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20
0회. 민간 군사 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 PMC)
인천시립 도서관.
도서관 옆 대형 전광판 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뉴스를 보고 있었다.
또 재탕이려니 생각한 연적하는 무시하고 지나려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송출된 화면이 낯선 걸 보니 새로운 뉴스인 것 같았다.
잠시 멈칫했던 연적하는 전광판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휴대 전화를 꺼내 실시간 통역 어플을 실행했다.
뉴스 앵커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어제 서울, 수원, 춘천의 블랙 스피어에서 괴생명체가 쏟아져 나왔는데요. 그런데 그게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프랑스 카다라쉬와 비슷한 위선(緯線)의 도시들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추후 다른 도시의 블랙 스피어에서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알레조 카사스 UN 사무총장은 블랙 스피어가 인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 단언하며, 전세계 정부가 괴생명체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단을 갖추어야 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에 발맞춰 미국과 유럽의 민간 군사 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 PMC)들이 ‘돌연변이들로 괴생명체 전담 신속 대응군을 조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전 인도태평양 사령관 사무엘 제독은 ‘돌연변이들의 역할이 필요해진 만큼 한국 정부에서도 민간 군사 기업 육성에 나서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은 민간인의 무기 소지가 까다로운 만큼 민간 군사 기업 역시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 민간 군사 기업의 무대는 해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블랙 스피어 사태로 한국의 도검과 총포류 규제가 완화될지 모르겠습니다. 국민 안전 포럼의 김인식 대표님을 모시고 민간 군사 기업에 대한 의견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뒤로 김인식 대표와 앵커의 대화가 장시간 이어졌다.
내용은 ‘민간 군사 기업을 지금 육성하는 게 옳으냐?’는 것이었다.
남의 일인지라 흘려듣던 연적하의 귀가 한순간 쫑끗했다.
김인식 대표가 갑자기 중국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앵커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러시아의 민간 군사 기업은 워낙 유명하니까 알고 있었습니다만, 중국이 민간 군사 기업을 육성하고 있었다는 게 사실 입니까?
―그렇습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해외에서 다국적 기업으로 위장한 민간 군사 기업을 운영해 왔습니다. 미국은 그 기업의 실질적인 소유자가 중국 정부라는 걸 알면서도, 당장의 필요에 의해 그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러면 미국이 중국의 군사력 증가를 도와준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미국이 다국적 민간 군사 기업의 배후가 중국이라는 걸 알면서도 지원했다니……. 정말 뜻밖입니다.
―그럴 정도로 ‘민간 군사 기업은 피아 식별이 무의미한 세계다’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돈 앞에 국적이 필요없다는 거지요. 여하튼 중국과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블랙 스피어에 대한 대비가 잘되어 있습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부터 자국 돌연변이들의 해외 출국조차 규제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랬습니까?
―예, 그에 비하면 한국은 늦어도 너무 늦었습니다. 이제라도 정부가 민간 군사 기업 육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수원, 춘천에서 보았듯 탱크와 미사일, 폭격 등은 최대한 자제해야 합니다.
―효과는 뛰어나지만 도시의 피해가 너무 커서 그런 거지요?
―맞습니다. 그런 무기를 사용하면 이기고도 지는 싸움이 되고 맙니다. 괴생명체들과의 전투에는 핀셋 처방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은 특수 부대나, 돌연변이로 구성된 민간 군사 조직뿐입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는 벌써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민간 군사 조직을 육성해야 합니다. 세계 투자 자본은 가장 안전한 나라로 향할 테니까요. 이제 민간 군사 조직 육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걸 정치인들도 알아야 합니다.
연적하는 그제야 중국의 출국 절차가 까다롭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휴! 내가 돌연변이였으면 골치 아플 뻔했네.’
자고로 밤에 마음 편히 자려면 국가와 척을 지면 안 된다.
연적하는 뉴스에서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자 도서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
연적하가 한국어 학원을 다닌 지도 어언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연적하는 한글을 모두 익혔다.
연정운 가족과 한집에 살면서 한국어도 비약적으로 늘었다.
본래 머리가 나쁘지 않은 데다, 영기지체가 되면서 지능이 높아진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중요한 순간마다 휴대 전화 통역 어플의 도움을 받았지만, 일상에서는 좀처럼 통역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정확히는 석경장의 휴무일에 연정운이 연적하를 집 밖으로 불러냈다.
“왜요?”
“그, 구인회 부장 있잖냐?”
“예.”
“어제저녁에 와서 식사를 하고 갔는데 말이야. 험, 험.”
말하기가 어려운지 연정운은 한참 동안 헛기침을 해 댔다.
“구 부장이 삼촌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석경장에 투자를 하고 싶단다.”
“예에? 뭘 보고요?”
“뭐, 요식업의 가능성 같은 거겠지?”
“삼촌, 저도 뉴스를 봐서 아는데요. 지금은 요식업에 투자할 때가 아닙니다. 투자를 하려면 민간 군사 기업 같은 데다가 해야죠.”
연적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금 온 나라가 민간 군사 기업을 육성하라고 아우성인데 요식업이라니?
괴생명체의 침입 사건 이후 퇴근하면 집으로 가는 문화가 생겼다.
그걸 생각하면 요식업의 미래는 자신 같은 문외한이 봐도 어두웠다.
“내가 뭘 알겠냐.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힘들어서 그러시죠?”
“그렇지 뭐.”
연정운은 의외로 선선히 인정했다.
아무리 가게 월세가 안 나간다 해도 한국의 물가는 미쳤다고 할 정도로 높다.
그런 상황에 한 달 매출이 삼백 언저리인 석경장은 존재 자체가 기적이었다.
