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36
1436회. 납인면사 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균현에 있는 하오문과 흑도 방파가 밤새도록 도시를 이 잡듯 샅샅이 뒤졌지만, 여가촌 출신의 소년을 발견하지 못했다.
흑도 전체가 밤새 균현을 쑤시고 다녔는데 발견하지 못했으면, 다른 곳으로 간 게다.
수색 범위를 십언시 전체로 넓혀야 할 필요성을 느낀 납전면사 고원평은 십언시 최대의 흑도 방파인 미륵방을 찾아갔다.
마뜩잖은 얼굴로 듣던 방주 독안귀도 서륜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고작 애새끼 하나 찾아 달라는 말을 왜 나에게 찾아와서 하지? 너는 미륵방이 가출한 애새끼나 찾아 주는 곳인 줄 아느냐?”
머뭇거리던 고원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냐면 납인면사(納人免死)가 십언시의 흑도 방파 전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해서입니다.”
“흥! 제 놈이 뭔데? 납인면사?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잡놈 하나에게 속아 가지고는……. 쯧! 하는 짓들을 보니 십언시의 하오문도 갈 데까지 갔구나.”
“방주님, 납인면사의 허공섭물은 거짓이나 속임수가 아니었습니다.”
“속임수를 쓰면 알아볼 눈은 있고?”
“…….”
그 물음에는 고원평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사기꾼들의 수법은 기상천외해서 어지간한 고수도 속아 넘어가기 일쑤인 까닭이다.
“송구하오나 그자가 속임수를 준비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고원평이 거듭 주장하자 서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오문 따위가 굽히지 않는 걸 보니 왠지 그냥 넘기기 찜찜해서다.
“좋다. 네놈의 말대로 십언시에서 소룡이라는 애새끼를 찾아보마. 그만 꺼져라.”
“예, 그런데 방주님.”
“또 뭐냐?”
“납인면사는 여소룡의 몸에 털끝만 한 상처가 있어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미친놈.”
서륜이 누구에겐지 모를 욕과 함께 꺼지라는 듯 거칠게 손을 휘저었다.
고원평은 허리를 숙여 보인 후 뒷걸음질 쳐 서륜의 앞을 떠났다.
허공 한 지점을 응시하던 서륜이 문득 총관에게 물었다.
“납인면사가 찾는다는 그 애새끼 말이야. 정말 십언시에 있을까? 괜히 그걸 핑계로 흑도에 싸움을 걸려는 건 아니냐 말이다.”
총관 광호도 진염이 답했다.
“가출한 게 거짓말이 아니라면 십중팔구 십언시에 있을 겁니다. 그리고 호광성에 호천맹의 이상 움직임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짜고짜 하오문을 찾아가 겁박한 걸 보면 정파의 인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파에 그런 미친놈이 있다고? 내 기억에는 없는데? 말해 봐. 이십 대에 허공섭물의 절기를 사용할 만한 놈이 누군지.”
“제 기억에도 없습니다.”
“설마 고원평이 눈속임에 당했을 리는 없고. 돌아 버리겠군.”
“여소룡을 찾든 못 찾든 그자를 만나게 될 겁니다. 저는 이왕이면 우리가 여소룡을 찾았으면 합니다.”
“사람을 풀어 여소룡을 찾고, 너는 따로 납인면사가 누군지 조사해라. 어떤 놈 장단에 우리가 놀아나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 둬야지.”
“알겠습니다.”
마침내 십언시의 흑도 방파가 움직였다.
그들은 기루와 객점, 식당은 물론 인육을 파는 흑점까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
십언시.
호천맹 지부.
정오경.
지부장 호광일섬 냉추산이 총관 독보객 황이에게 지나가듯 물었다.
“흑도 방파가 어제부터 십언시를 들쑤시고 다닌다는데,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
“아직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문제를 일으켰습니까?”
황이가 의아한 눈으로 지부장을 보았다.
흑도란 백도, 즉 정파의 반대편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한참 아래다.
무림에서 정파의 반대는 사파다.
그런데 나쁜 놈들이라고 다 사파는 아니다.
녹림을 필두로 호광성의 신검회, 하남성의 흑사회 정도쯤 돼야 사파 소리를 듣는다.
흑도는 사파의 수족과 같은 위치다.
예컨대 마교가 사파를 수족처럼 생각한다면, 사파는 흑도를 그렇게 여긴다.
