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77
277회. 유명교 교주가 나예요
현무대 대주 무상도제 장무덕이 아들을 마주 보았다.
“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풍뢰도 장강호는 대답 대신 술잔을 집어 들었다.
이 순간에도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머리는 ‘이쯤에서 돌아가자’고 하는데, 가슴은 ‘가라’고 한다.
숱한 강호행에도 오늘처럼 변덕이 심한 적은 없다.
풍뢰도의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있다면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다.
그가 침묵하자 장무덕이 확인하듯 재차 물었다.
“역시, 그 정도로 느낌이 좋지 않은 거냐?”
“솔직히 그렇습니다. 총사의 장난에 휘둘려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전혀 아니다?”
“총사도 교구현의 일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는 늘 남궁세가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니까.”
“아버지도 알고 계셨습니까?”
“민심을 천심이라고 하지 않더냐. 사람들이 남궁연을 십전무후라고 부르는 것은 그 아이의 능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총사에 대한 반감도 무시 못 한다. 총사가 너무 남궁세가를 몰아붙이니까, 사람들이 남궁연을 띄워 줌으로 총사를 견제하는 게지.”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오묘하군요.”
“너도 내 나이쯤 되면 천리(天理)라는 것을 조금은 볼 줄 알게 될 게다. 하늘은 인간사에 무관심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엉뚱한 방식으로 균형을 맞춰 주거든.”
“그런 아버지의 눈으로 볼 때 풍지산은 어떻습니까? 그곳은 정말 지옥의 문이며, 종말의 시작입니까? 하늘의 균형이 풍지산에서도 맞추어지겠습니까?”
“쯧쯧! 어리석은 녀석. 하늘의 균형이 어찌 가만히 있는 풍지산에서 맞추어지겠느냐? 먼저 변화가 있고 나서야 조화가 있는 법이다.”
“허면 우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변화 중에 있음입니까?”
“만약에 풍지산이 세인들의 말대로 ‘죽음의 산’이라면 그렇겠지. 나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이기만 바랄 뿐이다.”
“우리 현무대가 감당하지 못한다면 천지맹도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네 말이 맞다. 그러니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풍지산에 가야 하는 것이다.”
“…….”
장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말을 들으니 헝클어졌던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 뒤로 부자는 말없이 몇 잔의 술을 더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
다음 날 아침.
현무대 고수들은 풍지산으로 출발했다.
정오 무렵이 될 때까지 걷자 풍지산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워 졌다.
현무대 고수들이 산자락 아래의 마을을 지날 때다.
소문을 들었는지 수십 명의 촌민들이 우르르 몰려와 소리를 질렀다.
“협객님들! 제 아들을 좀 찾아 주십쇼. 산에 나무를 하러 간 뒤로 감감무소식입니다.”
“저의 아버지도 찾아 주세요! 산에 가신 뒤로 벌써 보름째 소식이 없어요!”
“저희 어머니도요! 나물을 캐러 가신 뒤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사람들은 천지맹 고수들에게 다양한 사연을 쏟아 냈다.
나중에는 촌민들로 길이 막힐 정도였다.
보다 못한 장강호가 내력을 끌어올려 소리쳤다.
“들으시오! 우리는 풍지산을 조사하러 온 천지맹의 사람들이오! 지금 당신들은 우리의 앞을 막고 있소! 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사람을 찾으라는 거요!”
그제야 촌민들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마을 중앙을 지나던 장무덕 앞으로 칠십 대로 보이는 노인이 다가왔다.
“협객님들, 저는 이 마을의 촌장인 왕이수라 합니다. 점심때가 되었는데 식사를 하고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협객님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대접을 하고 싶습니다.”
장무덕은 현무대를 돌아보았다.
정오를 지났으니 슬슬 허기가 질 시간은 됐다.
풍지산에서 식사하기 어려우니 이곳에서 먹고 가는 것도 괜찮았다.
장무덕이 옆에 있던 부대주이자 아들인 장강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뜻을 짐작한 장강호가 즉시 촌장에게 다가갔다.
“촌장이라고 하셨소? 어차피 점심을 먹어야 하니 하자는 대로 하리다. 앞장서시오.”
“예, 예. 잘 생각하셨습니다.”
왕이수가 현무대 고수들을 자신의 집으로 인도했다.
촌장과 함께 가는 현무대 뒤로 마을 사람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따라갔다.
***
풍지산.
선녀암.
신당.
가만히 앉아 명상에 잠겨 있던 신모가 눈을 떴다.
곧이어 마당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팔황 중의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교주님. 산 아래 마을에 천지맹 현무대가 와 있습니다. 아무래도 점심을 먹은 뒤에 이쪽으로 올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현무대? 무상도제가 대주로 있다고 했던가?”
“예.”
“모두 몇이나 되더냐?”
“쉰두 명입니다.”
“잡아 두었던 십두마병들을 모두 데리고 오거라.”
“예.”
잠시 후 일곱 명의 십두마병이 마당에 꿇어 앉혀졌다.
모두 백두마군들이 팔황을 감시하기 위해 붙여 놓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신모 앞에 나오자마자 머리를 땅바닥에 붙이고 소리쳤다.
“교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는 그저 교주님이 잘 계신지 알아보라고 해서 온 것뿐입니다!”
한바탕 하소연이 끝나자 신모가 손을 들어 올렸다.
일곱 명의 십두마병들은 긴장한 눈으로 신모의 입에 시선을 집중했다.
“잘 왔다. 그렇지 않아도 팔황을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하던 참이니라.”
신모가 죄를 묻지 않자 십두마병들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교주님!”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천지맹 사람들이 곧 풍지산으로 올 것이다. 팔황이 그들을 모두 죽일 터인데, 어쩌다 달아나는 자들도 있을 게다. 하나라도 새어 나가는 자가 없도록 하는 게 너희의 임무다. 할 수 있겠느냐?”
