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21
1521회. 그걸 왜 고민하고 있어요?
기대하지 말라면서도 어깨를 으쓱이던 연정운이 방문을 열었다.
환기를 잘 하지 않은 방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코로 밀려왔다.
연정운도 그걸 맡았는지 창문을 열며 변명처럼 말했다.
“안 쓰는 방이라 냄새가 좀 날 거다.”
“많이 안 나는데요, 뭐.”
연적하의 눈이 빠르게 방 안을 살폈다.
선친의 유품을 모아 두었다더니 과연 방 안에는 책과 가구가 뒤섞여 있었다.
이윽고 연적하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됐다.
찾았다.
390년 전까지 끼고 살았던 청동 거울이 책 무더기 뒤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연정운이 청동 거울 앞에 쌓인 책들을 한쪽으로 치우며 말했다.
“석경장에는 이 거울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 혹시 연씨 집성촌에서 들어 본 적이 있느냐?”
“구천현녀경이 있다는 소리만 들었습니다.”
“오! 그래도 이름은 제대로 전해졌나 보군. 맞아, 구천현녀경.”
“전설이라는 건 뭡니까?”
때마침 책을 다 치운 연정운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칠대조인가 팔대조 선조님이 거울에서 나온 선녀를 만났단다. 하하! 사실 전설이라는 게 죄다 허황된 이야기지만…….”
“팔대조입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안다고?”
“저에게도 연씨의 족보가 있습니다.”
“그걸 읽었어?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답게 별걸 다 봤네. 여하튼 중요한 건 팔대조가 아니라 전설이야.”
“허황된 이야기라면서요.”
“그러니까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허황된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교훈이 담겨져 있다.”
“거기에 교훈이 있습니까?”
“중대한 교훈이 있지.”
“뭡니까?”
“값싼 골동품일지라도 처분하지 마라. 중요한 건 가격이 아니라 조상의 얼이다. 삼백만 원짜리 청동 거울에 선녀가 들어 있는 것처럼,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녹슨 껍데기가 아니라 뭐다?”
“선녀요?”
“아니, 조상의 얼이라고!”
“아, 예에. 그런데 삼촌, 만약 누가 이 거울을 삼억에 산다면요? 조상의 얼이라 안 파실 겁니까?”
“삼천만 원만 줘도 팔았지.”
“…….”
“방금 한 말 잊었느냐? 중요한 건 청동 거울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교훈이다. 후대에 전하는 건 알맹이만으로 충분하다 이거지.”
“저기 삼촌.”
“왜?”
“삼천만 원만 줘도 판다는 말씀 진짭니까?”
“당연히 진짜지. 비싼 밥 먹고 내가 헛소리할 사람으로 보이냐?”
“그럼 제게 파시죠.”
“네가 이 거울을 사겠다고?”
“예.”
“흐음.”
연정운이 애매한 눈으로 연적하와 거울을 번갈아 보았다.
사실 저 소리를 사흘 전에만 들었어도 당장에 팔겠다고 했을 게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사흘 전만 해도 하루 매출이 십만 원 안팎이라 암담했다.
그러나 구인회 부장과 계약하면 자신은 월급 받는 CEO가 된다.
최소한 향후 5년간 돈에 쪼들리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그런 상황에서 가보를 판다?
아무리 그가 돈을 좋아해도 양심상 조금 꺼려지는 게 당연했다.
“당장 삼천만 원은 없습니다만, 그 정도 돈은 금방 마련할 수 있습니다.”
연적하의 말에 연정운은 내심 안도할 수 있었다.
“하하! 돈도 없으면서 사겠다고 했던 거냐?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오늘은 구경만 해라.”
“아, 예.”
연정운이 변심했음을 직감한 연적하는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 않았다.
자신은 구천현녀경을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구천현녀경과 단둘이 시간을 좀 보내면 될 뿐이다.
그럴 기회는 앞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한편 연정운은 조카 입에서 팔라는 말이 또 나올까 봐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이 거울이 좀 이상한 게 있기는 해. 그게 뭔지 아냐?”
“뭔데요?”
“뭐로 닦아도 저 녹이 안 없어져. 녹 제거제로 닦아도 그대로야. 녹이 빨갛게 슨 쇠도 싹 닦이는데 저건 안 돼. 진짜 무슨 귀신이라도 씐 건지. 무슨 짓을 해도 그대로야.”
