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96
296회. 누님 저 믿죠?
팔황신모의 저주에 가까운 독설에도 백두마군들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사실 사파의 인물들에게 그 정도 욕설은 정중한 편이었다.
그래도 직접 ‘양고’를 쓴 적월 공취산이 불쾌했던지 냉소적으로 받아쳤다.
“흥! 교주님은 일이 잘못되면 부모를 원망할 시간도 없을 겁니다. 진언이나 불러 주시지요.”
팔황신모는 버티지 않고 순순히 진언을 읊었다.
천두마왕의 진언은 백두마왕과 대동소이해서 네 사람은 어렵지 않게 외웠다.
공취산은 다른 사람들이 외운 것을 확인한 뒤에 차갑게 말했다.
“만약 천두마왕의 진언이 거짓이면 교주님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겁니다.”
“후후! 어리석은 것들. 내가 천두마왕이 되기까지 십 년이 넘게 걸렸다. 너희는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그 전에 ‘양고’가 늙어 죽지 않기를 바라거라. 양고가 죽으면 너희도 그 뒤를 따라가게 될 테니까.”
공취산은 짜증이 났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못해도 천 명의 수도사를 제물로 써야 하는데 진언을 아는 자가 넷이나 된다. 결국 사천 명 이상의 수도사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한 지역에서 천 명만 사라져도 황실이 눈에 불을 켜고 조사를 할 것이다.
주변 눈치를 보며 하다 보면 십 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정말 교주 머릿속에 든 ‘양고’가 자연사하지 않기만 바라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당장 교주를 죽여 버릴 수도 없다.
‘음양고’의 영성이 소통하는 거리는 대략 삼십 장(약 90미터) 안팎이다. 그 거리에서 교주를 죽이면 강림한 천두마왕에 의해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었다.
머리를 굴리고 있는 공취산에게 방천각이 말했다.
“그만 가십시다. 더 남아 있어 봐야 좋을 일이 없을 듯하니.”
방천각이 슬쩍 교주의 눈치를 살폈다.
솔직히 그는 교주가 양고에 제압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무서웠다.
그건 다른 백두마군들도 마찬가지였다.
“원하는 걸 얻었으니 가십시다.”
“그럽시다. 나는 이 신당이 영 재수가 없소. 가서 이후의 일들이나 논의합시다.”
백두마군들의 성화에 공취산은 어쩔 수 없이 그냥 신당을 떠나기로 했다.
이윽고 네 명의 백두마군은 유령처럼 신당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여덟 명의 남녀가 신당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교주의 오른팔인 팔황이었다.
“교주님! 괜찮으십니까?”
“교주님!”
그들은 분기탱천한 얼굴이었지만 당주들을 추적하지는 못했다.
자신들의 무위로는 당주들을 당해 낼 수 없어서다.
교주가 직접 나서거나 다른 당주을 움직이기 전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때다.
서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팔황신모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풉! 푸후후훗!”
꾹 눌러 참았던 듯 웃음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보다 못한 일황 태백 선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교주의 안색을 살폈다.
“교주님?”
한참을 웃던 팔황신모가 눈가에 맺힌 물기를 닦아 내며 말했다.
“괜찮으니 걱정할 것 없다.”
“반도들이 ‘음양고’라는 염매를 썼다 들었습니다.”
“후후후, 그래 봐야 염매다. 염매 따위가 염마왕의 권능을 당해 낼 것 같으냐?”
팔황신모는 한쪽 귀에 손바닥을 댄 후 마치 물이라도 빼듯 가볍게 툭툭 쳤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눈앞에 대고 무언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음양고’라, 재밌는 벌레로구나.”
재밌다는 말과 달리 그녀의 손바닥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잠시 후 그녀는 손을 탈탈 털어낸 뒤에 팔황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늘 너희가 본 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알겠느냐?”
“반도들을 저대로 내버려 두실 생각이십니까?”
일황 태백 선인이 의아한 눈으로 팔황신모를 보았다.
이황 육통존자도 한마디 거들었다.
“교주님께서 무탈하심을 알리지 않는다면 유명교에 내분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팔황신모가 냉랭하게 대꾸했다.
“거짓 믿음을 가진 자들이 들고일어나 준다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
이황 육통존자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아무래도 교주는 유명교를 한번 걸러 낼 생각인 것 같았다.
사실 유명교는 지난 삼십여 년간 방만하게 운영되어 왔다.
일단 세를 확장하기에 급급하다 보니 충성심을 살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이참에 녹아 내기를 하시려는 구나.’
그것도 썩 나쁜 생각은 아니다.
아니, 위태로울 때에 본성이 드러나니 오히려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팔황신모가 말했다.
“육통존자는 들어라.”
“명을 받잡겠습니다.”
“너는 선녀암으로 아무도 오르지 못하게 산 아래에 ‘팔문팔상진’을 설치하도록 해라.”
육통존자는 팔황신모가 믿고 맡길 정도로 기문둔갑과 기관지학의 일인자였다.
“존명!”
“팔황은 들어라.”
“예!”
“너희는 육통존자와 함께 사십구 일간 ‘팔문팔상진’을 지키도록 해라.”
“존명!”
“명대로 하겠습니다.”
팔황들이 큰 소리로 답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문득 일황인 태백 선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교주님, 혹 다른 당주들이 교주님을 찾아오면 어찌할까요?”
조만간 역도들로 인해 분열이 일어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변절하지 않은 당주들이 풍지산으로 올 게 분명했다.
“돌려보내거라. 혹 그들이 장래 일을 염려하면, 상처가 곪아 터진 뒤에야 도려낼 것이라 해라.”
“예.”
일황 태백 선인은 교주의 인정사정 없는 계획에 혀를 내둘렀다.
