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78
278회. 복수와 갈망 사이
유명교 교주는 신비에 싸인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유명교 교주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삼십 년 전 강남에서 유명교가 협객들과 싸울 때도 교주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교주를 상징적인 직위 정도로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유명교의 조직 체계가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면서 변화가 생겼다.
-십두마병과 백두마군의 위에 천두마왕이 있다!
-천두마왕이 교주다!
십두마병과 백두마군을 경험한 사람들은 뒤늦게 천두마왕인 교주의 무서움을 알았다.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지만, 유명교 교주에 대한 공포는 실로 컸다.
그 교주가 지금 그들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천하의 무상도제 장무덕마저도 한순간 숨이 턱 하고 막힐 정도였다.
“당신이 정말 유명교 교주요?”
“그래요. 그건 당신이 무상도제인 것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이에요.”
“허면 산에서 실종된 사람들은 물론, 만수방의 참사도 당신이 저지른 짓이겠구려?”
“아니라고 하긴 어렵겠군요. 나의 충직한 시종들인 팔황이 한 일이니.”
“산에 오른 자들은 모두 어디 있소?”
팔황신모가 마당 한쪽에 있는 정원을 가리켰다.
“그들은 정원수들의 자양분이 되어 주었답니다. 그들이 살아생전 했던 어떤 일들보다 더 값어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으음!”
장무덕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을 모두 죽여 마당에 묻었다는 소리다.
그런 말을 저렇게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하다니?
지금까지 수많은 마두들을 상대해 봤지만 이 정도로 뻔뻔한 자는 없었다.
‘저 마녀와는 대화가 되지 않겠구나.’
팔황신모의 수하들이 주위를 에워싼 걸 보면 상대도 작정하고 기다린 것 같다.
그렇다면 남은 건 결국 칼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칼부림만큼 명확한 결말도 없다.
‘오늘, 천하의 안녕을 위해 저 마녀를 죽여야겠다.’
한동안 팔황신모를 노려보던 장무덕이 천천히 칼을 뽑았다.
“과연 유명교 교주답게 요사스러운 혀로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 정원의 거름으로 쓰다니. 내 오늘 하늘을 대신하여 너를 벌하겠다.”
“호호호. 하늘을 대신하다니. 당신 이야말로 광오하기가 그지없군요. 하늘이 언제 당신에게 그럴 권한을 주었나요? 착각하지 말아요. 당신은 그저 이 팔황신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죽이고 싶을 뿐이에요.”
말을 마친 팔황신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나올 때까지 장무덕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풍뢰도 장강호가 부친을 힐끔 보았다.
부친이 교주를 상대하는 동안 현무대와 함께 저 여덟 명을 처리하면 될 것 같아서다.
이심전심이었는지 장무덕이 말했다.
“부대주는 현무대를 이끌고 저 여덟 명을 제압하게. 저항하면 죽여도 좋네.”
“예.”
현무대 고수들이 장강호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장강호는 사람들을 이끌고 서서히 선녀암의 입구로 전진했다.
부친과 교주의 싸움에서 거리를 두기 위함도 있지만, 일단 포위부터 풀기 위해서다.
팔황신모는 현무대 고수들의 움직임이 시작됐음에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것만 보아도 팔황에 대한 그녀의 믿음을 알 수가 있다.
팔황은 팔황신모가 지난 사십여 년간 공들여 가르친 제자들이다.
그들은 십두마병이나 백두마군처럼 암흑가를 전전하다가 운 좋게 뽑힌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 모두 어린 시절에 팔황신모에게 거두어져 무림의 고수로 키워졌다.
어떤 의미에서 유명교를 받치고 있는 기둥은 백두마군이 아니라 팔황인지도 모른다.
팔황신모가 다가오는 장무덕에게 물었다.
“당신은 현무대가 팔황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렇소.”
“안됐군요. 오늘 그 믿음이 깨지는 걸 보게 될 거예요. 팔황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랍니다. 백두마군과 십두마병의 중간쯤 되는 위치에 있지요.”
그녀의 말에 장무덕은 흠칫 놀랐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현무대로서는 저 여덟 명을 감당할 수 없다.
