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17
217회. 못 먹어서 그렇거든요?
뒤늦게 금강저를 발견한 한채연도 관심을 보였다.
“그게 뭐예요?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저런 걸 어디서 봤지?”
“언니. 아침에 조원촌에서 주웠대요. 심 노인도 이름은 모른다네요.”
하소백의 설명으로 금강저는 조원촌에서 아침에 주운 게 되고 말았다.
심통은 굳이 해명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어차피 촌장처럼 선몽을 꾸었다고 할 게 뻔해서다.
때마침 흥정을 끝낸 약대몽 행수가 이철산 일행의 자리로 다가왔다.
그는 심통의 허리춤을 힐끔 보고 말했다.
“어르신께서 가지고 계신 물건은 ‘금강저’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금강저?”
절간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는 심통은 생소한 이름에 눈만 끔뻑였다.
“예, 제석천(帝釋天, 인드라)이 아수라를 물리칠 때 사용한 무기라고 하지요. 어르신이 가지고 계신 것은 마치 창끝처럼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하나의 가지로 된 것을 독고저라고 부릅니다. 만약 아홉 개로 갈라졌으면 구고저라고 하고요.”
“고작 이런 것으로 아수라를 물리쳤다고?”
“하하! 불가의 신화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금강저는 견고하여 어떠한 것이라도 베고 뚫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원촌에서 습득하셨다고요?”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요. 조원촌 인근에서 사찰을 본 적이 없어서요. 굉장히 오래된 물건 같아 보이는데, 나중에 처분할 생각이 있으시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사찰에서라면 모를까?
일반인이 저렇게 큰 금강저를 쓸 일은 없었다.
사람들이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는 금강저는 저것보다 훨씬 작았다.
“그러지.”
약대몽의 제안에 심통의 표정이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귀찮은 짐에서 돈이 될 수도 있는 물건으로 격이 높아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팔 때 팔더라도 연적하에게 한번 보여 줄 생각이다.
자신의 기막힌 경험담을 듣고 황당해할 그를 떠올리니 실실 웃음이 났다.
***
하남성.
정주.
석장촌.
점심 무렵.
한 청년이 마을 어귀로 들어섰다.
이곳에 살고 있다는 외숙 일가를 만나러 온 연적하다.
무려 이틀이나 헤맸지만 마을에 들어선 순간 피로가 싹 가셨다.
방산 밑자락에 자리한 마을은 오십 호가 조금 못 되는 것 같았다.
한낮의 따스한 햇볕 덕분일까?
거리를 오가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연적하는 그들 중 가장 후덕한 얼굴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뭐 좀 물어볼게요.”
순간 중년 남자의 시선이 연적하의 허리춤에 걸린 검으로 향했다.
“예, 말씀하십시오.”
상대를 무림인이라 생각한 그는 말을 높였다.
“이우석이라는 사람의 집을 찾고 있거든요. 혹시 어딘지 알아요?”
“아! 저기 방산 초입에 있는 집입니다. 산을 개간하거나, 땔감을 해다 팔기 좋은 위치이지요. 그런데 이씨 집은 무슨 일로?”
좁은 마을이라 그런지 남자는 필요 이상의 질문을 했다.
하지만 연적하는 그런 걸 알아차릴 만큼 예의범절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다.
“아, 친척인 것 같아서 만나 보러 온 거예요.”
중년 남자, 석우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척이면 친척이지, 친척인 것 같아서는 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그러셨군요. 친척이라면 아버지 쪽? 아니면 어머니 쪽?”
“어머니 쪽요. 그런데 아저씨가 이 마을 촌장이에요? 뭘 그렇게 물어봐요?”
연적하의 지적에 석우대는 얼굴을 붉혔다.
“아, 아닙니다. 그저 외지인을 보는 게 오랜만이라. 그럼, 일 보십시오.”
석우대는 급히 말을 맺고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
“거참. 재밌는 아저씨일세.”
뭐가 그렇게 바쁜지 뒤도 안 돌아 보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연적하는 중년인이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 뒤에야 방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년인이 말한 집은 방산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 말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도 같다.
