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16
216회. 그런 신당은 없습니다
구천노도 심통은 씩씩거렸지만 결국 금강저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할 것을 알았기에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 그는 녹슨 금강저를 방구석에 던져두고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파산도 이철산 일행이 아침 식사를 마칠 무렵이다.
딱히 부르지도 않았는데 촌장이 찾아와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녔다.
“노인장.”
“예, 어르신.”
촌장은 자신보다 더 늙어 보이는 심통이 부르자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마을 밖 신당에 웬 늙은이가 하나 죽어 있는 것 같던데. 장례라도 치러 주게.”
“신당이라고요?”
촌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원촌 인근에 신당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어서다.
“거 왜 마을에서 동쪽으로 이 리(약 800미터)쯤 가면 낡은 신당이 하나 있잖나. 거기에 나와 닮은 늙은이 하나가 죽어 있다니까. 보아하니 이 마을 사람 같던데 장례라도 치러 주라고.”
그제야 촌장이 놀란 눈으로 심통을 바라보았다.
괜히 사람을 죽였다고 오해받기 싫은 심통이 서둘러 말했다.
“내가 죽인 게 아니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는 말게. 노환으로 죽은 게 분명해. 내가 죽였으면 장례를 치러 주라고 했겠나?”
“아니요. 그래서 본 게 아닙니다. 동쪽으로는 신당이라고 할 만한 게 없습니다.”
“있다니까. 허름했지만 신당이 있었어. 잘 생각해 보게.”
“아! 숲속에 말씀하신 이상한 집터가 하나 있는데, 혹시 그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집터라고? 그럼 아니야. 나는 신당을 말한 거네. 대문도 멀쩡하게 달려 있는 신당 말일세. 들어가 보니 병풍이 크게 쳐 있고, 나찰상, 장군상에 위패도 수십 개가 있던걸?”
“거참 이상하군요. 저희 마을에 그런 신당은 없습니다.”
“허! 이 사람.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네. 이 리쯤 떨어진 숲에 있는 걸 내가 봤다는데.”
심통과 촌장의 말이 길어지자 이철산이 다가왔다.
“심 노인. 무슨 일입니까?”
“아니 내가 지난밤에 산책을 나갔다가 웬 술 취한 늙은이를 신당에 데려다주었거든. 그런데 촌장은 마을에 신당이 없다는 거야.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이철산이 촌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심 노인은 허튼소리를 할 분이 아닙니다. 사실대로 말씀 하십시오.”
그러자 촌장이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퍽퍽’ 내리쳤다.
“아이고 무사님들! 제가 이 마을의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누구 집에 밥그릇이 몇 개인지까지 알고 있습니다. 마을은 물론 인근 십 리(약 4키로) 안에 신당이 없다니까요.”
이철산이 심통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다는군요.”
심통이 황당한 얼굴로 촌장과 이철산을 번갈아 보았다.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가?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심통의 말도 맞는지라 이철산은 뒤통수만 긁어 댔다.
“없다고? 분명히 없다고 했겠다!”
씩씩거리던 심통이 촌장의 허리를 한쪽 팔로 끌어안고 경공술을 펼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심통과 촌장이 사라졌다.
깜짝 놀란 이철산은 급히 심통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심통은 지난밤 노인을 만났던 자리로 갔다가,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에게 이 리는 결코 먼 거리가 아니다.
품에 안긴 촌장이 몇 번 ‘어? 어?’ 할 동안 벌써 이 리를 지났다.
‘분명히 여기 어디쯤인데.’
심통은 신당이 나오지 않자 조금 더 갔다.
단숨에 오 리(약 2키로)나 갔던 그는 다시 삼 리(1.2키로)를 되돌아왔다.
신당이 있던 자리를 둘러보니 과연 촌장의 말대로 집터 같은 게 보였다.
촌장이 다 죽어 가는 얼굴로 말했다.
“아이고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곳에는 집터밖에 없다고요.”
뒤늦게 도착한 이철산이 심통과 촌장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래도 심통이 말한 신당과 촌장이 말한 집터가 같은 장소 같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때 촌장이 수습한답시고 한마디 던졌다.
