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27
1427회. 선배님의 지도 편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무림의 지배자는 호천맹이고, 호천맹의 중심은 칠파이문이다.
과거 한때 남맹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지만 경쟁에서 낙오된 지 오래다.
남맹은 검왕 맹주 이후 호천칠군에 버금가는 고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무림은 오십 년 전처럼 칠파이문이 다스렸다.
문제는 호천맹에 칠파이문 제자들을 위한 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풍자운이 조장을 하고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자리가 없어서였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칠파이문 간에 암투가 성행했다.
경쟁자들을 밟아야 내가 위로 올라갈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청성파 출신인 추혼검 화선룡도 위로 올라가고 싶은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러려면 사대 대주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함은 물론이다.
자신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대 대주에게 오물을 묻히면 된다.
그리고 화선룡은 호천칠군들 앞에서 그 기회를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잠깐!”
그의 부름에 현무대주 강남일검 송여량이 멈춰 섰다.
이윽고 그가 의아한 얼굴로 화선룡을 돌아보았다.
화선룡이 짐짓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송 대주. 우리는 명왕교도들이 상원사를 점거하고 있음을 알고 왔네. 근처에서 발견한 십여 명의 잔당들을 베기도 했지.”
“그런데요?”
“보아하니 이곳에서 큰 싸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십두마병들이 보이지 않는군. 혹시 십두마병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십두마병들은 운중룡 풍 대협의 손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십두마병들의 몸을 찢고 나온 마인은 남천 대협의 손에 죽었다.
송여량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화선룡은 물론, 호천칠군들의 시선이 풍운비로 추측되는 노인에게로 향했다.
당연히 화선룡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방금 전까지 토벌대는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던 명왕교도들을 척살했다.
그 말은 남천 대협 일행과 토벌대가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토벌대는 십두마병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십두마병은 사망과 동시에 마인이 된다.
송여량의 말대로 풍운비가 십두마병을 죽였다면, 토벌대도 마인이 날뛰는 걸 봤을 터였다.
호천칠군들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화선룡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리가 알기로 십두마병은 최소한 셋이었네만, 풍 대협이 그 짧은 시간에 세 명의 마인을 처리했다는 건가?”
“십두마병은 다섯이었습니다.”
다섯이라는 말에 화선룡은 눈을 찌푸렸다.
다섯 명의 마인이면 호천칠군 전부가 싸운다 해도 하루 이상 걸렸을 터였다.
“그렇다면 더더욱 말이 안 되지 않나. 풍 대협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라…….”
“남천 대협께서 일검에 다섯 명의 마인을 척살하셨습니다.”
“…….”
화선룡은 황당한 대답에 일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화선룡에게 송여량이 물었다.
“이제 가 봐도 됩니까?”
“송 대주, 농담도 분위기를 봐 가면서 하게. 내 뒤에 호천칠군 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잊었나?”
화선룡은 송여량이 자신을 놀리기 위해 한 말이라 생각했다.
다섯 명의 마인을 일검에 척살할 수 있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들은 바에 의하면 전성기 시절의 남천 대협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내친김에 화선룡은 송여량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지적했다.
“같은 대주가 자꾸 따져 물으니 불쾌해서 그러는 모양인데, 나는 어디까지나 공무를 수행 중이네. 이 자리에서는 형산의 현무대를 임의로 이탈한 송 대주가, 토벌대로 온 나의 질문에 사실대로 답하는 게 맞네.”
마치 죄인을 취조하는 듯한 말투다.
지켜보던 호천칠군들은 그 말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화선룡의 말에 그릇된 건 없었다.
현무대주 송여량은 지금 대원들과 함께 형산에 있어야 했다.
맹주나 총군사의 허락 없이 형산을 이탈한 것은 경우에 따라 죄가 될 수 있다.
주변의 차가운 반응에 송여량은 입맛이 썼다.
“제가 본 것만 말씀드리지요. 남천 대협과 제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풍 대협과 다섯 마인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남천 대협께서 일검에 다섯 마인을 척살하셨고, 나중에 풍 대협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성을 잃고 십두마병들의 숫자를 조절하지 못해서 그렇게 됐다고요. 이제 됐습니까?”
“자네는 왜 스스로 기회를 차 버리려고 하나? 우리가 알기로 상원사에 있는 십두마병은 셋이네. 그런데 자네는 왜 자꾸 다섯이라는 말로 자신의 신뢰를 깎아 내나? 다섯이라면 더더욱 말이 안 되지. 사십 년 전의 남천 대협도 다섯 명의 마인을 일검에 격살할 정도는 아니라 알고 있네. 그렇지 않습니까?”
