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06
206회. 어차피 일어날 일
재가 되어 사라진 화염마인의 최후는 의기대 무인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 주었다.
정의맹은 정주 지부의 보고를 묵살하고 유명교 토벌 계획을 세웠다.
총사 신기수사 제갈승운은 마물을 좌도방문의 사술로 치부했지만, 사실과 달랐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마물은 실재하는 힘이었다.
사술이었다면 무당파 장문인이 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천하십대고수인 검왕 남궁벽은 아직도 지붕 위에서 싸우고 있다.
저런 마물이 어떻게 사술이란 말인가!
저걸 정의맹의 평범한 고수들이 막아 낼 수 있을까?
무당파 장문인 영결상인은 멍하니 화염마인이 사라진 자리를 보았다.
‘이건 대체…….’
아직도 천하십대고수인 검왕 남궁벽이 일각마인과 혈전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름도 없는 곤륜삼선이 화염마인을 끝장내 버리다니?
십두마병의 실체나 곤륜삼선의 능력은 무림의 상식을 초월하고 있었다.
‘큰일이로다.’
의천검존과 무극상인, 무상도제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세 개 대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지금의 정의맹 전력으로는 유명교를 당해 내지 못한다.
마물을 잡으려면 곤륜삼선과 같은 술사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결상인의 속이 하얗게 타들어 갔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은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
하물며 그것이 검왕의 검기라면 바위보다 더한 것도 견디지 못하리라.
반 시진(1시간)이나 계속된 남궁벽의 공격에 일각마인의 손톱이 조금씩 잘려 나갔다.
몸체에 종횡으로 새겨진 칼자국도 점점 깊어졌다.
콰직.
검기에 또다시 강철같은 손톱이 잘려 나갔다.
일각마인의 손끝에서 나오던 반월형 강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남궁벽은 서서히 끝에 도달했음을 느꼈다.
반 시진 정도 쉬지 않고 칼질을 했더니 바위 같던 마물의 피부에도 고랑이 파인다.
그는 마물의 손톱을 잘라 낸 뒤에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일각마인이 무기력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그때 벼락 치듯 눈부신 섬광이 일각마인의 머리에 떨어졌다.
꽈광!
잘게 금이 갔던 일각마인의 머리가 한순간 터졌다.
푸스스스-.
머리를 잃은 일각마인의 몸체는 이내 잿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표표히 지붕에 떨어져 내린 남궁벽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반 시진 동안 전력을 다하느라 상반신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유명교 교주와 싸운 줄 알 게다.
고작 십두마병 하나에 이렇게 고전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잠시 숨을 돌린 남궁벽은 마당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기다리고 있던 영결상인과 무당파 장로들이 잰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고생하셨소. 손을 써 보니 어떻더이까?”
영결상인의 물음에 남궁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주 지부 사람들의 보고대로였습니다. 보통의 공력으로는 피부에 상처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역시 그렇구려. 빈도의 공력이 통하지 않아서 그럴 거라 생각은 했소만.”
곤륜삼선이 다가왔다.
이전까지 소 닭 보듯 하던 무당파 사람들은 황급히 좌우로 길을 터 주었다.
남궁벽이 먼저 읍(揖)을 해 보였다.
“선인들의 말씀대로 전력을 다했음에도 반 시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미리 듣지 않았다면 크게 실망하여 손속이 흐트러질 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법보도 없이 공력만으로 마물을 쓰러트리다니 실로 대단하시오. 경험해 봐서 아시겠지만 마물을 상대하려면 법보가 있어야 하오. 법보가 없이는 꽤나 힘든 싸움이 될 게요.”
태을 선인의 말에 남궁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도 마물을 벨 때 마치 바위를 때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자 영결상인도 한마디 거들었다.
“빈도가 파사(破邪)의 주문까지 외웠지만 티끌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좌도방문의 사술과는 거리가 먼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게 남궁벽과 도문의 고수들이 한창 앞으로의 대책을 논할 때다.
의기대 부대주로 선임된 무당파 제자 천비검 운학이 다가와 결과를 보고했다.