“어르신께서 지난밤에 흉, 아니 선몽(仙夢)을 꾸신 모양입니다.”
사람이 죽었다니 흉몽 같았지만 차마 그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집터 주변을 유심히 보던 심통은 ‘흥!’ 하고 냉소를 치고는 유령처럼 사라졌다.
잠시 후 심통은 하룻밤 묵었던 집에 나타났다.
그는 꽁지에 불이 붙은 사람 마냥 후다닥 방으로 튀어 들어갔다.
방구석에 녹슨 금강저가 보였다.
그는 금강저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그럼 이건 대체 어디서 온 거야?”
***
부양과 회남의 경계.
초강호.
반야장.
반야장의 장주인 패도 일위천은 특이한 사람이다.
그는 이전에 십두마병이 되려고 가진 애를 썼다. 물론 천하를 호령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작 십두마병이 되자 갑자기 인생에 회의라도 느꼈는지, 아들에게 방주 자리를 물려주고 은밀히 초강호로 내려와 버렸다.
유명교의 소집에 응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가 초강호에 은거하다시피 한 것은 가족들만 아는 비밀이었다.
호반에 세워진 반야장이 모처럼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벽호방과 대부방의 방도들이다.
벽호방 방주 일무원과 대부방 방주 강성오는 ‘이철산이 떴다’는 소문이 들리자 목적지를 바꿔 초강호에 숨어들었다.
말로는 ‘이철산이 두렵지 않다’고 했지만 실제로 닥치니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안채.
점심 무렵 두 남자가 마주 앉았다.
반야장의 장주 일위천과 그의 아들 일무원이다.
일무원은 부친의 눈치를 살피며 미지근한 차를 홀짝거렸다.
부친은 초강호에 내려가며 방파의 일로 자신을 찾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 염치없게도 벽호방은 물론 대부방까지 이끌고 왔다.
불같이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부친은 담담했다.
마치 언제고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 ‘패도’라 불리던 부친의 모습을 생각하면 믿어지지 않는 변화다.
“아버지. 이철산이 부양에 있다고 합니다. 차라리 이철산을 먼저 치시지요. 그리고 내친김에 낙양으로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낙양은 유명교가 교도들에게 집결하라고 지시를 내린 곳이다.
사실 일무원은 부친이 유명교 명을 거부한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일위천이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는 법. 네가 이곳에 있으면 결국 그놈이 찾아올 게다. 그나저나 이철산이 그렇게 대단한 놈이냐?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무한의 칠상문을 혼자서 격파할 정도로 강한 놈입니다.”
“살천도 곡문상의 칠상문을?”
“예.”
“흐음. 제법이군.”
그 정도 무위라면 십두마병이 되기 전의 자신에게도 버거운 상대였다.
“그런데 정말 낙양에는 올라가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이제 일무원의 관심은 이철산 따위가 아니라 유명교의 소집령에 있었다.
“그럴 거였으면 초강호에 내려오지도 않았다.”
“유명교에서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
“욕이야 하겠지.”
일위천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런 부친의 모습에 일무원은 답답함을 넘어 은근히 화가 났다.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뭐가?”
“아버지는 천하를 호령하기 위해 십두마병이 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왜 초강호에 계신 겁니까? 아버지 무위라면 부양이 아니라 남직례성에도 적수가 없을 텐데요.”
일위천이 무덤덤한 눈빛으로 아들을 보았다.
자신도 저렇게 열정으로 가득 찬 때가 있었다.
오죽하면 별호가 패도였을까.
“무원아.”
“예.”
“나에게는 인맥도 재능도 없다. 그저 건강한 몸뿐이지. 내가 유명교에 들어갔을 때 놀란 게 뭔지 아느냐?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놈들이 십두마병을 노리고 바글바글 몰려왔더구나.”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자들보다 빨리 십두마병이 되셨지요.”
“그래, 나는 오직 충성심 하나로 그런 놈들을 제치고 십두마병이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일위천이 잠시 말을 끊었다.