화선룡이 동의를 구하는 눈으로 호천칠군들을 보았다.
맹주인 검군 신중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청룡대주의 말이 맞네. 당금 무림에서 우리보다 더 남천 대협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걸세. 둘, 혹은 셋을 상대로도 꽤 오래도록 싸웠다고 들었네. 하물며 마인 다섯을 일검에 격살한다? 전설 같은 과거사에 살을 너무 덧붙였어. 과장을 하더라도 현실성 있게 했어야지.”
그러자 송여량이 답답한 얼굴로 말했다.
“맹주님, 모두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남천 대협은 진짜 일검에 마인 다섯을 격살했습니다.”
“송 대주, 자네에게 실망이야. 자네 눈에는 우리 호천칠군이 허수아비로 보이나? 우리 눈이 장식용으로 보이냐 이 말일세.”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순간 맹주가 차가운 어조로 송여량의 말을 끊었다.
“현무대주 송여량!”
“예.”
“너는 현무대 대주이면서 너에게 맡겨진 임무를 소홀히 했고! 맹주와 호천칠군을 계속해서 기만하려 하고 있다! 칠파이문은 오래전부터 한가족처럼 지냈다. 기어이 존장을 능멸하려 하느냐!”
“…….”
송여량은 할 말이 많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청룡대주와 호천칠군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장 바꿔 자신이 저들이라도 같은 소리를 했을 것 같았다.
한편 청룡대주와 호천칠군이 송여량을 닦달하자 연적하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겉으로는 송여량을 나무라고 있지만, 실은 자신을 향한 소리였다.
결국 연적하의 입이 열렸다.
“어이, 거기 후배들. 죄 없는 어린애 괴롭히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한테 직접 해. 내가 일검에 마인 다섯을 죽인 걸 못 믿겠어?”
호천칠군의 얼굴이 대번에 굳었다.
호천칠군은 당금 무림의 최고수이자, 최고 배분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건들거리는 연적하의 말은 상당히 모욕적이었다.
호천칠군의 앞이라고 화선룡이 분수를 모르고 재빨리 입을 놀렸다.
“남천 대협!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현무대주는 어린애가 아니며, 호천칠군 님도 남천 대협에게 후배라 불릴 위치가 아니십니다.”
“후배가 아니면 내 선배냐? 호천맹에 있으면 후배한테도 선배 대접해 줘야 돼?”
“호천칠군 님은 호천맹의 최고……. 악!”
화선룡이 말하다 말고 한쪽으로 날아갔다.
땅에 처박혔던 화선룡이 비칠거리며 일어서는데, 언제 맞았는지 한쪽 뺨이 퉁퉁 부어 있었다.
“다, 당신이……. 어어!”
삿대질하던 화선룡의 몸이 연적하의 손아귀로 빨려 들었다.
연적하의 손이 빠르게 좌우로 번득였다.
‘짝! 짝!’ 하는 찰진 소리와 함께 화선룡의 머리가 좌우로 돌아갔다.
이윽고 연적하가 축 늘어진 화선룡을 맹주에게 집어 던졌다.
화선룡이 맞고 던져지기까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맹주는 반사적으로 화선룡을 받아 냈다.
그제야 심장이 ‘쿵! 쿵!’ 하고 요동쳤다.
연적하가 눈앞에서 청룡대주에게 손을 썼는데, 그걸 제지하지 못했다.
빠르기도 했지만, 허공섭물이 저렇듯 숨 쉬듯 자연스러운 것이었나?
물론 호천칠군들도 작정하면 허공섭물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저건 격이 달랐다.
마치 연적하에게 보이지 않는 손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감탄도 잠깐, 신중낙은 화선룡을 토벌대에게 넘긴 후 말했다.
“아무리 남천 대협이라도 청룡대주의 몸에 손을 댄 것은 조금 심하셨습니다.”
“심해? 진짜 심한 게 뭔지 보여 줄까?”
연적하가 스산한 눈으로 호천칠군을 훑어보았다.
신중낙은 순간 오싹 소름이 돋았지만, 애써 별거 아니라며 털어 냈다.
상대는 하나임에 비해 호천칠군은 여섯이나 되는 까닭이다.
