 제가 알아야 돼요?”
“네가 보낸 사람이라는 말을 하던데? 정말 모르는 일이야?”
“아! 조현덕요? 맞아요. 제가 추천을 했어요.”
“세상일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던 네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젊은 애가 생각하는 게 영 고루하더라고요. 그래서 정신 좀 차리라고 연가무관에 가 보라 했어요.”
“오호. 그 자리에서 허겁지겁 추천장까지 써 줘 가면서?”
“…….”
연적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 보니 뒷조사까지 모두 마친 모양이다.
하기야 십전무후의 궁금증이 나이를 먹었다고 어디로 갔을 리가 있나.
한집에 살면서 반년 동안이나 숨긴 게 대단한 거다.
연적하가 천장을 보며 눈만 끔뻑거릴 때 남궁연이 말했다.
“조현덕 때문이겠지? 그를 갑자기 연가무관으로 보낸 이유가 뭐야? 네 번째 하늘에서 내가 뭐라고 했기에 그를 그 먼 곳으로 보냈어?”
질문이 거기에 이르자 연적하도 더는 감추지 못했다.
“그놈이 지안이를 따라다니다가 혼인까지 한다고 하잖아요.”
“조현덕과 지안이가?”
“예, 그런데 그놈 몸이 영 부실해서…… 혼인한 지 이 년 만에 지안이를 과부로 만들었대요.”
남궁연도 놀랐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올봄에 우연히 지안이와 연지가 떠드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두 사람 주변에서 조현덕이 얼쩡거렸나 보더라고요. ‘아차!’ 싶어서 서둘러 조현덕이란 놈을 만나러 갔죠. 쓸 만한 놈이면 좀 다듬어서 곁에 둘까도 싶었는데…….”
“그런데 사람이 기대에 못 미쳐서 천사백 리나 떨어진 낙양으로 보낸 거구나?”
“네. 누님도 그놈이랑 말해 봤다면 복장이 터져서 죽었을 거예요.”
“그래도 추천장까지 써 준 걸 보면 아주 못쓸 사람은 아니었나 보네?”
“서생답게 생각이 낡아 빠졌지, 사람은 그냥저냥 괜찮았거든요.”
“그랬구나.”
“그런데 조현덕이 왜요? 연가무관에서 무슨 사고라도 쳤대요? 그럼 안 되는데.”
“사고는 아니고, 아니, 사고이려나?”
남궁연의 혼잣말에 누워 있던 연적하가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놈이 사고를 쳤어요?”
“시아주버니(연무백)가 그에게 구천여일진경(九天如一眞經)을 가르쳤다는구나. 백 자를 단숨에 암송했다면서 네가 와서 몇 자 더 지도해 주었으면 한단다.”
연씨 형제자매들은 약속이나 한 듯 백 자밖에 외우지 못했다.
그러니 더 외울 수 있는지는 연적하가 직접 가서 가르쳐 봐야 알 수 있었다.
“아니, 왜 그놈에게 구천여일진경을 가르쳤대요? 그건 가족들에게만 가르치라고 했는데?”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실 생각인가 봐. 소윤이가 아직 혼인하지 않았잖아.”
“예에? 데릴사위요?”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남궁연을 보았다.
기껏 석경장과 연을 끊어 놨더니 이번에는 연가무관에서 데릴사위로 받아들인단다. 그놈은 어떻게든 연씨와 얽힐 운명이었던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