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19
1519회. 장사 잘 안 되죠?
연서연은 할 일이 있다며 집으로 돌아갔지만 연적하는 석경장에 남았다.
집으로 가 봐야 할 일이 없으니 그냥 연정운의 곁에 남은 것이다.
그냥 앉아 있기가 무료했던지 연정운이 껐던 TV를 다시 켰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그가 선택한 것은 또 뉴스였다.
사골 우리듯 같은 장면이 반복적으로 재생됐지만 불안한 마음에 계속 뉴스만 보고 있는 것이다.
인천과 서울이 가까워서라기보다 군 복무 중인 아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연적하는 학원에서 받아 온 한국어 교재를 꺼내 읽었다.
연정운은 오전 내내 석경장의 홀에서 뉴스를 시청했다.
보다 못한 연적하가 슬쩍 운을 뗐다.
“삼촌.”
“응? 왜?”
“손님이 너무 없는 거 아닙니까?”
“원래 오전에는 사람이 없다. 오전은 준비 시간이지 판매하는 시간이 아니야.”
“아, 그럼 점심때 오나요?”
“그건 그때그때 다르지. 중국요리가 가볍게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럽잖냐.”
“저녁에는요?”
“평일에는 사람들이 외식을 잘 안 하니까……. 기대하기 어렵지.”
“…….”
연정운의 말에 연적하는 할 말을 잃었다.
오전, 점심, 저녁때까지 손님이 거의 없다는 소리였다.
‘요릿집이 본래 이런가?’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과거 자신이 다니던 요릿집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전이야 가 본 적이 없어 모르지만, 점심과 저녁은 손님들로 바글거렸다.
거기까지 생각한 연적하가 다시 물으려 할 때다.
낯익은 얼굴들이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한국까지의 안내를 맡은 구인회와 차이나타운 화교 단체 회장 주현식이었다.
TV를 보던 연정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님들에게 다가갔다.
주현식은 연정운이 자신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자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나 차이나 타운의 주현식입니다.”
그제야 연정운이 깜짝 놀란 얼굴로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주 회장님, 어서 오십쇼. 오랜만에 뵙습니다.”
연정운도 한국으로 귀화를 하기 전까지는 부친을 따라 화교 모임에 나갔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화교 모임과 거리를 두었기에, 늙은 주현식 회장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연 사장, 선친 장례식 이후 처음 만나는군. 그동안 잘 지냈나?”
“예.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주현식이 구인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인사하게. 홍콩에서 오신 구 부장님이시네. 화교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에 속한 분이시지.”
주현식의 소개에 연정운이 힐끔 쳐다보자 구인회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어제 뵈었죠? 구인회입니다.”
“아, 예…….”
연정운은 떨떠름한 얼굴로 구인회의 인사를 받았다.
화교 단체와는 부친의 사망 이후 관계가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연 선생님이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회장님을 만난 김에 가 보자고 했습니다. 연 선생님, 또 뵙습니다.”
말 끝에 구인회는 연적하에게 꾸벅 묵례를 했다.
주현식도 이때다 싶었는지 덩달아 인사를 건넸다.
“연 선생님, 또 뵙습니다.”
“아, 예…….”
연적하는 얼떨결에 두 사람의 인사를 받았다.
한편 연정운은 주 회장과 구인회가 연적하를 상전 대하듯 하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걸 묻지는 않았다.
쌍방 간에 소개가 끝나자 주현식이 눈치껏 앞으로 나섰다.
“구 부장님이 연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기에 나도 겸사겸사 따라왔네. 이 핑계로 우리도 얼굴 한번 보는 거지. 안 그런가?”
“잘 오셨습니다.”
“그렇다고 부담 가질 것 없네. 점심 식사만 하고 갈 생각이니.”
“예,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주현식이 요리 이름을 대자 연정운은 주방으로 사라졌다.
연적하의 눈치를 보던 구인회가 변명하듯 말했다.
“투자처를 찾으러 다니는 중에 연 선생님 생각이 나서 들러 보았습니다.”
“아, 예.”
“투자처를 찾아 계약을 마치면 돌아갈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인천 르네상스 호텔에 머무를 겁니다. 혹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면 아무 때나 연락 주십시오.”
“그러죠.”
연적하는 다시 한국어 교재로 눈을 돌렸다.
뻘쭘한 얼굴로 서 있던 구인회와 주현식이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깨작깨작 요리를 먹던 구인회가 먼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침을 늦게 먹어서 그런지 벌써 배가 차네요.”
주현식도 슬그머니 동참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최근 집사람 성화에 다이어트를 했더니, 위가 쪼그라들었는지 도통 많이 먹지를 못합니다.”
두 사람의 앞에 놓인 음식은 거의 그대로였다.
심지어 식사를 마친 지금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요리도 있었다.
두 사람은 산뜻한 차로 입안을 헹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인회보다 한발 빨리 계산대로 다가간 주현식이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잘 먹었네.”
“이거 다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 받게. 어차피 오늘은 자네 가게 매상 올려 주려고 온 거니까.”
“……이십팔만 원 결제하겠습니다.”
“괜찮아. 어차피 법인 카드야. 요리가 입에 맞더군. 우리 모임은 앞으로 석경장에서 가져야겠어.”
주현식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앞으로 모임을 석경장에서 갖겠다’는 말은 진실이지만, ‘요리가 입에 맞았다’는 말은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요리가 정말 입에 맞았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먹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속도 모르고 연정운은 웃으며 카드 리더기에 카드를 밀어 넣었다.
곧이어 그는 출력된 영수증과 카드를 두 손으로 주 회장에게 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었네. 또 봄세.”
주현식은 연적하 쪽을 힐끔 보고는 먼저 나갔다.