“그래요?”
연적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구천현녀경을 보았다.
지금의 구천현녀경은 어린 시절 석경장 창고에서 처음 발견할 때처럼 뭔가 잔뜩 끼어 있었다.
그때를 떠올린 그의 얼굴에 얼핏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어떤 의미에서 귀신이 씌었다는 연정운의 말은 옳았다.
물론 귀신이 아니라 도력이지만 현대인은 그 차이를 알지 못할 터였다.
“다 봤으면 그만 나가자.”
“예.”
연적하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자신이 구천현녀경에 관심을 보일수록 연정운은 경계를 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별거 아닌 것처럼 연기해야 했다.
연정운은 거실로 내려가자마자 그의 처에게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연정운의 처, 김미란은 당연히 구인회의 제안을 반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계약 날짜를 당기라고 했다.
부부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이익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
다음 날.
연정운은 석경장에 나가자마자 구인회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계약하겠다고 하자 구인회는 즉시 석경장을 방문했다.
곧이어 연정운과 트라이어드 투자 회사(Triad investment company) 간에 계약이 성사됐다.
최종적으로 연정운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자, 구인회가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축하드립니다, 연 사장님. 이제 저희 트라이어드 투자 회사와 한 가족이 되었으니 돈 끌어모을 일만 남으셨습니다.”
“하하,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일단 사흘 안으로 계약금이 사장님께 지급될 겁니다. 아시겠지만 이 계약금은 시설 투자와 상관없는 사장님의 개인 소득입니다. 원하신다면 저희 트라이어드 투자 회사에 투자하셔도 됩니다.”
“아하하.”
연정운은 어색하게 웃기만 할 뿐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트라이어드 투자 회사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삼합회의 것이다.
그는 비록 삼합회의 투자를 받았지만 더 깊이 그들과 연관되고 싶지 않았다.
이해한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구인회가 다시 말했다.
“건물 리모델링과 인테리어는 시공사가 정해지는 대로 시작하겠습니다. 빠르면 다음 주, 늦어도 다다음 주까지는 시공사가 정해질 겁니다. 이번 달부터 사장님께는 석경장 CEO로 월급이 지급됩니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문 닫고 좀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 그래도 됩니까?”
“하하핫! 당연히 되지요. 사모님과 여행도 좀 다니고 그러십시오.”
“정말 자리를 비워도 됩니까?”
“그럼요. 시공사와 공사 기간은 제가 사장님께 바로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사업하시려면 이런 때를 이용해서 푹 쉬셔야 합니다. 오픈하면 쉬고 싶어도 못 쉴 겁니다.”
“꿈만 같은 이야기로군요.”
“계약금 들어오기 전에 사모님과 세계 일주 계획이라도 세워 두십쇼. 사모님도 마음고생하셨을 텐데 위로해 주셔야죠.”
“생각해 보겠습니다.”
구인회는 연정운이 뭉그적거리자 실망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여행을 강권하는 걸 상대가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 선생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한국어를 배우러 다닌다고는 들었습니다만.”
“학원 끝나면 여기저기 관광을 다니고 있습니다.”
“관광 좋죠. 다른 취미 생활은 없으시고요?”
“취미는 모르겠고…… 골동품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골동품이라면 어떤?”
“선친의 유품을 보여 주니 좋아하더군요. 연씨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가 하나 있는데……. 그걸 자기에게 팔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까?”
“구천현녀경이라고 가보로 내려오는 청동 거울이 하나 있습니다. 그걸 삼천만 원에 팔라고 해서 웃은 일이 있습니다.”
“그런 물건을 가지고 계셨군요. 가보라고 하셨는데 파실 마음은 있으시고요?”
“구 부장님과 계약을 하기 전이었다면 팔았겠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하하.”
“연 선생님에게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서요. 혹시라도 파실 마음이 있다면 저에게 말씀해 주십쇼. 제가 열 배를 내고라도 살 의향이 있습니다.”
“헉! 열 배요? 그럼 삼억?”
“만약 오늘내일 중으로 저에게 파신다면 그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유, 육억요?”
“예.”