자신의 선택이 옳은지는 지금도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십두마병이 된 순간 어떤 깨달음을 얻었고, 그것으로 인해 은거 아닌 은거에 들어갔다.
천하에 누구도 이런 자신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나에게는 믿음이 없다. 당연히 보여 줄 수 있는 충성심에도 한계가 있지. 그렇다고 교내에 나를 끌어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교에 있어 봐야 남 좋은 일만 시켜 줄 뿐이라,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유명교뿐 아니라 외부 활동마저 끊었습니다.”
“유명교의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아서다. 내가 이름을 날리면 그들이 나를 내버려 두겠느냐?”
“숨어서 지내느니 유명교에 적당히 맞춰 주면서 사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적당히 맞춰 주라고? 목숨이 달린 일에 적당히가 가능할 것 같으냐?”
“어차피 우리 모두 칼날 위의 인생이잖습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다. 허나 죽기 위해서 칼날 위를 걷는 게 아니다.”
“평소 위험한 일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고 말씀하신 분이 아버집니다. 벽호방도 그렇게 일궈 오셨으면서 왜 갑자기…….”
“너 이 장원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느냐?”
“반야장요?”
“그래. 반야란 지혜를 뜻한다. 나는 너무 늦게 지혜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젊은 시절의 나에게는 지혜가 없었다. 지금의 너처럼 말이다. 그래서 힘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지. 무슨 짓이든…….”
일위천의 눈에 회한이 스치고 지나갔다.
열다섯 번째 제물이 된 승려는 이전과 달랐다.
그는 살려 달라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도 않고, 목이 잘리는 순간까지 뭔가를 읊조렸다.
반야심경이었다.
그때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중은 진짜고, 자신도 이제 십두마병이 될 거라는 것을.
역시나 팔주령을 통해 미증유의 힘이 넘어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
흡사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반야심경이 귓가에 계속 울려 댔다.
팔주령의 기운이 단전에 안착한 뒤에도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평생 절간의 문턱도 넘어 본 적이 없건만 이제는 반야심경을 외울 정도다.
더불어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이 얼마나 헛된 것을 열망했는지, 그리고 그걸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됐다.
“……나는 십두마병이 된 것을 후회한다.”
일무원은 기가 막힌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십두마병이 어떤 존재인가!
평범한 무인은 수백 번 다시 태어나도 십두마병이 갖는 무상의 내력을 얻지 못한다.
천하인들이 원하는 그걸 손에 넣고 후회한다니?
일무원은 부친의 말을 배부른 자의 투정쯤으로 여겼다.
***
부양.
영상현.
해거름 무렵.
이철산과 스물다섯 명의 상방 무사들이 번화가로 들어섰다.
곧이어 후미에 있던 약대몽 행수가 앞으로 나왔다.
객점을 잡기 위해서다.
그는 쉬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커다란 객점 하나를 가리켰다.
어차피 그건 약대몽의 소관이므로 사람들은 군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객점 안으로 들어가자 일 층 식당의 음식 냄새가 훅 하고 밀려왔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적당히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약대몽이 주인과 숙박비를 흥정할 동안 점소이가 돌아다니며 주문을 받았다.
심통, 이철산, 한채연, 하소백은 언제나처럼 탁자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심 노인. 하루 종일 궁금했는데, 그건 뭐예요?”
하소백의 손가락이 맞은편에 앉은 심통의 허리춤을 가리켰다.
“이 쇠붙이? 이름은 나도 모른다네.”
“단검도 아니고 몽둥이도 아니고 신기하게 생겼네요? 어디서 났어요?”
“주웠지.”
“에? 어디서요?”
하소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저런 기이한 물건을 본 기억이 없어서다.
그러자 이철산이 끼어들었다.
“오늘 아침에 조원촌의 신당터에서 주우신 것 같더라.”
“거참, 아침이 아니라니까…….”
심통이 자신 없는 얼굴로 구시렁거렸다.
분명히 ‘밤에’ 웬 늙은이에게 받은 건데 왜 자꾸 ‘아침’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