“의기대의 피해는 경상 일곱이 전부입니다. 그에 반해 유명교도들은 사망 서른에, 중상이 스물둘입니다. 중상입은 자들을 어떻게 할까요?”
남궁벽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모두 단전을 폐하고 내쫓게.”
“예.”
운학이 묵례를 하고는 돌아서 갔다.
비록 첫 싸움에서 대승을 했지만 의기대의 분위기는 밝지 않았다.
고작 십두마병을 상대로 검왕이 악전고투를 해서다.
그날 밤 남궁벽은 의기대에 십두마병으로 여겨지는 자를 함부로 죽이지 말 것을 명했다.
***
낙양.
백마사.
거대한 불교 사원인 백마사가 웬일인지 속인들로 들끓었다.
어쩌다가 백마사의 승려들도 간혹 보였는데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명교가 백마사에서 자기들의 집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유명교가 처음부터 백마사에 모이기로 한 것은 아니다.
본래 월하교당에 모이려 했으나 터가 좁아 차선으로 선택한 곳이 백마사다.
유명교의 뿌리는 불교와 도교인지라 유명교도들은 백마사를 제집처럼 이용했다.
접인전(接引殿).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지어진 거대한 전각에 일곱 명의 남녀가 마주 앉았다.
유명교의 백두마군들이다.
여섯 명의 백두마군이 기막힌 표정으로 월하선자를 바라보았다.
무산소축에서 월하교당으로 전서구가 날아왔다는데 그 내용이 놀라웠다.
금의위가 정의맹의 행로를 은밀하게 알려 줬다는 것이다.
월하선자에게서 전서구를 받아 살피던 무산낭랑 이매화가 중얼거렸다.
“이건 총관 완사석이 보낸 게 맞아요. 의기대에 비연자와 매화조가 죽었지만 제보는 정확했다는데……. 금의위가 왜 우리를 돕는 걸까요?”
적월 공취산이 냉랭한 어조로 답했다.
“그놈들 속을 누가 알겠소? 어제의 동료도 오늘 반역자로 몰아 목을 베는 놈들인데.”
“일단 그들의 정보가 맞다면, 이 기회를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매화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월하선자가 동의를 표했다.
“난 찬성이에요. 정의맹이 한자리에 모이면 우리 피해도 만만치 않을 거예요. 그들이 흩어져 있을 때 각개격파 하는 것도 괜찮다고 봐요.”
월하선자가 환영신마 웅재귀를 힐끔 보았다.
그녀와 남다른 교분을 유지하고 있던 웅재귀는 즉시 한마디 거들었다.
“확실히 천여 명이나 되는 놈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부담스럽기는 하오. 그만큼 변수도 많을 테고. 노부도 각개격파에 찬성이오.”
공취산은 분위기가 쏠릴까 봐 신경 쓰이는지 급히 말했다.
“나는 금의위를 믿지 않으니 반대요. 정의맹이 남경에 모이는 것을 방치한 놈들이오. 그것만 봐도 놈들이 우리를 적대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소. 놈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맙시다.”
그러자 이매화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공 당주의 말씀대로 금의위가 우리에게서 등을 돌렸을 수도 있어요.”
“허면 더더욱 그들의 말을 들으면 안 되는 거 아니오?”
“하지만 그들은 정의맹의 편도 아니에요. 그랬다면 이런 비밀을 알려 주지도 않았겠지요.”
“…….”
공취산은 그녀의 지적에 반박하지 않았다.
확실히 이번 금의위의 행동은 정의맹을 위한 것이라 보기 어려웠다.
이번에는 혼세검마 척진경이 나섰다.
“금의위는 정의맹이나 유명교의 편이 아니오. 그들은 다만 이용해 먹고 버릴 뿐이지. 그들이 누굴 이용해 먹든 신경 쓰지 말고 우리에게 좋은 것만 취합시다. 정의맹이 사 대로 나뉘어 정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가만히 있으면, 우리를 병신으로 알 거요.”
단순 명료한 그의 말에 혼천혈귀 강상피와 악불 방천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당하신 말씀이오.”
“금의위건 뭐건 주는 떡을 마다하면 안 되지.”