“헛소리. 그렇다면 이미 천하가 그대의 손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장무덕은 벼락처럼 풍산도를 펼쳤다.
천하십대고수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선공에 들어간 것이다.
팔황신모는 손에 들고 있던 불진으로 장무덕의 풍산도를 쳐 냈다.
채채챙-.
풍산도 삼식이 막히자 장무덕은 풍뢰도법으로 바꾸었다.
콰콰콰콰-.
도풍이 회오리치며 팔황신모를 압박해 갔다.
그러나 팔황신모는 눈 하나 꿈쩍이지 않고 처음처럼 불진을 휘둘렀다.
장무덕은 건위천과 곤위지에 이어 뇌풍항의 삼 식을 쏟아 냈다.
꽈광!
하늘에서 홀연 한 가닥 도기가 팔황신모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눈앞의 도풍을 막아내던 팔황신모로서는 그야말로 허를 찔린 셈이다.
장무덕은 기대 어린 눈으로 팔황신모를 응시했다.
도기가 머리에 떨어졌으니 사람이라면 즉사를 해도 시원치 않을 것이었다.
순간 팔황신모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
“설마 내가 이런 얄팍한 수법에 당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요?”
장무덕은 불신의 눈으로 팔황신모를 보았다.
그녀는 처음 마당에 내려섰을 때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자신을 천하십대고수의 자리에 올려놓은 건 풍뢰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풍뢰도에 직격당하고도 멀쩡하다니?
팔황신모가 ‘쯧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저런, 기대했던 얼굴이네요. 하지만 당신의 내력은 나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했어요.”
호신강기라는 말에 장무덕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꿈꾸는 무상의 경지였다.
화신지경을 넘어선 절대자만 다룰 수 있는 게 호신강기다.
‘설마! 천하십대고수들이 꿈속에서조차 바라는 신화의 경지에 들었단 말인가?’
강적을 앞에 두고 장무덕은 무인의 호기심이 치밀어 올랐다.
“그것이 정말 호신강기였소?”
“후후훗! 그래요. 당신들이 말하는 신화지경에서나 가능한 것들 중에 하나죠.”
“그걸 어떻게…….”
장무덕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평생 무도에 몸을 바쳤지만 실마리도 얻지 못한 것이 신화지경이다.
“알고 싶은가요?”
팔황신모가 끈적한 눈으로 장무덕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 생사대결을 펼치던 사람들의 대화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알려 달라고 하면 알려 줄 것이오?”
“어렵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것은 고작 그런 게 아니니까. 당신은 내게 말했죠? 팔황의 무위가 그처럼 뛰어나다면 천하가 이미 내 손에 들어왔을 거라고. 보세요.”
팔황신모가 뒤쪽을 가리켜 보였다.
그녀의 손을 따라 돌아보던 장무덕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쉰한 명이나 되는 현무대 고수 중에 서 있는 사람은 고작 셋에 불과했다.
풍뢰도 장강호, 무법선사, 경천일검 모용황.
‘설마! 그래도 몇은 빠져나갔겠지.’
고작 반 각(약 7분)도 되기 전에 전멸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장무덕은 팔황과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아들에게 버럭 소리쳤다.
“떠나라! 떠나란 말이다!”
장무덕이 네 명을 돕기 위해 막 달려가려는 순간이다.
팔황신모가 유령처럼 나타나 그의 앞을 막아섰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나는 천하를 손에 넣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랬다면 십 년쯤 전에 세상으로 나갔을 거예요.”
“허면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장무덕은 천지일원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그의 도신에 황톳빛 광망이 맺혔다.
다급한 마음에 최후까지 아껴 두려 했던 도강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애타는 장무덕의 마음과 달리 팔황신모는 느긋하기만 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진리를 깨달아 득도하는 거예요. 나는 아침 안개처럼 허망한 이승의 삶에 연연할 생각이 없답니다.”
“미친! 득도를 하겠다는 사람이 이런 살겁을 저지르다니! 천벌이 무섭지 않으냐!”
장무덕이 도를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도신에 맺혀 있던 도강이 불꽃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꽈르릉-.