“끙!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내일 중으로 말씀드리면 됩니까?”
“내일까지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모레는 석경장에서 일할 셰프들을 구하러 홍콩으로 갈 생각이라서요.”
“아! 알겠습니다. 내일까지 고민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연 선생님께는 비밀로 해 주셔야 합니다. 서프라이즈!”
구인회가 과장된 동작으로 양손을 활짝 펼쳐 보였다.
연정운은 깜짝 선물이라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구인회는 석경장을 떠났다.
문 앞까지 그를 배웅하고 돌아온 연정운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본래는 팔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육억이라는 거액을 떠올리니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 소리가 나자 방에서 TV 드라마를 시청하던 김미란이 빠르게 튀어 나갔다.
“왜 벌써 들어와요? 계약은 어떻게 됐어요?”
“했지.”
“잘됐네요. 이제 나도 사모님 소리 듣는 건가?”
“언제는 사모님 아니었나?”
“중국집 주방장 와이프에게 누가 사모님이라고 해요?”
그 소리에 연정운이 발끈했다.
“내가 왜 주방장이야? 사장이지.”
“주방장 겸 사장이죠. 그래서, 리모델링은 언제부터 하기로 했어요?”
김미란이 톡 쏘아붙이자 연정운은 머쓱한 얼굴로 답했다.
“공사 업체 선정되면 바로 들어간다나 봐. 선정하는 데 일이 주 걸릴 거라네?”
“월급 말고, 계약금 같은 건 없어요? 누군 계약금도 따로 주고 그러던데.”
“왜 없어? 따로 받기로 했지.”
“얼마 준대요?”
“2억.”
“어머! 그렇게 많이요? 미쳤네, 미쳤어. 월급은요?”
“일단 천오백에서 시작하는데, 매출 올라가면 더 올려 주기로 했어.”
“매출 떨어지면요?”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던 김미란은 매출 감소 상황부터 확인했다.
“그래도 천오백. 오 년 동안은 최소 천오백 보장이야.”
“잘됐다. 그럼 차부터 바꿔요. 우리 차 벌써 십 년이 넘었다고요. 오늘 보니까 페인트 떨어져 나간 부분에 녹이 슬었더라.”
“차가 문제가 아니야.”
“그럼, 뭐가 문젠데요? 아직 남은 게 있어요?”
연정운이 처를 골리기 위해 짐짓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있어.”
“뭔데요? 무슨 독소 조항이라도 있어요? 당신더러 요리 배우래요?”
“이 사람이,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내가 요리를 배우는 게 왜 독소 조항이야?”
“아버님에게 중국요리를 이십 년이나 배웠다는 사람이 그 모양이니 그러죠. 이십 년으로도 안 됐는데, 몇 달 배워서 되겠냐고요?”
“아, 진짜. 그런 거 아니야. 아버지 유품 중에 하나를 팔아 달래.”
“그 작은 방에 있는 거요? 원하는 게 뭔데요?”
“청동 거울.”
“아, 그 애물단지?”
“그게 왜 애물단지야? 가보라고 했잖아.”
“닦아도 닦아도 더럽다며 팔아 치워 버리자고 한 게 누군데 그래요? 사겠다는 사람 나타났을 때 팔아 치워요. 요즘 세상에 가보가 무슨 소용 있어요? 돈 물려주는 게 최고지. 얼마에 산대요?”
“육억.”
“…….”
얼마나 놀랐는지 김미란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만 끔뻑였다.
“내일까지 팔면 육억 주겠대.”
“아이! 깜짝이야. 팔아요! 그걸 왜 고민하고 있어요? 육억이 누구 애 이름인 줄 알아요? 그거 상태 안 좋다고 말했죠? 막상 보고 변심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건 미리미리 말해 줘야 돼요.”
“이 사람이 돈이라면 조상님도 팔아 먹을 기세일세.”
“우리 집안에는 팔릴 만한 조상님이 없네요.”
“팔까?”
“우리 노후를 생각하면 당연히 팔아야죠. 오 년 후에 장사 안 되면 손가락 빨고 있을 거예요?”
그 말에 연정운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 년 후를 생각하면 지금 육억에 파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나중에 죽어서 선친을 만나면 야단이야 좀 맞겠지만, 노후를 안락하게 보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