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295
295회.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팔황신모를 보자마자 악불 방천각과 적월 공취산, 혼세검마 적진경, 혼천혈귀 강상피는 손을 얼굴 앞으로 내밀어 맞잡고 소리쳤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본래 부처가 태어나자마자 했다는 말로, ‘하늘 위 하늘 아래에서 나 홀로 가장 존귀하다. 온 세상의 모든 고통을 내가 해결하여 편안케 하리라’라는 뜻이다.
그것은 유명교 행사에서 교주에게 올리는 경배이자, 약속된 구호였다.
팔황신모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네 명의 백두마군들은 앞다퉈 머리를 조아렸다.
“교주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천두마왕의 위에 오르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교주님의 존안을 뵈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교주님! 만세, 만세, 만만세!”
한차례 폭풍 같은 인사가 끝나자 팔황신모는 당주들을 신당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방천각은 품 안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내 서탁 위에 올려놓았다.
“육안과편(六安瓜片)이옵니다.”
“오오! 그래? 그렇지 않아도 마침 떨어져서 마시지 못한 지 여러 날이 되었는데, 고맙구나.”
팔황신모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떠올랐다.
육안과편은 남직례성 육안에서 나는 최고급 차(茶)다. 독소 배출과 피로 회복은 물론 미용에도 좋아 그녀가 즐겨 마시던 차이니 그럴 만도 하다.
내친김에 팔황신모는 비파선자(팔황의 일인)를 불러 물을 끊여 오라 했다.
순간 방천각과 공취산은 아무도 모르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잠시 후 비파선자가 찻주전자를 가지고 돌아왔다.
팔황신모는 손수 네 명의 당주들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처럼 얻은 육안과편을 즐거운 마음으로 음미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당주들이 모두 낙양에 모여 있다고?”
척진경이 급히 찻잔을 내려놓고 답했다.
“예, 백마사라는 곳에서 교주님이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쯧쯧! 무림인들과 시비를 일으켜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팔황신모가 혀를 차자 당주들의 얼굴에 억지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나 교주는 천하 제패에 관심이 없다.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는데 얻을 게 없다니?
한참 만에 강상피가 살짝 억울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교주님, 저희는 가만히 있었는데 천지맹 놈들이 먼저 죽자고 덤벼들었습니다. 저희 초월산장의 교도들도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팔황신모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당주들과 교도들이 백마사에서 교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쯤 백마사로 가실 생각이신지요? 아니면 교도들을 풍지산으로 오라고 할까요?”
풍지산으로 온다는 말에 팔황신모가 인상을 찡그렸다.
불로불사의 꿈을 이루기 직전인지라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다.
“수도(修道)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낙양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다. 더불어 이 시간 이후로 너희는 물론, 그 누구도 풍지산에 오지 못하게 해라.”
“…….”
네 명의 백두마군들은 불만 가득한 눈으로 팔황신모를 훔쳐보았다.
그러다 강상피가 울분을 토하듯 말했다.
“교주님, 저희는 지금 천지맹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수도는 전쟁이 끝난 뒤에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천지맹 놈들은 저희를 보기만 하면 죽이려고 듭니다.”
“나에게도 눈과 귀가 있다. 지금은 천지맹이 오히려 너희의 눈치를 보고 있다지? 이미 승패가 가려졌는데 힘들게 뿌리까지 뽑아 무엇하려고. 현세의 부귀영화는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 사라짐을 알지 못하느냐?”
“교주님, 녹림과 사파는 몰라도 정파 놈들은 기회가 있을 때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그놈들에게 뒤통수를 맞을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뒤통수 맞을 일은 없다.”
팔황신모는 정파가 유명교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십두마병과 백두마군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정파의 고수는 그렇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강상피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나 맞았습니다. 십두마병이 십여 명이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백두마군들도 말은 안 하지만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몰라 떨고 있습니다.”
팔황신모가 강상피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너는 죽음이 두려우냐?”
교주의 서늘한 눈빛에 강상피는 찔끔 놀랐다.