“예!”
“할 수 있습니다!”
“교주님! 맡겨만 주십시오!”
십두마병들의 대답을 듣고 있던 신모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반드시 그래야 할 게야. 만에 하나라도 살아 나가는 자가 있다면, 너희의 목숨으로 대신해야 할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그녀의 살기 어린 미소에 십두마병들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존명!”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모두 죽여 버리겠습니다!”
일곱 명의 십두마병은 맹세와 함께 땅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었다.
땅바닥이 피로 물들어 갔지만 신모는 제지하지 않고 웃으며 지켜보기만 했다.
***
풍지산 초입에서 장무덕은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현무대 고수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었다.
높은 무공의 경지와, 삶의 경륜에서 오는 육감이 자꾸만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결국 그는 예정에 없던 말을 하고야 말았다.
“이번 임무는 느낌이 좋지 않소. 하여 자원하는 사람만 데리고 갈 생각이오.”
자신의 생사 정도는 자신의 손으로 결정하게 하고 싶었다.
“이번 풍지산 조사에서 빠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우측으로 나오시오.”
“…….”
현무대 고수들은 갑작스러운 대주의 지시에 술렁거렸다.
목적지에 다 와서 빠질 사람은 빠지라니?
그러나 선뜻 빠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첫째는 무인으로서의 체면 때문이고, 둘째는 장무덕만큼 위기를 느낀 사람이 없어서다.
천하십대고수인 무상도제와 함께하고 있으니 두려울 게 없는 것이다.
아무도 오른편으로 빠지는 사람이 없자 장무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모든 걸 걸어도 아쉽지 않다.
“나는 앞으로 나아갈 때는 선두에 설 것이고, 뒤로 물러날 때는 후미를 지킬 것이오. 여러분은 내가 물러나라고 하면, 지체 없이, 뒤도 돌아보지 말고 하산하시오. 아시겠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무대 고수들은 장무덕의 대협다운 선언에 결연한 얼굴로 화답했다.
약속대로 장무덕이 가장 선두로 나아갔다.
그 뒤를 부대주 장강호, 소림사 장문인 무법선사, 경천일검 모용황, 천명검 제갈중영이 따랐다.
일반 제자들과 군소 방파의 사람들이 뱀 꼬리처럼 그 뒤에 길게 이어졌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풍지산은 고요했다.
한 시진(2시간)쯤 산을 올랐을까?
그들의 눈앞에 선녀암이라는 표시 목이 나타날 때까지 그 흔한 산짐승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입산할 때의 위풍당당함은 사라지고 사람들 얼굴에 초조함이 어렸다.
풍지산은 마치 공동묘지처럼 조용했고, 살아 있는 생명이라고는 나무와 풀이 전부였다.
선녀암의 입구에 도착하자 주위가 넓어졌다.
좁은 산길을 줄지어 오르던 현무대 고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장무덕은 활짝 열린 선녀암의 정문 앞에서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삐그덕.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장무덕의 눈이 신당으로 향했다.
신당 중앙에 중년으로 보이는 여도사가 홀로 앉아 있었다.
여도사는 현무대 고수들이 마당에 모두 들어설 때까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마침내 현무대 고수 쉰두 명이 모두 들어오자 여도사가 고개를 돌렸다.
장무덕은 여도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마치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을 보는 느낌이다.
분명 중년 여도사의 눈을 보고 있는데, 그녀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눈을 끔뻑여 보아도 여도사의 전체를 볼 수가 없다.
장무덕은 자신이 발가벗겨진 채 별빛 아래 덩그러니 서 있는 느낌을 받았다.
단지 눈길만으로 압도당한 장무덕은 정중하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으흥. 내 이름이 알고 싶은가요? 나에게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답니다. 당신은 그중에 하나를 알 자격이 있어 보이는군요. 나를 팔황신모라고 부르세요.”
“풍지산에서 사람들이 실종되었는데, 아는 바가 있소?”
“그 전에 이번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어야 할 차례인 것 같은데요?”
“아, 노부는 장 모라고 하는 사람이오. 강호의 친구들은 나를 무상도제라 부른다오. 혹시 당신이 풍지산에 사람들을 잡아 두었소?”
“그럴 리가요. 이 선녀암에는 그만한 장소가 없어 보이지 않나요?”
“그런가? 하면 답해 보시오. 우리를 제외하면 풍지산에는 당신만 있소. 왜 그런 거요?”
팔황신모가 고개를 저었다.
“틀렸어요. 이 풍지산에는 당신들과 나 말고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요.”
“선녀암에 이르는 동안 아무도 보질 못했소. 혹 산 정상에도 이런 장소가 있소?”
“그럴 리가요. 산 정상에는 오직 바람과 구름만 머물 뿐이에요. 당신은 화신지경에 이르고도 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나요?”
말과 함께 팔황신모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일진광풍이 불어와 선녀암을 강하게 쓸고 지나갔다.
흠칫 몸을 떨던 장무덕이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녀암을 두른 담장 위에 장승처럼 여덟 명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비현실적이다.
장무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덟 명에게서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발산해야 할 호흡이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런 류의 무공이나 저들의 무위도 금시초문이었다.
오십 대 남녀 여덟 명을 보던 장무덕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팔황신모. 귀하의 수법은 정말 고절하구려. 나는 지금까지 강호에 이와 같은 수법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소. 당신은 대체 누구요?”
팔황신모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당신들이 만나고 싶어 하던 유명교 교주가 나예요.”
“유명교?”
“교주다!”
그녀의 말에 놀란 현무대 고수들이 반사적으로 도검을 뽑아 들었다.
차차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