그럼 흑도가 가장 밑바닥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흑도의 아래가 하오문이다.
하지만 흑도 아래로는 분류해 봐야 의미가 없어 그냥 흑도라 통칭한다.
물론 흑도는 자기들과 하오문은 천지차이라고 펄쩍 뛰겠지만 말이다.
십언시 지부 총관이 흑도의 움직임에 신경 쓰지 않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쩝! 문제를 일으켰다면 벌써 자네 귀에 들어갔겠지. 뭘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있어서 말이야.”
“죽림방이 잠잠한 것으로 보아 사파가 관여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조사를 해 볼까요?”
“그럴 필요는 없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뿐이니까. 개 떼가 몰려다닌다고 꼭 그 이유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이내 신변 잡담으로 대화를 이어 갔다.
호천맹에게 흑도의 움직임은 한 번 언급하는 정도로 충분했다.
***
십언시 인근 모전현(茅箭县).
백랑촌.
십언시와 균현의 흑도 방파가 눈이 빠지도록 찾아다니는 여소룡은 그 시간 백랑촌에 있었다.
정확히는 십언시로 가던 중 백랑촌의 잡배들에게 사로잡힌 상태였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길 즐겨 하는 이를 흔히 잡배라 한다.
잡배는 ―흑도에 투신할 만큼의― 용력을 가지지 못했지만, 악독한 심성만큼은 흑도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백랑촌의 잡배들 중에 최고 골칫거리는 장준걸이다.
그에게는 두 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두 친구 역시 질이 좋지 않았다.
셋이 어울려 다니면서 온갖 못된 짓을 했지만, 사람들은 그 셋을 어쩌지 못했다.
하필 장준걸의 부친이 백랑촌의 촌장이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늘 십언시로 진출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돈이 없어 기회가 오기만 기다렸다.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돈을 모았겠지만 셋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술과 여자를 사는 데 돈을 탕진하면서, 늘 돈이 없음을 한탄했다.
그러던 그들에게 여소룡이 걸려든 것이다.
셋은 소년의 멀끔한 행색을 보고 그에게서 돈 냄새를 맡았다.
세 사람은 소년에게 접근해 간이라도 빼 줄 듯 잘 대해 주며 술자리로 이끌었다.
난생처음 어른 대접을 받은 여소룡은 세 남자를 ‘형님’이라 부르며 따랐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 도중 여소룡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여소룡이 눈을 뜬 곳은 술집이 아닌 낡고 허름한 창고였다.
온몸이 밧줄에 꽁꽁 묶인 채로 깨어난 여소룡은, 아직도 자신이 꿈에서 깨지 않은 줄로 착각했다.
그러다 속닥거리는 사람들 소리를 듣고서야 꿈이 아님을 알았다.
“죽이고 가자.”
“뭘 죽여. 어차피 산속이라 그냥 두면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텐데. 날 풀리기 전에 다시 와서 내다 버리면 독수리가 싹 먹어 치울 거야.”
“찝찝한데 눈알을 뽑고 혀를 자를까?”
“그러느니 깔끔하게 죽이고 말지. 사내답게 죽이자니까.”
“죽여?”
사내들의 말에 여소룡은 눈물 콧물 쏟으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 모습을 본 장준걸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 되게 시끄럽네. 너 이 새끼. 한마디만 더 하면 혀를 뽑아 버린다.”
살벌한 협박에 어린 여소룡은 입을 꾹 다물고 끅끅 울었다.
친절하던 청년들이 강도로 돌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구천현녀에게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의 기도가 통한 것일까?
장준걸 일당은 여소룡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십언시에서 며칠 놀다가 다시 돌아와 시체를 버릴 심산이었다.
***
십언시로 간 장준걸 일당은 기루부터 찾아갔다.
촌에서 올라온 잡배들이 기녀들을 옆에 끼고 밤늦게까지 시시덕거릴 때다.
거칠게 생긴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와 기루를 이 잡듯 뒤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계산대로 갔던 기녀가 돌아와 말했다.
“별일이네요. 십언시의 흑도에서 어린애 하나를 찾고 있대요.”
뜨끔한 장준걸이 지나가듯 물었다.
“무슨 어린애?”