그와 달리 구인회는 연적하와 연정운에게 일일이 작별 인사를 한 뒤에 떠났다.
잠시 후 식탁을 치운 연정운이 연적하의 앞에 털썩 주저앉으며 앓는 소리를 했다.
“아구구!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했더니 삭신이 다 쑤시는구나.”
“저어, 삼촌.”
“왜?”
“우리도 뭐 먹어야죠.”
“치킨이나 피자 먹을래?”
“짜장이나 짬뽕, 볶음밥이 아니라요?”
“나 혼자 주방 일 하려니 너무 힘들다. 돈도 많이 벌었는데 시켜 먹자.”
“중국집에서 그런 거 시켜 먹어도 돼요?”
“안 될 건 또 뭐 있냐? 우리가 먹고 싶은 거 먹겠다는데.”
“저는 괜찮은데…… 그래도 되나…….”
“인마, 사장이 된다는데 무슨 걱정이야? 치킨? 피자?”
“피자요.”
“난 치킨. 그럼, 치킨이랑 피자 시킨다. 둘이 나눠 먹으면 되겠네.”
연정운이 휴대 전화로 주문을 하고는 연적하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주 회장님과 구 부장이라는 사람이 왜 너한테 그렇게 깍듯하냐?”
“아…… 그게 궁금하셨구나.”
“주 회장님과 구 부장이 자기들보다 한참 어린 사람을 어려워 하는데, 안 궁금하겠냐? 너 본토의 재벌이냐?”
“그럴 리가요. 전에 십언시의 사업가를 구해 준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주류 사업을 한다던 사람?”
“예, 그분이 실은 홍콩 삼합회의 간부라고 하더라고요. 그분이 중국에 진출하려다가 중국 흑사회에게 죽을 뻔했던 거죠.”
순간 연정운의 입이 쩍 벌어졌다.
“헐! 그 사람이 삼합회 간부였다고? 그 간부가 보내 준 한국행 가이드가 구 부장이고?”
“예.”
“주 회장님이 말한 ‘화교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이라는 게 삼합회였구나. 주 회장님이 구 부장의 눈치를 본다 싶더니만…… 삼합회였어. 삼합회는 말만 들었는데 신기하네.”
“위험한 사람들이니까 아는 척하지 마세요.”
“걱정 마라. 삼합회가 나 같은 일반인이랑 다시 만날 일이나 있겠냐.”
“그렇기는 하네요.”
“너는 괜찮고? 그 뒤로 삼합회에 가입하라고 그러지는 않던?”
“전혀요.”
“운이 좋았구나. 삼합회와 한번 얽히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제가 혈혈단신이라 쓸모없다고 생각했나 보죠.”
“여하튼 앞으로 구 부장과 자주 어울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예.”
이야기가 끝날 즈음, 배달원이 치킨과 피자를 배달하고 갔다.
치킨과 피자로 점심을 때운 연적하는 저녁까지 석경장에서 빈둥거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하루 동안 석경장을 지켜본 셈이다.
저녁 8시 30분에 연적하는 연정운과 함께 석경장을 나섰다.
오늘만 삼십팔만 원의 매상을 올렸다고 연정운은 희희낙락했다.
그러나 연적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삼십팔만 원 중에 이십팔만 원은 주 회장과 구 부장이 팔아 준 것이다.
그걸 뺀 석경장의 하루 매출은 십만 원.
겨우 그 정도 매출로 어떻게 중국집을 유지하는지 모르겠다.
“삼촌?”
“응?”
“장사 잘 안 되죠?”
거두절미하고 아픈 곳을 찌르는 조카의 말에 연정운은 멈칫했다.
“무슨 소리야? 오늘 매출 봤잖아.”
“주 회장과 구 부장이 매일 오는 건 아니잖아요.”
“…….”
“그 정도의 매출로 중국집 운영이 가능합니까?”
“그 건물 내 거다.”
“아!”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건물 주인이었다니! 그거야말로 조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부분이었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았다면 중국집은 진즉에 문 닫았을 거다.”
“요리가 적성에 맞으세요?”
연적하는 조심스럽게 연정운의 안색을 살폈다.
이전 같았으면 요리를 지적했겠지만, 그의 심기를 고려해 말을 돌린 것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중국요리를 배웠으니 해 나가는 거다.”
어쩐지 자조적인 말에 연적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가만 보니 연정운도 자신의 요리에 문제가 있음을 아는 눈치였다.
‘하기야 그러니 점심때 치킨과 피자를 먹었겠지?’
요리가 지겨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요리를 먹기 싫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중국집 주인이자 주방장에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
다음 날.
오전 9시경, 연적하는 한국어 교재를 챙겨 학원으로 나갔다.
학원 건물 앞에서 잠깐 ‘이렇게까지 한국어를 배워야 하나?’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연정운과 친해지려면 그의 일을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어부터 터득해야 했다.
게다가 지금은 오히려 자신이 연정운 일가의 도움을 받는 형편이었다.
‘그래서는 안 될 말이지.’
그는 한국어 교재를 한차례 손으로 쓸어 본 후 학원 건물로 들어갔다.
오후 1시.
한국어 학원을 마친 연적하는 석경장이 아닌 도서관으로 향했다.
석경장으로 가 봐야 도움이 안 되니 당분간 공부에 매진할 생각이다.
어제만 해도 난리가 난 것 같더니, 세상은 하루 만에 조용해졌다.
서울, 수원, 춘천과 달리 인천에 블랙 스피어가 없는 탓이다.
인천 사람들에게 블랙 스피어는 놀랄 일이기는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서울에 친인척을 둔 사람들이야 가슴이 철렁했다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 서울의 일은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에 불과했다.
연적하는 사람들의 그런 대범함에 오히려 놀랐다.
북한과 오래도록 대립 관계에 있으면서 담력이 커진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