신중낙이 좌우편의 호천칠군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이윽고 여섯 명의 호천칠군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싸움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자 토벌대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대웅전 앞마당에 호천칠군과 연적하가 마주 섰다.
신중낙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처음 남천 대협과 대면하던 날, 언제고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 생각했다.
제멋대로라는 연적하만큼이나 호천칠군들 역시 한성격 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조금 찜찜하지만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뿐이다.
신중낙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연적하가 말했다.
“마인 다섯을 일검에 격살했다는 말이 영 거짓말 같지? 보여 줄 테니까 잘 봐.”
말과 함께 연적하가 마하담에서 ‘공허의 검’을 꺼냈다.
지금까지 맨손으로 서 있던 연적하가 갑자기 허공에서 대검을 꺼내자, 당황한 호천칠군들은 다급하게 각자의 애병을 뽑았다.
연적하가 가볍게 손을 털었다.
쐐애액―!
빛살처럼 날아가던 공허의 검이 돌연 여섯 개로 늘어났다.
여섯 개로 늘어난 검이 덮쳐 오자 호천칠군들은 각자의 절기를 펼쳤다.
콰차차차차창―!
단 일격에 호천칠군들의 무기가 박살 났다.
그러나 공허의 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얼굴로 검이 날아오자, 호천칠군의 입에서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
“헉!”
절체절명의 위기에 넷은 땅을 굴렀고, 나머지 둘은 눈을 질끈 감았다.
두 자루 공허의 검은 두 명의 호천칠군들 얼굴을 꿰뚫기 직전, 멈춰 섰다.
뇌려타곤의 수법으로 위기를 피했던 네 명의 호천칠군들은 여전히 자신의 얼굴 앞에 둥둥 떠 있는 검을 발견하고 탄식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신중낙은 옷에 묻은 흙을 털지 않고 연적하를 보았다.
천외천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전전 대의 고수들인 천하십대고수들이 어떤 감정 속에 살았을지 알 것 같았다.
이건 격이 다른 강함이다.
자신들은 조금 전의 한 수에 전력을 기울였는데, 연적하의 낯빛은 심드렁했다.
아무리 봐도 힘을 쓴 사람이라고 볼 수 없었다.
어쩌면 그에게 후배라고 불린 건 수치가 아니라 영광인지도 모르겠다.
노회한 그는 서둘러 읍을 해 보이며 말했다.
“호천칠군을 위한 선배님의 지도 편달에 감사드립니다.”
선배의 지도 편달이라고 해야 호천맹에 이롭다.
그는 자신들로 인해 호천맹이 연적하의 눈 밖에 날까 두려웠다.
연적하는 맹주가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걸 알았지만, 솔직히 그를 탓할 마음은 없었다.
“신중낙이라고 했느냐?”
“예, 선배님.”
“저 관에 든 사람이 풍자운이다. 그러니 송여량은 자신의 사명을 다한 셈이지.”
현무대의 임무가 풍자운을 찾는 것이니 송여량이 이곳에 있다고 그를 나무라면 안 된다.
두 번 설명할 것도 없이 신중낙은 연적하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렇군요. 송 대주를 책망한 것은 전적으로 화선룡의 잘못입니다.”
“똑똑하구나. 호천맹을 위해 잘된 일이야. 명왕교는 이참에 뿌리까지 제거하도록 해라. 몇 명의 십두마병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호천칠군의 실력이면 어렵지 않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게다.”
“선배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칠순을 목전에 둔 신중낙이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그의 곁에 뻘쭘하게 서 있던 나머지 다섯 노인들도 덩달아 머리를 숙였다.
착잡한 얼굴로 상원사를 둘러보던 연적하가 운종술을 펼쳤다.
하얀 구름이 연적하와 풍운비 앞에 내려앉았다.
이윽고 연적하와 ―관을 어깨에 멘― 풍운비가 구름을 타고 서편 하늘로 날아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화선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남천 대협! 아무리 당신이 무림의 대선배라도!”
화선룡은 말하다 말고 분위기가 이상하자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때마침 가까이 있던 맹주, 검군 신중낙이 한마디 했다.
“화선룡, 이제 보니 네 입이 재앙의 근원이라 할 만하구나. 또다시 남천 대협을 대상으로 불경한 언사를 사용하면 용서치 않겠다.”
“예?”
황당한 얼굴로 눈을 끔뻑거리는 화선룡에게 청성파 제자 하나가 다가가 속삭였다.
“화 사숙,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십쇼. 남천 대협은 사람이 아니라 신선입니다, 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