이른바 직도황룡(直提黃龍)이라 불리는 화신지경에서나 가능한 기법이다.
한순간 흩어졌던 황토색 광망이 팔황신모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갈(喝)!”
웅혼한 외침과 함께 팔황신모가 불진을 곧게 뻗었다.
이윽고 불진 끝에서 일어난 강기막과 황토색 광망이 충돌했다.
콰콰쾅-.
귀가 먹먹한 폭발음과 함께 장무덕이 뒷걸음질 쳤다.
퍼퍼퍽.
“쿨럭!”
세 걸음이나 물러선 장무덕은 격한 기침과 함께 핏덩이를 토해 냈다.
옷깃으로 입가를 닦던 장무덕의 눈에 깊게 패인 발자국 세 개가 들어왔다.
가슴이 먹먹했다.
무상도제라 떠받들어지던 자신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그때 팔황신모의 뒤쪽에서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급히 고개를 들고 보니 모용황의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고 있었다.
장무덕은 이를 빠드득 갈며 다시 앞으로 튀어 나갔다.
어떻게든 아들만큼은 살려 보낼 작정이었다.
“비켜라! 마녀야!”
황토색 광망에 휩싸인 도가 팔황신모를 향해 다시 한번 날아갔다.
마치 횡소천군같이 우직한 수평 베기다.
그러나 곧게 뻗어 나가는 도강은 세상이라도 절단 낼 기세였다.
팔황신모는 도강이 내뿜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녀는 허공으로 날아오른 뒤 불진을 좌우로 연달아 휘둘렀다.
쌍룡탐주(雙龍貪珠)라는 절기다.
좌측과 우측에서 나타난 청룡과 적룡이 장무덕을 향해 날아갔다.
장무덕은 급히 도를 끌어당긴 뒤 다시 한번 직도황룡을 펼쳤다.
꽈르릉-.
폭발음과 함께 황토색 광망이 터졌다.
정면으로 퍼져 나갔던 도강이 다시 모여들며 청룡과 적룡을 덮쳤다.
콰콰콰쾅!
경천동지할 폭발음과 함께 사방으로 조각난 강기의 파편이 튀었다.
‘우욱!’
장무덕은 가슴에서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지로 누르며 달려 나갔다.
팔황신모가 또다시 방해하기 전에 마지막 생존자들을 돕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면으로 내달리던 그는 이내 방향을 틀어야 했다.
안마당에 더 이상 생존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의 최후를 확인한 그는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담장을 뛰어넘었다.
쉬이익- 쉬익-.
파공음과 함께 그의 등짝을 향해 여러 개의 비도가 날아왔다.
퍽.
그중 하나가 어깨에 맞았다가 툭 떨어졌다.
장무덕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멀어져 가는 장무덕을 보며 팔황신모가 깔깔 소리 내 웃었다.
“어리석구나! 무상도제야! 옳고 그름은 모두 인간이 정한 것이다. 태양과 비와 바람처럼 하늘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신화지경에 들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를 찾아오거라. 특별히 너에게만은 깨달음을 나눠 줄 터이니.”
“미친! 누가 네가 년 따위의 말을 듣는다고.”
-언제라도 나를 찾아오거라. 특별히 너에게만은 깨달음을 나눠 줄 터이니.
장무덕은 집요하게 달라붙는 팔황신모의 음성에 귀를 후벼 팠다.
그렇게 해서라도 저 더러운 제안을 떨쳐 내고 싶었다.
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산 아래에 숨어 있던 십두마병들은 감히 장무덕의 앞길을 막지 않았다.
그는 십두마병도 피할 정도로 흉신악살의 형상이었다.
하산한 뒤에도 장무덕은 핏발 선 눈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이미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손가락은 연신 귀를 후벼 파고 있었다.
귀에서 흘러내린 피가 양쪽 어깨를 붉게 물들였다.
팔황신모는 아들의 원수지만, 그녀에게 복수를 하려면 신화지경에 들어야 한다.
무공광 무상도제 장무덕은 ‘복수’와 ‘신화지경의 갈망’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무대가 천지맹을 떠난 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현무대 대주 장무덕이 상처 입은 짐승의 몰골을 하고 홀로 귀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