산자락 바로 아래, 움막보다 조금 나은 형태의 집이 한 채 덩그러니 서 있었다.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울타리는 관리가 되지 않아 군데군데 구멍이 났고, 대문은 뒤틀어져 바람이 불 때마다 가볍게 덜렁거렸다.
외가 형편이 어머니를 팔아 버릴 정도로 좋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심했다.
속으로 혀를 차던 연적하는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계십니까?”
마당에서 소리치자 방문을 열고 어린 여자애가 후다닥 튀어나왔다.
이제 여섯 살이나 됐을까?
바싹 마른 여자아이는 주변을 살핀 뒤에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
“누구세요?”
“나? 지나가던 사람. 집에 부모님 안 계시냐?”
“산에 나무하러 가셨는데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마당 한쪽에 쌓인 나뭇더미가 보였다.
“나무를 가져와서 팔아? 아님 쓰기 위해서 주우러 간 거야?”
“쓰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 거죠. 그런 건 왜 물어보세요?”
연적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질문하는 걸 보니 여자아이가 생각보다 똘똘한 것 같았다.
연적하는 일 척(약 30센티)이 조금 안돼 보이는, 흉내만 낸 마루에 편안하게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부모님 언제쯤 오시냐?”
“곧 오실 거예요. 그렇게 아무 데나 막 앉으면 안 되는데.”
“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아니요. 왜 남의 집에 막 그렇게 앉으세요? 지나가던 사람이라면서요?”
그제야 연적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여자아이를 보았다.
어린 것치고 말을 꽤나 조리 있게 하는 것 같았다.
“꼬맹이. 너 어린애가 말 참 잘한다? 몇 살이야?”
“열두 살인데요.”
“…….”
깜짝 놀란 연적하는 아이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예닐곱 살로 보이는데 열두 살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와아. 너 굉장히 동안이다?”
“못 먹어서 그렇거든요?”
여자아이, 이시화가 독이 오른 얼굴로 쏘아붙였다.
낯선 청년의 허리에 칼이 없었다면 한바탕 욕하고 내쫓았을 것이다.
칼이 무서워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아냐. 너 동안이야. 못 먹으면 비쩍 마르기만 하는데 너는 어려 보인다니까.”
“근데 왜 안 가세요? 아저씨도 혹시 언니 얼굴 보러 온 거예요?”
“언니? 너 언니도 있었냐?”
“척 봐도 언니 보러 온 건데 아닌 척하기는. 울 언니 곧 혼인하니까 그만 돌아가세요.”
“언니가 몇 살인데 혼인을 해?”
“열여섯요.”
“무슨 혼인을 그렇게 빨리해?”
“그야 당연히…….”
따박따박 대꾸하던 이시화가 말끝을 흐렸다.
집이 가난해서 팔려 가듯 가는 거라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뭐? 어린데 사고라도 쳤어?”
“헛소리하지 마세요! 우리 언니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님 그 남자랑 너무 사랑해서, 둘이 행복하게 살라고 빨리 혼인시켜 주는 거야?”
“아니거든요!”
“뭐야? 사고를 친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빨리 보내?”
“아저씨는 몰라도 돼요! 빨리 가세요!”
살짝 흥분한 이시화는 상대의 허리에 매달린 칼을 깜빡 잊고 화를 냈다.
“야, 나도 아저씨 아니거든?”
“그럼 뭔데요?”
“네 아빠 이름이 이우석 맞아?”
“맞는데요?”
“그럼 오빠다. 사촌 오빠.”
“우리는 외가고 친가고 친척이 하나도 없는데, 어디서 거짓말을 하세요?”
“친가 쪽에 딱 하나 있어. 그게 나야.”
“싹 다 돌아가셨는데 어디서 하나가 나와요?”
“나올 데가 있어. 너 이름 뭐야?”
“이시화요. 거짓말 같은데…….”
