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20
220회. 깊은 지혜로 깨달음에 이르면
파산도 이철산은 대문을 지나 마당에 이르렀다.
그때 어디선가 튀어나온 벽호방도들이 반야장의 대문을 닫아걸었다.
곧이어 안채에서 사십여 명의 무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벽호방 방주 일무원이 약대몽 행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여어! 이게 누구신가! 태평상방의 약 행수가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셨나?”
“막운한 행수를 데려가려고 왔습니다. 지금이라도 막 행수를 보내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면 저희가 손해를 보았지만,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막 행수? 아!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가 하는 박쥐 같은 장사꾼? 그런데 문제 삼지 않겠다고? 안 보내 주면 문제 삼겠다는 협박이네? 그런 거야? 감히 태평상방이 벽호방과 대부방을 상대로?”
“협박이라니요, 저는 단지…….”
약대몽이 황급히 변명하려 했지만 일무원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닥치거라! 이놈! 천검문의 이철산을 믿고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는구나! 네놈 앞에서 이철산이 죽어도 그럴 수 있는지 보겠다. 이철산이 누구냐! 네놈도 사내라면 앞으로 나서라!”
일무원의 호통에 이철산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적이 많았지만, 오봉산채에서 온갖 험한 꼴을 다 겪어 본 이철산은 크게 위축되지 않았다.
“내가 이철산이다. 벌써부터 가는 귀가 먹었느냐?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 대?”
일무원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대사범이 젊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 보였다.
‘저놈이 도를 휘두르면 도풍과 도기가 사방 일 장(3미터)을 뒤덮는다고?’
문득 한번 싸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하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할지도 모르니 참기로 했다.
그때 뒤쪽에서 강맹한 음성이 들려왔다.
“일 방주, 자네 상대가 아니다. 뒤로 물러나 있거라.”
벽호방과 대부방도 속에 있던 패도 일위천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일위천이 심유한 눈으로 이철산을 보았다.
“네가 무한에서 패산도라고 불리는 이철산이냐?”
“그렇습니다만. 선배님은 누구신지요?”
“나는 반야장의 주인인 일위천이라 한다. 예전에는 패도라고 불렸었지.”
순간 이철산은 가슴이 철렁했다.
십두마병이 된 뒤 잠적했다는 일위천이 반야장에 있을 줄이야!
그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벽호방의 전대 방주님이시라고요. 무림의 선배님께서 막 행수를 납치하는 데 관여하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허허! 납치라니 무슨 그런 경우 없는 말을. 막 행수가 유명교의 적과 내통하였으니 납치가 아니라 전쟁 포로일세. 자네에게도 잘못된 선택을 바꿀 기회를 주지. 자네와 천검문도 유명교와 척을 질 텐가?”
그의 말에 이철산은 조금 머뭇거렸다.
자신은 단지 막운한 행수를 구하려고 온 것뿐이다.
그런데 일위천은 그걸 천검문과 유명교의 싸움으로 비약하고 있었다.
일위천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고민에 빠진 젊은 고수를 구경했다.
그때 상방 무사들 속에서 음산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흐흐흐. 늙은이의 혀가 아주 매끄럽구나. 네놈이 이곳에서 싸우다가 뒈져도 유명교에서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거라는 것에, 내 전 재산을 걸겠다.”
웬 늙은이의 거침없는 욕설에 일위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사지간인 벽호방보다 더 입이 더러운 자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누구냐 넌?”
그러자 구천노도 심통이 마당 중앙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이 몸이 누구냐고? 너같이 덜떨어진 유명교 놈들을 잡아 족치고 다니는 분이시다. 유명교라니 알지도 모르겠구나. 구천노도 심통이라고 들어는 보았느냐?”
순간 일위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이름은 녹림 총순찰과 함께 유명교 십두마병들을 척살하러 다닌 것으로 유명했다.
의기양양하던 벽호방과 대부방도들의 분위기도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구천노도가 떠오르는 태양이라면 패도는 새벽의 달빛과도 같았다.
특히나 녹림 총순찰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은 유명교의 천적이 아니던가!