목에 뭔가 ‘탁’하고 걸리는 느낌이다.
“꿀꺽, 교주님,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까?”
“그래. 우리는 모두 죽음을 두려워 하지. 내가 풍지산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불로불사의 비법만 터득하면 더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수도를 뒤로 미루라고?”
‘씨벌! 전쟁부터 끝내고 수도를 하든지, 지랄을 하든지 하란 말이오!’
그러나 강상피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미친년.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끌 생각은 않고 허황되게 불로불사 타령이라니.
다시 고개를 쳐든 강상피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교주님의 큰 뜻을 모르고 어리석은 소리를 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교주에게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티끌만큼 남아 있던 희망도 버렸다.
이제는 다른 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교주를 없애려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런데 세 사람은 차를 다 마실 때까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교주를 시해하려고 한 게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다.
하지만 그건 강상피의 착각에 불과했다.
다른 셋은 교주에게 음양고를 쓰기 위해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뜨겁던 찻물이 식었을 무렵이다.
마침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공취산이 슬슬 운을 뗐다.
“교주님, 얼마 전에 제가 희귀한 팔주령을 하나 얻었습니다. 한번 보시렵니까?”
“희귀하다고?”
팔황신모가 관심을 보였다.
“예, 옥으로 된 팔주령입니다. 제 안목이 미천하여 진위를 가릴 수 없으니 교주님께서 보아 주십시오.”
말과 함께 그는 품에서 팔주령 하나를 꺼내 팔황신모에게 직접 바쳤다.
그의 두 손이 공손하게 찻잔 위로 넘어갔다.
옥으로 된 팔주령을 받아 찬찬히 살피던 팔황신모가 피식 웃었다.
“이것은 단지 장식에 불과하다. 팔주령과 똑같이 생겼으나 제의에는 적합하지 않다.”
“아, 그렇습니까?”
“이 옥은 염마왕의 권속들이 가진 마력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
“아아! 그렇군요. 그래도 옥이나 팔주령 모두 희귀한 것이니 교주님께 드리겠습니다.”
“고맙구나.”
팔황신모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녀는 어설픈 재물보다 옥으로 된 팔주령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공손히 물러난 공취산이 방천각에게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냈다.
방천각은 공취산이 ‘양고’를 썼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자연스럽게 찻잔을 들어 식은 차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꿀꺽, 하아! 좋구나. 이거 차갑게 해서 마셔도 꽤 괜찮을 것 같습니다.”
팔황신모가 차향을 맡으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 차를 꼭 뜨겁게 마시라는 법은 없지.”
팔황신모는 찻잔에 절반쯤 남아 있던 차를 꿀꺽 삼켰다.
순간 공취산의 눈이 흥분으로 반짝였다.
양고가 교주의 입속으로 들어갔으니 더 이상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
반각(약 7분)쯤 지났을까?
방천각은 슬며시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음고’가 들어 있는 엄지손톱만 한 은갑을 움켜잡았다.
지금쯤 ‘양고’가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을 시간이다.
대법에 성공했는지 아닌지 아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그는 암암리에 손가락 끝으로 공력을 방출해 ‘음고’를 압박했다.
“아!”
잘 앉아 있던 팔황신모가 인상을 찡그리며 관자놀이를 어루만졌다.
지켜보던 공취산이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교주님, 왜 그러십니까?”
“아무 일도 아니다. 피곤하니 그만 물러들 가거라.”
방천각은 조금 더 세게 공력을 밀어 넣었다.
곧바로 팔황신모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음.”
팔황신모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연신 관자놀이를 눌렀다.
아무 징조가 없었는데 갑자기 두통이 밀려오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양고’가 자리 잡았음을 알게 된 방천각의 입이 귀에 걸렸다.
“교주님, 머리가 많이 아프신 모양입니다?”
방천각의 야릇한 미소를 본 팔황신모는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급히 내공을 움직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대주천을 마쳤지만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한차례 두통이 밀려왔다.