그러면서도 이시화는 은근 기대 어린 눈으로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그녀는 내심 잘 차려입은 저 청년이 진짜 사촌이기를 바랐다.
그럼 언니가 팔려 가듯 시집을 가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내 이름은 연적하야. 앞으로 적하 오빠라고 불러.”
“진짜 거짓말 아니에요?”
연적하가 뻔뻔하게 나가자 어린 이시화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나이가 어려 그런지 속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차가운 바람이 휙 몰아치자 방문 앞에 서 있던 이시화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보다 못해 연적하가 한마디 했다.
“추우면 들어가 있어. 난 여기서 기다리면 되니까.”
“어떻게 손님을 밖에 두고 들어가요.”
이시화가 고개를 저었다.
그를 완전히 믿을 수가 없으니 방으로 들이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렇다고 혼자 쏙 들어가자니 그것도 왠지 야박해 보인다.
망설이던 그녀는 문 앞에서 대화를 이어 갔다.
“에취!”
혼자 추위에 떨던 이시화는 결국 재채기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제야 연적하는 그녀가 추위를 억지로 참고 있었음을 알았다.
한서불침의 몸이라 말을 해 주지 않으면 얼마나 추운지 모른다.
“어이쿠! 야, 너 추운가 보구나? 안 되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연적하는 구석에 쌓인 장작을 마당 한가운데로 끌고 나왔다.
“어? 아저씨, 뭐하려고 그래요? 그거 건드리면 안 돼요. 아빠가 팔려고 모아 둔 거라고요.”
“뭐 이런 걸 팔아? 순 잔가지밖에 없구만.”
연적하의 기준에서 마당에 쌓인 장작은 그냥 잔가지들이었다.
그는 장작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부싯돌을 쳐 댔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불씨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린 사촌 동생이 뒤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급해져서 그런지 더 안 됐다.
이럴 때는 수족처럼 부리던 심통이 그립다.
콧구멍으로 거친 숨을 내뱉던 그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젠장! 안 해! 못 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이시화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연적하는 들고 있던 부싯돌을 담 밖으로 거칠게 집어 던졌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나뭇더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곧이어 그의 손에 나뭇가지 하나가 잡혔다.
빠지직. 빠직.
나무가 뒤틀어지며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이내 ‘화르륵’ 소리와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
삼매진화로 불을 피워 버린 것이다.
“그렇지!”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연적하는 불붙은 나뭇가지를 나뭇더미에 밀어 넣었다.
안심하고 지켜보던 이시화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흘러나왔다.
“아앗! 안 된다고요! 아빠가 팔려고 모아 놓은 거라니까요!”
“괜찮아. 이리 와. 오빠가 더 좋은 나무로 준비해 둘 테니까.”
연적하가 넉살 좋게 말하자 이시화는 주춤주춤 마루에서 내려왔다.
이왕 엎질러진 물인지라 순응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쬐기 시작했다.
어린 이시화는 ‘더 좋은 나무를 준비해 주겠다’는 말을 믿고 마당에 굴러다니는 나무를 죄다 긁어 왔다.
마치 불을 맘껏 피우지 못해 한이 맺힌 사람 같았다.
그 바람에 불길은 점점 커져서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누군가는 이우석의 집에 불이라도 난 줄 알고 허겁지겁 달려와 보기까지 했다.
내친김에 연적하는 행낭에서 육포를 꺼내 불에 구웠다.
그렇게 연적하와 이시화가 사이좋게 육포를 나눠 먹으며 시시덕거릴 때다.
누군가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 소리쳤다.
“이봐요! 지금 남의 집에서 뭐 하는 건가요! 그리고 시화야! 너까지 왜 그러고 있어!”
이시화가 찔끔 놀란 얼굴로 어깨를 움츠렸다.
“언니. 그게……. 아저씨, 돼지처럼 먹지만 말고 말 좀 해 봐요.”
입에 육포를 가득 물고 우물거리던 연적하가 천천히 일어나 몸을 돌렸다.
이제 열여섯쯤 돼 보이는 예쁘장한 소녀가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