***
분서현.
정오 무렵.
마을 초입의 만개한 꽃나무 사이로 여덟 명의 무인이 들어섰다.
풍지산으로 가고 있는 염탐조다.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태을 선인이 무상도제 장무덕에게 물었다.
“분서현이라는 표지목을 보았는데 교구현까지는 얼마나 남은 겁니까?”
“하루만 더 가면 교구현이오.”
“내일 교구현에 도착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허어! 모든 길에는 끝이 있다고 하더니만, 벌써 내일이라니…….”
태을 선인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풍지산을 지척에 두니 새삼 임무의 무게가 어깨를 누르는 모양이다.
그때 구천노도 심통이 멀리 보이는 화려한 반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기로 하고, 오늘은 만찬을 즐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장무덕에게로 향했다.
정식으로 선출된 건 아니지만 무위나 배분상 그가 조장이나 다름없어서다.
장무덕은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럽시다.”
그는 딱 필요한 말만 하고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풍지산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점점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팔황신모에 대한 극도의 적의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그녀가 한 말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어리석구나! 무상도제야! 옳고 그름은 모두 인간이 정한 것이다. 태양과 비와 바람처럼 하늘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신화지경에 들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를 찾아오거라. 특별히 너에게만은 깨달음을 나눠줄 터이니.
어찌 된 일인지 이젠 토씨 하나까지도 기억이 났다.
묘하게도 더 많은 말들이 기억날수록 배움의 열망도 그만큼 커져 갔다.
‘미쳤구나.’
장무덕은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 유혹을 떨쳐 냈다.
상대는 무림의 공적이자 무극문의 원수다.
그런 자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니?
아무리 자신이 무공에 환장을 했어도 그래서는 안 된다.
‘아무렴.’
장무덕이 미몽에서 겨우 헤어 나왔을 때는 이미 반점에 자리를 잡은 뒤였다.
술법에 밝은 태령 선인이 묘한 시선으로 장무덕을 보았다.
“장 대협,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십니까?”
“별일 아니오. 이곳에 오니 문득 유명교주의 말이 생각나서.”
“그러시다면 다행이고요. 혹시라도 어디가 불편하시거나 하면, 주저하지 말고 말씀해 주십시오. 세상에는 기이한 술법이 많이 있어서요.”
“기이한 술법이라면?”
“혹 언령(言霊)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없소.”
“사람의 말에는 하늘로부터 받은 힘이 있습니다. 불가(佛家)의 경전을 보면 대부분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이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건 달리 말해 부처님 말씀이 화자(話者)의 영혼에 박힌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에는 그처럼 권능이 있습니다. 언령은 사람의 말이 가지는, 하늘로부터 받은 힘을 수련하는 것입니다. 언령 술사들은 실로 무시무시하지요.”
“어떻기에 무시무시하다는 거요?”
“극단적으로 말해 술사가 죽으라고 하면 죽습니다. 누굴 죽이라고 하면 죽이고요.”
“허!”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조차도 언령으로 끊을 수가 있지요. 언령에 당해 제 손으로 가족을 죽인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하오?”
“예.”
“내공 심법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니, 그것으로 막으면 되지 않소?”
“불가합니다. 주술을 무공으로 상대할 수 있다면 제마대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구려.”
장무덕은 태령 선인의 말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는 신화지경에의 욕심을 자신의 은밀한 욕망이라 생각했다.
교주와의 짧은 대화에는 언령으로 의심할 만한 특별함이 없었다.
그래서 무덤덤한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타인에게 털어놓는 사람은 없으니까.
태령 선인은 장무덕이 대화를 중단하자 더는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건 천하십대고수인 장무덕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언령으로 타인을 조종한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술법으로 그 정도 경지에 오르는 것은 신화지경만큼이나 어렵다.
한 사람이 무공과 술법으로 신화지경에 오를 수는 없다.
결국 태령 선인은 언령을 털어 버리고 곤륜삼선들과 장차의 일에 대해 논의했다.
부지런히 탁자에 깔린 요리를 집어 먹던 연적하가 갑자기 심통을 불렀다.
“심 노인.”
“예?”
“우리가 만난 지 몇 해나 되었지?”
“사 년은 된 것 같습니다.”
“더럽게 오래됐네?”
“어이쿠! 그게 왜 더럽습니까?”
“풋.”
무심코 듣고 있던 십전무후 남궁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어지는 말에 이내 정색을 했다.
“혹시 풍지산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말야. 연 누님을 모시고 달아나.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러자 남궁연과 심통이 동시에 언성을 높였다.
“공자님은요?”
“난 심 선배가 돌봐 줘야 할 정도로 약하지 않아.”
‘이크!’
남궁연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연적하는 얼른 말을 돌렸다.
“아니, 누님이 약하다는 게 아니라, 누님과 함께 달아나라는 소리였어요.”
“너는 어쩌고?”
“저는 뒤를 지키다가 누님이 달아나는 거 보고 튀려고요. 누님도 제 비연보가 얼마나 뛰어난지 아시잖아요?”
“알지. 한번 달리면 의천검존의 이기어검도 어쩌지 못한다면서? 하지만…….”
연적하가 남궁연의 말을 막았다.
“누님이 없어야 제가 마음껏 달아날 수 있어요. 누님이 있으면 저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아요. 누님, 저 믿죠?”
‘하아!’
남궁연은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의 말이 옳다.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자리를 떠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그를 사지에 남겨두고 혼자 떠난단 말인가!
“그래, 네 말대로 할게.”
마음과 다른 대답이 나왔다.
그의 고집을 알기에 져 준 것이다.
‘흐음! 팔황신모는 술법에도 밝은 사람인데 적하 생각대로 될까?’
누가 누구를 지킬지는 가 봐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