이번에는 ‘악!’ 소리가 날 만큼 지독했다.
팔황신모는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움켜잡고 방천각을 노려보았다.
“너 이놈! 무슨 짓을 한 거냐!”
방천각이 빙글빙글 웃으며 답했다.
“교주님, 혹시 ‘음양고’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나에게 ‘고’를 썼다는 말이냐? 이 내가 ‘고’ 따위에 당했다고?”
그러자 공취산이 끼어들었다.
“그냥 ‘고’가 아니라 ‘음양고’라는 ‘염매’입니다. 교주님의 머리에 들어간 것은 ‘양고’이지요. 뇌에 박혀 살아가는 미물이라 빼낼 수도 없습니다.”
“뭐라! 네놈들이 모두 한패였더냐?”
팔황신모의 눈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대답 여하에 따라 모두 죽여 버리겠다는 눈빛이다.
사실 천두마왕인 그녀의 능력으로 그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간파한 공취산이 서둘러 말했다.
“진정하십시오. 저와 악불은 ‘음양고’와 한 몸이나 다름없습니다. ‘음고’나 저와 악불, 이 셋 중에 하나라도 죽으면 교주님도 죽습니다. 그러니 교주님을 위해서라도 저희를 어떻게 해 볼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원독 어린 눈으로 공취산을 노려보던 팔황신모가 물었다.
“왜냐? 왜 나를 배신한 것이냐?”
“왜냐고요?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우리가 교주님을 배신한 게 아니라 교주님이 우리를 버린 겁니다.”
“헛소리.”
팔황신모가 경멸의 눈으로 네 명의 당주들을 둘러보았다.
강호에서 빌빌거리는 놈들을 고수로 만들어 주었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때릴 줄이야.
그러자 공취산이 이를 갈며 말했다.
“자그마치 이십 년입니다. 교주님이 사라진 뒤로 우리는 천하를 상대로 이십 년이나 싸워 왔습니다! 이제는 천하가 우리를 죽이겠다고 한 패가 되었지요. 그런데 교주님은 뭐라고 했습니까? 현세의 부귀영화는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고요? 불로불사를 위해 수도해야 하니 풍지산에는 오지 말라고요?”
아까부터 참고 있던 강상피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씨벌! 부귀영화를 누리기도 전에 죽게 생겼습니다! 천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너희끼리 싸우라니! 그게 교주가 할 소립니까! 그러고도 배신이라는 말이 나옵니까? 교주님이 우리를 배신한 겁니다!”
“흥! 뻔뻔한 놈들. 이미 이긴 전쟁을 두고서 누가 누구를 배신했다는 것이냐? 헛소리 집어치우고 원하는 것이나 말해라.”
방천각이 졌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보통 사람들은 노기로 인해 생각이 꽉 막힐 텐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교주님도 이젠 아시겠지만 우리와 교주님은 가는 길이 다릅니다. 불로불사가 꿈인 교주님과 달리 우리는 현세에서 잘 먹고 잘살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고작 그런 시시껄렁한 소리를 하겠다고 목숨을 건 건 아닐 텐데?”
“천두마왕이 되는 진언을 알려 주십시오. 다른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걸 믿으라고?”
“믿지 않으면요? 우리를 때려죽이고 함께 죽기라도 하시게요?”
팔황신모가 기막힌 눈으로 방천각을 보았다.
방천각이 설명하듯 말을 이어갔다.
“설사 진언을 알려 준다 해도 교주님은 무사하실 겁니다. 우리에게도 진언의 진위를 파악할 시간은 필요하니까요. 천하에 그 진언을 알고 있는 사람이 교주님뿐인데, 우리가 어리석은 짓을 하겠습니까?”
한마디로 진위가 파악될 때까지는 안전하다는 소리다.
팔황신모는 네 명의 당주들과 차례로 눈을 맞춘 뒤에 저주하듯 말했다.
“너희들의 끝은 실로 끔찍해서, 낳아 준 부모를 원망하고 저주하게 될 것이다.”