금의위의 정보를 이용하자는 분위기가 되자 공취산도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대충 의견이 모아지자 백두마군들은 어떻게 싸울지를 두고 다시 갑론을박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이매화가 입을 열었다.
“정의맹은 네 곳으로 흩어졌지만 우리는 뭉쳐야 해요. 각 대의 숫자가 대략 삼백 명쯤 된다고 하니, 두 개 대를 목표로 정하는 게 나을 거예요.”
척진경이 동감을 표했다.
“옳은 말씀이오. 우리가 반으로 나뉜다면 막을 자가 없을 게요. 의기대는 인원이 적다고 하니 피해를 입혀 봐야 의미가 없겠고, 어디가 좋겠소?”
“내 생각에는 멸사대와 천추대가 괜찮을 것 같아요.”
“특별히 그들을 점찍은 이유라도 있소?”
“척마대의 의천문은 이미 은하장에서 큰 피해를 입었어요. 현재 정의맹에서 세가 강한 곳은 멸사대의 화산파, 공동파와 천추대의 소림사, 무극문 정도예요.”
“아하!”
척진경은 단번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약한 곳은 그냥 두고 강한 곳을 헤집어 놓자는 소리다.
확실히 그편이 정의맹의 전력을 깎는 데 효과적이기는 하다.
의기대에 원한이 있는 이매화가 ‘멸사대’와 ‘천추대’를 추천하자 다들 반대하지 않았다.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일곱 명의 백두마군들은 두 패로 나누어졌다.
방천각, 강상피, 척진경은 멸사대.
그리고 공취산, 웅재귀, 이매화, 월하선자는 천추대를 맡기로 했다.
다음 날.
육백여 명의 유명교도들이 조용히 백마사를 떠났다.
***
개봉.
화상촌.
점심 무렵.
효자암으로 나간 연적하가 막 간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을 때다.
녹담평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공자님.”
“왜?”
“하나만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두 개 물어봐도 돼.”
“지난번에 안찰사가 왔을 때 말입니다. 공자님께서 큰소리를 치셔서 조마조마했습니다.”
“녹 형이 안찰사 친척이야?”
“아닙니다.”
“그런데 왜 조마조마해?”
“안찰사는 고관이지 않습니까?”
“고관이 어때서?”
“고관을 건드리면 뒤끝이 좋지 않으니까요. 관과 무림이 강물과 우물물이니 뭐니 해도, 제가 본 무림 고수들은 항상 고관들의 눈치를 살폈거든요. 그런데 공자님은 반대이신 것 같아서요.”
“녹 형이 몰라서 그래.”
“예?”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이야. 심 노인이 안찰사 아들을 팼잖아. 그런데 안찰사가 가만히 있겠어? 내가 아무리 아부를 떨어도 나와 심 노인은 이미 그의 눈 밖에 났다고.”
“아!”
녹담평은 왠지 연적하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지금 당장은 안찰사가 나를 잡으러 오지 않는다 해도, 나는 결국 그에게 뒤통수를 맞을 거야. 그게 바로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고.”
“…….”
“내가 아부를 떨건 말건, 피할 수 없어. 그런데 내가 왜 안찰사의 비위를 맞춰 줘야 해? 어차피 그는 날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건데.”
“만약 안찰사가 연 공자님과 잘 지내려고 한다면요?”
“그때는 나도 넓은 마음으로 받아 줘야지. 난 본래 싸움을 싫어하는 사람이거든.”
녹담평은 마지막 말에 있어서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건 안찰사도 들이받아 버리는 미친 소와 같은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졌어?”
“그, 그냥 신기해서요.”
“나는 녹 형이 신기해.”
“제가요?”
“응. 쥐꼬리만 한 무공을 믿고 설쳐 대고도 아직 살아 있잖아. 그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녹 형은 모르나 봐? 조상님들 묫자리를 잘 썼을 거야.”
녹담평은 그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몰라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때 한 사십 대 사내가 효자암으로 다가왔다.
화려한 화복(華服)을 입은 그는 금의위 개봉 지부 남진무사 동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