“구 부장이 삼합회인 건 아시죠?”
“알지.”
연적하가 묘한 눈으로 연정운을 보았다.
목소리가 어째 시들시들했다.
‘삼합회와 한번 얽히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경계하던 그의 심경에 변화가 찾아온 것일까?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데요? 그냥 투자만 하겠다고 하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연정운이 만든 요리를 깨작거리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대책도 없이 투자를 하겠다고 한다면 거절해야 마땅했다.
“석경장이라는 고급 요릿집 브랜드를 만들고 싶단다. 우리가 1호점이자 본점인 셈이지. 요리는 홍콩의 셰프들 중에 뽑아 보낼 계획이라나?”
“삼촌은요?”
“요리에서 물러나 월급 받으면서 경영을 하라네.”
“그거 하나는 맘에 드네요.”
순간 불쾌했던지 연정운의 눈썹이 한차례 꿈틀했다.
하지만 그도 자신의 문제를 알기에 그 부분을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석경장의 이름만 빌려 쓰겠다는 건데……. 우리 중국집이 유명한 것도 아니고……. 그 제안을 받아들여도 되는지 모르겠다.”
말과 함께 연정운은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구인회 부장이 그러는 것도 결국은 연적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삼촌은 어떻게 하고 싶으신데요?”
“나야 뭐…… 주방보다는 카운터에 나와 있는 게 낫지.”
“다른 투자 조건은 없어요?”
“없어. 석경장이라는 이름과 건물만 사용하게 해 달래. 그럼 나머지는 자기들이 다 알아서 진행한다고.”
“장사가 안 되면요?”
“그래도 최소한 오 년은 끌고 갈 생각이란다.”
“오 년 후에는요?”
“그 사람들이 손 떼고 물러나면 내가 다시 운영하는 거지. 그간 들어간 비용은 자기들이 손실 처리해서 떠안고 가겠다고 하더라.”
“낡은 건물 고쳐 주고, 오 년 동안 삼촌에게 월급도 주는데, 사업 망하면 다 넘겨주고 떠나겠다? 삼합회가 아니라 천사들이네요?”
“나를 봐서 그렇게 하겠다는 거겠냐? 다 너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그러는 거지. 다만 그걸 내가 받아도 되는지가 의문이라……. 네 의견을 물어보려고.”
“받아도 됩니다.”
“진짜?”
연정운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먼 친척의 덕을 누려도 되는지 모르겠다.
“당연하죠. 우리는 가족 아닙니까! 삼합회도 계산 다 해 보고 괜찮겠다 싶어서 그런 제안을 하는 겁니다. 모르는 척하고 받으세요. 혹시 모르니까 계약서 작성하기 전에 꼼꼼히 확인하시고요.”
“그래, 고맙다.”
“고맙긴요. 제가 가게 수리하고, 삼촌 월급 주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구 부장이 나를 보고 그런 제안을 했겠냐.”
“에이, 별말씀을. 정 고마우면 나중에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가보(家寶)나 보여 주세요. 석경장 선조들의 숨결을 느껴 보게요.”
“서연이에게 들었나 보구나. 골동품에 관심이 있느냐?”
“그보다는 석경장이 언사의 연씨들과 뭐 좀 다른 게 있나 싶어서요.”
“결정적으로 다른 게 하나 있기는 하지.”
“뭔데요?”
“석경장이 언사의 연씨 집성촌에 있던 와룡장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건 아느냐?”
“당연하죠. 언사의 연씨들에게 합비에 있는 석경장은 유명했습니다.”
연적하는 족보를 들고 합비까지 찾아온 연씨 문중의 원로를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와룡장에 가보로 내려오던 청동 거울이 있다. 그게 어쩌다 석경장에 전해졌는데…….”
“그걸 삼촌이 가지고 있다고요?”
구천현녀경을 떠올린 연적하의 목울대로 ‘꿀꺽’하고 마른침이 넘어갔다.
“언젠가 급하게 목돈이 필요해서 감정을 받아 본 적 있다. 삼백 부르더라. 그 오래된 청동 거울이 삼백밖에 안 된다니…… 믿어지냐?”
“아니, 삼촌, 가보를 누가 돈으로 따집니까?”
“너는 안 봐서 그런다. 우리 아버지가 그거 하나 가슴에 안고 중국에서 인천까지 왔는데……. 그 거울의 가치를 알게 된 순간 허망하더라.”
“에이, 그건 아니죠.”
“보여 주랴?”
“예.”
“봐 봐야 별거 없을 텐데. 더럽기만 하고.”
“그래도 와룡장의 가보였잖습니까? 저는 보고 싶습니다.”
“하긴 언사의 연씨들은 말로만 들었지 구경을 못 해 봤겠구나.”
“맞습니다.”
“말 나온 김에 지금 보여 줄까?”
“지금요? 그럼 저야 감사하죠.”
연적하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최소 몇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일주일 만에 볼 기회가 생길 줄이야!
“따라오거라.”
몸을 돌려 몇 걸음 걷던 연정운이 문득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참! 숙모와 서인이에게는 구 부장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면 안 된다.”
“당연하죠.”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정운은 다시 움직였다.
그런 연정운의 뒤통수를 보며 연적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찝찝하면 거절을 해, 이놈아.’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대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따로 없다.
집 안으로 들어간 연정운은 이 층 끝에 있는 방문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가 할아버지 유품이 있는 방이다. 진짜 볼 거 없으니까 기대는 하지 마라. 특히나 청동 거울은 녹 때가 잔뜩 껴서……. 골동품이 아니라 고물에 가까우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어깨에는 아주 조금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자신이 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