십두마병에 의지하려던 그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일위천은 노고수답게 이내 평상심을 회복하고 심통의 앞에 마주 섰다.
“심통! 너는 본교와 무슨 원한이 있어 십두마병들과 싸우고 다녔느냐?”
“흐흐. 딱히 원한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어쩌다 보니 휘말리게 된 거지. 지금처럼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던 일위천이 천천히 칼을 뽑았다.
“그런가? 하기야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낙양에 올라가지 않기를 잘한 것 같군. 오늘 너를 죽여 먼저 간 동료들의 원혼을 위로해 줘야겠다.”
“흐흐흐. 재주가 있으면 그래 보든지.”
심통도 유엽도를 손에 들었다.
상대가 십두마병임에도 그의 얼굴은 무덤덤했다.
갑자기 십두마병을 상대할 특별한 방법이 생겨서가 아니다.
이미 대문은 잠겼고, 사방은 적들로 가득했다.
만약 여기서 자신이 혼자 몸을 빼기라도 하면 뒷일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남자들은 죽을 것이고, 여자들은 능욕당하리라.
‘일단 판을 흔들어야겠지?’
역설적이게도 일위천을 죽여야 일행은 무사히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왜냐고?
반야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야 피아를 구별하기 어려울 테니까.
마물이 튀어나오면 벽호방과 대부방도 달아날 수밖에 없다.
그때를 이용해 이철산 일행도 반야장을 빠져나가게 할 생각이다.
초강호 일대의 안위에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는 심통다운 결정이었다.
쩡. 쩡. 쩡. 쩡. 쩡-.
두 사람이 도를 휘두르며 마당을 빙빙 돌았다.
귀따가운 쇳소리와 함께 두 사람 사이에서 연신 불꽃이 튀었다.
패도라는 별호답게 일위천의 도법은 단순하고 힘이 넘쳤다.
심통의 구천도 역시 초식은 현묘하지만 도법답게 벨 때는 가차 없었다.
절정에 이른 두 도객이 생사대결을 벌이니 단순 호쾌하면서도 섬뜩했다.
이철산은 도를 사용하는 사람인지라 금방 두 고수의 싸움에 빠져들었다.
심통이 고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그야말로 경천동지가 따로 없다.
먹고살기 위해 오봉산채에 들어가서 처음 심통을 만났다.
그때의 그는 성질 고약한 마두에 불과했다.
눈이 조금 뜨인 상태에서 다시 본 심통은 그야말로 천외천의 경지.
이철산은 부러움 속에서도 자신의 목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심통은 자신의 미래였다.
담장까지 물러난 벽호방과 대부방도들도 두 사람의 싸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은 상방 무사들과 싸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방팔방으로 도풍과 도기가 휘몰아쳐 제 한 몸 돌보기도 힘든 마당에 무슨 싸움이란 말인가!
물론 저 싸움에서 누가 이길지 몰라서 지레 몸을 사리는 것도 있었다.
일위천의 도가 빛살처럼 심통을 갈랐다.
쉬익-.
심통은 비룡승천의 수법으로 도를 쳐 내고 뒤로 미끄러지듯 물러났다.
일위천은 애써 심통을 따라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일 장(약 3미터)여의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 보았다.
처음 싸움을 시작할 때의 모습이다.
겉으로는 둘 다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였지만 일위천은 사실 등골이 오싹했다.
내공이 이류에 불과할 때도 패도 소리를 들었다.
제대로 된 내공만 받쳐 준다면 천하를 뒤흔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십두마병이 되어 절정의 경지에 들었음에도 상대가 태산처럼 느껴졌다.
심통의 얼굴도 좋지 않았다.
일위천과는 반대로 이제 슬슬 상대의 밑천이 보여서다.
곧 상대를 참살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자, 오히려 뒷일이 걱정됐다.
처음 마물과 싸울 때 멋모르고 버티다가 죽기 직전까지 몰린 적이 있다.
그때 연적하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그 뒤로 마물에 대한 공포가 생겨 나타나기만 해도 달아났다.
그러나 이 자리에는 자신의 앞을 막아 줄 사람이 없다.
마물이 자신에게 얼마나 집착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것이다.
‘씨펄! 갈 때까지 가 보자!’