“몰라요. 열다섯 살 사내아이라는데……. 흑도가 전부 달라붙은 걸 보면 집안이 좋은가? 아니, 집안이 좋으면 흑도가 아니라 관부에서 찾으러 다녀야 되는 거 아닌가?”
그녀의 말에 다른 기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네. 사파 집안의 자제인가?”
“혹시 죽림방 방주의 아들?”
“어머! 그 정도 위치면 납치된 거 아냐?”
“죽림방 방주의 아들을 누가 납치해요? 그러다 걸리면 사지가 찢겨져 나갈 텐데.”
기녀들의 호들갑에 장준걸 일행은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때 나이 많은 기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죽림방 방주의 아들 같은 거 아니래. 나도 잘은 모르는데, 다른 이유로 찾는 것 같아.”
그제야 다 죽어 가던 장준걸 일행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시 술자리 분위기가 살아났다.
술자리는 자정이 돼서야 끝났다.
장준걸 일행은 기녀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지만 돈이 간당간당해 참아야 했다.
그들은 기녀들의 떠들썩한 배웅 속에 기루를 나섰다.
거리로 나선 장준걸 일행은 거의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장준걸이 먼저 말했다.
“날이 밝는 대로 뒷정리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당연하지.”
“씨벌, 가슴 조려서 못살겠네. 빨리 끝내고 당분간 집구석에 처박혀 있자.”
의기투합한 그들은 가까운 객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날.
지난밤의 결심도 무색하게 느지막이 일어난 세 친구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들이 늦은 아침 식사를 끝낼 즈음, 도검으로 무장한 무리가 객점으로 들어왔다.
밤새 여소룡을 찾아다니던 미륵방도들이다.
그들 중 광호도 진염이 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형제들,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
셋 중에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장준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예, 형님.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이 근방에서 못 보던 얼굴들인데, 너희들 혹시 백랑촌에서 왔느냐?”
순간 장준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아닙니다. 저희는 장가구(张家沟)에서 왔습니다.”
“장가구라고? 좋아, 그렇다면 어젯밤에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느냐?”
“그냥 방에 있었는데요?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하! 이 새끼 봐라? 입에서 술 냄새가 풀풀 나는데 그냥 방에 있었다네. 이게 누굴 병신으로 아나? 네놈들이 어젯밤 늦게까지 가인루에서 술을 퍼마셨잖아!”
진염의 사자후에 미륵방도들이 세 남자를 겹겹이 에워쌌다.
진퇴양난에 처했음을 파악한 장준걸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어이쿠! 용서해 주십쇼. 너무 갑작스러워서 저도 모르게 그랬습니다. 어젯밤 저희가 기루에 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왜는 새끼야. 너희들 하는 짓이 영 수상쩍다고 해서 확인하려고 왔지. 그런데 처음부터 작정하고 거짓말을 늘어놔? 얘들아!”
“예!”
“이 새끼들 포박해서 방으로 끌고 가라. 말로 해서는 들어 처먹을 놈들이 아니다.”
“예!”
미륵방도들이 우르르 달라붙어 세 남자를 밧줄로 꽁꽁 묶었다.
진염은 세 남자를 뒤에 달고 보무도 당당하게 미륵방으로 돌아갔다.
끌려가는 와중에 장준걸은 필사적으로 친구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모른다고 해라. 말하면 모두 죽는다.’
친구들 역시 바보가 아닌지라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 남자를 미륵방으로 끌고 간 진염은 다짜고짜 매질부터 했다.
진염은 사람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매 아래 장사 없다.
죽일 듯 패면, 말하면 죽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대부분 실토를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백랑촌에서 온 이 세 놈은 조금 달랐다.
아무리 매질을 해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해가 지자 진염은 매질을 이어 갈 요량으로 마당에 모닥불을 피웠다.
뒷전에서 지켜보던 미륵방 방주 독안귀도 서륜이 진염에게 속삭였다.
“납인면사인지 뭔지 하는 놈에게 던져 줘야 하니까, 죽이지는 마라.”
“예, 주의하겠습니다.”
이윽고 진염은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형틀로 다가갔다.
그가 막 피에 젖은 몽둥이를 고쳐 잡을 때다.
균현의 하오문도 납전면사 고원평이 정문을 강하게 밀어젖히며 들어왔다.
‘쾅!’ 소리에 놀란 진염이 욕을 퍼부으려는 순간, 고원평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납인면사 님을 모시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