드디어 결단한 심통은 즉시 이철산에게 전음을 날렸다.
-일위천이 죽으면 사람들을 데리고 즉시 반야장에서 빠져나가게. 절대 망설이지 말게.
이철산은 심통의 전음을 받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전음술에 대한 공부가 얕아 심통에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이철산의 반응을 확인한 심통이 다시 한걸음 내디뎠다.
상대를 죽이기로 결심하자 그의 기세가 변했다.
구천기는 마치 심통의 마음에 호응이라도 하듯 살기등등해졌다.
이전까지 단지 ‘태산’ 같았다면, 이제는 ‘눈 덮인 태산’처럼 비정함이 더해졌다.
‘헛!’
심통의 앞에 선 일위천은 누구보다 빨리 상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재빨리 내력을 끌어 올려 투기를 재충전하려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투기는 어디로 가고 오히려 호랑이를 만난 가축처럼 심령이 위축되었다.
그제야 일위천은 심통의 내공이 일반의 것과 궤를 달리하는 것임을 눈치챘다.
그렇지 않고서야 싸우기도 전에 겁이 날 리가 없다.
구천노도 심통이 유명교 천적이라더니 마냥 헛소문은 아닌 모양이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그날의 승려가 떠올랐다.
곧이어 그가 읊조리던 반야심경이 귓가에 울렸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큰 지혜를 깨닫는 방법) 관자재보살 행심 반야바라밀다시(觀自在菩薩 行 深 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이 깊은 지혜로 깨달음에 이를 때)…….’
일위천의 눈빛이 점점 몽롱해졌다.
쉬이잉- 쉬잉-.
심통의 유엽도가 일으킨 도풍이 마치 태풍처럼 일위천을 향해 몰아쳐 갔다.
쾅. 쾅. 쾅. 쾅. 쾅-
기세가 변하자 두 사람의 도가 만들어 내는 충돌음도 우렛소리로 바뀌었다.
심통의 마음에 따라 구천기가 변했듯 일위천의 도법도 미묘하게 바뀌어 갔다.
지금까지 줄곧 단순 호쾌하던 일위천의 도가 무쌍의 변화를 보였다.
무초식의 경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뭔가 복잡하고 기이한 느낌이다.
심통과 일위천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기기묘묘한 초식을 쏟아 냈다.
한순간 일위천의 도첨이 하늘로 향했다가 지면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콰자자자작-.
기이한 폭발음과 함께 각기 다른 방향으로 수백 개의 도기가 뻗어 나갔다.
도기는 파도처럼 담장에 피해 있던 사람들을 덮쳤다.
대경실색한 이철산이 비룡승천으로 상방 무사들을 향해 밀려오는 도기를 막았다.
미처 걷어 내지 못한 도기가 상방 무사 둘의 어깨에 구멍을 뚫었다.
벽호방과 대부방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 중에는 이철산과 같은 고수가 없어 밀려오는 도기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아악!”
“윽!”
“악! 안 돼!”
자다가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많은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로 절명한 사람들 숫자가 무려 아홉이나 됐다.
그때 한 줄기 시퍼런 도강(刀罡)이 마치 연어처럼 도기를 거슬러 올라갔다.
심통의 도강은 ‘구름 속의 용과 바람을 타고 날리는 호랑이[雲龍風虎, 구천구검 삼 식 운룡풍호]’처럼 거침없이 도기를 갈랐다.
그러다 마침내 호랑이가 일위천의 목을 물어뜯었다.
콰직.
단번에 일위천의 목이 절반이나 잘려 나갔다.
폭풍처럼 사방에 휘몰아치던 눈먼 도기(刀氣)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순간 심통이 이철산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뜻을 알아차린 이철산이 상방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나를 따르시오!”
그러자 상방 무사들은 공격하자는 줄 알고 앞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성질 급한 몇몇은 ‘와아!’ 소리와 함께 벽호방과 대부방도를 향해 달려갔다.
“아니야! 멈춰!”
이철산의 절규에 달려가던 사람들이 멈칫했다.
그때 널브러져 있던 일위천의 시체에서 갑자기 오색의 서기가 뻗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